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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Argos Ch.3 - 2

치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11.24 22: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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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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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gos Ch.1 (텍본)

Argos Ch.3 - 1 (텍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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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셀은 굳은 표정으로 'Fisherman's Wharf'의 부두에 앉아있었다. 던지려던 자세 그대로 다빈은 자신의 친구를 못 믿겠단 듯이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네 목이 날아갈 뻔 했다는 그날 밤 알현실에서, 여왕이 어깨가 다 보이는 섹시한 드레스를 입고있는 걸 봤고, 거기다 자기 여동생이랑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그걸 나보고 믿으란 거냐?"

 


 

"그니까, 좀… 생소한 이야기라는 건 알아. 하지만 진짜야!"

 

"생소하다라. 허 참.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 조약돌을 던진 다빈은 돌이 피오르드 속으로 가라앉는 걸 지켜보았다. "너 그 날 밤에 재미 좀 본다고 뭐 빨아댄 건 아니고?"

 


 

악셀은 제 친구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진짜 그러기냐? 가 무슨 독버섯이라도 먹은 줄 알아? 난 내가 밤에 잠도 못 이루는 이유를 네게 털어놓을 수 있을 때까지 이 주나 걸렸어. 내 절친이란 놈은 조금이라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고!"

 

"알았어, 알았다고. 진정해. 별 의도는 없었고, 난 그냥…" 다빈은 말같잖은 소식에 머리를 긁적이며 다른 한 손으로는 조약돌을 만지작거렸다. "씨발, 임마." 다빈은 욕을 내뱉었다. 다빈이 피오르드로 던진 조약돌이 물을 튀겼고, 파문이 일며 잔잔한 수면을 깨웠다. "내가 대체 뭘 믿어야 하냐? 우리 여왕이 여동생이랑 근친상간하는 레즈비언이라는 거?"

 

"여왕보다는 공주 쪽이 더 그래." 악셀은 맥없이 대답했다. 여전히 자신이 본 것을 믿지 못하고 있는 탓이었다. 마치 그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마음에 평생의 흉터가 남은듯 했다. 왕궁에 가서 여왕을 신처럼 떠받들게 되기를 얼마나 꿈꿔 왔는데, 그 결과가 이거였으니까. 여왕은 죄인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죄인이 아닌, 땅을 밟고 다니는 것조차 혐오스러운 끔찍한 죄인이라니!

 


 

다빈은 악셀 옆자리에 앉았다. 다빈은 머리를 헤집으며 생각에 잠겼다.

 


 

"좋아, 들어봐 악셀. 난 너를 믿고 싶어. 근데 사실은, 안 그래. 난 정말, 정말로 이게 사실이 아니길 바라. 그렇지만 네가 나를 나쁜 친구라거나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냥… 야, 그래도 이거는 전혀 믿겨지질 않잖아. 네가 아무리 내 절친이라도 이건 그냥 믿거나 말거나 할 수준이 아니잖아! 불가능한 이야기야! 내 말은, 이게 사실이라도 이걸 누구한테 말할 수 있겠어? 증거도 없잖아. 어떤 증거도 없고, 거기다 이걸 누구한테 말하기라도 했다간, 우리 둘 다 명예 훼손죄로 단두대에 올라갈걸."

 


 

악셀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은 않아."

 


 

다빈은 친구의 말을 잘못 이해했다.

 


 

"그렇게 될 거야! 내 말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여왕과 마법 때문에 입은 상처가 남아있는 건 사실이지만, 공주는 어떨 것 같냐? 사람들이 공주는 좋아해! 공주가 그렇고 그런짓을 한다고 입만 뻥긋하면 사형 집행인에게 호송되기도 전에 군중이 우릴 죽이려 들 거란 말이다!"

 


 

"다빈, 내 말은," 악셀이 코트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증거는 있다고."

 


 

악셀을 보는 다빈의 시선이 흔들렸다.

 


 

"뭐?"

