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서 본걸 후회하면서도 다행이다 싶은건
난 아마 이 극을 진작 봤으면 이공연을 분명 회전문 했을거야.

나는 어릴 때부터 키다리 아저씨 원작을 너무 좋아해서
영어 원서도 찾아 읽고 만화도 찾아보고 각 출판사별 다른 번역도 찾아 읽을 정도였어.
어릴 때는 제루샤에 이입했다면 커가면서는 제루샤(사실 주디라고 부르는게 훨씬 편해)보다 제르비스의 시점으로 더 봤어.
사실 원작자체에 너무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서 실망할까, 자첫하기 무서운 감도 있었고
내 일상이 너무 바쁘게 흘러가서 보기도 힘들었던 것도 있었어.

근데 오늘 보면서 정말이지 가슴 뛰더라.
마치, 그 어릴 적의 내가 처음 이 키다리 아저씨라는 책을 펼쳤던 그 순간과 3년만에 어른이 된 내가 다시 이 책을 펼쳤던 그 순간이
겹쳐져 무대위에 펼쳐진 모습이었어.

사실 지숙루샤는 믿보배이고 나한테 정말 주디와 가까운 배우중 하나라서 당연히 믿고봤지만
보기전 동다리는 기대를 좀 접고 봤었어.
그건 배우의 실력의 문제나 비주얼문제같은건 전혀아니었고
내 기억의 키다리아저씨 제르비스라기엔 너무 어리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었거든.
근데 아니더라. 물론 나의 기억속 제르비스보다는 어렸지만 이 뮤지컬 키다리가 주는 힘이었는지...
배우 스스로 자신이 구축한 제르비스는 정말이지 내가 생각했던 제르비스와 맞닿아있었어.
제루샤의 편지 하나하나에 소년처럼 설레하고 서툰 감정 가득한 그런 저비 도련님.

지숙루샤는 당차고 커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그런 주디.
락 윌로우 농장에서부터 행복의 비밀 때의 정말 순수한 그 모습에 내 가슴이 벅차올랐고
행복을 처음 맞닿은 그 모습에 나 조차 너무 행복감이 가슴 부풀었다면
2막에선 성숙해가는 제루샤가 작가로서 나아가는 모습에
나도 제르비스와 함께 울었던 것같아.
창가에 앉아 울며 눈물 닦는 그 모습들 모두가 그냥 제루샤, 주디 그 자체여서 나 너무 고마웠어.

그리고 무대, 무대 디자인과 활용도가 너무너무 좋았어.
정말 키다리 아저씨를 그대로 압축해놓은 그런 느낌.
개인적으로 원작 키다리에서도 트렁크는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걸로 모든 것들을 표현해내다니.
물론 줄리아나 샐리에 대한 묘사나 설명이 휘리릭 지나가서 그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덜 드러날지도 모르지만
난 딱 러닝타임을 감안하면 이정도가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무엇보다 락 윌로우 농장의 창문을 여는 순간 정말이지....
그 책장뒤에 숲속 풍경도 보는순간 눈물이 주르륵...

아, 그리고 1막의 조명과 2막의 조명이 다른것도 너무 좋았어.
1막의 조명이 밝고 희망찬 제루샤의 1,2학년 대학생활을 드러낸다면
2막의 조명은 약간은 더 베이지톤의 다운된 조명으로 성숙해지는 둘의 관계와 제루샤의 성숙함을 보이는 것같아서.
아 그건 의상도 마찬가지야ㅠㅠ

가사나 음악은 진짜 말할것도 없다......
이건 별점 다섯개 넘어서 10개야...

키다리라는 극을 올려준 달컴한테 너무 고맙고
배우들한테 너무 고맙고 전캐 다 못본거 아쉽고
오늘 무대인사 하는 내내 울먹이던 지숙루샤
행복했다고 말해준 동다리

다 너무 고맙고 또 고맙다...
많이 바쁘고 힘들었던 일상에서
가슴이 다시 몽글몽글해진 순간이었어...
뭔가 글 길게 쓰고싶은데 더 쓰기엔 하나하나 좋은것만 엇ㅇ청 생각나서 끝이 안날것같아ㅜ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