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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입니다.

소르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1.07.25 00: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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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인지라 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대비가 계속 쏟아지긴 했지만, 못 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현우는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현관에 놓인  장우산을 가지고 계단을 내려와 피시방으로 향했다.
주변엔 한창 비가 내리는 탓인지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현우가 단골로 가는 피시방은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굳이 가자면 집근처의 피시방은 얼마든지 많았지만 현우가 가는 곳은 요금도 선불 ‧후불 가리지 않고 싼데다 카운터 사장님(30대 초반의 아저씨이다.)과 어느 정도 안면이 터서 항상 게임을 하고 나서 계산할 때면 얼마간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이 걸어 다니면 운동도 된다고 생각해서 현우는 항상 돈이 생겨 친구랑 놀 땐 그 피시방으로 갔다.

피시방은 건물 2층에 있었다.
현우는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 위에 건 방울이 울리고 카운터에서 일을 보고 있는 사장님이 딸랑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현우가 반갑게 인사하자 사장님도 같이 반갑게 맞이했다.

“야- 어서 와라.”
“후불로, 언제나 하던 게임할게요. 의외로 자리가 많네요, 비 오는 날엔 보통 손님이 더 많을 텐데.”
“그러게… 그래도 손님이 많으면 일거리가 많아져서 힘들거든. 매출 많이 나오는 것도 좋지만 난 혼잡하면 힘드니까. 혼자 왔어?”
“아니요, 곧 친구 올 거 에요.”
“그럼 같이 앉아야 되니까, 저기 16번 자리에 앉아라.”
“네. 아 그런데 사장님, 딱히 손님입장에서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게임 폴더에 이상한 영상을 받아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거 좀 지워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 보통 껐다 키면 손님들이 설치한 거 다 지워지는데.”
“막 폴더에 숨겨놓거나 하니까…”
“아? 그래? 왜 난 몰랐지, 정기적으로 컴퓨터들 검사하고 하는데. 알았어, 주의할게.”

대화를 마친 뒤 현우는 사장님이 지정해 준 자리로 갔다.
현우가 이 피시방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금연석이 많다는 것이었다.
어쩌다 다른 피시방을 가서 흡연석에 앉기라도 하면, 주변에 담배연기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 뿐더러 담배냄새가 옷에 베
집에 돌아오면 항상 할머니한테 꾸중을 듣곤 해서 마음이 상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오늘은 손님도 별로 없고 주변에 흡연자도 없어 현우는 흡족해하며 전원버튼을 눌렀다.
컴퓨터 전원이 들어오는 동안 태지한테 문자가 왔다.
현우는 휴대폰을 열고 확인했다.

-더치페이라 그랬는데 돈은 얼마 들고 가면 되냐.
현우는 답장을 보냈다.
-그냥 뭐, 두 시간 정도만 하고 가자.
윈도우즈가 실행되고 피시방 로그인 프로그램이 떴다.
현우는 자기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친 뒤 확인을 누르려는데 다시 문자가 왔다.
-야 그래도 이왕 게임하는 거 뭐 사먹긴 할 거잖아. 얼마 들고 올까?
현우는 약간 심통이 났다. 이 자식이 아직도 안 왔어?
-야 너 아직 출발도 안 한 거냐? 나 아무것도 안 사먹을 거니까 빨리 와 인마!
‘새-끼, 빨리 오기나 할 것이지 돈을 얼마 가지고 올까 그런 걸 물어보고…’

확인을 누르고 윈도우즈가  있었지뜨자 현우는 바탕화면 중앙의 게임 아이콘을 누른 뒤, 자기가 언제나 하던 게임인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실행했다.
굳이 게임을 하자면 집에 있는 컴퓨터로 할 수만 정액요금을 결제해야 했는데다 현우의 할머니는 게임에다 돈을 쓰는 걸 제일 싫어했다.
덕분에 현우는 피시방에서만 그 게임을 할 수 있었다.
흔히 주변 사람들이 ‘와우(WOW)는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폐인양성 게임이다’라고 했지만 현우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자긴 공부를 열심히 하긴 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론 별로 좋은 대학에 가진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력은 반드시 보상받는다지만, 원체 그다지 긍정적인 성격이 아닌 현우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캐릭터를 선택한 뒤 현우는 양쪽 진영의 종족들이 대립하고 있는 로딩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우가 키우는 캐릭터는 ‘호드(Horde)’ 진영에 종족과 직업은 ‘오크 주술사(Orc Shaman)\' 이었다.

좋은 캐릭터는 아니지만 ‘만렙‘까지 찍어놓은 유일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현우에겐 많은 애착이 있는 캐릭터였다.
게임에 접속하고 현우는 ‘던전(Dungeon) 신청’을 누른 뒤, 인터넷을 실행하고 웹서핑을 하기로 했다.
여러 포털사이트의 검색어를 살펴보고 있던 현우는 자기 자리 너머로 방울소리가 나자 태지가 왔구나하고 고개를 들었다.
예상대로 태지가 카운터에 있었다.
미리 선불요금을 계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장님이 태지에게 자리를 지정해 주는 게 보였고, 태지는 현우가 있는 좌석 쪽으로 와서 바로 옆 18번 자리에 앉았다.
“왜 이리 늦게 오냐 너. 솔직히 말해봐, 비오고 그래서 귀찮아서 나가기 싫었던 거지?”
“친구가 부르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겠냐. 나름 너 기다릴 거 생각해서 열심히 뛰어왔는데….”
“집도 가까운 녀석이 무슨… 뭐, 왔으면 된 거지. 게임이나 하자.”

