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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 이웃집 가이드 - 11

벼와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9.18 19:08:44
조회 1570 추천 72 댓글 19
														

*이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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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나가 기관에 끌려가고 찾아온 첫번째 아침. 아무것도 모르는 엘사는 아파트 복도에 서서 안나를 기다렸어.
안나에게 사과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연습했지. 그런데 안나가 나오질 않잖아.


'내가 심하게 굴었던 건 맞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엘사는 안나가 A-B 동안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을 떠올리면서 속을 태워. 죽 끓는 듯한 변덕, 철 없는 뒷담화, 매사에 위기감 없이  임하는 태도... 언질 없이 넘어가기엔 무척 거슬렸던 안나의 면면을 견디기 위해 침묵했던 시간, 과감히 깎아냈던 경향성이 아깝게 느껴지면서 안나가 A-B때 했던 말이 스쳐지나가.


'난 가식적인 사람이 싫어.'


솔직하게 말하면 이렇게 피할 거면서. 엘사는 A-B때의 안나에게 코웃음을 치면서, 안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래도 화내지 말자, 화내지 말자. 꾹꾹 참으면서 안나 목소리가 들리길 기다리는데 연결음의 종착역은 진부하게도, 소리샘이야. 엘사는 폭발하는 화를 참기 어려워. 결국 폰을 끄고 홀로 등교해.


'완전히 갈라서자는 거지.'


엘사는 성난 마음을 어르면서 안나가 없는 삶을 상상하고 준비해. 왠지 아무 문제 없이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 예감대로 역경 없이 시간이 흘러가. 안나와의 접촉이 엘사를 안정되게 하지만, 안나 없이 살아냈던 세월이 더 길단 말이지. 엘사는 안나 없이도 무사히 하루를 지냄. 하지만 그 때문에 새벽 밤 찾아온 갑작스런 감정에 손도 못 쓰고 쓰러져버려.


너무 무기력하고 공허해. 내일을 잘 보낼 자신이 없어.
침대에 누운 몸을 둥글게 말아서 팔다리에 흩어진 활기를 한 곳에 모아보지만 응축시키기 어려울만큼 미미한 양이야.
방 안엔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엘사는 내면으로 파고들어 .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자. 안나가 진정으로 날 좋아한다면 좀 더 어엿하게 행동할 거야.
하지만 안나의 행동들을 봐. 나에게 애정이 있는데 그렇게 행동하는게 가능해?
변덕 부리지 않고 한가지를 꾸준하게 취하고 싶은 마음, 뒷담화를 하고 싶지 않은 정직한 경향성, 매사 철저하게 준비해서 임하고 싶은 내 삶의 방식에 그토록이나 무심하게 굴 수 있냐구. 아무리 생각해도 안나는 진정한 사랑을 몰라. 그렇게 대책 없고, 현실감각 없는 애랑 같이 동성애자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는 없어. 도무지 안나랑 함께할 순 없어. 그러니 안나도 날 잊는 편이 나을 거라고 판단했던 거고. 이처럼 옳은 방향으로 상황을 끌어가려 했던 것 뿐인데. 그게 나쁜건가?


'...말을 너무 심하게 했던 건 나빴어. 그래, 그건 아주 나빴어.'


화내지 말고 좀 더 완곡하게 설득했어야 했는데. 안나를  만나질 못하니 그럴 기회도 없어.
한숨을 푹 쉬는데 벨이 울리고 엘사는 벌떡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뛰쳐가. 기다렸던 사람이 찾아온 것 처럼. 안방에서 기어나오는 아빠가 '이 시간에 대체 누가...'하고 꿍얼거리 는 걸 듣고서야, 무례한 사람이 방문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신경쓰지 않아.


"밤 늦게 미안하다 엘사. 혹시 안나 있니?"


문을 여니 벨벳 아저씨가 서 있어. 장난기 많아보이는 얼굴 생김이 하나 둔 외동딸이랑 꼭 닮았는데 낯빛이 너무 어두움. 벨벳 아저씨의 얼굴을 본 엘사는 무안해졌어. 그에 비해 너무 웃고있었거든.


