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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프레디 머큐리의 인터뷰 모음 정리 (스압주의) 1/2앱에서 작성

Gismo(175.223) 2018.11.20 22:01:37
조회 4889 추천 62 댓글 18
														

출처-https://hygall.com/155884321


#프레디 머큐리

보랩 보고 왔는데 내가 가진 자료로 프레디 머큐리에 대해 조금 정리해보고 싶어서 씀.
인터뷰집 같은 책 옛날에 몇 권 샀던거 참고로 영화에 나온 부분들 위주로 보충해볼게.
극히 부분 발췌지만 문제될거 같으면 말해줘.
프레디의 전 생애에 걸친 인터뷰를 주제 별로 나누다보니 모순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음.
앨범과 소속사, 투어 이야기들이 제일 비중이 큰데 정리하자니 엄두가 안나서 그냥 보랩 에피소드 위주로만 정리.

카테고리는 대충 생각나는대로 나눈거고 특히 프레디가 영감받아 작곡하는 이야기들, 얼마나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인지를 나누고 싶어서 올린다.
그냥 내가 슬퍼서...ㅋㅋㅋㅋ큐ㅠㅠㅠㅠ


1. 초반 퀸 결성 부분 인터뷰

“난 한 번도 내가 퀸의 리더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해 본 것 같아도…….” (존컼ㅋㅋㅋ)

“퀸에 대한 구상은 내가 대학 시절에 한 것이다. 역시 대학생이던 브라이언도 내 구상을 마음에 들어 해서 우린 힘을 합쳤다. 퀸의 초창기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미국에서 싱글 앨범을 발매한 ‘스마일’이라는 그룹이 있다. 난 스마일을 줄기차게 따라다닌 끝에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나는 스마일의 공연을 종종 보러 갔고 그들 역시 내 공연을 보러 와 주었다. 그런데 스마일은 운이 없었던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난 브라이언과 로저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 더 독창적인 걸 만들어야지. 너희의 음악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좀 더 표현해야 해. 내가 너희 보컬이었다면 그렇게 했을 거야!’ 결국 스마일은 나자빠졌고 우린 함께 밴드를 결성하기로 했다. 우린 각자의 음악적인 생각들이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존 디콘을 만났고 밴드 이름을 퀸(Queen)으로 결정했다.”

“퀸이라는 이름은 내가 일찌감치 생각해 둔 것이었다. 굉장히 위엄있으면서도 듣기에도 근사하지 않은가. 강하고 상당히 보편적이면서도 직접적이다. 시각적인 잠재력이 커서 어떤 해석도 가능하다. 마치 연극 무대처럼 많은 것들을 포괄하는 장대한 이름이었다. 갖가지 함축적 의미가 담긴 상당히 화려한 이름으로, 아주 많은 뜻을 품고 있었다. 그저 명확한 보통의 이름은 아니었다.”

“게이적인 의미들이 담겨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지만 그건 이 단어가 갖고 있는 일면에 불과했다. 어쨌든 우린 퀸을 퀴어적인 측면보다는 웅장한 의미로 생각하는 편을 늘 좋아했다.(중략)”

“데모 음반을 만들었을 무렵, 우리는 사기꾼들을 경계했다. ‘자네들을 차세대 T-렉스로 만들어 주지.’ 라고 말하며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만났지만, 허겁지겁 달려들지 않으려고 매우 신중을 기했다. 우린 음반 회사 한 곳에 정착하기 전까지 거의 모든 음반 회사를 다녔다. 우린 평범한 밴드 취급은 받고 싶지 않았다. 개점휴업 상태의 뮤지션은 결코 되지 않겠다고 각오했기에 그런 식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우린 이렇게 말했다. ‘우릴 엄청난 상품 가치를 지닌 밴드로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아예 관두십시오.’ 그렇게 해서 숱한 계획을 세웠다. 알다시피 하룻밤 사이에 성공을 거머쥔 것이 아니다. 3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우리를 위해 제대로 일해 줄 사람들과 제대로 된 회사를 만났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에게는 하룻밤 사이에 거둔 성공 이야기처럼 들렸겠지만, 정말이지 우린 오랜 시간을 보냈고, 그 사이에 녹음 계약은 한 건도 하지 못한 채 여러 클럽을 전전했다. 맨 처음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언제나 이런저런 종류의 사업적인 압박이 있었다. 꼭 장애물 경기 같았다. 내가 항상 주장하듯, 일류 밴드로 성공하기까지 순조로운 항해란 결코 없으며, 그렇지 않다면 분명 뭔가 잘못된 것이다. 너무 쉽게 정상에 도달하면 그걸로 끝이다!”

“‘난 정말 굉장한 뮤지션이야! 어젯밤에 만든 노래는 또 얼마나 끝내주는지!’ 이렇게 떠벌리고 다닐 수만은 없다. 내 존재를 알리겠다는 확신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이 만든 음악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도 일종의 재능이다. 단순히 훌륭한 뮤지션, 탁월한 작곡가가 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방법도 배워야 하고, 꼭 필요한 곳에 있을 줄 알아야 하며, 처음 시작할 때부터 사업적인 거래를 하는 방법도 터득해야 한다. 그것이 로큰롤의 현주소다. 성공의 비결이 될 만한 모든 것들을 본능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이미지야말로 홍보에서 빠져선 안 될 부분인 것 같다. 일부러 꾸며내든 어쩌든 결국에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직감이 생긴다. 그동안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던 기법이나 다른 것을 이용해 볼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전략이다. 적당한 자만심과 자존심까지 있다면 갖출 건 다 갖춘 것이다.”


2. 매니지먼트에 대한 이야기

“사다리 위로 높이 올라갈수록 거기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더 약아져야 한다. 내가 원해서 거칠어지고 약아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된다. 일단 성공하고 나면 온갖 악당들이 끼어들기 마련인데, 그때야말로 정말 강인하고 악착같아져서 악당들을 가려내야 한다. 그건 정말이지 생존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조금만 틈을 보여도 온갖 거머리들이 다 몰려들어 모조리 빨아먹는다.(중략) 성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은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건 일종의 고전적인 규칙이다. 그냥 경험이라고 해 두자.”

“(...)단순히 녹음 계약 문제뿐만 아니라 무엇 하나 식은죽 먹기로 거저 되는 게 없었다는 뜻이다. 이건 음악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업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본인이 직접 진행 과정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훌륭한 뮤지션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사에 빈틈없는 뮤지션이 되는 것도 재능이다. 모든 일을 정확히 처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략)”

“존 디콘은 우리의 사업 문제를 용의주도하게 살폈다. 존은 매사에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았다. 그래도 신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는지 우리에겐 존이 있었고, 그룹의 나머지 멤버들은 뭐든 존이 괜찮다고 해야 마음 놓고 할 수 있었다.”