태지는 현우와 마찬가지로 컴퓨터 전원을 킨 뒤 로그인을 하고 와우를 켰다.
태지가 와우를 시작한 때는 현우보다 늦은 때라 둘은 레벨차이가 꽤 났다.
물론 둘은 같은 서버에서 같이 게임을 했는데, 태지의 캐릭터는 ‘블러드엘프 사제(Blood Elf Priest)’에 남자가 아닌 여자 캐릭터였다.
태지의 여성편력은 현실과 게임을 가리지 않았다.
처음 현우가 태지에게 와우를 가르쳐 줬을 때 주저 없이 당당하게 와우에서 나름 미형의 캐릭터라 할 수 있는 블러드 엘프를 고르는 걸 보고 현우는 역시나라고 생각했다.

한창 재밌게 게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태지가 채팅으로 말을 걸었다.
-야 오현우. 너 말야,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여자한테 집착하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냐?
현우는 언제나 그랬듯이 흥미 없다는 듯 채팅으로 답했다.
-너 또 무슨 헛소릴 하려는 건지 모르겠는데.
-헛소리 아냐, 그러니까 내가 언제부터 여자에 집착하게 됐느냐면, 아마 유치원 때 였을 거야.
-아니 초등학생 때였나? 아무튼 그때 한창 오락실게임 유행하고 있을 때였잖아.
오락실 게임이라면 문방구등에 있던 오락기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현우는 그걸 생각하며 답했다.
-그랬지. 킹오파 말하는 거야 너?
‘킹오파’라는 건 요즘도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유명한 오락실 격투게임이었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어서 당시 현우는 얘들이 그 게임을 재밌게 하고 있을 때, 뒤에서 구경하기만 했었다.
-그래 그거. 사실은 나 어렸을 때 그 게임에 나온 여자들이 너무 좋았어.
-뭐?
-한 명 한 명 모두 매력적인 거야. 이건 좀 말하기 부끄러운데 같이 소꿉놀이 하는 상상도 하고 그랬다고.
‘ 이, 이 새-끼, 엄청 조숙한 녀석이었어!’
현우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대놓고 웃었다간 태지의 기분이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내놈이 무슨 소꿉놀이하는 상상하고 그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지금은 안 그러니까 오해 하지 마. 그땐 그랬단 얘기야. 아무튼 이걸 갑자기 너한테 얘기하는 이유는 요즘 하도 네가 날 이상한 녀석으로 생각하니까, 속 시원히 털어 낼 필요가 있다 생각해서야. 너니까 얘기하는 거야. 그러니까 고맙게 생각해라.
-너 이상한 놈 맞잖아.
-어 이상한 놈 맞아.
“으하하! 으하하하하하하!!!”
현우는 그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았다.
바로 자기가 인정해 버린 꼴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현우는 이젠 상처받느니 마느니 신경 쓰지 않고 키보드에 얼굴을 박고 몸을 들썩거리며 웃었다.

“그래 인마, 실컷 웃으니까 좋았냐. 너 내일 점심시간에 봐. 수저 뺏어서 내가 쓸 거야.”
“아, 그러니까 미안해. 근데 네가 먼저 웃기긴 했잖아 이 자식아.”
게임을 끝내고 피시방을 나온 현우와 태지는 같이 동네를 걸어가고 있었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많이 웃기긴 했네. 졸업하면 개그맨 시험이나 볼까. 야, 그래도 너 잘못한 것도 있으니 내일 매점에서 빵 하나 사라. 알겠냐.”
“어어, 그럴게.”
현우는 태지랑 좀 더 놀려고, 돈은 없지만, 아무튼 어디든지 같이 걸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태지의 부모님은 친구랑 같이 놀 때에는 3시간 이상을 넘기지 말고 집으로 오라고 했고 태지는 그 규칙을 철저히 지켰을뿐 더러, 현우도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내일 학교에서 보자. 잘 가라 오현우.”
“어, 너도 잘 가.”

“다녀왔습니다.”
“현우 왔누?”
할머니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현우는 우산을 털어 물기를 없애고 현관에 기대어 놓았다.
“우리 현우 오늘 할미가 차려놓고 간 밥상 맛있게 잘 먹었나?”
할머니께서 간만에 요리솜씨를 부리신 모양이라 나름 기대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네, 맛있게 잘 먹었어요. 항상 제가 좋아하는 음식 해주셔서 감사해요.”
현우는 화장실로 들어가며 대답했다.
“뭘, 감사하긴. 이따 저녁은 뭐 먹을게냐?”
“할머니께서 만들기 편하신 요리 해주세요. 할머니가 만드는 건 다 제 입맛에 맞아요.”
“그럼 오늘 저녁은 라면 끓여 줄란다.”
양말을 벗어 세탁기에 집어던지고 이제 막 발을 씻으려던 현우는 흠칫했다.
그냥 먹고 싶은 걸 솔직하게 말할 걸하고 현우는 후회했다.

