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베르크가 도르키마스를 떠났다.

빈약한 공군을 이끌고 소국이었던 도르키마스를 단숨에 패권 국가로 끌어 올렸던 전쟁의 천재

그리고 아는 자는 거의 없지만 죽은 전왕의 유복자이기도 하다.

국민들에게 있어선, 앞날이 보이지 않던 도르키마스를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힘으로 개척해 준 영웅이었다.

로비

더 이상 이 나라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신 것입니까?

로비

그것이 아니면, 이것이 당신의 복수인 것입니까?

구국의 영웅을 잃고 혼란에 빠질 도르키마스 공국을 멀리서 바라보며 비웃는 것입니까?

로비의 눈 앞에는 브루노 샤를리에의 묘비가 있었다.

디트리히가 입었던 윗도리와 군모가 브루노의 오랜 공훈을 기리기 위해 같이 묘비에 걸려 있었다.

로비

.....이 곳에 오면, 아직 각하께서 계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디트리히의 출분(=행방을 감춤)을 눈치 챈 도르키마스 군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벌집을 쑤신 듯 소란이 일어났다.

시의심이라는 병마에 시달린 아르투르는, 즉시 국경 주변에 헌병을 파견하고 디트리히가 국외로 도피하지 못하게 지시했다.

그러나, 아직 디트리히의 그림자를 봤다는 보고조차 올라오지 않았다.

로비

각하께서 사라져 버리시면, 저는 살아야 하는 목적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저물어가는 태양 빛을 전부 받아들이는 디트리히의 겉옷은 마치 성의(=성스러운 옷)처럼 빛나 보였다.

로비는 그것을 손에 들었다.

오랜 시간동안 바람을 맞았던 것이지만, 얼굴을 갖다대면 아직 디트리히의 온기가 남아있을 것 같단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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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아직 부관을 들일 생각이 없는 건가?

군무국의 높으신 분이 나에게 울며불며 매달렸다고?

디트리히

방에 들어와서 하는 말이라곤 설교인 거냐? 브루노.

귀군이 지휘하는 함은 여기엔 없는 건가?

브루노

중개역의 부관이 아직 없어서 내가 일일이 출장을 와주는 거잖아?

이 쪽의 고생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군.

디트리히

부탁은 좋다.

근데 여기는 술집 같은 곳이 아니다.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말하도록.

브루노

실례하겠습니다!

실은 오늘, 디트리히 베르크 각하의 부관이 될 전도유망한 인재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알현을 부탁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연극 하는 듯이 말하는 모습에 디트리히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쓴웃음만 지었을 뿐이다.

브루노

어이, 들어와라.

로비

로비 프로이세 소위입니다!

실례하겠습니다!

디트리히

.......호오?

서로를 인식한 두 사람 간에 짧은 긴장감이 있었지만 브루노는 이변을 알아채지 못했다.

로비

각하의 부관으로 임명되어 영광입니다.

성심성의껏 하겠습니다.

무엇이든 명령해 주십시오!

디트리히

사관학교에서 열심히 배웠나보군?

그러나 나는 시끄러운 것은 질색이다.

로비

실례했습니다.....

브루노

프로이세 소위.

귀군은, 에른스트 발페트 소좌 아래에 있는 인재라 들었다.

로비

영광(큰 목소리)..... 영광입니다(작은 목소리).

브루노

각하는 보시는 바와 같이 까다로운 분이다.

자네에게 고생을 강요해버렸네.

좀 고생하겠지만 아무쪼록 각하를 버리지 말고 잘 부탁하네.

로비

헛....허?

디트리히

브루노. 신임 부관 앞에서 나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말은 삼가하게.

브루노

어이쿠, 실례했습니다.

무심코, 둘이 있던 시절의 버릇이...... 하하하

디트리히

로비 프로이세 소위. 바로 쓸데없는 일을 시켜 미안하지만, 샤를리에 대좌를 지휘함 있는 곳까지 바래다 주게.

브루노

난 애가 아니라고.

자기 함으로 돌아가라니 그게 뭔 소리야.

혼자서도 돌아갈 수 있다고.

브루노

그러면 로비 프로이세 소위.

부디, 각하를 잘 부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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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키마스 군에서, 군기 엄수라 하는 제 3 함대에는 짬을 주체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적은 인력을 놀게하는 것이 디트리히는 무엇보다도 싫었다.

오늘도, 철바닥과 군화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분주하게 울리고 있었다.

로비

전무참모전으로부터, 물자집적소 이전에 관해 상담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제 4 함대 신설에 있어 철강 재료의 할당을 결정해달라고 군수장관 벨파르트 백작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부관인 로비에게 각 부서에서의 통보를 디트리히에게 전하는 일이 첫 번째 임무였다.

디트리히

이것도 전쟁에 나가기 위한 준비이다.

장교에게 있어선 책상 위도 하나의 전쟁터라고 자각하고 일하게나.

디트리히

하지만 로비. 너의 메모는 너의 글씨체 때문에 읽기가 힘들다.

마치 암호해독의 좌학을 강요당하는 기분이다.

로비

실, 실례했습니다.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로비는, 첫 부관 임무에 휘둘려 있었다.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이 전부였으며, 본래의 목적을 돌아볼 틈조차 없었다.

로비

(그래도 나는, 반드시 알아낼 것이다. 각하의 진심을... 그리고 내 아버지를 죽인 남자가 어떠한 자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