3. 멤버들에 대해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 그 속에는 언제나 내밀한 질투가 있다. 나와 로저, 브라이언, 존은 모두 따로 곡을 쓰고 각자 자신이 만든 노래를 앨범에 더 많이 실으려고 매번 치열하게 경쟁한다. 분발, 배고픔, 지속적인 싸움, 이 모든 것은 대단히 건강하다. 우린 끝까지 맹렬히 싸우지만 결국은 대단히 민주적이다. 난 모든 일에 탐욕스럽게 덤벼들고 싶진 않다. 굳이 내가 곡을 써야 한다고 우길 생각은 없단 뜻이다. 우리가 믿을 건 오로지 노래 뿐이다. 그런데 내가 작곡을 하겠다고 떼를 쓰고 그 곡들이 최고라고 우긴다면 얼마나 추해 보이겠는가?”

“우리에겐 일종의 방침이 있다. 우리끼리 언쟁을 벌이다가도 이렇게 말하는 거다. ‘좋아, 누가 곡을 쓰든 상관없어. 이 곡이 최고다, 저 곡이 최고다 하는 건 어쨌든 우리 모두를 위한 곡이기 때문이야.’ 말하자면 내가 히트할 것 같지 않은 곡을 적극 민다면, 그건 장기적으로 볼 때 나에게 해로운 일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라디오 가가> 때, 로저가 쓴 그 곡이 싱글 음반으로 아주 훌륭한 출발점이 될 거라고 제일 먼저 말한 건 나였다. 그 곡은 상업적인 데다 상당히 강렬하고 색달라서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린 항상 말다툼을 했다. 사실 처음엔 연신 싸워 댔다. 넷 다 상당히 강한 성격이어서 서로 계속 달려들었다. 넷이 닭싸움하는 꼴이라니… 아마 우린 지구상에서 가장 성질이 더러운 밴드일 거다! 우린 자주 맹렬히 싸웠다. 하지만 딱히 의견이 다르지 않을 땐 그냥 그래 그래, 하면서 가장 좋은 걸 택한다. 대개 허영심이니 파격이니 성질머리니 하는 건 전부 나와 관련된다. 난 굉장히 감정적이고 확실히 신경질적이기도 하지만, 내가 다른 멤버들에게 당한 것도 깜짝 놀랄 정도다. 넷 다 성격이 제각각이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린 서로 조금씩 익숙해져 왔다. 우리를 유지해 주는 건 그저 본능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우린 함께 일하는 네 사람이다. 딱히 대단한 유대도 없고 아무 때나 자주 뭉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우린 꽤 오랫동안 함께 지내 왔고 직업적으로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는 걸 좋아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많이 봐서 지겨워질 수도 있으니까. 물론 꼭 참석해야 하는 접대 자리가 있으면 가긴 한다. 그럴 땐 지극히 직업적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본연의 일로 돌아가는 편이 좋다. 나머지 멤버들도 가정이 있는 만큼 가족들에게 시간을 할애한다. 나 역시 다른 멤버들이 없을 땐 내 사생활을 즐긴다.”

“우린 실수하면서 많이 배웠다. 이제는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녹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모든 것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는지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확인한다. 음반 표지 제작부터 속지까지 빠짐없이 확인하고 음반 회사와 매니지먼트 사도 상대한다. 이건 방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도 우린 여전히 싸운다. 브라이언과 나는 지금도 한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애들처럼 싸운다… 아직까지 때린 적은 없지만…”

그들의 개성과 선호는 각각 달랐다. 로저는 록 슈퍼스타로서의 삶에 만족했다. 그는 각양각색의 스캔들로 신문의 지면을 장식했다. 브라이언은 처음에는 유명인으로서의 생활을 매우 싫어했다. 하지만 두 번째 부인이 될 여자친구와 사랑에 빠진 후로는 만족해했다. 존은 프레디가 포기한 일상적인 가정 생활에 깊이 몰두했다. 가장으로서 만족하는 존의 생활 태도에 프레디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4. 공연에 대한 이야기

“온갖 화려한 의상과 분장을 한 채 무대 위에 서 있는 기괴한 내 사진을 어머니가 보시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 가끔 궁금해진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러셨듯이 어머니 역시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다.”

“청중에게 책임을 다하는 길은, 멋진 공연으로 근사하고 강렬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성공한 공연이 아니다. 난 사람들이 우리 공연에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흥에 겨워 돌아가길 바란다. (중략) 그냥 나 자신이 생동감이 넘칠수록 느낌이 좋다. 모든 건 내가 얼마나 자신감에 차 있는지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든 게 잘 풀리게 되어 있다.”

“(…)나도 그런 걸 좋아한다. 그냥 멀뚱히 서서 노래하는 건 싫으니까. 난 조금 과장된 연기를 하면서 진짜로 노래를 부르는 게 좋다. 원체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데다, 노래마다 조금씩 다른 호전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걸 보여주고 싶다.(중략)”

“그건 단지 성장의 한 형태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모습만 보여 주면 지겨워지기 마련이다. 어쨌든 난 옷을 차려입는 걸 아주 좋아한다. 난 발레풍부터 헤비 레더풍 이미지까지 연출했다. 가죽옷을 즐기게 된 건 독일에서 들른 몇 군데 바에서 그런 모습을 본 뒤부터다. 물론 나는 가죽옷도 멋지게 소화하는 편이다. 난 가죽이 좋다. 내가 흑표범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느 날 밤, 믹 록은 프레디와 엔빌 클럽에 들렀다. 거기에서 프레디는 그룹 빌리지 피플의 멤버 글렌 휴즈를 처음 보았다. 빌리지 피플은 매우 유명한 디스코 뮤직 그룹이었다. 1970년대 후반에 미국에 대한 문화적 고정관념들 -카우보이, 경찰관, 건설노동자, 폭주족, 북미원주민, 군인-을 떠올리는 란 곡을 히트시켰다. 프레디는 바에서 춤추는 폭주족 글렌 휴즈를 보자 처음에는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엔빌 클럽에 다녀온 후 프레디는 가죽제품과 남성 역할의 게이 이미지(=게이 클론) 차림을 즐겼다. 가죽제품의 착용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1970년대의 그의 보헤미안 차림과는 완전히 다른 게이 클론 차림 -짧게 깎은 머리, 억센 콧수염, 근육질의 상체, 타이트한 데님 진- 은 오래 유지되었다. 프레디의 이러한 외모는 실제로는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 클론’으로 알려져 있다.

릭 스카이는 프레디가 클래식하고 세련되었지만, 슬럼가를 방문하는 것도 좋아했다고 했다. “그의 궁극적인 판타지는 오페라를 차용하는 것이에요. 그점에서는 루돌프 누예레프가 프레디와 비슷해요. 누레예프는 고품격의 문화와 저급한 문화를 동시에 좋아하는 능력을 지녔죠.”