아저씨는 안나를 찾으러 오셨어. 안나가 가출을 한 것 같다는 거야.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지만, 엘사는 동요하지 않았어.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 벨벳씨가 사정을 말하다 북받쳐 '이럴 애는 아닌데, 이럴 애는 아닌데...' 하며 고개를 저을 때도 덤덤했어. 벨벳 아저씨를 부 축해 집으로 바래다 드릴 때 까지도 같았어.


오히려 약간 기뻤어.


'내가 싫어진건 줄 알았는데.'


안나가 관계를 끝내려한다고 생각한건 순 오해였어.
안나는 그저 가출한 것 뿐이였던 거야. 엘사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잠들어.


"가출은 철 없는 애들이나 하는 거야."


평소랑 별 다를바 없는 아침이야. 다른게 있다면, 잘 구워진 토스트와 함께 안나의 가출이란 대화 주제가 테이블 위에 올랐다는 것. 엘사네 아빠는 두 메뉴를 심드렁하게 씹어 삼켰어. 혼자 움찔한 엄마는 아랑곳 하지않는 딸의 눈치를 살피며 아빠의 옆구리를 쿡 찔렀지.


"사정이 있어서 가출할 수 밖에 없는 애들도 '극소수' 있겠지만."
"네..."


엘사는 너무나 익숙해서 이젠 내 것이 된 듯한 아빠의 말투와 가치관에 공감하면서 토스트를 씹어. 하지만 안나의 가출에는 공감하기 어려워. 대체 무슨 이유로 가출을 한 걸까? 보통 부모님과 갈등이 있을 때 가출하잖아. 안나는 부모님이랑 사이도 좋았는데,  대체 뭐가 문제였던건지. 생각해봐도 도통 알 수가 없어.


"난 네가 휩쓸리지말고 공부에 집중했으면 좋겠구나."
"네."


확언할 수 있는 건 어떤 이유에서건 안나의 가출은 너무 무모하다는 거야.
아빠차를 타고 등교 중인 엘사는 아빠와 꼭 같은 입장으로 안나의 행동을 평가하면서 생각에 잠겼어.


"왜냐면... 다른 것 보다, 걱정이 되니까."


그래서 저 음성에 뭐라 대꾸할 정신이 없었음. 그저 멍한 표정으로 학교를 향해가다가, 학교에 거의 다 다랐을 때에 저 말을 씹었단 사실을 깨달았지. 뒤늦게 대답하자니 타이밍이 애매해서 그저 다녀오겠다는 인사만 하고 차에서 내린 엘사는 이상할 정도로 별 탈 없이 하루를 보내.


안나가 가출한지 3일 째 아침이 밝았어. 처음엔 1학년들 사이에서만 오갔던 이야기가 전 학년에게 전달되고 레릿고는 가출한 안나 얘기로 술렁거려. 후속편도 계속 만들어짐. 실종된 안나, 납치된 안나. 사랑받는 이야기라 프리퀄이 만들어지는 것도 시간 문제였어. 아빠 사업이 망해서 어떻게 됐다더라, 원래 무슨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더라, 성적비관 자살... 블라블라블라. 개중엔 입에 담기 역겨울 만큼 괴랄한 유언비어도 섞여있어서 일말의 실마리가 있을까봐 사실 확인 과정은 생략하고, 들려오는 모든 소문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던 엘사는 심히 불쾌해져.


'왜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떠들어대지?'


근거 없는 소문들은 전부 혐오스럽구나. 엘사는 같이 다니는 친구 마리안느가 안나 얘기를 할 때도, 양애취같은 급우 엘버트가 안나를 주제로 급우들과 키득댈 때도 심드렁하게 반응하면서 귀를 닫아야겠다고 생각해. 안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는 것 같음. 그냥 혼자서 할 수 있는 추리를 해보지. 납치나 실종이라면 엘사 힘으론 어쩔 도리가 없어. 때문에 '안나는 가출한 게 틀림 없다'는 가정을 세우고 힌트를 끌어내. 안나의 경향성, 기호같은 게 안나를 일상 밖으로 데리고 나간걸 거야.


음, 안나가 엄마 아빠 때문에 가출할 것 같지는 않고.


'...설마 나 때문에?'


고민은 다음날 점심시간까지 이어지다가, 문득 이런 구상이 나와. 안나가 자기 때문에 가출한 게 아닐까 하는. 우습고 민망한 추측이지만 내가 자기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충동적 선택으로 어떤 해방감을 구하려 한 걸지도. 엘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혀를 차.


