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https://gall.dcinside.com/m/singlebungle1472/779806
정모효란 개전이 결정되긴 했지만
계속되는 식량난으로 한족들은 폭동을 일으키는데다
황제가 자리를 비우면 명,몽골 등에서 처들어올 수 있다는 여론이 일어
결국 홍타이지는 친정을 포기했다
폐하 조사를 해보니.. 이번 한족들의 폭동은
모문룡이 관여한 것 같습니다..
그래? 허세가 아니라 진짜 어그로를 끌었다 이거지?
모문룡은 전면전은 상대가 안되니 후금에 첩자를 계속 보내
폭동을 부추겨 청나라를 혼란스럽게 하였고
이는 홍타이지를 제대로 자극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였다
조선은 폐주시절(광해군) 강홍립을 보내
우리를 친 적이 있었으니 이걸 명분으로 삼고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싸우는척만 하랬지만 현실은 1만중 8~9천이 전멸 당했다)
게다가 이괄의 난으로 조선의 방어라인은 극히 약해져있다
그야말로 명분도 상황도 잡아먹기 딱 좋군요
당시 조선은 최전방 서북을 지키던 이괄이 난을 일으켜
서북부쪽 최정예 3만 이상의 군사들이 싹 갈갈이 당한 상태였다
<홍타이지의 조카, 아민>
폐하 더는 두고볼 필요 없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좋다 아민 너에게 3만의 군사를 주겠다!
지금 당장 조선을 쳐라!
청군 사령관 아민은 홍타이지 동생의 아들로 반조선 인사였다
예전부터 줄곧 조선을 쳐야 한다 주장했으며
모문룡을 잡기 위해 5천의 군사로 처들어 온 적도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결정 되자 자진해서 조선 침략에 앞장섰다
오란다고 진짜 오는 놈이 어딨어!!!
청군은 가도를 쳐서 모문룡부터 노렸지만 실패했고
8일만에 중요 거점도시 안주에 도착 했다
안주는 많을 때는 수만의 군사가 있을 정도로
당시 평안도의 안보를 책임진 도시였으나
이괄의 난으로 텅 비어서 싹싹 긁어 모은 3000명 밖에 없었다
최전방 거점도시 병사 수가 꼴랑 3000명ㅋㅋㅋ
이 때 안주로 처들어온 청군은 약 1만 4천이였다
하지만 남이흥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맞섰다
그러나 숫적 열세를 극복 못하고 함락 됐다
이에 남이흥은 화약고에 불을 붙혀 목숨을 건 최후의 공격을 준비했다
그리고 부하들은 도망가라 했으나 부하들은 되려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공과 함께 죽겠습니다!!"
그렇게 남이흥와 부하들은 청군 수백명과 함께 동반 폭사를 해버렸고
아민은 그런 남이흥과 조선군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조선은 충의의 나라라더니..
내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노라..
적군 사령관조차 고개를 떨구고 조의를 표했다
이후 파죽지세로 밀어붙혔고 평양에 당도했다
하지만 평양에 있던 군사도 안주로 보낸거라
평양은 사실상 텅 비어있어 쉽게 함락 됐다
그리고 일부 선봉대는 개성까지 내려와 서울 코앞까지 왔다
시발...
하지만 우리의 인조대왕은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선조의 핏줄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평양함락+개성까지 들이닥쳤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강화도로 피신해 있었다
역시 반전 없이 우리군이 좆발려서 평양이 함락 됐구요
또 전주로 피신한 세자가 분조 활동으로 병력을 뽑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안도에서 의병들이 일어났다 하옵니다
소현세자는 과거 왜란때 광해군이 그랬듯이
삼남지방(충청,전라,경상)에서 병력을 모으고 있었고
또 평안도에서는 의병들이 일어나 맞섰다
<정봉수>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오랑캐 따위가 침범하느냐!!
<이립>
어이 오랑캐 조선엔 이런 속담이 있다
농기구로 무장한 오합지졸 주제에..
다 죽여!!
그렇게 평안도에서 의병vs청군간의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 중 철산에선 정봉수가 이끄는 의병이(용골산성 전투)
용천에서는 이립이 이끄는 의병이 유명했다
지금이다!! 밀어붙혀라!!
그러나 뜻밖에도 정봉수는 용골산성에서 연달아 청군을 격퇴해 수백명을 죽였고
이립도 2일동안 1000명의 청군과 싸워 200명을 갈아버려 승리했으며
청군이 두배의 병력(2000명)으로 다시 처들어오자 또 200명을 갈아버려 격퇴했다
심지어 정봉수는 호란이 3월에 끝났음에도 물자가 떨어질 때 까지 싸워
7월이 되어서야 청군 모두 만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청군은 의병들의 활약으로 후방 지원이 끊겨 고립 될 위험이 있었고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산해관 총병 조솔교 휘하 명군이 삼차하에
집결해 군사활동을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껴 종전을 제의했다
그렇게 3월, 조선과 청은 화친을 맺었는데 핵심 내용은 3개였다
명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도 된다는 것과
조선과 청은 이제 형제의 나라라는것
그리고 조선과 청은 무역을 시작한다는 것
는 페이크고 쌀이야 다 거기서 거기죠...
전쟁으로 청이 뜯은 삥은 상당했다
최소 3000석 이상 쌀을 이상 뜯어냈는데(한석에 160kg)
당시 청은 인구가 200만을 약간 넘기는 정도라
이정도로도 식량난에 처한 청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게다가 과일,약재,목단,채단,청포 등도 대거 삥 뜯겼다
조선이 글쎄 청과 손잡고 우리를 쳤습니다!!
하지만 청은 끝내 주요 목표중 하나인 모문룡 제거엔 실패했다
그리고 모문룡은 조선이 청과 같이 자신을 쳤다고
개같이 이간질을 시전하며 조선 조정의 공분을 샀다
저새끼는 진짜..
우리가 뼈 빠지게 싸울동안 아무것도 안한 놈이...
하아.. 모문룡은 짐승같은 새끼다(실제로 한 말)
-인조 6년 10월 27일-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도 모문룡은 가도에서
조선을 삥뜯으며 잘 살고 있었는데
그 때 모문룡 담당 일진이 상륙하며 상황이 반전 됐다

모문룡 네이놈!!!
응? 누가 감히 가도 천자 나를 찾는...

어?! 당신은?!
3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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