“결국은 노래가 모든 걸 말해 주기에, 노래가 시시하면 아무리 근사한 옷을 걸쳐도 사운드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중략)”

“우린 로큰롤 가수지만 쇼를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중략)”

“우린 쇼는 모름지기 스펙터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화려한 무대 공연 때문에 언론에서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런데 실은 그래서 하는 거다. 우린 쇼를 하고 싶어서 막대한 조명 장비와 상당히 복잡한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다. 그 모든 건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도록 조율된다.(중략)”

5. 무대와 일상

“난 무대에만 서면 믿을 수 없을 만큼 기운이 넘치고 음악에 흠뻑 빠져든다.(중략)”

“나처럼 쾌활하고 즐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30만 명을 앞에 두고 무대에 오르는 것보다 좋은 게 뭐가 있겠는가? 난 무대 위에서 요리를 할 뿐이다! 해일과 같은 어마어마한 관중 앞에서 연주를 한다는 건 내게도 벅찬 일이다. 내가 관객들에게 받는 느낌은 섹스보다 더 강렬하다. 그 흥분 상태를 너무 사랑해서 언제나 더 많은걸,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갈구한다. 난 음악의 바람둥이다! 그건 나의 천성이다. 물론 그렇다고 일상생활에서도 그런 걸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일단 무대에서 내려와 몇 시간만 지나면 평상심으로 돌아와 내 본래 모습을 찾는다. 내 성격은 갖가지 재료들로 버무려졌고, 무대 위의 프레디는 그중 한 요소일 뿐이다.”

“사람들은 내가 무대 위에서 옷을 찢으며 돌아다니니까 평소에도 옷을 찢으며 돌아다닐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가 부절제한 생활을 할 거라는 그런 생각은 너무 황당하게 부풀려진 거다. 내가 아무리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산다고 해도, 늘 잔뜩 흥분한 상태로 지내진 않는다.(중략) 사람들은 무대 위의 페르소나를 보고, 무대 밖에서도 내가 그런 식으로 살아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그랬다가는 벌써 오래전에 죽었을 거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 때문에 무대에서 내려와서도 그 프레디 머큐리의 이미지를 그려 내야 한다고 느끼던 시절을 갔다. 그렇게 하면 굉장히 외로워지리라는 걸 깨달았기에 이젠 무대를 내려와서 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실제 내 모습은 시시하고 평범해 보일 수도 있다. 난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집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사실 나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무대 위 모습과 똑같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환상이 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인간이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나쁠 때도 있고 착할 때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도 똑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파괴적인 성격도 갖고 있는 만큼, 사람들이 나에게도 똑같은 자유를 허용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한 내 모습 그대로 지내고 싶을 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 따위엔 아무 관심도 없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멋대로 내린 해석이나 이미지를 몰아내고 싶다. ‘이게 내 본모습이란 말이야.’ 라고 일일이 말하기도 싫다.(중략)”

“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고 싶다. 많을수록 좋다!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나 이미 성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거리낌 없이 그렇게 말하고 그 사실을 인정한다. 내 힘이 닿는 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난 온 세상이 내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고, 내가 무대에 서 있을 때는 모든 이들이 내 노래를 듣고 날 바라봐 주길 바란다.”

“원래 사람들은 예술을 원하고, 쇼 비지니스를 원하고, 스타가 리무진을 타고 황급히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우리가 음반과 콘서트를 다른 작업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무대 위에 서 있을 때와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무대에 올라 관객 앞에 설 때는 정말로 우리 자신을 맘껏 분출할 수 있다. 우린 스스로 아주 높은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관객의 99퍼센트는 연주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소리 지르고 큰 소리로 떠들면서 분장실을 때려 부수며 에너지를 분출한다. 그러다가 끝내는 숨 쉬는 공기까지 트집 잡으며 별의별 것을 다 가지고 싸우기 시작한다. 우린 항상 맹렬히 싸운다. 어느 날 밤에는 로저가 기분이 더럽게 나쁘다며 피가 묻은 자신의 드럼 세트를 통째로 무대 너머로 던져 버렸다. 난 하마터면 그것에 맞아 죽을 뻔 했다. 또 한번은 로저가 김이 푹푹 날 정도로 좁아 터진 분장실에서 그만 실수로 브라이언의 얼굴에 헤어 스프레이를 뿌려서 둘이 치고받고 싸운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면 전부 재미있는 일이다!”

“이따금 지나치게 흥분한 일부 관객과 카메라맨 사이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문제가 되기도 했다. 내가 를 부를 때의 일이다. 그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우린 전부 여장을 했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살리려고 웃옷 속에 가짜 가슴을 넣고 진공청소기를 들고 무대에 등장했다. 그랬더니 관객들이 살짝 광적인 상태가 되었다. 처음에 난 내 가슴이 너무 커서 그런 줄 알았다. 투어 초기 브뤼셀에서 처음 그런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 함께 일하는 몇몇 사람들이 공연장 뒤쪽에서는 잘 안 보일 거라고 말했다. 돌리 파튼 가슴 사이즈의 두 배쯤 되면 몰라도. 그래서 난 더 큰 가슴을 구했다. 난 그 사람들이 내가 여장한 모습을 보고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모르겠다. 그곳엔 여장 남자들이 꽤 많은데 말이다. 어느 거리에서나 모퉁이만 돌면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우린 늘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연을 할 수 없다면, 그 공연은 하나마나라고 생각했다. 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의 어려움 때위의 변명을 늘어놓는 건 딱 질색이다. 엿 같은 일이다. 일단 공연을 하게 되면 그것에 충실해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노래도 잘하고, 무대 공연도 잘 해내는 사람으로 생각하길 바란다. 사람들이 퀸의 공연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한껏 흥에 겨워 돌아가면 좋겠다. 좋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처럼 순수한 현실도피가 되었으면 한다.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서 정말 최고였다고 말하고는 다시 각자의 현실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6. 보헤미안 랩소디

“<보헤미안 랩소디>는 정말이지 내가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전 앨범들에서는 그다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지만 네 번째 앨범쯤 되니 꼭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는 세 곡이었던 것을 내가 한데 묶은 것이다. 난 항상 오페라풍의 곡을, 도입부에서는 감미롭게 시작해서 점점 록으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뚝 끊겼다가 오페라 파트로 이어져서 놀라운 급진전이 있는, 그러고 나선 다시 테마로 돌아가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 정작 내가 오페라에 대해 아는 건 그저 몇 곡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 테마를 가지고 퀸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 노래가 진짜 오페라곡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분명 그건 아니니까. 내가 오페라 광신자라는 말도 아니다. 내가 원했던 건 그저 로큰롤 감각을 지닌 오페라였다. 못할 것도 없는 일 아닌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능력만 따라 준다면.”