 


 

악셀은 코트 속에서 편지를 꺼내들었다. 원래는 베갯잇 속에 숨겨놓으려 했으나, 그곳보다 더 좋은 곳이 생각났다. 이걸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지? 누가 이걸 훔치기라도 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영영 사라지게 된다는 걸 악셀은 깨달았다. 그래서 악셀은 이 주 내내 편지를 몸에 지니고 있었다. 음습하는 공포가 자신의 몸을 태우더라도, 이단적인 내용물이 자신을 할퀴더라도. 악셀은 편지를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다빈이 자신을 미친 사람처럼 쳐다보는 것 만큼은…

 


 

다빈의 눈이 커졌다.

 


 

"그게…?"

 


 

악셀은 끄덕였다.

 


 

돌연 다빈은 태도를 바꾸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악셀이 평생 알고 같이 자라온 절친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죽은 눈동자에다 온 몸에서 강렬한 집중력을 뿜어대는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사람이 손을 뻗었다.

 


 

"그거 내놔."

 


 

다빈의 말소리가 의심스러워 악셀은 머뭇거렸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화난 듯했다.

 


 

"내놔!"

 


 

악셀은 손을 떨며 봉투를 건넸다. 다빈은 악셀의 손에서 봉투를 낚아채 몸을 돌리고는 편지를 꺼냈다. 다빈의 눈이 빛의 속도로 글자를 훑어나갔다. 단순한 제 친구 다빈이 그런 속도로 읽을 수 있을 줄은 악셀은 전혀 알지 못했다. 편지를 다 읽었을 때, 다빈은 자신 앞의 종이를 노려보며 석상처럼 서 있었다. 마치 얼어붙은 듯 했다. 악셀이 경험했던 공포와는 다른 이유인 것 같았다. 분노? 당혹스러움?

 


 

두려움?

 


 

악셀은 머뭇거리며 손을 뻗었다.

 


 

"다빈…?"

 


 

다빈의 시선이 곧장 이 간사에게 쏟아지자 악셀은 움찔거리며 손을 홱 거두었다. 악셀의 친구는 악셀이 전에 본 적 없는 어두운 낯빛이었다.

 


 

"가져가." 다빈은 편지를 도로 봉투에 집어넣고 악셀에게 건네며 말했다. 간사가 반응하지 않자, 다빈은 화난 듯이 코트를 열어젖히고 주머니에 편지를 찔러넣었다. "가져가란 말이다! 가지고 가서, 절대 아무에게도 편지에 대해 말하지 마. 이 편지든, 네가 본 것이든 아무도 알아선 안 돼. 아무도. 알아들었어? 가족에게도 말하지 마. 알았지?"

 


 

악셀은 겁에 질려 몸을 움츠리며 끄덕였다. 자기가 알고 있던 다빈이 아니었다.

 


 

"다빈… 괜찮아?"

 


 

"그래, 어, 괜찮아." 부산스러워진 다빈은 악셀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다빈은 난처한 표정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는데, 이는 다빈과 악셀이 범선에 일자리를 잡기 전인 소년 시절에 길거리에서 함께 자라면서 생긴 오랜 습관이었다. "나, 난 생각 좀 해야겠어, 알았지? 대책을 생각해내야 해."

 


 

악셀은 다빈이 어떤 대책을 짜내겠단 건지 알지 못했다. 추위를 피해 술통 속에서 살고 사과나 빵조각을 훔쳐 먹던 어린 시절부터 방법을 강구한 건 항상 악셀이었다. 피오르드의 난파선을 임시 거처로 바꾸어 가족들을 거기서 살게 한다든가, 상인이 동전을 챙기는 와중에 빵을 훔친다든가, 좋은 집으로 가족들을 이사시키기 위해 성의 견습생으로 들어갈 돈을 마련하는 등 악셀은 목적과 창의력을 지니고 있었다. 항상 악셀이 그 일을 맡았다. 다빈은 악셀보다 영리하지도, 빠르지도, 능숙하지도 않았으며 항상 악셀의 생각을 따라 움직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악셀은 친구의 과거 시절을 떠올리며, 사실은 여왕만큼이나 자기 친구에 대해서도 잘 몰랐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













 

다음 날 다빈이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주까지도.

