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25일

눈을 떠 보니 시끄럽습니다.

일어나  창가로 가 보니 밖에 비가 오고 있습니다.
히메지에 있어봤자 딱히 할 것도 없고 해서

오늘은 한 번 비를 맞으며 미친 듯이 달려보기로 합니다.

우선 1층으로 내려가 무료로 제공되는 아침식사를 먹고 올라와 지도를 봅니다.

오늘 목적지는 아카시대교로 결정.

체크아웃시간이 다 되어서야 밖으로 나갑니다.

자전거는 흠뻑 젖어있고 깃대랑 모자는 어디로 갔는지 없습니다.
참 아침부터 기분 안 좋네요.

일단 카메라를 지퍼팩에 넣고 자전거를 비가 안 오는 곳으로 옮기고
짐을 싸서 한 손에 우산을 들고 페달질을 합니다.
안장이 젖어있어 엉덩이도 금방 젖고 찝찝합니다.

기대했던 히메지성의 텐슈가쿠는 결국 못 가보고

나중에 일본 다시 올 기회가 생기면 그때 가보기로 하고 히메지역으로 갑니다.

일본 사람들은 한 손에 우산 들고 자전거 잘만 타던데

저는 짐 때문에 그런지 도저히 못하겠어 서 편의점으로 들어가
500엔짜리 우비를 사서 입고 다시 2번국도를 찾아서 아카시로 향합니다.

비가 갈수록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맞바람이라

얼굴은 따갑고 신발은 이미 흠뻑 젖어 무겁습니다.

2번 국도를 따라가다 다시 250번 국도로 빠져 달립니다.

점심때 쯤 배가 고파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을 사서 안에서
물을 붓고 끓여 먹는데 직원이 여기서 먹으면 안 된다고 나가라고 합니다.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지만 직원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해

결국 밖에 나와 편의점 간판 밑에 쭈그리고 앉아

비를 맞으며 컵라면을 후루룩 먹습니다.

빗방울이 라면용기에 뚝뚝 떨어지고 그걸 보면서 먹고 있자니

서러워서 눈물이 막 날 것 같습니다.

근데 그것보다 라면이 너무 맛있어서 국물까지 금방 후루룩 다 먹어 치우고 일어섭니다.

비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아카시 시내에 접어들어서 또 마구 쏟아집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말이죠.

얼굴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 맛이 짭짤합니다.

시내를 벗어나니 멀리 커다란 다리가 보이는데

흐리고 비가 와서 뿌옇고 높은 곳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아
그 모습이 마치 다른 세상 같아 보입니다.

바로 아카시대교입니다.

다리 밑으로 가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바람이 너무나도 심하게 불어서

저녁이나 내일 비가 그치면 다시 오기로 하고 일단은 유스호스텔부터 찾습니다.

너무 작고 평범한 건물의 유스호스텔이라 찾는데 한참이 걸립니다.

구라시키의 유스호스텔과 비교했을 때 질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일단 짐을 풀어놓고 젖은 옷을 빨고 샤워를 합니다.

방수커버를 씌웠음에도 페니어 안이 많이 젖어있습니다.
지퍼팩에 넣어놓지 않은 후쿠오카~오사카 지도는 반쯤 젖어

필요한 부분만 따로 빼 방바닥에 말려 놓습니다.
필요한 부분이라 해봤자 이곳부터 오사카 까지니 두 장밖에 되지 않네요.

사실 오늘 고베까지 가도 시간이 많이 남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이곳에 숙박지를 정한 이유는 아카시대교의 야경을 보고 싶어서입니다.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어둑어둑해질 때쯤 밖으로 나가 아카시대교로 갑니다.
비는 그쳤는데 여전히 바람은 심하게 부네요.

아카시대교의 야경

이렇게 밤에는 진주처럼 빛난다고 해서 펄 브릿지라고도 불린다네요.
정말 크고 긴 다리입니다.

낮에 구름으로 가려졌던 윗부분 까지도 다 보입니다.
내일은 저 꼭대기에 올라가 볼까 합니다.

다리 아래에서 이곳 저곳 둘러보다가 비 온 뒤라

쌀쌀해 서둘러 유스호스텔로 돌아옵니다.

비 오는 날 달리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다음부터 비 오는 날에는 그냥 쉬고 싶지만 그렇게 된다면 오늘 갈 곳을 내일로 미루게 되고
앞으로의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비가 와도 달릴 생각입니다.

곧 일본은 장마철이 시작되겠네요.

우리나라보다 조금 일찍 온다고 하던데 제발 제가 있는 동안에는

비가 좀 적게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은 비를 맞으며 달려 그런지 너무 피곤해 금방 곯아떨어집니다.

이동거리 : 47.63 km

총이동거리 : 774.1 km

사용금액 : 4344 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