“<랩소디>는 오랜 생각이 필요했던 곡이지, 뜬금없이 떠오른 곡이 아니다. 화려한 감각이 필요한 곡들이 있다. 난 미친 듯이 작업해야 했다. 바로 그런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연구도 조금 했다. 비록 가벼운 가짜 오페라라 해도 굉장히 퀸적인 것이 되길 바랐다. 난 오페라풍이 정말 마음에 든다. 보컬도 파격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우린 늘 굉장히 멍청한 사람들과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오페라 파트를 들어 보면 어떤 비교도 할 수 없을 거다. 우린 바로 그런 걸 원했다.”

“사실 그건 명확한 세 부분이 결합되는 형태를 띤, 가히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각각의 부분 모두 상당한 집중이 필요했다. 중간의 오페라 파트가 가장 부담스러웠다. 보컬을 담당하는 브라이언과 로저, 나 셋이서 웅장한 오페라풍 하모니를 재창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멀티 트랙을 비롯하여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우리 셋이서 160~200인조 합창단의 효과를 만들어 낸 것 같다.”

“‘노,노,노!’ 하면서 점점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부분을 만드느라 우린 앉아서 ‘노,노,노,노,노,노,노,노!’를 150번쯤 했다. 당시는 16트랙 스튜디어 시절이었다. 요즘은 24트랙과 32트랙, 심지어 그 이상도 갖고 있지만, 그 곡 때문에 16트랙으로 다중 녹음을 숱하게 했다. 덧씌워 녹음하기를 어찌나 많이 했던지, 나중엔 테이프가 훤히 비칠 만큼 닳아서 더는 녹음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두 조각으로 툭 끊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정말 작업을 많이 했다.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 들어 있어서 로저와 브랑이언과 존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라며 자기들끼리 궁시렁거렸다. 화음 하나 맞추고는 한참 기다려야 하는 식이어서, 그 친구들은 ‘이거 황당하네!’라고 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각 부분별 진행 상황이 모두 담겨 있었다. 정말 녹음하는 데 오래 걸렸다.”

“<랩소디>는 한 시대였고, 그건 바로 우리의 시대였다. 그 트랙에 딱 맞는 시절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그 노래를 발표했다면 그렇게 크게 히트하진 못했을 것 같다. 내가 겸손을 떠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는 그런 류의 장엄한 녹음에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곡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지금 여기 앉아 있다면, 아마 지금은 그 곡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때그때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나의 인식 때문이다.(중략)”

“(…)우린 <보헤미안 랩소디>가 굉장히 강력한 트랙이라고만 생각하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곡을 두고 너무나 많은 논란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매스컴의 요구에 맞춰 그 곡을 3분짜리 싱글로 편집해야 한다고 권하기도 했지만 어디 하나 잘라 낼 부분이 없다. 그래선 노래가 안 된다. 우린 현 단계에서 퀸의 가장 중요한 면모가 바로 이것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라도 꼭 그대로 발표하고 싶었다.”

“싱글을 선택하는 건 늘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히트가 보장된 곡 같은 건 없으니까. 그러니까 <랩소디>는 상당한 모험이었다는 얘기다.(중략) 위험 요소가 굉장히 컸다. 처음엔 라디오에선 노래가 너무 길다고 좋아하지 않았고, 음반 회사들은 그런 식으로는 상업화시킬 수 없다고 했다. 실질적으로 세 곡을 합친 곡이니까 다시 자르라고 했다.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어쨌든 6분이라는 분량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틀지 않겠다고 거부하고도 남는 시간이다.(중략)”

“공중파 방송 시간에 적합하게 편집하라는 말들이 많았지만, 우린 그 곡이 온전한 형태 그대로 히트할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전에는 어쩔 수 없이 타협하기도 했지만, 노래를 잘라 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노래를 망칠 게 뻔한데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3분 길이로 곡을 잘라 내라는 이들에게 난 이렇게 말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대로 나가든지 아니면 아예 관둘 겁니다. 그대로 놔두든지 아니면 아예 없는 셈 쳐요!’ 대실패작이 되든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듣고 사서 크게 히트하든지 둘 중 하나가 될 운명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내게 <보헤미안 랩소디>가 무슨 내용이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나는 나도 모른다고 대답해 버린다. 그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어떤 신화적인 것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랩소디>는 판타지 느낌의 곡이다. 그저 그 노래를 듣고, 그것에 관해 생각하고, 그러고는 스스로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7. 작곡과 영감

“작곡을 할 때 정해진 규칙 같은 건 없다. 되는 대로 만든다. 어떤 노래는 다른 곡들보다 빨리 만들어지기도 한다. 난 피아노 앞에 앉아서 ‘좋아, 이제 노래를 만들겠어.’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절대로. 몇 가지 느낌이 떠오르면, 그것에 관한 아이디어를 생각한 다음 시작한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언제나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냥 한꺼번에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땐 작업을 해야 한다.(중략)”

“난 언제나 내가 만들고 있는 새 노래를 생각한다. 새 노래를 쓰는 걸 멈출 수가 없다. 많은 아이디어들이 터져 나온다. 본능적으로 난 기억하기 쉬운 근사한 멜로디를 만들고 싶다. 그건 내가 끊임없이 해 나가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그 작업을 즐기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일종의 취미랄까. 어쨌거나 충분히 보람 있는 일이어서 계속 하고 싶어지고, 다양한 양상을 탐색해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고 싶다. 그건 마치 그림을 그리는 일과도 같다. 그림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려면 한 발짝 떨어져서 보아야 하니까.”

“난 노래를 만들 때면 혼자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 혼자 있어야 집중이 잘된다. 노래를 만들 때는 전체 내용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편이다. 그 작업이 잘되면 모든 게 순조롭다.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때 가장 잘 떠오른다. 난 아주 재빠르게 노래를 포착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럴 때가 신선하다. 그러고 나면 그걸 가지고 작업을 할 수 있다. 노래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데 노래를 만들려고 애쓰는 건 싫다.(중략)”

“난 내가 느끼는 대로 노래를 만들고 늘 기꺼이 배우고 있다. 똑같은 형식을 되풀이하는 것보다 새로운 유형의 노래를 만드는 게 훨씬 더 흥미롭다. 그 순간에는 생각지도 않던 노래를 만드는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그런 곡들이 오히려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다. 그래서 잘은 모르겠지만 혹시 잠재의식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 같다.(중략)”