'사실이라면 안나는 정말 옳지 않은 판단을 한거야.'


가출한다고 해서 갖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되거나, 상황이 개선되진 않아. 가출은 다음 단계가 아니야. 현실도피고, 정체고, 트래픽을 심화시키는 최악의 행동에 불과해. 그리고 엘사는 그 '최악'을 저지른 적 있지. 하지만 엘사에겐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어. 왜냐면 병을 감춰야했고, 가족과 멀어져서라도 가족과의 관계를 지키고 싶었잖아.


'...안나도 나랑 잠깐 떨어져서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해서 나와의 관계를 지키고 싶었던 거라면? 그럼 안나의 선택은. 안나의 가출은 타당하다고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안나가 그 '가출할 수 밖에 없는 극소수의 청소년'이지 않을까? 그치만 왜 가출씩이나하지? 그냥 안 보면 될텐데.


'안보면 되긴. 내가 등하교 같이 하자고 닥달했는데...'


등하교를 쭉 함께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하루를 지내던 안나가 언젠가 부터 동선을 달리했지. 그 사실에 화가나서 안나에게 쏘아붙였던 아침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어. 생각하면 할 수록 자기 때문에 가출한 게 맞는 것 같아. 둘은 물리적 거리도 가까운 이웃이니까 자주 마주칠 수 밖에 없잖아. 안나의 변변찮은 지능과 충동적인 성격을 참작했을 때, 가출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릴만도 해. 엘사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머리를 뜯어.


'안나가 나한테서 멀어지는 방식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던 거라면, 그렇게 멀어지도록 두는게 맞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아닌 것 같아.
서로 친구였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고백을 했고, 다른 한사람은 그걸 찼어. 그렇다고해서 곧장 갈라서면 그거야말로 서로를 에로스적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 아닌가? 두 사람이 서로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면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건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고, 엘사는 생각해왔어. 엘사는 안나가 자신한테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나를 예전과 똑같이 대해서 우리 둘 사이에 우정이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안나도 그 방식에 따라주길, 그 방식으로 우정을 지켜주길 원했던 거고. 그래서 등하교에 늦지 말라고, 우리 우정을 위해 노력하라고 역정을 냈던 것이지.


'그냥 멀어지도록 뒀어야 했나? 그랬다면 가출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엘사는 안나와 친구인 관계를 포기할 만큼 안나를 싫어하지 않아.
오히려 좋아하는 쪽에 가깝지. 만약 그애의 치명적인 단점에 개선의 여지만 보였다면 안나의 고백을 받아줬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제발 가출이길.'


안나가 사라진지 5일 째. 엘사의 바람은 단순해진 만큼 간절해졌어.
익숙한 하교길을 느릿느릿 걸어내면서 안나가 부디 자의로 떠난 것이길. 타의로 인한 실종이 아니길. 납치가 아니길. 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괴한에게 납치를 당한 것이면 적어도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살아있길! 속으로 소망 중이었지. 그 때 갑자기 안나가 나타난거야. 엘사는 안나를 코 앞에서 마주할 때까지도, 자기가 안나한테 달려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어.


"너 어디 갔었어!"


안나한테 거의 윽박지르는 수준으로 소릴 지르고 나서야 깨달았지. 안나가 돌아오면 맨 처음 하기로 했던 말은 이와 달랐음을...!


2
「왜 누군지 그 자리에서 말 안해? 왜 그 사람이 화면에 잡히자마자 피했어? 너 지금 행동 엄청 수상한 것 알아?」
"언니 앞에서 갑자기 궬사씨랑 얘기하라고요? 이상해 보일 거라고요!"
「그럼 지금 말해.」
"이웃집 사는 친한 언니에요."
「진짜 그게 다야?」
"...그렇다니깐!"


안나는 엘사를 보자마자 어버버, 아무렇게나 인사한 뒤 헤어져야했어.


지금 화면에 잡힌 여자 누구야. 똑바로 말해. 당장 말해.
기관에서 지급해준 코난 안경의 오른쪽 다리 끝에서 들리는 궬사의 음성이 날뛰었거든. 안나는 일단 시야에서, 즉 궬사에게 전송되는 영상에서 엘사를 치워버려야겠다고 판단했어. 엘사에 대한 소개는, 집으로 뛰쳐온 다음이야. 고백했다가 차인 언니, 초능력자 언니라는 사실은 당연히 비밀이고.