손 ‧발을 깨끗이 씻은 후 자기 방으로 온 현우는 일주일 전에 짜둔 공부 계획표를 꺼내고 책상에 앉아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변신하고 훈련까지 마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계속 마음에 걸리던 찝찝함이 나가서 놀고오자  어느 정도 사라졌다.
덕분에 집중해서 공부 할 수 있었다.
몇 시간 정도 공부를 한 후 현우는 할머니가 저녁을 먹으라고 불러 식탁으로 갔다.
라면조리법의 정석인 ‘파 송송 계란 탁’으로 끓인 라면을 현우는 할머니와 둘이서 저녁으로 먹었다.
짜지도 않고 묽지도 않은 맛에 현우는 자기도 나이를 먹어 할아버지가 되면 이렇게 라면 물을 잘 맞출 수 있을까 생각했다.

저녁을 먹은 후 현우는 얼마 더 공부를 한 후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막상 침대에 눕고 보니 오늘 점심부터 쭉 생각해왔던 ‘실전’에 대한 생각이 머릴 휘감았다.
진짜 아메비움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떻게 싸워야 할까….
하지만 월요일인 내일 학교를 가야하는 현우는 그 생각을 물리쳤고 이내 잠들었다.

다음날, 현우는 아침 일찍 나와 지하철을 탔다.
오늘은 자신이 반 주번이기 때문에 일찍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현우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대문고등학교’이라는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대학진학률은 주변 인문계 고등학교와 비슷비슷했지만, 특활 모임 중 ‘테니스부’가 전국 고교대회에서 각종 상을 휩쓸어 갈 만큼 실력이 뛰어나 테니스를 하는 사람 사이에선 대문고는 상당히 유명한 고등학교였다.
현우는 테니스부랑 전혀 상관없는 도서부원 이었지만.

지하철에 낑겨 겨우 학교에 도착한 현우는 교문에 서있는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며 들어갔다.
본관에 있는 계단을 오르며 현우는 한숨을 쉬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 현우는 별로 싫어하진 않았지만 딱 하나, 교실까지 가는 계단을 현우는 싫어했다.
지하철을 타고 학교가 위치한 역에 내려 지각하지 않으려 황급히 뛰어가야 하는데 교문을 들어서 3층에 위치한 교실까지 가려면 계단을 올라야 하므로, 교실에 도착하고 나면 진이 다 빠져 현우는 자기 자리에 앉아 그대로 가방을 풀어놓고 잠들고 마는 것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지각할 줄 알고 열심히 뛰어왔는데 휴대전화를 보고 아직 지각까지 20분이나 남은 것이었다.
겉으론 한숨을 쉬었지만, 현우는 마음속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이 정도 시간이면 반 아이들은 아무도 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계단을 오르고 있던 현우는 2층 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을 봤다.
어느 학부형이랑 얘기 중이었는데 한 여학생을 함께 데리고 있었다.
자녀인 모양이었는데, 현우는 어쩐지 그 소녀가 낯이 익었다.
“전학생인가 보네….”
출석부와 열쇠를 가지러 현우는 교무실로 향하면서 담임선생님께 인사를 했다.
그리곤 교무실로 들어가기 전 그 얠 힐끔 쳐다보았는데, 예쁜 아이었다.
저리 예쁜 아이를 왜 자기가 자꾸 낯이 익은지 현우는 생각했다,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얘였다.

아침 조회시간, 현우의 예상대로 그 여자 얘가 담임선생님과 함께 교실로 들어왔다.
현우가 동요했듯이 반 얘들도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전부 술렁술렁 거렸다.
“자자, 조용. 어, 너희들이 보다시피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다. 여자 아이라고 남자 놈들은 괜히 쓸데없이 집적거리지 말고. 자 그럼, 짧게 자기소개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소예인‘이라고 합니다. 휘문여고에서 전학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인이란 아이는 짧은 자기소개를 마친 뒤 허리 숙여 인사했다. 반 아이들은 있는 힘껏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야 현우. 현우!”
현우 앞에 앞자리에 앉은 태지가 현우를 불렀다.
“왜?”
“저 얘… 우리가 1학년때 봤던 얘 아니냐?”
“뭐?”
1학년때 봤던 애? 현우는 생각해보았다.
그 당시 봤던 얘라면 분명 태지가 집적댔던 그 여자얘였었다.
현우는 당시 그 여자 얘를 생각하며 예인을 자세히 봤다.
그때와 다름없는 짧은 단발머리, 고양이가 생각났지만 어쩐지 생글생글 웃는 듯한 눈, 그리고 다른 여학생과는 다르게 약간 큰 키까지….
그제야 현우는 전학 온 예인이란 아이는 그때 태지가 집적댔던 그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
“야… 이런 우연이 다 있냐, 신기하지 않아 현우?”
태지는 현우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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