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10월 5일,
원래대로라면 오늘로써 국민을 수호하는 중대한 책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가는 날이다. 즉, 내 전역일자다. 하지만, 난 상병 5호봉을 향해가던 4월 30일부로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고 육군본부의 명을 받아 현역복무부적합 전역을 했다. 사유는 우울증과 적응장애로 인한 군복무 부적응. 솔직히 전역한 뒤로 한 동안은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대한민국 남성으로써 해야 할 병역의 의무를 내가 군대를 못 버텨 국가로부터 쫓겨나서 정상적으로 마치지 못했으니까. 앞으로 더 큰 고비가 왔을 때 이겨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다행히 친절하신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과 다 공감해주고 들어주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과의 상담 덕에 군 시절 괴롭히던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거기에 새로 글 계정을 하며 알게 된 인연들에게 많은 응원과 관심을 받으며 현재는 다시 행복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제야 내 군 생활을 돌아볼 수 있게 돼서 내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내 군 생활이 실패한 이유는 한 줄로 이야기하겠다.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구겨 입을려고 했으니까. 나 스스로가 가진 멘탈, 신체 등 전반적인 모든 요소가 군대에서 요구하는 그것에 미치지 않았고, 내 성격은 군대랑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애초에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난 로스쿨 입시를 포기하고 일단 병역부터 해결하자는 막연한 생각으로 지원했다. 남자라면 다 하는 건데 군 생활이 얼마나 어렵겠어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물론, 당시 집안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았고 때 마침 코로나도 터진 상황이라 군대 가기 일주일 전까지도 가지말까 고민을 했었다. 그래도 이왕할 거 성격도 바꾸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사회생활의 밑거름을 만들자 하는 생각으로 3월 30일 육군훈련소에 입소했다. 내 앞날은 생각도 안한 선택이었다.
훈련소랑 후반기 동안에는 고립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 지 실험하는 기간이었다. 사회랑 격리된 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먹고 자니 정말 눈 뜨는 모든 시간이 지옥이었다. 거기다가 가뜩이나 어리바리한 성격과 유약한 몸까지 문제가 돼서 훈련 때마다 웃음거리가 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어 허구한 날 의무대에서 링거를 맞고, 동기들은 날 놀리기 십상이었다. 뜀걸음 뛸 때가 제일 고역이었다. 몸은 괜찮았지만, 정말 탈영이 내내 생각났다. 철장 너머로 아파트로 깔린 사회 풍경이 보이는 데 거기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그렇다고 이때를 같이 겪었던 사람들 탓은 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날 무사히 수료할 수 있도록 간부, 동기들 할 거 없이 정말 날 많이 챙겨줬고 실수하는 나에게 역정이 아닌 진심 어린 조언을 한 사람들이 많았으니.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사실 여기서부터 진짜다. 자대로 전입 온 나는 부대 전체의 관심을 받았다. 전입 신고도 하기 전에 대대장님을 주임원사님과 독대하고 아마 간부의 절반정도가 내게 찾아와 할 수 있다고 덕담을 해줬으니. 특히 첫 중대장님은 내가 약 먹는 걸 따로 챙겨주고 이야기를 계속 온화하게 들어 주실 정도로 관심을 가지셨다. 이때 중대장님은 뭐하실까. 연락처가 있는데 따로 연락이나 드려야겠다. 암튼, 간부님들도 이랬으니 선임과 동기는 거의 나에게 촉각을 내세웠다. 부사수, 사수 할 거 없이 처음엔 나를 정말 많이 챙겨줬다. 물론, 내가 온다는 사실에 다들 기겁하고 머리를 맨날 감싸맸을거다. ‘쟤는 대체 왜 오냐’하고. 그래서 뭔가 거리감도 느껴지기도 했고.
행정병으로 시작한 나는, 예상대로 실수투성이 고문관이었다. 허구한 날 실수하고 선임의 구박을 엄청 받고 그 영향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져서 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맨날 울고. 이 생활을 행정병을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왔다. 끝낸 것은 이 시기 내가 썼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간부들은 보자마자 바로 회의를 끝내고 업무 스트레스를 우려해 내 보직을 변경했다. 근무도 CCTV만 보는 것만 했다. 이 때 처음 집에 가고 싶냐는 말을 처음 들었다. 난 그래도 시행착오를 심하게 겪는 거라 생각하고 좀 더 노력해보기로 했다.
