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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10 - 金氏家의 손자

운영자 2019.04.01 16:00:18
조회 87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10


金氏家의 손자



텔레비전 뉴스에 연일 일제시대를 살았던 무용가 최승희(崔承喜)를 비롯해 화가, 음악가, 그리고 시인들의 흑백사진이 파노라마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두 친일파라는 지적이었다. 흰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 오라에 묶이고 수갑을 찬 채 끌려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친일파로 지목된 일제시대 조선인 재벌회장 김연수(金秊洙)의 모습이었다. 고교 동창인 김병진(金炳進)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60년 전에 무죄판결을 받은 우리 할아버님을 위원회에서 친일파로 다시 결정하고 후손인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키겠다는 통보가 왔어. 이건 도대체 말이 안 돼.”

친구 김병진과는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같이 다녔다. 그를 생각하면 개나리의 노란빛이 가슴까지 환하게 물들이는 것 같았던 40년 전 대학 입학식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1973년 고려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그는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그가 옆에서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이 학교 우리 할아버님이 세웠어.”

그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 차 있었다. 교양학부 창밖으로 중세(中世)의 성(城) 같은 웅장한 석조건물 본관이 보이고, 그 앞 잔디밭에 한 남자의 동상(銅像)이 서 있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동상을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우리 할아버님은 조선 최고의 기업가였고, 저분은 우리 할아버님의 형님인데 교육가셨지.”

가난한 집안의 자손이었던 나는 일제시대 대학을 설립할 정도의 조선인 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없었다.

다음날 오후 1시. 사무실 근처의 자그마한 식당에서 친구인 김병진과 점심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한 잡지에서 그 친구의 집안이 조선의 명가(名家)라고 소개한 걸 본 기억이 떠올라 물었다. 

“집안이 한국의 명가라고 하는데 얘기해 봐.”

“내가 미국에 유학을 할 때 아는 사람이 <月刊朝鮮>에 우리 집안이 한국의 명가로 나왔더라고 알려주더라구. 한국의 2대 명가로 우리 고창 김씨가하고, 윤보선(尹潽善) 대통령 집안을 실었다는 거야. 우리 선대인 아버님 형제분들은 모두 착실한 모범생이셨지. 특히 정치학자였던 김상협 둘째 숙부님은 학생이던 일제시대부터 천재로 알려지셨던 분이고 말이야. 삼양사 그룹을 이끄신 김상홍(金相鴻), 김상하(金相廈) 작은아버님들도 사업을 하지만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은 일이 없으신 걸로 기억해. 할아버님은 일제시대 민족기업가로 조선 최초의 재벌이었고, 그 윗대는 조선의 갑부셨지. 우리 집안은 조선 말부터 관직을 이용해 지주가 되거나 친일로 돈을 번 그런 집안이 아니야. 우리 집안의 특징은 누구한테도 욕을 먹거나 말썽을 부리지 않는 분위기야.”

“명가의 다른 특징이 있다면 또 뭘까?”

내가 다시 물었다.

“우리 집안의 며느리들은 절대로 권력가나 재벌 집에서 데려오지는 않아. 소위 말하는 정략결혼을 시키지 않는 거지. 내가 총각 때 군사정권의 권력가인 장군 집에서 중매가 들어왔었어. 당시야 군사정권 시절인데 세도가 당당했었지. 그런데 우리 아버님은 반대하셨어. 권력가 집안과 어떤 인연을 맺는 게 싫다고 하는 거야. 정치인 집안에서도 중매가 들어왔었지. 아버님은 그것도 거절하셨어.”

“그런 명가 집안이 왜 갑자기 친일파라는 거지?”

“일제시대 할아버님께서 중추원 참의를 하고 국방헌금을 냈다는 거야. 그 사건을 맡아줬으면 좋겠어. 집안의 사촌형 김한(金翰) 회장이 대표로 자네에게 이 사건을 맡기면 좋겠다고 문중(門中)에 얘기했어.”

그의 사촌형 김한 회장 부부와도 친한 사이였다. 김한 회장은 김상협 고대총장의 외아들이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가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밥과 반찬이 모두 깨끗이 없어지고 반찬 접시 위에 굴비조각 몇 점이 남아 있는 게 보였다. 친구 김병진이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 남은 굴비를 가져가게 포장해 주실 수 있어요?”

그는 미안해하는 어조였다. 

“그러세요.”

종업원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굴비 몇 조각이 담긴 접시를 가지고 갔다. 김병진이 나를 보면서 멋쩍은 표정으로 변명했다.

“미안해. 얼마 안 되는 음식이지만 우리 집안은 아버님, 할아버님 대부터 이래 왔어. 어릴 적에는 궁상떠는 거 같아서 싫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니까 그게 가문의 풍습이고 교육이구나 하는 걸 느끼는 거야. 나는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면지(裏面紙)를 써왔어. 어릴 때 아버님께서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렇게 하시는 걸 보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온 거지. 아버님께서 그래 왔으니까. 남들은 이름난 부잣집에서 왜 저런 모습을 보이나 하고 이상하게 여기겠지만 원래 그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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