 


 

친구가 휙 사라져버린 것이다. 악셀이 부두에서 자기가 보고 깨달은 것을 전부 폭로한 그날 이후로 다빈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도 다빈을 보지 못했고,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저… 사라져버렸다고 할 수 밖에.



 

다빈을 잃은 악셀은 정신이 무너져가는 기분이었다. 여왕을 쳐다볼 수가 없어 두 번이나 병가를 냈다. 시선을 고정시키고 서류를 넘겨가며 서명을 하고 도장을 찍는 데 열중해 있는 여왕을 뵙는 매 순간마다, 악셀은 저 책상에 여왕이 몇 번이나 누워서 공주가 절정으로 이끄는 대로 신음을 내질렀을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여왕이 악셀에게 웃어주고 그 노력에 감사해하는 매 순간마다, 악셀의 머릿속에는 저 입술이 여동생의 입술에 맞물린 채로 격정적으로 신음하고 울며 앙앙대는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기나긴 하루가 지나 여왕이 기지개를 펴고,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 서류를 건네며 램프를 끄는 매 순간마다, 침대에 누운 악셀은 여왕이 안나 공주님께 안겨 몸부림치고, 이단적인 근친상간 행위에 행복해하며 신음을 내지르는 환영에 시달렸다.

 


 

악셀은 지쳤다. 잠을 잘 수도, 먹을수도, 일에 집중하지도 못했다. 악셀의 시선이 향하는 모든 곳마다, 순결을 모독하고 성 곳곳을 더럽히는 자매의 환영이 따라다녔다. 정신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털어놓을 상대도 없이 악셀은 점점 고립되어갔고, 정서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동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시종과 시녀에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댔으며,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움찔거리며 훌쩍댔다. 때때로 악셀이 늦은 밤에 성 안 복도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돌아다니며, 달빛을 쫓아 죄악과 불경, 타락에 대해 떠들어댄다는 보고가 올라갔다. 악셀은 정신이 붕괴되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구세주가 나타났다. 광기 속에 찾아든 신선한 공기와 같았다. 악셀의 베개 옆에 놓인, 다빈의 편지가 그것이었다.

 


 

Bloody Merry에서 거리 세 개를 지나면 나오는 골목으로 와. 지금 바로. 대책을 마련했어. 우리가 해야 할 게 뭔지 알고 있어. 편지에 적힌 말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게 뭔지 알고 있어." 악셀이 되뇌었다. 정신과 이성이 붕괴된 악셀에게 이 일곱 단어는 마치 사막에서 메말라 죽어가던 사람에게 오아시스와 같았다. 일곱 단어는 방향이었다. 정화였다. 속죄였다.

 


 

악셀은 성을 떠났다. 책상에 쌓인 업무로부터, 인쇄소로 데려다주길 기다리는 서류로부터, 여왕과 왕궁에 대한 의무로부터 악셀은 뒤돌아섰다. 물론 악셀은 맹세까지 했었지만, 그건 자신의 맹세가 그 마녀, 자신의 여동생을 유혹한 괴물에게로 향했다는 걸 알기 전이었으니까. 악셀은 벗어나길 원했다. 악셀은 대책을 원했다. 다빈은 악셀에게 필요한 걸 주겠다 약속했다.

 


 

악셀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황량한 골목이었다. 'Fisherman's Wharf'에서 들리는 소리도, 말과 마차들이 거리를 지나가며 북적거리는 소리도, 생선 장수의 외침 소리와 선원의 기합 소리도, 술집에서 주정뱅이의 웃음소리도 이 골목에서는 덧없는 먼지로 흩날릴 뿐이었다. 악셀은 조심스럽게 골목 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높은 건물 사이에 껴서 햇볕을 못 받는 이곳은 낮인데도 어두웠다. 악셀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늘어진 두 눈은 어둠 속에서 친구를 찾아다닐 뿐이었다.