“재미있는 건 내가 쓴 가사와 노래들이 주로 환상이라는 점이다. 난 환상을 만들어 낸다. 현실적인 문제는 파고들지 않으며 대개 공상같다. 난 길거리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가 어떤 환영을 통해 불현듯 영감을 받는 부류의 작곡가가 아니다. 주변의 야생동물을 보면서 영감을 얻고자 사파리로 가거나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부류도 아니다. 오히려 욕조 안에 앉아서 영감을 얻는 편이다. 영감을 얻는 데 야생동물은 필요하지 않다. 어떤 특별한 장면이나 예술 같은 것에서 영감을 얻지도 않는다. 물론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은 경우도 있지만 그건 나로선 정말 정말 드문 일이다.(중략)”

“영감은 어디에서나 떠오른다. 별 기대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떠올라 성생활까지 엉망으로 만들기도 한다. 내 노래들 가운데는 잠자리에 있을 때 떠오른 것들도 있다. 곡이 떠오르면 잠자리에서라도 곡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간 아침이면 사라지고 없다. 메리와 함께 살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밤중에 잠이 깼는데 노래가 좀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럴 때는 얼른 앉아서 곡을 써야 하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건반을 두드릴 수 있도록 침대 옆으로 피아노를 끌어다 놓았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도 메리는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

“음악적 영감을 주는 것들은 아주 많다.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아다니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라 기억해 두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피아노 앞에 앉아 딩동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기억해 내려고 노력하고, 그 기억이 되살아나면 그것들을 모두 한데 모으려고 애쓴다. 때로는 그냥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가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걸 노래로 풀어 본다. 다른 방향에서 억지로 아이디어를 얻으려고도 하지만, 그냥 내팽개쳐 두면 한 달쯤 지나 아이디어가 다시 떠올라 갑자기 착착 제자리를 찾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 굉장한 영감 같은 건 없다. 전부 제각각 다르다.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다른 데서 공상적인 얘기를 듣고는 ‘와 어디서 저런 영감을 얻었을까?’ 라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굉장한 환상이 있는 모양이다. 그들에겐 실망시켜서 미안하지만 난 어떤 엄격한 형식에도 매이지 않는다.”

“난 사랑과 사람의 감정을 굉장히 예민하게 느끼고, 그렇게 내가 느끼는 것을 가지고 노래를 만드는 걸 무척 좋아한다.(중략)난 사람들이 내가 사랑의 괴로움과 고통을 겪고 있음을 믿어 주기를 바란다. 그건 나의 천부적인 재능이고, 내 노래를 통해 하고 싶은 전부다.”

“난 우리의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다. 우리 노래에 숨겨진 메시지 따윈 없다. 브라이언의 곡 몇 개를 제외하고는. 내 노래들은 빅 면도기 광고처럼 흥을 돋우고 현대적인 소비를 촉진한다. 다 쓴 휴지처럼 버릴 수도 있다. 그 노래를 듣고, 좋아하고, 버리고 또 그 다음 것을 틀 수도 있다. 말하자면 일회용 팝인 셈이다.”

“메시지가 담긴 노래를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머릿속에 정치가 들어오긴 하지만, 우린 뮤지션이기 때문에 그런 건 그냥 버린다. 정치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고, 심오한 메시지를 쓸 만한 재능도 없다. (중략)내 노래들은 상업적인 사랑의 노래이고, 내가 가진 감정적인 재능을 그 안에 쏟아 붓고 싶다. 세상을 바꾼다거나 평화에 대해 말하고 싶진 않다. 난 그런 쪽에는 흥미가 없으므로. 정치는 전혀 내 분야가 아니다. 오히려 나라를 망치면 망쳤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아마 난 연설 시간 내내 노래를 부를 거다!”

“나름대로 창의적인 사람들은 많다. 꼭 음악에서만 창의적일 필요는 없다. 그건 재능의 일부이다. 난 늘 집 안에 가만히 들어앉아서 ‘난 아주 근사해. 난 아주 창의적이야.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돼.’ 라고 말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절대 안 될 일이다. 밖으로 나가서 실제로 그걸 움켜잡고 활용하고 작업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재능이다. 재능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실제로 그걸 활용하고 대중에게 제공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이다. 두 가지가 협력하는 것이 바로 ‘적극적인 판매 Hard Sell’일 거다. 자신의 궁둥이를 팔아야 한다. 그곳에 가서 ‘내가 왔어요! 난 창의적입니다! 난 근사한 사람이에요! 자… 먹으라고요!’ 이렇게 소리치며 강요해야 한다.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내게 말해 주길 바란다.”

“언젠가 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한 편 갖는 상상도 해 본다. 물론 거기서 내가 중요한 부분을 맡게 되겠지. 그렇다고 내가 직접 주연을 맡진 않을 거다. 내가 평생 해 온 일들이라는 게…, 분명 성인용 X등급이 세 개나 붙을 테니.”

“내가 어떤 노래를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면서 좋은 노래라고 말해 준다는 게 어떤 건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건 아주 근사한 느낌이다.”

“(…)<핫 스페이스>는 나에게도 상당한 모험이었고 대중도 양분되었다. 미국인들은 그걸 새로운 것으로 봐 주면 좋겠다. 영국은 완전히 무시했으니까. 확실히 영국인들 취향은 아니었다. 영국인들은 그걸 완전히 밀어냈다.”

“난 몹시 못마땅하다. 솔직히 말하면 울화가 치민다. 그보단 좀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보디 랭귀지>가 우리로서는 처음 시도한 종류의 곡이라는 걸 알지만, 영국에서 그렇게까지 인정을 못받을 줄이야. 맙소사! 그렇다고 내가 돌아가서 <랩소디>의 재탕을 들고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미국인들이 그 앨범을 그런 식으로 봐 주어서 다행이다.”

8. 사랑과 연애에 대한 인터뷰

“난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끼면 자제하려고 애를 써도 도저히 억누르지 못한다. 통제가 되질 않는다. 난 늘 너무 빨리 사랑에 빠지고 결국은 상처를 받는다. 혹시 나에게 맞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걸까? 난 여기저기 온통 상처투성이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누구든 절대 통제하지 못하는 법인데, 난 그런 느낌이 싫다. 난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난 겉으로는 강해 보일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유약한 사람이다. 무대에서는 단단한 마초 껍데기를 표현하지만 버터처럼 녹아 드는 부드러운 측면도 있다. 루돌프 발렌티노처럼 진정 낭만적인 사내인데도 어떤 기사들은 날 빌어먹게도 차가운 놈으로 만든다.”

“난 극단적인 사람이어서 굉장히 파괴적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감정적일 때도 있는데, 그런 점은 내 안에서 파괴적인 특성으로 나타난다. 어떤 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너무 열중한 나머지 아무리 잘해 보려고 애를 써도 나도 모르게 파멸시키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성공한 사람이다 보니 연애가 끝날 무렵이면 사람들은 늘 날 비난한다. 내가 누구와 함께 있든, 자신들의 예상에 날 끼워 맞추고는 과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싸움을 벌이려는 것 같다.”