「나중에 다른게 밝혀지면 너만 곤란해질 줄 알아.」


말하는 것 좀 봐. 안나는 궬사한테서 중딩 때 따랐던 무서운 언니의 그림자를 느껴. 한 살만 더 어렸어도 찍 소리 못했을 거야.
하지만 그 때 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된 안나는 궬사에게 따박따박 대들었어.


"그럼 그 언니 뒷조사라도 해 보시던가요. 보니깐 그런건 일도 아니겠더만."


안나는 얼핏 봤던 기관 건물의 기괴한 위용을, 조직적으로 움직이던 기관 인원들의 음습함을 떠올리면서 빈정대.


「네 주변 인물을 함부로 뒷조사하는 건 프라이버시 침해지.」
"프라이버시이? 프라이버시 침해애애?"


아까부터 조용하던 안경의 왼쪽 다리 끝에서 벨이 조곤조곤 대답해. 기가차서 꿱 하고 괴성을 지르는 안나의 목엔 핏줄이 서.
지금 이것 보다 더 한 프라이버시 침해가 어딨다고.


「네 일상을 들여다 보는 것도 조심스러운 우리 입장을 좀 이해해줬음 좋겠어.」
"알겠어요. 자야겠어, 피곤해."


이를 뿌득뿌득 갈면서 방 안으로 들어온 안나는 안경을 벗고 침대 귀퉁이에 던지듯이 놓음.
궬사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조그맣게 들려와.


「안돼, 안경 벗지마. 무슨 짓이야.」
"끼고 어떻게 자요?"
「알아서 해. 어쨌건 네가 무슨 행동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순간 우린 너한테 좀 더 '심한 조치'를 할 수 밖에...」
"아이, 씨..."


안나는 울먹이면서 안경을 다시 썼어.


「자긴 뭘 자. 너 안경 벗고 무슨 수상한 짓 하려고 했지.」
"엄마한테 전화하려고 했다!"
「반말하지 마라.」


안나는 궬사 말을 씹으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일상으로 돌아온 잠깐 동안은 굉장히 막막했지만 궬사와 벨의 무례한 행동에 속이 화끈~ 타버린 안나는 해야 할 일이 분명하다고 생각해. 부모님, 친구들, 담임선생님께 생존신고를 하는 거지. 엄마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메리다랑 통화를 끝냈을 때. 이렇게 두 번 정도 울 뻔 했는데 꾹 참았어. 특히 엄마랑 통화했을 땐 엄청 북받쳤어. 직장에 계신 엄마가 지금 당장 퇴근하겠다고, 괜찮냐고, 어디 아픈덴 없냐고 묻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고 미안해서 눈 앞이 어지러울 지경이었지. 그래도 덤덤한 목소리로 통화를 끝냈어. 궬사와 벨에게 감정을 전달하고 싶지 않았거든.


하지만 코 끝이 찡해오는 걸 막을 순 없었어. 안나는 맑은 콧물을 쿨쩍이면서 이제 다음에 통화할 사람을 생각해. 엘사.
엘사랑 통화하자니 안나는 무척 복잡한 심경이 돼. 안나는 실종되기 직전, 엘사와 크게 싸운 아침을 떠올려. 엘사는 자기 곁에 꼭 붙어있어 달라고 부탁했어. 아마 능력─병 때문일거야. 그런데 내가 몇일씩이나 사라져버렸으니, 나에게 화가 나있을 것 같아. 났어, 화 난 거 맞는 것 같아. 엘사가 자길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윽박지르던 표정 좀 봐. 일단 집에 가봐야한다니까 붙잡지도 않잖아.


안나는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 하지만 엘사를 기관으로 부터 지켜줘야해.
엘사가 자유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몰라. 만약 내 실수로 엘사가 기관에 잡혀오기라도 해 봐. 날 원망할테지.
더이상 엘사한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아진 안나는 엘사를 지키기 위해 엘사에게 사정을 설명해야겠다고 결심해.
그래서 궬사에게 간청하지.
 

"궬사 언니. 진짜 이거 잠깐도 벗으면 안돼요?"
「안돼, 왜. 또. 뭔데.」


안나는 궬사의 짜증나는 말투에 동요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침착한 말투로 사정을 설명해.