보직 변경이후 조금 잠잠해지는 듯 보였지만, 사실 보직변경을 한 시기부터 씨앗이 계속 커졌다. 그나마 글을 쓰면서 우울한 감정을 토해내며 정화하고, 부모님이랑 친구에게 신세 한탄하며 안정을 취했다. 하지만, 동기와 선임, 그리고 내 후임들까지 내가 보인 행적에 계속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소위 기수열외를 당했다. 어떤 선임은 날 후임이 아닌 짐승으로 본다는 말을 대놓고 했을 정도니까. 업무도 제대로 못하고 인간관계도 박살 나버려 혼자 고립된 나는 이때부터 군 생활 끝날때까지 나 자신과 싸웠다. 여기서 인생을 끝낼지, 아니면 꾸역꾸역 버텨나갈지. 인스타에도 여러번 암시를 해서 이때 신고가 안 들어온 게 신기한 정도다.
이대로 갔다간 진짜 스스로 끝낼 거 같아, 결국 마지막 발악을 했다. 장문의 편지와 함께 대대장님께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대대장님은 날 이해해주시고 혼쾌히 허락하셨다. 물론, 과정은 험난했다. 서류 준비서부터 해서 그린 캠프로 파견을 가 2주 동안 치료랑 관찰, 상담을 받고 돌아와서 사령부랑 육군본부 심사받는 거 까지 3달을 걸렸으니. 그리고 6월에 새로 온 중대장님은 내 소식을 처음 듣고 거의 역정을 토해냈다. 넌 적응하려는 노력을 했니. 남들 다 하겠다고 하는 거 넌 못하냐. 얘도 힘들었지만 얘는 노력을 했다. 의지조차도 없냐. 뭐 중대장님을 비롯한 모든 군인이 생각하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못했다. 난 다른 방면으로 노력했으니. 오늘 끝낼까 아니면 조금만 더 버틸까. 이 생각으로 사활을 걸고 버텼으니까. 어찌저찌 중대장님이 이해하시고 그렇게 그린캠프로 간 나는 그래도 치료하고 다시 이어나갈까하는 의지는 있었지만, 오히려 더 불안감만 키우고 갔다. 어차피 자대로 돌아가는대.
자대로 돌아온 나는, 근무만 세 시간하고 나머지는 내 자유인, 일과도 없는 군인의 몸이었다. 이 시기가 제일 지옥이었다. 할 수 있는 건 없지, 하는 건 없지, 가식과 무시로 둘러싸여있지. 심사는 오래 걸리지. 참 죽고 싶었다. 겨우 상담과 글쓰기로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재밌던 풋살마저도 하지 않았고 그저 단 걸로 달래며 웅크리고
울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4월 29일, 잠깐 운동하고 돌아오다가 행정실로 불려갔다. 중대장님이 종이 한 장을 주셨다. 전시근로역 판정 종이. 그렇다. 난 이제 집을 가는거다. 받고 중대장님께 설명을 들을 때, 사실 막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구나. 실패의 마침표를 찍는구나. 짐을 싸고 다음 날 일어나서 전역 신고를 마치고 그렇게 난 집으로 갔다. 다행히 날 보면서 고생했다. 잘 살아라.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한 동기의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도 들었지만.
이렇게 난 2020년 3월 30일 시작한 군 생활은 2021년 4월 30일부로, 실패로 끝났다. 다만, 난 이게 인생에서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난 수 많은 사회생활의 단계 중 맞지 않는 집단에 들어가 적응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건 꼭 누구의 잘못은 아니다. 군대라는 집단도 나라는 사람도 서로 문제가 겹치고 겹친 거다. 그래서 난 군 생활하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원망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도 내가 얼마나 답답해보였을까. 그렇다고 군 생활의 그늘에 갇히기 보다는 난 나만의 매력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사회생활을 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내가 현역복무부적합으로 나왔다고 하면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사실 뭐 그럴 수 있다. 군대에 있기엔 그 당시의 난 나약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말하고 싶다. 난 군 생활이 싫어 일부러 회피하려는 시도는 절대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우울증이라는 게 연기를 할 수 있는 건가. 우울증에 빠지면, 정말 내 자신도 어찌 감당 못한다. 치료를 한시바삐 하는 거 이외에는 의지로 극복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러면 이럴 수도 있겠지. ‘일과하고 힘든거 할때만 간부한테 울고 찡찡대다가 휴대폰만 받으면 헤헤거리면서.’, ‘사회에서 멀쩡히 사는 거 같은데 우울증이라고?’, 우울증이라고 해서 24시간 내내 울고 우울한채 아무것도 안한다는 것도 편견이다. 극단적으로 악화되지 않은 이상 우울증 환자도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웃을 수 있다. 단지, 티가 내지 않고 마음안에서 우울함이 갇혀있는 채로 활동을 하는 거뿐이다. 그러니, 나처럼 군생활을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연기하냐, 너만 힘드냐 섣불리 이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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