“난 내 연인들을 엉망으로 망쳐 놓는다.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고, 비싸고 근사한 선물을 주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데, 그러고 나면 결국 그들은 날 온통 짓밟아 버린다. 벌거벗고 바닥에 누워 있으면 그대로 몰락하는 느낌이다.”

“이따금 난 너무 외로워 두려움 속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난다. 그래서 하룻밤 상대라도 좋으니 날 사랑해 줄 사람을 찾아 밖으로 나가는 거다. 나의 하룻밤 상대들은 그저 내 역할을 맡는 것이다. 난 풍부한 사랑을 간절히 원하지만, 사랑에 빠지고 나면 결국 다쳐서 상처투성이가 된다. 아무래도 난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어떤 면에서는 많은 아픔을 겪을수록 내가 쓰는 곡들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오래 지속될 만한 관계를 찾으면, 멋진 노래를 탐색하는 문이 모조리 쾅 닫히고 만다. 난 아무래도 과거의 아픔을 곱씹으며 살아야 하는 인간인가 보다. 글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잘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난 도전하고 싶다. 언제나 그런 식으로 도전하고 싶다. 내 시스템은 그렇게 맞춰져 있는 모양이다. 너무 나긋나긋하면 지루해진다. 결국 나 스스로 망치는 셈이다.”

“그렇다, 난 게이다. 온갖 짓들을 다 해봤다. 난 한 떨기 수선화 같은 게이다.(여성스러운 동성애자를 조롱조로 부를 때 수선화daffodil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여자와 하듯 남자와 사랑에 빠지진 못한다. 게이 파트너를 찾으려고 작정하고 외출하지도 않는다. 이 세계에선 진실한 친구를 찾거나, 그런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중략) 나에겐 5년 동안 동거한 메리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고 남자 친구들도 있었다. 내 입으로 나 자신에 대해 모든 걸 설명하면 그 모든 미스터리는 박살날 거다. 그걸 끄집어내서 구구절절 파고들어 간다는 건 솔직히 말해서 나답지 않은 일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폭넓은 성적 취향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가능한 한 멀리까지 가보려는 것이다.”

“난 평범한 인간이다. 나도 그저 한 인간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모든 이가 무대 위 나의 페르소나를 좋아한다. 어느 누구도 나의 참모습을 사랑하지 않는다. 모두 나의 명성과 스타덤과 사랑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난 싸워야 한다. 대부분의 시간은 내 뜻과 반대로 된다. 난 관계를 원하지만 항상 그것과 싸워야 한다는 걸 느낀다. 내가 괴물을 만들어 낸 모양이다. 관계를 맺으려면 그 사실을 인정해 줄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다. 그 둘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분리하기가 무척 어렵다. 내 인생에도 몇 번의 로맨스가 있었지만 다 슬프게 끝났다. 진정한 누군가를 찾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들이 널 원하든, 팝 스타 프레디 머큐리를 원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굉장히 다른 사람이다.”

“난 좋은 연인은 될 수 있지만,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어느 누구에게도 그다지 좋은 파트너는 못 된 것 같다. 물론 애인은 여럿 있었다. 리즈 테일러 보다 더 많았다!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양쪽으로 두루 관계를 맺으려고 애썼지만 내 연애는 결코 오래가지 않는 듯 하다. 하는 연애마다 잘못되었다. 분명히 난 촉매 역할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에게 사랑은 러시안 룰렛 게임과 같다.”

“난 상처를 입더라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마음속에 앙금을 품고 지내는 사람은 아니다. 배신당하는 그 순간은 마치 등에 칼을 맞은 것 같다. 그럴 때 내 첫 반응은 이렇다. ‘나쁜 새끼 나한테 걸리기만 해 봐라!’ 하지만 그것도 차차 희미해져서 결국은 그냥 내버려둔다. 그럴 만한 가치도 없다. 수없이 낙담도 했지만 그저 이를 악물고 꾹 참으며 이렇게 말하고 만다. ‘엿이나 먹어라’.”

“난 사랑에 홀린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내 노래 대부분은 사랑의 슬픔과 괴로움, 고통에 관한 발라드이다.(중략)”

“사람들은 프레디 머큐리같은 사람이 어떻게 외로울 수 있는지 의아해 한다. 돈도 있겠다, 기사 딸린 차도 여러 대 있겠다, 가진 것도 많으니까.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날 내가 나 자신을 따라잡게 되면 그것이 나의 추락이 될지 모른다. 실제로 그런 종류의 외로움을 참기 힘들 때가 있다. 모든 걸 갖추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여전히 외로우니까. 방 안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사람만 외로움을 느끼는 건 아니다. 고독한 이들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외로움을 느끼며, 그것이야말로 가장 상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꼭 ‘불쌍하고 외로운 프레디’로 들린다. 조만간 홍수처럼 쏟아지는 선물 더미에 빠지겠군!”

“지금은 오로지 혼자 살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그게 좋다. 함께 일하던 세 사람을 내보냈는데 그건 아주 잘한 일이었다. 처음엔 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게 아닌가 싶어서 굉장히 꺼림칙했지만 ‘아냐, 그렇게 해 버리자.’ 하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고, 그 사람들은 떠나갔다. 전에는 혼자선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주변에 사람들이 꼭 있어야 했는데, 이젠 혼자 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게 좋다.”

“누구든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을 그릴 텐데, 나 역시 늘 사랑이란 이런 식이어야 한다 또는 저런 식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난 노력하고 또 노력했지만 실패했다.(중략)”

“누군가와 진정으로 아름다운 관계,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둘만의 관계를 맺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지금 내 생활에선 굳이 그런걸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실제로 내 인생이 그런 관계를 마련해 줄 것 같지도 않다. 현재 내 생각이 그런 만큼, 그 부분과 타협하며 살아야 한다.(중략)”

“난 음악과 결혼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결혼했다. 그럴 시간도 없겠지만 어쨌든 음악과 결혼하진 않았다. 음악은 내 일이고 직업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지는 않더라도 내 직업이다. 난 음악을 생계 수단으로 여긴다. 난 철저히 낭만적인 사람이고 사랑과 사람들과 결혼했다.”

“마침내 난 평생 찾던 둥지를 발견했고, 이 세상에서 어떤 빌어먹을 놈도 그걸 망치진 못할 거다.”

9. 내 인생의 사랑, 메리에 대해

“메리를 처음 만난 건 1970년쯤이었고, 그 이후 우리는 훌륭한 관계를 유지했다. 만난 곳은 메리가 일하던 런던의 비바 양장점이었다. 난 초창기부터 비바가 대형 백화점으로 바뀔 때까지 그곳의 광팬이었다. 내가 드나들 때만 해도 그곳은 그저 작은 양정점이었다.”

