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子(이자)] - 童話編(동화편) - 紅巾孃破(빨간망토 양파)
고양이들이 논리학 공부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八公山(팔공산)의 毘盧峰(비로봉) 정상에 李子(이자)란 신선이 살았으니, 찾아 오는 동물들에게 논리학을 강의하며 먹고 살았다. 하루는 이자가 普賢山(보현산)에 기거하는 鄭子(정자)에게 보낼 물건이 있어 수제자인 孃破(양파)를 불러 말하였다.
“긴히 정자에게 전해 줬으면 하는 물건이 있다. 이것은 望遠鏡(망원경)이란 것이니, 백 리 밖의 강아지도 능히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볼 수 있는 신묘한 물건이다. 정자가 보현산에서 天文(천문)을 살필 때 이것이 필요하다 하여 내 특별히 南華仙(남화선)에게 사정사정하여 얻은 귀한 것이다. 내가 보현산까지 갈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네게 이것을 부탁하려 한다.”
그러자 양파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거절하였다. 이자가 말했다.
“잘 다녀 오면 한 주 동안 金剛山(금강산)에서 끌어 온 최상급 모래를 네 화장실 모래로 쓰게 해 주고, 비데도 설치해 주겠다. 어떠냐?”
그러자 양파가 겨우 그르릉거리며 망원경을 등에 묶고 떠났다. 이자가 말하였다.
“요즘 정치가 혼란스러워 가는 길이 위험할까 걱정된다. 내 이 紅巾(홍건)을 내릴 터이니, 이것을 두르거라. 한 달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고, 발이 바람처럼 가벼울 것이다.”
양파가 붉은 두건을 둘렀으나, 양파에겐 커 꼭 망토처럼 되었다. 마침내 양파가 이자에게 하직하고 길을 내려 가니, 첫 날은 팔공산을 겨우 다 내려 갈 즈음에야 해질녘이 되었다. 양파가 야옹거렸다.
“이 근처에는 아무런 동물도 보이지 않구나. 이상하다. 사나운 늑대라도 있는가?”
마침 양파 앞에서 몸통이 호랑이 만한 늑대 몇 마리가 나타나 양파를 보고 컹컹거렸다.
“여기를 지나려면 봇짐을 내 놓아라. 아니면 너를 죽이고 봇짐을 가져 가겠다.”
양파가 앞발을 탁탁 치며 캬웅거렸다.
“어찌 하룻강아지들이 내 앞길을 막는 것이냐? 내가 왜관을 평정하였던 양파다. 다치고 싶지 않으면 썩 물러 가라.”
하지만 늑대들이 이를 무시하고 덤벼 오자 양파가 앞발로 한 대씩 내리찍어 모두 쓰러뜨리고 말았다. 양파가 늑대들을 앞발로 내리찍으며 캬웅거렸다.
“사료 때문에 이자와 비로봉 정상에서 겨룬 지 3년, 하루하루가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乾坤一擲(건곤일척)의 승부였다. 어찌 내 너희 같은 놈들에게 당하겠느냐? 이자가 가르치는 호랑이나 곰도 나 보다 사료를 늦게 먹거늘, 너희 같은 잡도적 놈들이 어찌 나를 이기겠느냐? 여기 있으면서 필시 무고한 여행자들을 많이 죽이고 다치게 하였을 것이다. 그 죗값을 치른다고 생각하여라. 모두가 因果應報(인과응보)이니라.”
그리하여 양파는 늑대들을 瀕死(빈사) 상태로 만들어 놓고 갈 길을 떠나고 말았다. 양파는 둘째 날에도 조그마한 산을 넘게 되었으니, 이번엔 가는 길에 쓰러져 헐떡대고 있는 늙은 개를 만났다. 양파가 아웅거렸다.
“어찌 이리 쓰러져 있는가?”
개가 멍멍거렸다.
“이 주변에 가뭄이 들어 곡식이 나질 않아 먹고 살 길이 없다. 이미 많은 동물들이 굶어 죽었다. 나도 그러길 기다릴 뿐이다.”
그러자 양파가 굴을 파, 개를 그곳에 넣어 두고 야옹거렸다.
“이 주변 동물들이 전부 배를 굶고 있던가? 새끼들은 어디로 갔는가?”
늙은 개가 멍멍거렸다.
