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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99 - 崔南善의 고민

운영자 2019.09.02 10:15:31
조회 94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99


崔南善의 고민 


1940년도 다 기울어 가는 어느 날이었다. 봉천의 교포 유지들이 김연수 사장을 찾아왔다. 교포들의 대표가 그를 찾아온 용건을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김연수 사장님께서는 교육사업에도 헌신하신 걸 우리 교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못 배운 게 한이라 우리 교민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중학교 과정인 동광학교를 만들어 자식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학교라고 하지만 설비도 열악하고 게다가 정식 인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할 자격도 얻지 못합니다. 우리 교포 대부분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도 쌀 한 됫박 선생님에게 가져다 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학교가 제대로 운영이 되겠습니까? 

그렇다고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면 이 만주벌판에서 무식하게 자라나서 밑바닥 일꾼이나 아편쟁이 아니면 도둑놈이나 만들 거 아닙니까? 일본 사람들은 벌써 여기에 사립(私立)학교들을 세워 아이들에게 서구식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또 일류대학교도 만들어 그 아이들이 들어가 배우게 하고 있습니다. 벌써 만주에서 대학을 나온 일본 아이들은 만주철도회사에 들어가 높은 임금을 받고 문화생활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교민의 아이들은 배우지 못해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그런 우리 조선인 2세들을 위해서 덕을 베풀어 주십사 부탁드리러 이렇게 온 겁니다.”

“지금 학교는 어떤 상태입니까?”

김연수 사장이 물었다.

“월급을 받지 못한 선생님들은 다 떠나가고 있습니다. 또 학생들도 정식으로 인가 받지 않은 학교니까 다니지 않으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일인데 제가 학교를 인수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연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을 했다. 김연수는 즉시 직원을 시켜 사립학교 인가신청서를 만주 교육당국에 제출하고, 만주국 정부의 교육담당 책임자를 직접 찾아갔다. 담당자는 일본인 사무관이었다.

“동광학교에 대해 정식으로 인가신청을 하셨더군요.”

일본인 사무관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정식으로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학력인증을 받게 하고 싶습니다.”

“사립학교를 인가받으시려면 재정문제가 먼저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 계획은 어떻습니까?”

“제가 만주에 구대농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기부해서 재단법인을 만들고 그 법인 산하에 동광학교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교직원들은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규정에 의하면 사범학교를 나온 정식 교사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일정 수 이상 있어야 하는데요.”

“교사들도 채용해서 법적인 요건을 맞추겠습니다.”

“그렇다면 농장을 기부한다는 기부증서 사본과 채용할 선생님들의 이력서들을 제출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 학무당국에서 심사한 후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김연수는 사무실로 돌아와서 재단설립에 착수했다. 그는 마땅한 재단이사장을 찾았다. 때마침 만주의 건국대학교 교수로 최남선(崔南善)이 와 있었다. 최남선은 남만방적의 책임자로 있는 최두선의 동생이었다. 그만한 적격자가 없었다. 최남선은 1907년 18세의 나이로 출판사인 신문관을 설립해 계몽도서를 출판했다. 그 다음해에는 종합잡지 <소년>을 창간하고 그 창간호에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게재한 우리 근대문화의 선구자였다. 그는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썼다. 최남선은 3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최남선은 학문적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총독부 역사편찬위원회 위원으로 나가 일본 학자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최남선은 잠시 만몽일보의 고문을 거쳐 건국대학 교수로 있었다. 김연수의 제안을 들은 최남선이 무거운 표정으로 있다가 대답했다. 

“나는 민족의 후손들을 키우는 학교의 교장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최남선은 자신이 일본의 관직인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일에 대해 자책하고 있었다.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육당(六堂) 선생.”

김연수 사장이 되물었다. 

“얼마 전 나와 친한 사학자 정인보(鄭寅普)가 우리 집 대문 앞에 술을 부어놓고, ‘이제 육당은 죽고야 말았다’면서 대성통곡을 하고 제사를 지내고 갔소, 내가 중추원 참의를 하고 만주에서 건국대학 교수를 하면서 일제의 녹을 먹기 때문이죠. 대중은 내게 독립선언서를 쓴 사람으로서 끝까지 지조를 지키라고 하지만 나는 그보다 학문을 계속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겁니다.”

최남선은 이사장 자리를 완강하게 사양했다. 김연수는 자신이 우선 이사장이 되고 급하게 교사진을 구성해 그 내용을 담은 관련 서류들을 만주의 학무당국에 제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인가가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다시 학무국을 찾아가 담당사무관을 만나 따졌다. 

“재정 문제나 교사(敎師) 문제를 다 해결했는데도 인가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김연수 사장이 경영하시는 남만방적이나 농장들은 관리책임자에서 말단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조선인들만 고용하시더군요.”

일본인 사무관이 꼬집었다.

“그건 경성방직의 역사가 조선민족의 자본을 모아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런 방침이 세워졌던 겁니다.”

“그렇다면 학교 인가는 안 되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우리 대일본제국은 동아(東亞)의 다섯 개 종족이 힘을 합하여 평화로운 한 나라가 되기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인만을 고집하시면 교육정책에 위배되는 행동이기 때문에 인가를 내드릴 수 없습니다. 일본의 교육정책을 보십시오. 일본인과 조선의 차별 없이 각급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김연수 사장은 교사나 학생이나 오직 조선인만을 끌어 모으는 방침이시니 어떻게 인가를 내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학교설립 인가가 나오겠습니까?”

“제국의 교육정책을 이행하기 위해서 최소한 일본인으로 교장을 임명하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연수가 돌아와 교포 유지들을 불러놓고 학무당국의 인가 거절 얘기를 전했다. 

“아이들은 곧 상급학교 시험을 봐야 하는데 인가가 나지 않으면 진학을 할 수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사색(死色)이 되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다면 일본인 교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네요. 그렇지만 조선인들만 있는 학교에 어떤 일본인이 오려고 하겠습니까? 또 온다고 해도 조선인들의 심정을 이해하면서 진정한 교육을 할 일본인이 있을까요?”

김연수 사장이 고민스런 표정으로 교민들에게 타협책을 털어놓았다. 그때 한 학부형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일본인 교장이라도 아주 훌륭한 분이 계시는데요.”

“어떤 분입니까?”

김연수가 되물었다.

“일본인으로서 부산의 동래중학교 교장을 한 분입니다. 그런데 동래중학교와 부산 제2상업학교 학생들 1000명이 주동이 되어 항일데모를 일으킨 사건이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그걸 신문에서 ‘노다이(乃台)사건’이라고 불렀죠. 그때 교장 ‘하라다’는 일본인인데도 조선인 학생들의 주장이 옳다며 변호하고 학생들의 입장을 두둔했죠. 제가 소문을 듣기로는 경찰서 사찰과 담당주임이 조선인인데 조선인이 오히려 조선인을 탄압하고, 일본인 하라다 교장은 조선 학생들을 위해주고 그랬답니다. 결국 그 하라다 교장이 사표를 쓰고 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아주 적격인 인물이군요, 그렇지만 부산에서 이역만리 있는 이 만주 땅의 작은 학교에 오시려고 할까요? 하여튼 알겠습니다. 제가 사람을 보내 그분을 교섭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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