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쓰면 또 혼자 질질 짜고 그럴까봐 벌건 대낮에 쓰는 추억팔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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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일본 출장에서 우연찮게 보게된
'스타히메사가시타로'
남바의 1기 오디션 과정이 나오는 이 프로그램은 나에게는 좀 많이 충격이었다
타국의 아이들이지만 저 어린애들이 벌써 저런 아픔을 겪어야 하나 하는
안타까운 맘도 들었고 뭔가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생활을 보는 재미같은 것이
겹쳐서 몰입하게 되었는데 그게 이 불행(?)의 시작 이었지
우리나라 자주 오는 일본인 직원과 이얘기 저얘기 하는 도중에
내가 그 프로그램 얘기를 하니 그때부터 얼굴에 화색이 돌며
48에 대한 역사를 좌악 풀어 주면서 나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미/네/기/시 오타임) 그렇게 나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아이돌 오타쿠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그 직원의 추천으로 보게된 첫 빙고가
전 MC 였던 벳또 보이즈 돗키리 였다
지금도 자주 다시 꺼내 볼 정도로 너무 재밌게 봤고
스타히메를 본방 사수 하며 이전 빙고를 주중에 전부 몰아
보면서 48에 더욱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무챠부리 돗치볼 , 인망 하이엔로우 , 럭키랭킹걸 ,
가짜멤버 돗키리 , 솔직 장기 등등
그야말로 48의 레전드 장면들은 빙고에서 거의 다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13년 이후 부터는 본점 차세대 맴 위주로 개편 되면서
빙고에 나오는 것이 본점 푸쉬의 상징으로 여겨졌었다
보닌은 남바 오타였던지라 그 일본 오타랑 서로
남바 게닌이 재밌네 빙고가 더 낫네 하면서 투닥투닥하는게 일과 아닌 일과 였고
오시가 졸업한 16년도 이후에도 빙고만은 꼭 매주 챙겨보았었다
(어째서인지 하필 그때 벳또 보이즈 MC도 졸업하고 본점 오타들이
극혐했던 무/라모/토가 MC를 보게 되면서 화제성이 다시 살아나기는 했었다)
에이또는 무/라모/토가 나온 전후부터 뒷자리 고정으로 나오게 되었고
프레쉬함을 내세워 비중이 점점 늘어갔다.
(갤주는 14년도에 도쿄 투어에 나왔지만 사타 머리를 가격한 시/오링만 기억....
뭐 다알다시피 그 이후로 갤주는 ....... )
아리요시가 끝났을때도
에케비쇼와 올나잇니폰이 끝났을때도
빙고만은 남아있을 거라고
빙고가 끝나면 48도 끝나는 거라고 수많은 오타들이 생각하고 있던
비전성기 부터 함께 해온 빙고는 48의 상징 그 자체였다
갤주가 고정이된 프로그램이 끝나는 안타까움과 동시에
내 9년간의 오타쿠 생활의 그 수많은 추억이 얼마 안 남았다는
충격이 가시질 않는다
젠장
울 이쁜 갤주 칸다묘진 서는 건 보고 오타 생활 접을라 했더만
그 전에 그룹의 존망을 더욱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갤주 때문에 담배도 끊었는데 ㅈㄴ 다시 피고싶다 썅!
오늘 따라 갤주가 더 보고 싶네 ㅅㅂ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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