“새끼들은 이미 다 컸으니, 기근이 들자 다들 살 길을 찾아 떠나 버렸다. 하지만 어찌 그네들 탓을 하겠는가.”
양파가 탄식하였다.
“아무리 천하의 道(도)가 모두에게 공평무사하여 조금의 치우침도 없다 하거늘, 어찌 이리 무심한가! 太上老君(태상노군)의 뜻을 거스른다 하나, 내 어려운 상황을 보고 지나칠 수 없도다.”
양파가 이자에게 배운 仙術(선술)을 가지고 사료를 불러내고, 비를 내리게 하여 강과 샘에 물이 다시 차 오르니, 주변 동물들이 모두 몰려 와 눈물을 흘리며 양파에게 고마워하였다. 양파가 아웅거렸다.
“도가 무심하다 한들, 동물들은 무심하지 않으며, 도가 사사롭지 않다 한들, 우리가 어찌 사사롭지 않겠는가? 여기 있는 모두가 굶고 굶다 드디어 기운을 차렸으니, 이 어찌 좋다 않겠는가? 자식들이 늙은 동물들을 버리고 떠나니, 이 어찌 슬프다 않겠는가? 내 마음이 움직여 그대들을 도운 것이 또한 어찌 天理(천리)가 아니겠는가? 그대들은 내 걱정하지 말고 잘 먹고 잘 살다 편안하게 눈을 감으라.”
마침내 양파가 길을 다시 떠났으니, 셋째 날이 되어서야 겨우 보현산 아래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디선가 원숭이 사냥꾼이 나타나 양파에게 활을 겨누며 뭐라 끼긱거리려 하자 양파가 꼬리를 세우며 캬웅거렸다.
“어찌 시덥잖은 놈들이 계속 앞을 막느냐? 나는 빨리 용무를 끝내고 비로봉으로 돌아가 금강산 모래와 비데를 써야 한다.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
그리고 양파가 사냥꾼에게 덤벼 사냥꾼을 때려 잡았으니, 그 주변에 수십 마리가 더 매복해 있었으나, 두려워 감히 덤비지 못하고 도주하고 말았다. 그 뒤로 그 일대에서는 양파를 ‘빨간 두건의 양파’라 하여 우는 원숭이에게 양파의 이름만 말해 줘도 울음을 뚝 그치게 되었다. 라 마침내 양파가 보현산 정상에 올라 정자를 만나 망원경을 주었다. 정자가 자초지정을 듣자 양파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대가 그대를 위협하는 자들을 응징하고, 어려움에 처한 동물들을 구한 것이 어찌 도에 반하는 것이겠는가? 어찌 자그마한 선행이 천하의 도를 어지럽힐 수 있겠는가? 그대는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을 한 것인데, 어찌 그것을 태상노군이 문제삼겠는가? 도가 무너지고 仁(인)이 나오고, 인이 무너지고 禮(예)가 나오고, 예가 무너지고 義(의)가 나왔다고 한들, 의로운 행동을 했다 하여 어찌 하늘의 벌을 받겠는가? 장차 수행하고 수행하여 의를 넘고, 예를 넘어, 인을 넘으면, 마침내 도를 보지 않겠느냐? 정진하고 정진할 뿐, 걱정하지 말거라. 그런데 이상하구나. 어찌 이자는 구름에 너를 태워 보내지 않고 걷게 하였더냐?”
정자가 구름을 불러 양파를 단숨에 팔공산으로 보내니, 양파가 이자에게 캬웅거리며 따졌다.
“그대는 어찌 구름에 나를 태워 보내지 않고 걷게 하였던가? 사흘이나 온갖 고생을 해야 하지 않았던가?”
마침내 이자와 양파가 크게 싸우니, 이자가 손을 삐끗하여 양파에게 두들겨 맞고 사과하고 말았다. 그 싸움으로 비로봉이 깎여 마치 부처의 모양과 같게 되었으니, 이것을 藥師如來(약사여래)라 하여 많은 동물들이 이를 보러 팔공산에 오르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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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 목도리 태비는 경북대 생활도서관에 있던 샤봉이라는 고양이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 by 李子(이자).
국한혼용체는 못읽는 분들이 많고, 순한글판을 가져왔더니 맛이 안산다는 댓글을 본 이자가 보고 '그렇다더라'라고 한 고로 그냥 섞어봤습니다. 가독성따위... - by 鄭子(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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