 


 

"다빈?" 악셀이 나직하게 이름을 불렀다. "다빈? 거기 있어?"

 


 

대답한 건 침묵 뿐이었다. 골목길을 따라 바람이 지나쳐갔고, 생선을 포장하는데 썼던 종이가 역겨운 비린내를 풍기며 바람을 타고 펄럭였다. 그러나 그 사이로, 인쇄소에서 지겹게 듣던 종이가 펄럭이는 소리 사이로 톱니바퀴가 틱틱 돌아가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끼익거리는 목각의 마찰음과 팽팽해진 쇠줄이-

 


 

푹!

 


 

악셀은 뭔가가 가슴을 강타한 느낌을 받았다. 당황해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암흑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빈?" 악셀이 이름을 불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입 속에 피가 가득 들어있지만 않았다면. 악셀은 자갈 위에 새빨간 액체를 한 입 가득 뱉어냈다. 사색이 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깃털에서부터 가슴 속으로 화살이 꽂혀 있었다. 굵은 석궁용 화살이.

 


 

악셀은 다시 고개를 들려고 했는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옆으로 고꾸라져 차가운 돌벽으로 쓰러졌다. 벽에 기댄 채로, 폐에서 콸콸 솟구치는 혈액을 뚫고 숨을 쉬려고 애를 썼다.

 


 

"이렇게 되서 유감이야." 명료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악셀은 정말 간신히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온 사람은 키에 비해 호리호리했다. 머리도 회색이고 피부도 자글자글했지만, 키가 크고 튼튼했으며 그 태도와 목소리는 이런 늙은 은둔자같은 모습보다는 젋은 청년에 적합한 것이었다. 그리고 먼지투성이에 낡고 오래된 갈색 로브와는 반대로 받쳐 든 석궁은 최신식에다 좋은 기름을 발랐으며 소름끼치도록 빛이 났다.

 


 

"넌 착한 사람이라고, 'Fisherman's Wharf' 출신 악셀."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마치 차와 다과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듯이 그 목소리는 너무나 평온했다. "노력파에, 성실한 간사. 왕궁이 네게 맞지 않았던 건 참 유감이야. 너처럼 단순한 목표를 가진 단순한 사람은 눈치가 빠르지 않아서 여왕의 측근까지 오를 수가 없거든."

 


 

악셀은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신이 입은 더블릿에 피를 울컥 쏟아내는 것 뿐이었다. 점차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고 정신마저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내는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처벌받아야 할 사람은 네가 다가 아닐거야. 종종, 'Lady Luck'에서 주는 카드는 불량일때가 있거든. 예를 들어, 네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다빈을 믿어온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지. 뭐, 그 녀석도 참 유감이야. 다빈 말이지. 걔도 진짜 열심히 피땀 흘려가며 일했는데, 여왕에게 푹 빠진 네 녀석 때문에 다빈의 노력이 아직 결실을 맺지 못했어. 다빈은 이 편지를 맡아 책임지고 있었는데 어떤 경위로 이 편지가 여왕과 다빈의 손을 거쳐 공주에게 전달된 후 하필이면 에게로 갔다는 보고를 올려야만 했지. 대장님은 전혀 기쁘지 않으셨어. 생각해 봐. 그 녀석은 진급하기 직전이었다고." 사내가 한숨쉬었다. "불쌍한 자식."



 

악셀은 간신히 일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이해했다. 악셀은 모든 힘을 짜내어 간신히 한 단어를 내뱉었다.

 


 

"어째서?"

 



사내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쳐들었다.



 

"어째서? 뭐, 당연한 거 아냐? 네가 위험 요소였어, 악셀. 첩보대장님은 여왕님과 공주님의 관계에 대한 비밀을 지키는 일을 맡고 있었다고. 그런 엄숙한 맹세를 우린 잘 해내고 있었고 이 일도 네가 꼬여들기 전까진 그랬어. '독수리'는 일을 망치지 않아."

 


 

악셀의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다. 폐에 꽂힌 화살대 주위로 쌕쌕거려가며 숨쉴 때마다 온갖 애를 썼다. 상황이 이런데도 악셀은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질문을 던졌다.