“우린 어느 누구보다 가까웠지만 7년쯤 지났을 때 함께 사는 걸 포기했다. 우리의 연애사는 눈물 속에 끝이 났지만 거기서 끈끈한 유대 관계가 생겨났고,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서 그걸 빼앗아 갈 수 없게 됐다.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다. 초창기부터 사람들은 늘 내게 섹슈얼리티와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묻는데, 난 메리와 그랬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순 없다.”

“때로는 좋은 친구 한 명이 연인보다 훨씬 더 귀중하다. 나에겐 메리 말고는 진정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 친구들은 생기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중략)”

“난 메리와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어 왔고 그 우정은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 만약 내가 먼저 간다면 모든 걸 메리에게 남겨 줄 생각이다. 어느 누구도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다. 내 고양이들만 빼고. 그 고양이들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중략)”

“내가 베푼 만큼의 사랑을 내게 돌려준 존재는 딱 둘뿐이다. 오랜 시간 내 연인이었던 메리와 내 고양이 제리.”

“난 세상의 온갖 문제를 다 끌어안은 것 같지만, 메리와 고양이 제리만 있으면 견뎌낼 수 있다. 메리는 우리 집에서 겨우 2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산다. 요즘도 메리를 매일 만나는데, 그동안 그래 왔던 것만큼 메리를 좋아한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순간까지 메리를 사랑할 거다. 우린 아마 함께 늙어가겠지.”

프레디와 메리는 서로에게 끌렸고, 둘 간의 관계는 평생 동안 계속된다. 커플은 불같이 타올랐고 그 어떤 남녀보다 중요한 관계가 되었다. 둘 다 매우 예민하고 과묵하며, 겉으로 보기보다 신중하고 사려 깊었다. 이들은 서로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발견했기 때문에 더 강력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해가 갈수록 프레디는 더 강해지기 위해 메리에게 의존했다. 섹스, 약물, 로큰롤로부터 통제불능 상태가 되거나 녹음과 투어 부담에 억눌릴 때마다 강하고, 믿을 만한, 언제나 너그럽게 모든 것을 받아주는 메리에게 돌아갔다. 프레디가 피해망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메리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프레디는 누가 뒤에서 자신을 비난할지, 자신이 정말 조롱거리인지를 걱정했다. 이런 걱정들은 프레디가 죽을 때까지 프레디 내부에서 가장 횡폭한 악마로 남아 있었다. 프레디의 두려움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메리 인터뷰: 그를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되었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보기 힘든 사랑이었죠.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알고 신뢰했어요. 고의적으로 헐뜯거나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언젠가 크리스마스에 반지를 주었는데 엄청나게 큰 박스 안에 들어 있었어요. 박스를 열면 그 안에 또 다른 박스가 있었어요. 맨 마지막의 작은 박스를 열자 이집트 풍뎅이 모양의 아름다운 반지가 있었어요. 행운을 상징하는 것이죠. 너무 다정스럽게 수줍어하면서 주었어요.

프레디는 한밤중이라도 악상이 떠오르면 침대 옆에 있는 피아노를 끌어당겨 작곡에 열중했다. 평범함 사람이라면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메리는 프레디의 성적 취향에 의심이 들 때는 우선 그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프레디가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생각했어요. 나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그는 항상 핑계거리를 대곤 했어요. ‘녹화 중이야. 모두 컨디션 최고야. 그래서 늦을 거 같아.’ 밤에 늦게 오는 것 외에 프레디가 잘못한 건 없었어요. 결국 어느 날 그가 내게 말했어요. ‘메리, 말할 게 있어.’ 프레디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고 확신했는데 다행히도, ‘나는 양성애자인 것 같아.’ 라고 했죠.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아냐, 프레디, 양성애자가 아냐. 게이인 것 같아.’ 라고.

믹 록: 커밍아웃하기 전에도 확실히 게이였어요. 하지만 완전한 게이는 아니었어요. 그 사실이 프레디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죠. 이것 아니면 저것, 이렇게 확실해야 하는데 어중간한 상태였어요. 그는 여자도 사랑했어요. 그의 삶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성적으로는 분명히 남성이었지만 여자도 사랑했어요. 메리는 일생의 진정한 사랑이었어요. 감정적으로 가장 강하게 밀착되었죠. 프레디에게서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기본적으로는 게이이지만 여자와 더 의미 있는 관계를 맺었다는 점이다. 성적 취향이라기 보다는 만나는 여자와의 관계가 어떤가의 문제죠. 메리와 프레디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였어요.

메리는 좌절된 꿈으로 인한 슬픔을 극복하고 프레디와의 깊고 플라토닉한 우정을 이어갔다. 그녀는 프레디의 집사 역할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그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10. 솔로 앨범과 이후에 관하여

프레디의 인터뷰에서는 영화에서 같은 갈등 상황은 없고 프로젝트로 열심히 솔로 앨범 만들어보고 다시 퀸 하는걸 당연하게 생각함. 일종의 휴식처럼 생각한듯.

“난 그 앨범이 마음에 들었고, 내 목소리도 마음에 들었다. 난 허스키한 목소리가 좋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는 거다. 그 허스키한 목소리를 얻기 위해서. 난 그 앨범을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쳤다. 다른 사람들은 다 꺼져라!”

“난 나의 솔로 활동이 퀸 멤버들을 더 가깝게 해 주고, 우리의 실력을 더 높였다고 생각한다. 퀸이 한층 더 성장한 모습으로 컴백하리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난 그룹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아주 멋진 배출구를 갖고 있어서 어떤 식으로도 숨이 막히지 않았고 당연히 불만도 없다. 적당한 시점에 솔로로 독립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런 유혹도 분명 있었다. 언론에선 언제나 언제쯤 솔로로 나설 거냐고 물었다. 하지만 난 퀸과 함께하는 게 매우 행복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그들을 버리고 솔로로 독립하면서까지 자만심을 채우고 싶지 않았다. 꽤 매혹적인 영역이긴 하지만 그러자고 일을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난 우리 밴드에 성실할 작정이고,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나에게 그건 지나치게 큰 대가다.”

“넷 중에 하나라도 떠난다면 그건 곧 퀸의 종말이다.우린 서로 조화를 이룬 부분들이자 동등한 네 사람이다.넷 중 하나라도 없으면 나버지 셋은 절대 똑같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우린 넷이다. 막강한 4인조다. 우린 죽을 때까지 함께할 거다. 이제 와서 해체하기엔 우린 너무 늙어 버렸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 죽거나 어떻게 될 때까지 우린 어떤 식으로든 계속 해 나갈 거다. 내가 갑자기 떠나고 나면 친구들은 아마 나 대신 기계장치를 쓸 것 같다. 하지만 날 대신하긴 쉽지 않을걸?”

