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제국은 중세~근세 기술 수준과 신성로마제국을 모티브로한 사회제도를 갖고 있다.

그런데 먼미래의 초기술이 가득한 4만의 제국보다 오히려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국가다.

그 차이를 말하려면 제국의 창시자부터 이야기해야 되겠지.

지그마는, 그러니까 판타지의 황제 지그마 헬든햄머는 4만의 황제와 아주 많은 차이가 있다.

지그마는 사후에 신앙의 대상이 되어 신이 되었지만 생전에는 어디까지나 한명의 인간이었음.

매우 비범한 전사이자 카리스마 있는 리더였지만 미래를 보는 능력도 없고 마법도 못 썼다.

4만 황제랑은 비교도 안되지.

하지만 그가 가진 능력이 한계가 있고 이해하기 쉬운 것처럼 그가 꿈꾸었던 이상도 이해하기 쉬움.

오크로부터 안전, 강하고 잘 훈련된 군대, 공평한 법률.

간단히 말해 잘먹고 잘살자는 것임.

그에 비해 황제는 온갖 신적인 능력을 갖고 미래까지도 보았지만, 스토리는 그림다크로 가다보니 캐릭터가 꼬이고 요사스러워졌음.

독자들만 황제가 황가놈인지 황제폐하인지 감을 못잡는게 아니라 작가진도 우왕좌왕하는게 여러 점에서 보인다.

우주 최악의 아버지 상을 노리는 사람들의 롤모델이란건 변함이 없지만

걍 인간이 덜된건지 더 끔찍한 미래를 피하려는 어쩔수 없는 결과였는지는 이야기마다 약간 차이가 있지.

그에 비해 지그마는 영웅왕으로 확실한 정체성을 갖고 있음.

패션은 바바리안 스타일이지만 생각은 또 깨인 인물이라

제노포비아 말기 판정인 4만 황제와는 달리 지그마는 말 통하는 이종족들과는 공존을 추구했음.

사람 참수하는데 환장한 코슬람이나 그린스킨같이 상종불가능한 미친 놈들한테는 가차없지만

하플링 같은 애들은 자기네가 훨씬 강해도 몰살같은거 안시키고 보호했음. 

이것 역시 제국이 잘되는 길이었던게 하플링들이 다른건 몰라도 요리계의 최고 선진종족이거든.

당시 (그 지역의)인간들은 걍 바바리안으로 뭐 제대로된 요리도구나 있나 싶은 상황이었고.

잘 먹어야 쌈도 하고 농사도 짓고 애도 낳고 하니 제국의 급격한 팽창에는 하플링들의 조리기술 전수가 한몫했겠지.

선진 문명인 드워프로부터 많은걸 배워온건 자연스런 일이지.

야금술, 화약 제조법, 양조술 등등,

그래서 드워프들이 올드월드 패권을 인간이 차지한 것에 대해 약간 씁쓸할 지언정 악감정이 없음.

아 인간들이 요새 잘나가지. 그런데 다 우리 드워프한테 배워간거 암? 걔네 풀플레이트 아머라고 만든 것도 그롬릴 아머 짝퉁임!

이런 인식들 갖고 있거든.

사실 대단하게 평가해줘야하는게 지그마는 웅베르겐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났음.

넵 부족장 아들. 그가 태어나 자란 공동체는 수집 채렵 생활을 하며 떠돌아다니는 부족으로. 간단히 말해서 우가우가맨들임.

무기는 그나마 금속제를 가졌지만 생활은 석기 시대지.

아마 당시 활개치던 오크에 치여서 마음놓고 정착생활을 할수 없었던게 아닐까 싶음.

지그마가 22살에 부족장이 되어서 30살에 황제가 되고 80살에 왕관을 내려놓고 떠날때까지

58년동안 절대왕권도 아니고 부족장 연합의 수장으로 제한적인 권력을 갖고 있었음.

그 제한된 능력과 권력으로 싸우고 통치하여 올드월드에 인간의 거주지를 뿌리고, 거주지를 마을로 도시로 성장시켰고.

인간의 국가중 가장 큰 나라인 제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2천년 넘게 지속된 정치체제를 만들어냈음.

제도 역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케이스임.

지그마의 능력과 생애로 우가우가 원시부족 모아서 문명국 만드는 것 까진 가능했는데,

얘네를 완전히 굴복시켜서 권력이 일원화된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기까진 불가능했음.

시간도 부족했고 제후들 찍어내며 권력구도 다시만들기엔 외적들이 두렵고 전우들을 찍어누르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은 점도 있겠지.

그래서 제국은 보통 제국하면 생각하는 황제 1인의 전제국가가 아니라

황제를 선거로 선출하며 제후들은 자치를 누린다는 타협적 제도엿지만, 이게 제국의 상황에선 안정적인 제도였던 것임.

제한된 능력으로 최선을 다한다 이건 지그마 혼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판타지 제국이 사방이 적인 상황에도 아주 막장으로 안간 이유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었기도 함.

강대한 적의 위협을 상시로 받고 있었기에 지배층도 부패하기 힘들고, 피지배층 역시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 나가 싸우다 죽음.

사실 오크나 카오스, 스케이븐 이런 놈들한테 털린다는건 어차피 다 죽는다는 이야기거든.

엄연히 신분제도가 있지만 계급은 달라도 한배를 탔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딱히 인권의식이 있지는 않겠지만, 4만 제국처럼 대놓고 인간을 소모재 취급하진 않음.

자연히 종교가 다르거나 종족이 다르거나 하는 것도 서로 협력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하플링 장로는 소수민족 대표로 선제후와 동일한 투표권을 갖고 있음.

사실 역사학적으로도 대제국을 건설하는 주축 민족은 강적들의 위협을 받으며 형성기를 보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동체 의식이 강력한 반면 공동체 구성원간의 차이는 크게 개의치 않기도 한다.

역으로 말하면 그런 조건이 있어야 대제국을 건설할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판타지 제국의 긍정적인 점이 이거야.

제한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 궁리를 하고 친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단합해서 초자연적인 적들과 맞서 자기 나라와 가족을 지켜낸다.

이거야 말로 판타지의 임페리얼 트루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