"아까 그 언니한테 제 얘기를 좀 해야해요."
「언니 누구.」
"아까 금발 언니랑."
「그럼 안경 끼고 가서 얘기해.」
"좀 프라이빗한 얘기라..."


안나는 궬사보다 상대적으로 침착하고, 교양있어 보이고,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듯한 벨이 제 편을 들어주길 기대하면서 말 끝을 흐려.


「무슨 프라이빗한 얘기? 둘이 무슨 관곈데? 안경 벗고 무슨 얘길 하려고?」
「대답해 줘 안나, 우리가 물으면 피하지 말고 대답해야해. 규칙이 그래.」


하지만 벨은 안나를 옥죄는 데에 있어선 궬사와 죽이 잘맞아. 심지어 궬사보다 더한 것 같기도해. 무조건 대답하는게 규칙이라니!
수세에 몰린 안나는 안경을 집어 던지면서 "내가 그 언니 가이드인데 감시당하고 있는 중이니까 내 곁에 접근하지 말라고 할건데요!"
라고 외치고 싶은 걸 꾹꾹 참으면서 '프라이빗한 속사정'을 지어내. 사실 아주 가짜 사정은 아니야.


"제가 그 언니를..."
「그 언니를.」
"그 언니랑..."
「사귀어?」
"네? 아닌데!"
「좋아해?」
"네!"


안나는 얼굴이 화끈해져. 오와오아아ㅗ아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는데!
내가 엘사를 위해 이렇게 헌신하다니. 언닌 나한테 정말 고마워하면서 살아야해.


「왜?」
"이상하죠!"
「왜?」


처음 왜? 하고 물은 벨이 그럼 크리스토프는 뭐야. 하고 작게 중얼거리는데 안나의 귀엔 닿지 않아.
짝사랑을 커밍아웃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서 혓바닥이 지 멋대로 자학을 해.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다니. 레, 레, 레즈라니 이상하죠, 나도 알아요!'
안나의 호들갑스러운 태도가 띠꺼운지, 이번엔 궬사가 왜? 하고 묻고 여기엔 벨이 대신 대답해.


「평범한 건 아니지.」


성 소수자에 대한 차갑고 냉정한 시선에 안나의 볼륨있는 가슴이 아플 준비를 하는데, 궬사가 핏대를 세우며 윽박질러.


「이상하지도 않아. 왜 말 안했어. 내가 아까 진짜 그냥 평범한 이웃집 언니 맞냐고 되묻지 않았냐? 넌 지금 우리 하는 일이 장난 같냐, 뒤지고 싶어?」
「궬사, 말 좀.」


안나는 사람 말려 죽일 듯한 기관의 감시에 치를 떨면서 더듬더듬 변명해.


"...사, 사귀고 그런게 아니라 고, 고, 고백했다 차였거든요? 그런 것도 말해야해요?"
「푸하하, 진짜아?」
「말해야 하긴 해.」


궬사가 이런 민망한걸 캐물어서 조금은 미안하다는 듯한 어투로 자지러지고, 벨이 침착하게 대답해.
안나를 조롱하고, 안나한테 비아냥대는건 모두 궬사가 하는 짓거리인데 안나는 왠지 벨이 더 얄미워.


「그래서 왜 차였는데?」
"...이런 질문에도 무조건 대답해야해요, 규칙상?"
「...응.」


안나는 벨이 대답하기 전에 잠깐 침묵했다는 점이 거슬려. 감시차원에서 묻는 게 아니라 그냥 남의 비참한 짝사랑이 우습고 흥미로워서 캐묻는 듯한 저속한 느낌이야. 그치만 대답하라니 대답해야지. 별 수 없음.


"그냥 자긴 여자랑 안 사귄대요."
「그거는 구라야.」


궬사의 단호한 대사에 궬벨은 '안나 감시'라는 본분을 잊은 채 연애 얘기에 열을 올리고, 안나 또한 '자기 보고'라는 본분을 잊은 채 대화에 빨려들어가기 시작해.


