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의 병주군 지휘하던 순유의 심정을 생각해봐라.

열심히 지휘하면서도 이런 군대를 만든 여포에게 대단하면서도 자꾸 눈이가.

이 빡대가리가 이런 정예강군을 만든게 신기하고, 청류파의 그것을 몸으로 체현한 협의지사인게 확실해.

더군다나 이 모든 노력의 이유는? 나라를 위함이고, 백성을 위함이고, 그들을 위해 노력하는 병사를 위함이다.

자꾸 살랑살랑 꼬리치는 여포의 모습에 군침만 꿀꺽 삼키는데.

갑자기 여포가 순유를 딱 바라보면서 말하는거지.

"야. 지금도 이렇게 짐승같은데 침상같은 평야에선 어떨거같아?"

평야?

드넓은 평지?

이 병주 가까운데서 그런 곳이 어디있겠냐.

당장 여포도 떠올리는 그곳이 있잖아.

낙양.

순유가 낙양 출신인데 여포의 발언 밑바닥에 깔린 이미지를 모르겠냐.

당장 여포가 병주 촌놈인데, 산골에서 자란 그 놈이 떠올리는 평야하면 이건 100%지.

그 순간 아찔한 심상이 순유의 뇌리를 스쳤을거다.

평생 더럽고 탁하다고 생각하던, 당장이라도 도륙내고 싶은 오욕투성이의 땅 낙양.

그곳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병주군이 보일거다. 너무나 혐오스러운, 그럼에도 애증을 버릴 수 없던 그 이름 낙양!

산을 등산하는 병주군의 모습이 순식간에 낙양의 땅 위로 도열한 병사들로 치환되고.

그 선두에 우뚝 선 누군가가 병, 아니 여라는 문자가 새겨진 기를 들고 순유를 바라보고 있었을 거다.

입술이 절로 바싹 마르고, 어금니가 꽉 맞물리고, 땅이 쑥 꺼진 듯 휘청이다가도 하단전에서 용솓음치는 혈기가 순유를 집어삼켰을 걸?

그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서 지휘봉을 움켜쥔 손이 파들파들 떨리는데, 상상 속 여포가 시선을 옆으로 돌려.

그런 여포를 따라 돌린 시선의 끝에는 의자 하나가 있었을 거다. 그야말로 여포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지낭의 자리 말이야.

누구보다 위대해질 수 있는 여포를 보필할 수 있는 바로 그 자리가 순유를 위해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졌을거다.

그 욕심이 불쑥 튀어나와 내뱉은 말이 참모라는 단어지.

병주자사가 아닌, 여포군을 이끄는 참모가 되고 싶다는 심경의 고백!

그런데 여포가 이걸 또 기가막히게 받아쳐. 듣고있던 순유가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야.

"그치만 순유 정도면 참모가 아니라 군의 스승 아니야?"

아주 그냥 그대로 여포를 들어서! 어? 확마! 어? 아오 이걸 그대로 마! 엉?!

"그럼 군사님? 아니 군선생이라 해야하나?"

이어지는 여포의 말에 그대로 팍 식어버리는거지.

그래, 내가 미쳤지. 이 뇌주름 청순한 핏덩이를 데리고 무슨 생각을 하냐 순유야.

정말 하늘이 내린 그릇같은 여포지만, 그런 여포이니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애써 흉참한 망상을 털어냈을거다.

그러고도 직감했을거다.

여포와 함께 하는 이상, 방금 떨쳐낸 망상이 망령처럼 순유 주변을 맴돌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