“20년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말 알 수 없다. 그때도 사람들이 우리 음반을 사 준다면 좋을 텐데. 난 그저 음반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그 일을 하고 싶진 않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고, 만약 흥미를 잃는다면 다른 일을 찾아 떠날 거다. 난 색다른 것을 시도하는 게 좋다.(중략)”

“(…)늙어 보이는 건 두렵지 않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내면의 느낌이 중요한 거다. 난 뚱뚱해질까 봐 걱정하지도 않는다. 사실 체중이 더 늘어서 좀 포동포동해지면 좋겠다.”

“난 완벽하게 건강하고 적당한 몸매를 갖추고 있다. 물론 나도 건강에 신경 쓰긴 한다. 누군 안 그런가?”

“(…)내 치아가 앞으로 툭 튀어나온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 조만간 그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데 도통 시간이 나질 않았다. 그것만 빼면……, 난 완벽하다. 진지하게 생각해 봐도 난 정말 진국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깔보진 않는다. 그건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짓이다.”

“난 제발 에이즈만 걸리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여러 친구들이 그 병에 걸렸다. 어떤 친구는 죽었고 다른 친구는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이 내 차례가 될까 봐 두렵다.(중략)”

“퀸이 갈 데까지 가서 이젠 구조적으로나 창조적으로 남은 것이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모두 그 사실에 동의하는 시점이 올 것이다. 내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퀸 안에서 억지로 뭔가를 하는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적당한 수준에서 그만두고 완전히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낫다. 우리 모두 그런 식으로 생각할 거라고 확신한다.”

“멈추어야 할 때가 올거라는 건 알지만, 음악만은 변함없는 내 것일테니 뭘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봐야겠다. 단순히 로큰롤 스타로 생을 마치고 싶진 않다. 음반 제작을 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계속해서 곡을 쓸 거다. 무대 위를 뛰어다닐 만큼 몸 상태가 좋을 리는 없겠지만 곡을 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든 저렇든 음악은 늘 내 인생의 한 부분으로 존재할 것이다.”

11. 짐 허튼

“지금 난 매우 행복하다. 솔직히 이보다 더 바랄 순 없다. 위안, 정말 좋은 말이다. 갱년기 증상은 아니다. 이제 난 너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능력을 증명해 보일 필요도 없다. 짐과 난 서로 깊이 이해하는 사이이며,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린 정말 훌륭하다.”

짐 허튼: 프레디는 내 인생의 사랑이에요. 지금까지 그와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내게 항상 ‘네 인생을 찾아가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난 알고 있죠. 내가 죽으면 프레디가 저쪽 편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둘은 1983년 프레디 집 근처의 게이바 코파카바나에서 만났다. 그때 짐 허튼은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었기 때문에 둘 사이의 관계에 진전은 없었다. 하지만 2년 후 다시 만났을 때 이번에는 초라한 이발사 짐 허튼이 싱글이었다. 프레디는 짐의 윤기 있는 검은 머리와 두터운 콧수염에 단번에 반했다. 프레디는 짐 허튼에게 수작을 걸면서 프레디 무리에 끼어 달라고 설득했고, 짐 허튼은 프레디와 밤새도록 춤을 추었다. 짐은 프레디에게 빠져들었다. “그는 큰 눈에 아이같이 굴어요. 지금까지 내가 좋아했던 남자들하고는 완전히 달라요. 나는 건장한 다리의, 큰 체격의 남자를 좋아했지만 프레디는 화를 잘 내고 내가 만난 남자 중에서 가장 다리가 가늘어요. 프레디는 항상 성실하고 사랑스러웠어요. 그런 그가 나를 꼬신 거예요. 이미 많은 걸 성취했지만 표나게 불안해 보였어요.”

바버라(짐과 사귀기 전의 프레디의 여친): 프레디는 짐에게 고약한 행동을 많이 했어요. 런던에 데리고 갔다가 다시 보내고, 때로는 하루 만에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짐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짐은 자주 울었죠. 짐에게 ‘프레디에게 대항해봐. 안 된다고 말해 봐. 이용당하지 마.’라고 하니 그는 ‘알아요. 하지만 프레디가 좋은 걸요.’라고 했죠.

짐 허튼에게는 라이브 에이드가 처음으로 구경하는 록 콘서트였기 때문에 그날의 감동이 더욱 각별했다. 라이브 에이드 직전에 프레디의 파트너가 된, 보잘것 없는 미용사 짐 허튼은 프레디의 남은 날들을 같이 했다. 6년 후에 프레디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을 짐이 돕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라이브 에이드가 개최되는 날, 짐 허튼은 프레디의 리무진에서, 프레디의 다른 반쪽의 신분으로 정중하게 콘서트에 모셔졌다. 퀸의 라이브 공연은 말할 것도 없고, 짐이 처음으로 가본 콘서트였다.

짐은 프레디가 사망하고 나서 19년 후인 2010년 1월에 암으로 죽었다. 그는 록스타 연인의 공연을 지켜보았다.

“프레디는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어요. 나를 놀라게 했죠. 공연이 끝나자 그는 기뻐했어요.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드디어 끝났군요.’ 라고 말하며 보드카를 들이키고는 곧 조용해졌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레전드 나이트클럽에서 열리는 뒤풀이 파티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마치 오래된 커플처럼 가든 롯지로 돌아가서 텔레비전으로 아메리칸 레그를 시쳥했어요.”

짐은 프레디의 식구들 중 유일하게 메리와 마찰이 있었다. “메리는 프레디를 절대 놔주지 않았어요.” 짐과 피터 모두 같은 의견이었다. “메리는 프레디와의 관계가 끝났음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녀에게는 프레디를 조종하는 힘이 있어요. 그녀는 아주 강하고 프레디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죠. 어떤 면에서는 프레디의 엄마 같은 존재였어요.”

12. 가족, 동성애

프레디의 출생지 잔지바라는 이슬람 율법에 의해 게이가 공식적으로 불법화 되어 있어 프레디의 생일 기념 행사같은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이슬람 율법을 떠나서 프레디 가족은 조로아스터교를 믿고 있었다. 가족들의 신앙인 조로아스터교가 동성애를 억압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프레디는 오랜 시간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숨기게 된다. “남자와 자는 남자는 악마이다. 이 남자는 악마를 숭상하는, 악마의 애인이다.” 파시족에게 동성에는 죄악의 차원이 아니라 악마 숭배이다. 그는 가족의 종교적 규율을 파괴했기 때문에 고향에서 환영받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했다.

파시인이 살아가는 내내 노력해야 할 세 가지,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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