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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하쿠레이의 거짓 무녀

붕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09 04:55:04
조회 820 추천 20 댓글 2
														



  하쿠레이 신사의 무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내가 하쿠레이 레이무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린 서로에 대해 깊이 알 만큼 오래된 인연도 아니거니와 별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분명하게 말 할수 있는 것은, 그녀는 무척 강하다는 것일까. 힘이 쎈 것도 물론 쎄지만, 내면의 강인함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툇마루에 앉아 차나 마시고, 뭐라고 말을 걸어도 냉랭한 대답만 돌아와 뭐 이렇게 차가운 녀석이 다 있을까 싶었지만, 알고보면 그저 사람에게 서툴 뿐. 그 속은 정말로 따뜻한 녀석이었다는 걸, 난 뒤늦게 알고 말았다.


  몰랐으면 좋았을텐데.


  아니, 이렇게 서론을 늘여놓으면 마치 그녀가 죽은 것 처럼 얘기하는 것 같지만, 당연히 하쿠레이 레이무는 죽지 않았다. 그 강한 무녀가 죽을 일이 어디 있을까? 단지, 지금은, 너무나 깊은 잠에 빠져버렸을 뿐.


  고작 며칠 전의 이야기다. 어느 이변에 휘말린 우리는, 그야말로 죽을 위기를 수없이 넘기며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거기까진 좋았다. 이변은 해결되었고, 세상은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신사의 툇마루엔 가느다란 바람과, 녹차 향이 감돌았다. 다만 한가지, 아주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다면...


  "승부다, 레이무!"


  이런 생각을 끊어버리고 소리를 질러오는 소녀는 키리사메 마리사. 뭐랄까, 뭔가 잘 모르겠지만 마법사인 모양으로, 늘 이런 식으로 귀찮게 구는게 특징이다. 일단 나쁜 녀석은 아닌지 이변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긴 하는데, 묘하게 레이무에게 라이벌의식같은게 있는 모양이다. 가금 보면 이변의 해결은 뒷전이고, 레이무의 공적같은걸 가로채려는게 본심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설마 그정도는 아니겠지.


  "이렇게 날도 좋은데, 꼭 땀을 흘려야겠어?"


  "이런 좋은 날일수록 몸을 움직이는 거다! 오늘은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라구!"


  "싸움은 언제라도 가능하지만, 이 날씨는 항상 오는게 아니잖아. 그리고, 더럽혀지면 네가 다 청소할거야?"


  마리사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았지만, 이내 잔뜩 부푼 볼의 바람을 빼고 옆에 앉았다. 날이 좋은건 사실이라, 그렇게 잠깐 선선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어느새 입가엔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러고보니, 그땐 큰일이었지?"


  "큰일이었지."


  "그 녀석도, 좋은 녀석이었지."


  "...좋은 녀석이었지."


  "역시 레이무다. 대체 어떻게 그런 싸움을 이긴 거냐구. 그 녀석이 희생했다고는 들었지만..."


  "운이 좋았을 뿐이야."


  마리사의 말이 끝나기 전에, 그렇게 빠르게 말을 끊었다. 살짝 내려앉은 침묵 사이로 바람만이 휘돌았지만, 이내 마리사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들추려는 생각은 아니었어."


  "나도 알아. 그냥, 빨리 잊고싶어서."


  그때 우리가 겪었던 것은,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아서. 결국 이렇게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꼴이 되어버리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모든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어느새 손에 쥔 찻잔에선 김도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마리사도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꿀 말이 딱히 생각나진 않았는지, 천천히 일어섰다.


  "가려고?"


  "응, 여기서 할 일도 없고, 향림당에 새로운 마법도구가 들어왔나 보러 가려구."


  "그래, 다음에 봐, 마리사."


  "레이무."


  "응?"


  마리사는 잠깐 할 말을 입으로 굴려보는 듯 했지만,


  "...힘내라구."


  결국 뱉어진 말은 그게 전부였다. 마리사도 어느정도 눈치는 채고 있을 것이다. 어딘가 다른 레이무의 모습을.


  "...고마워."


  멀어져가는 마리사의 등을 보며, 다 식은 차를 한입 홀짝였다. 레이무는 차를 아주 좋아했지만, 나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맛. 그냥 쓰고 뜨신 물이지 이게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말하면 레이무는 뭐라고 했을까. 지금같은 상황에선 뭐라고 할까. 귀찮게 구는 마리사에게 어떤 말을 하고, 또 어떤 수다를 떨까. 무슨 표정을 지을까. 그녀에 대해 아는게 너무나 없는 내가 한심하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를 보내야할까.


  하쿠레이 신사의 무녀, 하쿠레이 레이무... 그러나 지금 그 속에 있는 것은 나약하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나'다.




--

그냥 생각나서 써봄


또 생각나면 더 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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