"네? 왜요?"
「걔 입는 것만 봐도 레즈같애. 여자랑은 사귀는데, 못생긴 여자랑은 안 사귀니까 널 찬거겠지.」
"무슨...!"
「궬사, 그만해.」
"맞아요. 솔직히 나만하면."
「어떻게 옷 입는 걸로 사람의 성 정체성을 잴 수 있니.」
「난 알아.」


그런 애들은 척 보면 안다니깐. 궬사가 실눈을 뜨고, 까르르 웃으며 덧붙여.


"...아무튼 좀 정리를 하려고요."
「무슨 정리?」
「보지말자고 할거야?」
"네."


엘사에 대한 짝사랑을 고백한 건 무척 쪽팔린 일이지만.
그래도 '엘사와 나의 관계는 남에게 보이기엔 다소 껄끄러운 구석이 있다'라는 밑밥을 성공적으로 깔았어.
이대로 계속 밀어 붙이면 안경을 벗고 엘사에게 찾아가서 실종되기 까지의 경위, 지금 내가 감시당하고 있는 상황 등등 자초지종을 설명할 수 있을거야.
앞으로 어떻게할지 함께 상의할 수도 있을 거고.


"예전엔 엄청 친했는데 이젠 보지 말자고 해야할 것 같아요. 만나서 얘기하는 게 맞겠죠. 그 때 동안만 안경 벗게..."
「안 돼, 안 돼, 안 돼 절대 안 돼. 널 어떻게 믿고.」
"그럼 두 분 보는 앞에서 그런 쪽팔리는 얘길 하라고요?"
「너 지금 엄청 이상하다.」


궬사의 말에 안나는 살짝 소름이 돋아. 예리하긴.


"또 뭐가, 뭐가 수상한데요. 그냥 차여서 맘 정리 하려는 것 뿐이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너 아직 걔 좋아하는 거 아냐?」
"네? 아닌데요."


안나는 궬사의 지적에 푸욱 찔렸지만 아닌 척 시큰둥하게, 또 재빠르게 대답해.


「그럼 그냥 예전처럼 지내. 보지 말자느니, 그런 얘길 뭣하러 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서로 깊숙한 얘기를 할 땐 얼굴 마주보고 해야지.」
「하!」


벨이 웬일로 거들어. 안나도 얼른 합세해서 우습다는 듯 비소를 터뜨리는 궬사에게 밀어붙여.


"아무튼 전 얘기할 거에요. 얼굴보고...그 동안만 이 안경 뺄게요."
「절대 안돼.」
「안돼 안나.」


이런, 씨!
안나는 결국 두 사람의 굳은 의지, 정확히 말해 기관의 권위에 굴복해. 자신을 감시하는데 있어선 거짓말 처럼 죽이 잘맞는 궬벨이 미워 죽겠어.
게다가 상황이 의도와는 전혀 반대로 굴러가니까 막막하기만 해. 본래는 궬벨의 감시에서 벗어나, 엘사를 찾아가서 이것 저것 설명하고 상의할 예정이었어. 그런데 '엘사에 대한 짝사랑을 정리하고 싶다'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에 걸려 넘어져서 이런 못생긴 안경을 끼고 엘사랑 작별인사나 해야하는 지경에 일렀잖아. 고백했다 찬 사람이 갑자기 몇일 쯤 실종됐다가, 불쑥 나타나서(그것도 바보갓은 안경을 끼고) 한다는 소리가 '우리 이제 보지 말자.'라니.


궬사가 딱히 지적하지 않았어도 안나는 이 상황이 무척 바보같다고 생각했을거야. 하지만 이제와서 '궬사 말대로 작별인사를 하는 건 바보 같은 것 같네요, 헤헽!'하며 내빼자니 무척 수상해 보일 것 같아. 안나를 향한 궬벨의 다양한 의심과 불신은 더욱 깊어지겠지. 안나는 결국 엘사를 놀이터로 불러내.


"오랜만이야."


그런데 엘사가 무척 따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걸어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라 불어오는 찬바람이 묘하게 낯선데, 엘사의 미소가 딱 그만큼 멀게 느껴져. 엘사가 안나를 이렇게 대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안나는 엘사의 온화한 태도가 기관에서 받았던 심적 곶통, 궬벨의 감시가 주는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 처럼 느껴져서 감동해. 갓스가 여자도 홀리는 마성의 얼...굴.


"아까도 봤는데 뭘."
"그게 무슨 본 거야. 이게 제대로 보는 거지."