 


 

"너냐…?"

 


 

"나냐고? 물론 아니지. 난 독수리가 아니라 단지 일개 깃털에 지나지 않아, 무리의 일원이고. 다빈도 나와 마찬가지야. 다른 일원들 중에는 네가 절대 예상하지 못할 사람도 있어. 네가 독수리라면 넌 네 손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을 걸. 대신에 깃털을 몇 개 세워서 자기 임무를 골고루 나눠 주겠지, 아마도…"

 


 

사내는 몸을 굽혀 악셀의 코트를 열었다. 그러고선 능숙하게 주머니를 뒤져 봉투를 꺼내들었다. 그걸 들고 다시 몸을 펴며 사내는 악셀에게 작게 웃어주었다.

 


 

"아, 마침내 여기까지 왔군. 쪼끄만 종이 쪼가리가 이렇게까지 골칫거리가 되다니 놀랍지 않아? 아, 그리고 하나 더. 정말 미안해. 지금 널 피오르드에 빠뜨려야 하거든."

 



악셀이 죽어가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분명 화나서 무엇이라도 지껄였을 것이다.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피를 토악질해대는 데 성공했을 뿐.

 


 

"야아, 그러지는 말아줘. 난 전문가란 말이다. 증거를 전부 지워야 한다고. 저번에 내가 대충 했더니, 음, 그냥 대장님이 전혀 기뻐하질 않았다고 해두지. 분명 사람들은 네가 어디 갔는지 궁금해하겠지만, 우리 대화가 여기 남는 것도 아니고, 네가 얼마나 삶을 끝장내고 싶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돌다가 갖가지 소문이 그 뒤를 채우겠지. 네 최근 행보가 그 소문에 큰 힘이 될 거야. 지금까지 수집되지 않은 여러 피냄새나는 문서가 있다 해도 말이지. 일이 돌아간 꼴을 보니 부끄럽지 않아? 내 말은, 네가 할 일은 참 잘 한다고."

 


 

사내는 로브의 호주머니 사이로 숨겨진 가죽집에 석궁을 밀어넣었다. 그러고는 몸을 굽혀 엄청난 힘으로 악셀을 들어올려 어깨에 들쳐업었다. 그 고통이 너무 강렬해서 악셀은 정신을 거의 잃을 뻔했다. 그 탓에 바나나 절반, 그 쥐꼬리만한 아침식사가 붉은색 폭포를 타고 입에서 터져나왔다. 악셀은 사내가 역겹다는 듯이 한숨쉬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것조차 이미 자신이 물에 빠져 점점 깊어져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악셀의 시야는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그 두 눈이 자신을 무너뜨린 것처럼. 사내는 죽기 직전의 간사에게 열심히 입을 놀려댔고, 악셀은 죽기 직전 사내에게서 마지막 말을 들었다.

 


 

"…말은, 진짜, 어떻게 보면 이게 널 올바른 길로 이끈 거라니까."

 


 

악셀에겐 죽기 전에 그 역설을 이해할 시간이 부족했다.

 



Fin























* 이전 번역러는 'Fisherman's Wharf'를 그냥 부둣가로 번역했었다. 나 역시 그 번역이 옳다고 생각하고, 내 번역보다 그쪽이 더 부드럽다고 생각하지만 'Fisherman's Wharf'라는 조합명을 무시하고 부둣가로 번역하기에는 좀 찜찜했다.


* 더블릿(doublet) : 14~17 세기에 남자들이 입은 짧고 꼭 끼는 상의


* 1화에서 언급된 간사가 악셀이다.


---------


허 결국 번역까지 하는구나 이놈의 성격머리

몰래 번역하다 오늘 올리려고 했는데 이미 3-2가 번역되었다고 하길래 엄청 당황했다. 다행히 그 번역도 완성되진 않았네


아르고스 기다린 갤러들 참 오래 기다렸다.


4챕 분량이 어마어마하긴 한데 시도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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