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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시 「기념 식수」읽기

박진성x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11.16 09:42:32
조회 240 추천 7 댓글 0



기념식수

 

 

형수가 죽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감자를 구워 소풍을 간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개구리들은 땅의 얇은

천정을 열고 작년의 땅 위를 지나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므로

교외선 유리창에 좋아라고 매달려 있다

나무들이 가지마다 가장 넓은 나뭇잎을 준비하러

분주하게 오르내린다

영혼은 온몸을 떠나 모래내 하늘을

출렁이고 출렁거리고 그 맑은 영혼의 갈피

갈피에서 삼월의 햇빛은 굴러 떨어진다

아이들과 감자를 구워 먹으며 나는 일부러

어린왕자의 이야기며 안델센의 추운 바다며

모래사막에 사는 들개의 한살이를 말해 주었지만

너희들이 이 산자락 그 뿌리까지 뒤져본다 하여도

이 오후의 보물찾기는

또한 저문 강물을 건너야 하는 귀가길은

무슨 음악으로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가

형수가 죽었다

아이들이 너무 크다고 마다 했지만

나는 너희 엄마를 닮은 은수원사시나무 한 그루를

너희들이 노래부르며

파놓은 푸른 구덩이에 묻는다

교외선의 끝 철길은 햇빛

철 철 흘러넘치는 구릉지대를 지나 노을로 이어지고

내 눈물 반대쪽으로

날개도 흔들지 않고 날아가는 것은

무한정 날아가고 있는 것은

 

  - 이문재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

 

  *

  어떤 슬픔은 활자를 통과하면서 눈부시게 빛난다활자의 빛은 슬픔 자체의 원형질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그 슬픔이 거느리고 있는 그늘을 격렬하게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슬픔을 위로한다이러한 방법은 가령나무가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어둠을 견뎌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

  이문재를 다시 읽는 오전입니다이 시는 1998년에 출간된 이문재의 첫 시집에 수록된 시입니다시를 써보겠다고 처음 마음을 먹었던 이십대 초반제겐 교과서와도 같은 시집이었습니다이 시를 읽으며시가 슬픔을 다루는 방식은 비명을 지르고 바깥으로 꺼내는 것이 아니라 활자 안으로 삼키는 것이구나어렴풋하게 느꼈던 것도 같습니다. “형수가 죽었다는 두 번의 진술과 아이들의 천진함 사이 화자의 슬픔이 가로놓여 있습니다이렇게도 할 수 없고 저렇게도 할 수 없는 것어쩌면 그 어쩔 수 없음이 슬픔의 본질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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