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왜 한국 사람은 죄다 고층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할까?
그림: 아마도 편의성에 가치를 두어서가 아닐까. 원하는 때 물이 아낌없이 나오길 바라는 것처럼.(웃음)
스콧: 편의성은 중요한 것이다.
그림: (키득키득 웃는다.)
스콧: 한국에서 아파트는 현대적 건물에 마을 개념의 환경을 재현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거대한 무리가 한 공간에 가까이 모여 산다는 점이 일종의 마을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데.(웃음) 여기 와서 아파트에 산 지 1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몇 아는데, 마을 분위기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콧: 왜? 사람들간에 의사소통이 없는가?
그림: 그렇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사람도 대부분이다.
스콧: 그렇다면 편의성이 공동체의 개념보다 더 중요한 모양이지.
그림: 그렇다.
(...)
스콧: 한국에서 '똑같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림: 음…….
스콧: 되려 좋은 의미일 수도 있다.
그림: 그래서 사람들이 아파트를 좋아하나 보다.(웃음)
스콧: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별로였나?
그림: 그렇지 않다. 내 아파트는 분당의 경계 지역에 있어서 밖에 나가면 바로 숲속을 거닐 수 있었다. 그것은 참 좋았다.
스콧: 그럼 그즈음에 결혼했나?
그림: 그렇다.
스콧: 일을 하는 것은 좋았나?
그림: 아니, 전혀. 독일에서 회사를 다닐 때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업무 약속을 할 때도 11시에 오겠다고 말하면 11시에 딱 맞춰 사람들이 왔다. 그러나 한국에서 아침 11시에 온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정오를 넘어서 온다.(웃음)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약속한 사람이 오면 그제야 부랴부랴 일하기 시작하고, 야근하다가 밤을 새기 일쑤다. 뿐인가. 한번 끝난 프로젝트를 계속 바꾸고 싶어해서, 같은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하게 된다. 다른 스케줄이 엉망이 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예를 들어 PD란 작자들은 일을 맡기면서 부제를 정해주는데, 거기에 맞춰 일을 해놓으면 나중에 가서, "미안. 내가 부제를 잘못 줬네요"라고 말하면서 죄다 바꿔놓으라고 한다. 기껏 바꿔놓고 다시 보여주면 이번엔 고객 쪽에서 "마음에 들지 않아요"라며 딱지를 놓는다. 그럼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몇 번이고 같은 일을 시키면서도 별도 수당은 줄 생각조차 않는다. 그런 건 정말 딱 질색이었다.
스콧: 당신이 여전히 지나치게 독일적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그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콧: 독일에서 질서는 정말 중요하다고 여겨지지 않는가? 시간 엄수나 공공 질서 같은 것 말이다.
그림: 그렇다. 하지만 한국의 작업 환경엔 창조성을 발휘할 틈이 그다지 크지 않다. 무엇보다 늘 시간에 쫓긴다. 독일 같으면 일주일은 잡을 일정을 여기에서는 이틀에 다 끝내버린다. 또 다른 문제점은 많은 사람이 나름대로 이상을 지니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기종의 것을 베낄 생각만 한다. 남의 것을 훔쳐다 10분의 1도 안 되는 경비로 똑같은 것을 만들어낸다. 난 그렇게 해서는 만족할 수는 없다.
스콧: 한국에서는 동일한 것이 좋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 아닐까?
그림: (웃음)그건 잘 모르겠다.
스콧: 동일의 반대말은 차이이다. 그 때문에 독창성이…….
그림: 아, 독창성은 한국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평가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계발할 시간이 없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시간을 좀더 들이려면 언제나 돈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스콧: 특히 예술이나 오락 산업에 종사하는 한국인치고 잠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다.
그림: 정말 그런 것 같다.
스콧: 종종 한국인이 독창성이 부족한 것은 두뇌를 쉬게 할 시간이 없어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때도 있다.
그림: 그것도 한 요인일 수 있겠다. (웃음)돈도 시간도 없으니…….
스콧: 밤마다 술을 마시느라 시간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림: (웃음)그럴지도.
(...)
스콧: 인터뷰의 처음에 내가 했던 질문은 당신이 성장하면서 한국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지녔는지 하는 것이었다. 현재 당신은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림: 상충적 요소로 가득 찬 나라라고 생각한다. 또 독일에 있을 때 생각하던 것과는 날씨가 많이 다르다는 것도 이야기해야겠다. 한국의 겨울은 너무 춥다.(웃음)
스콧: 한국의 날씨를 좋아하나?
그림: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여름이 더운 것은 좋다.(웃음) 교통량이 너무 많은 것은 싫다. 자연도 심하게 훼손되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재미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콧: 인생을 좀더 즐겨야 한다고?
그림: 그렇다. 지금은 너무 심하게 분주하다.
스콧: 사실 한국인들은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일을 열심히 하지만, 외출도 과할 만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들은 친구들과 매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일본인들은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남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더 많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프로젝트에 열중하며 혼자 시간을 보낸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림: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재미나 즐기는 인생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그들은…….
스콧: 그러니까 재미가 아니라 의무에 가까운 것?
그림: 그렇다. 회사원들은 싫어도 노래방에 가고, 술집을 전전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것은 단지…….
스콧: 의무?
그림: 그렇다. 아니면 좋지 못한 습성이거나.
스콧: 하지만 그것도 어쩌면 독일인다운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아웃사이더로서 당신이 한국에 대해 품는 생각 말이다. 한국인에게 그룹의 일원으로 있는 것은 중요할 수도 있다.
그림: 물론 중요하겠지. 하지만 그것이 한국인이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방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일하던 직장에서는 모든 동료가 모여 종종 술을 마시러 나갔지만, 그들 중 다수가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를 즐기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래야 하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다.
스콧: 하지만 모든 사람이 싫어한다면 무슨 이유로 당장 그만두지 않을까?
그림: 그들의 '연장자'들이 모여서 술 마시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딜 가도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내 눈에는 희한하게 보였다. 대학생을 봐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같은데도 학번이 높은 이에게는 '존댓말'을 쓴다.
스콧: 연장자 체계 때문이다.
그림: 그렇다. '아래' 사람들이 존댓말을 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스콧: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림: 이상하지 않은가? 심지어 젊은 청년들조차 이런 관습을 따른다. 내 학생들도 그렇다.
스콧: 그것은 어떤 면에서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림: 맞다.
스콧: 그러나 그것도 그들의 문화가 아닌가.
그림: 그렇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2002년에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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