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넘 재밌게 읽었고 내 머릿속의 헨리는 역사와 미학의 갑옷으로 단단히 자신을 둘러서 아무리 쳐도 죽지 않는 괴물같은 이미지였는데

어제 은헨리 캐릭은 원작과는 좀 달라짐(물론 배우의 해석이기에 앞서 연출의 방향이기도 하고)

1막은 원작의 헨리와 가깝다는 느낌 + 물에 빠져 죽으면 입만 동동 뜰 원작 헨리에 비해 은언니 외모+수트핏+목소리+은언니의 미성과 드라마틱한 고음을 잘 혼합시켜 놓은 넘버들 효과로 멋과 스타일이 더해진 헨리라는 느낌

그런데 2막에서 헨리는 원작과 다른 사명을 부여받음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도리안의 비리를 조사하고, 도리안이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까지 다 알아둠
원작의 헨리라면 그게 도리안에 대한 자기 지적, 정신적 영향력을 공고히 유지하려는 이유에서 하는 일이 아닐까 했을텐데,
뮤에서 헨리는 그 상황을 약간 '정의로움의 수호자'같은 느낌으로 염려함. 도리안과 자연스럽게 대립각이 발생함

그리고 도리안 때문에 자살하는 앨런 캠벨이 헨리와 가까운 친구로 설정되는데, 앨런 캠벨이 도리안의 지시로 도리안이 죽인 배질의 시체를 자신이 처리했고 그 이후로 악몽에 시달리다 자살하게 되었다는 유서를 헨리에게 남기고,(원작에서는 앨런의 죽음도 배질의 죽음도 사람들에겐 원인불명의 미스테리임)

그 유서를 읽으면서 시체처리과정을 유샤체험하는 헨리는 구토와 오열을 일으키며 그 상황에 경악함

앨런에 대해 가지고 있던 우정 때문에 헨리에게 이제 도리안은 정죄하지 않으면 안 될 범죄자이고 악이 된 셈

원작에서 사람구경을 밥보다 좋아하지만 세속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던 헨리의 모습이 아니라 사람들간에 벌어지는 일의 한 가운데에 뛰어든 헨리가 된 것

도리안에게 그의 죄를 무섭게 추궁하고 추함을 규탄할 때 내 친구를 잔인하게 죽인 너,에 대한 생생한 분노가 표출되고 은헨리 본인도 격정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열연함. 물론 이 눈물엔 친구를 잃은 인간적인 분노만이 아니라, 완벽한 인간으로 만들려고 했던 도리안이 타락으로 자기 계획을 모두 망쳤다는 좌절과 분노도 같이 불타오름

즉 배질이 죽는 순간까지 도리안을 염려하고 이해했다면 헨리에게 도리안은 실패한 프로젝트임. 은언니 마지막 부분의 열연이 그 냉혹한 미학자의 좌절을 생생하게 그려냄

원작의 헨리보단 훨씬 드라마가 강화된 셈
원작의 헨리의 쿨시크한 지성을 좋아하는 원작덕이라면 낯설수도 있는데, 뮤 장르 특성을 생각하면 수용 가능한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음

은언니 노래하는데 몇몇 부분에서 넘나 오랜만에 은생같은 부드러운 낭만이 배어나와서 좋았고
극에서 중요한 지적이고 과학적인 중심축으로서의 역할도 좋았고

샤리안과도 노래합도 연기합도 좋아서
마지막의 무서운 냉혹함이 가슴 아팠음
샤리안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헨리 말이 맞았어'였는데..
그래도 파멸의 맛을 빼고 탐미주의를 말할 순 없겠지ㅠㅠ

플뷰 첫공인데 배우들 넘 좋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더 쪼여갈 듯해서 기대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