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랑니 빼러 가는 날이다.

오전 10시에 치과 예약을 잡아놨다.

출근 시간 북적거려 북적거리는 게 싫어서 5시 반 즈음에 집에서 나섰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꽤 있다.

누구는 이불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동안 누구는 매일 같이 이른 시간에도 부지런한 하루를 맞이하고 있던 것.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좀 서글퍼졌다.

아무튼, 서울 상경하는 촌놈 티 팍팍 내며 신촌으로 갔다.

아침 8시.

한동안 시간이 남아서 홍대 KFC에 들렸다.

24시간 하더라.

역시 서울은 대단해!

카운터 알바 아가씨에게 오리지날로 달라고 했는데 오전에는 크리스피만 하므로 안된다며 딱 잡아 거절당했다.

그러면 비스킷 좀 달라고 하니 역시 비스킷도 없다며 딱 잡아 거절당했다.

역시 서울은 대단해!

2만 원짜리 버킷과 함께 2층 테이블로 이동했다.

24시간 하는 매장답게 급식인지 학식인지 모를 무리 6~7명이 

음료수 한잔 안 시키고 구석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거나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뭐가 그리 신났는지 귀 기울여 들어보니 내용은 이러했다.

'야 이 쒸이X 존X 그 새끼 X같지 않냐? ㅋㅋ'

'어~ 맞어. 존X 쒸이X ㅋㅋ'

'그건 그렇고 오늘 존X 배고프지않냐?'

'어~ 맞어. 존X 쒸이X ㅋㅋ'

모든 문장이 존X와 쒸이X로 통하는 제한적이고 놀라운 어휘력에 

위대한 우리 민족의 언어 구조와 조상님들의 지혜에 찬사를 보낸 뒤 나는 나대로 식사에 집중했다.

이 뽑고 나면 밥 못 먹으니까 다이어트식 맞지?

2600kcal이어도 살 안 찌는 거 맞지!

나중에 나오면서 광고판을 보니 해피버킷이라고 똑같은 구성을 1만4천 원에 팔더라.

쒸…불…ㄴ…. ^^ 따지니까 매니저가 나와서 미안하다며 차액을 돌려줬다.

드디어 사랑니 발치 전문 병원에 도착했다.

발치 횟수로 기네스북에 오른 병원이라던데 빌딩 절반이 다 치과더라.

하루 전날 잡은 예약인데 간단한 엑스레이 촬영 후 바로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앞에 보이는 큰 건물은 세브란스인데 저기에서 사랑니 진료받으려면 진찰 예약까지 2주가 걸린다.

그리고 발치까지 또 한 달 정도 걸린다.

그래놓고 돈은 2배로 받는다.

사랑니 뽑아서 남는 게 없으니까 이가 조금만 누워서 나면 죄다 대학 병원 보내는 가운데 나는 일단 여기에 왔다.

상담까지 10분.

CT 촬영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설명해주고 (다행히 신경 주변에 치아가 없었음) 

사랑니가 조금씩 다 썩었으니 순차적으로 뺄 것인지 어찌할 건지 묻더라.

그래서 쿨 하게 말했다.

'먼 데서 왔으니까 그냥 다 빼주세요.'

'…버틸 수 있으시겠어요?'

'당연하죠.'

잇몸에 마취 주사를 3방 정도 놨는데 부르르 떨리는 전동 칫솔 같은 녀석을 입에 물리니까 하나도 안 아프더라.

역시 현대 의학은 대단해!

아래 누운 이는 살을 째고 드릴로 쪼개 뽑았고 (오징어 굽는 냄새 난다) 

비교적 바로 나온 윗니는 그냥 팬지로 잡고 쑥쑥 뽑았다.

다 합해서 5분 걸렸다.

역시 현대 의학은 대단해!

보험 적용받아 가격은 개당 3만 원 꼴.

입에 피 고인 거즈 물고 지하철 타고 집에 돌아왔다.

진통제 챙겨 먹은 후, 비린 피 맛이 입에 맴도는 점 빼고 딱히 불편한 느낌은 없었다.

교정 당시 뺐던 어금니 4개를 합하면 생니 7개를 뺀 셈이다.

어마어마하게도 뽑았다.

현대인의 턱은 갈수록 작아지는데 치아는 왜 진화를 못 따라가는 걸까?

그리고 다음날.

습관처럼 현미밥을 준비하다 고민에 빠졌다.

과연 하루 만에 밥을 먹어도 되는가.

그래서 그냥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하루 900kcal 다이어트 맞지?

다 먹어도 괜찮은 거 맞지!

아. 그냥 따뜻한 거 먹고 싶다.

국수 같은 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