아앗... 아파!
이 얼굴에 대고 '이제 우리 그만 보자.'는 별 이상한 소리나 해야하다니.
자신이 비참해진 안나는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참으면서 침착하게 말해. 궬벨은 침묵한 채로 안나가 전송해 주는 아름다운 화상─엘사와, 그의 멋드러진 목소리를 들어.


"이제 우리 보지 말자. 그 말 하려고 왔어."
"왜?"


왜냐면, 나와 내 주변인물을 감시중인 초능력 기관 사람들이 언니를 수상히 여기고 잡아갈 수도 있으니까!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순 없지. 안나는 그냥 짝사랑에 지친 레즈비언 연기에 몰입해. 물론, 진정성이 있기에 가능한 연기야.
실제로 안나는 클톱을 만나면서 엘사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려고 했었어.


"몰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는데. 그게 나을 것 같아서."
"그럼 난 어떡하라고."


안돼, 안돼. 초능력 얘기는 하지 마.
안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궬벨의 눈치를 살펴. 하지만 궬벨은 아무 말이 없어. 안나도 모른 척 잡아 떼기로 해.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안나. 말해줘. 어디갔던 거야?"
"몰라."


이건... 뭐지?
안나는 자신이 고백한 후 부터 히스테릭하기만 하던 엘사가 간만에 보여주는 친절한 태도에 적응을 못해.
심박수가 올라가기 시작하고 양쪽 귓가가 후끈, 후끈 더워져.


"왜 모르기만 해. 말하기 싫어서 그래?"
"...그건 아닌데."
"나 때문에 학교 빠지고, 집 나가고 그런 거야?"
"아니, 아니야. 아니다, 맞나? 모르겠어."


안나는 엘사와 싸웠던 장면, 병풍을 불러내서 했던 짓거리, 엘사에 대한 비밀을 지키면서 기관에 갇혀있던 순간 등등을 떠올리면서 버벅거려. 흑역사 그 자체야.


"우리 싸웠었잖아."
"응."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네가 내 전화도 안받고, 나와있지도 않아서 나랑 영영 안 보자는 건 줄 알았거든."
"응..."


싸웠던 당시를 회상하는 엘사의 음성이 좀 더 낮아지고, 진중해졌다는 사실을 눈치채서 함께 심각해진 안나는 생각해.
나한테 화 많이 났겠구나.


"근데 알고보니 가출한 것이더라고. 그래서..."


걱정했어?
안나는 기대를 품고 엘사의 뒷말을 추측해봐.
화가 풀렸다. 걱정 많이 했다. 반성했다. 등등의 따듯한 말.


"좋았어, 처음엔."
"뭐?"
"...니 단점이 거슬릴 때가 있어. 근데 참았었거든."


그래서 평소 눈앳가시로 여기던 내가 사라지니까 좋았다는 거야?
안나는 엘사의 피도, 눈물도 없이 냉혹한 성질머리에 어안이 벙벙해져.


"내가 많이 생각해봤는데. 너도 내가 네 마음에 안 들 때마다 참았을 것 같더라고."
"응, 응, 알아. 우리 진짜 안맞는 거. 그러니까..."


만나지 말자고. 안나는 뒷말을 잇지 못해. 너무 서럽고 섭섭해서 목이 메였어. 어쩌면 엘사랑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게 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엘사같이 못되먹은 사람을 뭣하러 좋아하는 걸까. 뭣하러 엘사의 자유를 지켜주려는 건데. 안나는 감히, 엘사 따위 때문에 슬픔에 빠진 스스로를 꾸짖어. 이 와중에도 엘사의 얼굴은 아름답기 그지 없어서 더 처량해. 저 얼굴, 저노무 얼굴.


"이제 우리 편견을 지우고 서로를 알아가보자."


엘사의 말이 감정을 수습하며 사고를 정리 중이던 안나의 말과 묘하게 이어져.
하지만 안나는 도통, 여태까지의 전개와 결론을 연결할 수 없어. 엘사가 차분한 얼굴과 또렷한 발음으로 안나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을 때. 그제야 어렴풋이 이해했지.


"네가 아직도 날 좋아한다면 만나보자고."

 

 

 

 


───────────────────────────────
픽식으로 해달라는 피드백을 수렴해 조금 더 상세하게 썰을 풀기로함... 그래서 길어짐
한 2~3편 안에 완결내겠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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