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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과 마약범

운영자 2022.07.04 10:24:14
조회 130 추천 1 댓글 0

비릿하고 쿰쿰한 냄새가 나는 구치소의 접견실은 불량품같은 인간들이 모여있는 재래시장 같을 때가 있다. 그 안을 흐르는 공기도 그들을 지배하는 윤리도 다르다. 아는 사람이 마약 판매 두목을 접견해 달라고 해서 나는 유리박스 같은 접견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더께 앉은 유리벽을 통해 뒷방에 있는 죄수복을 입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뉴스 시간 더러 화면을 통해서 본 적이 있는 국회의원이었다. 재벌 회장인 아버지의 돈으로 전국구 국회의원이 됐다는 사람이었다. 살이 터져나올 듯 불룩한 볼에 옆으로 가늘게 찢어진 눈이 낯이 익었다. 그 국회의원을 보니까 얼마 전 일간지에 대문짝만하게 난 광고가 떠올랐다. 검찰에서 그를 마약혐의로 조사하는데 대한 저항이었다. 그는 주요 일간지의 오단통 광고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자신은 마약 근처에 간 적도 없는데 검찰이 범죄인을 만들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담당 검사와 서기의 이름까지 언급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내막을 모르는 나는 그가 정말 억울한 것 같기도 했다. 그가 앞에 앉은 자기 변호사와 얘기하는 일부가 천정을 통해 내게 흘러들어왔다.

“나를 고발한 비서 놈이 그들과 관계가 있다니까요. 이건 모종의 흑막이 있는 거예요.”

그는 자신을 공작정치의 피해자로 말하고 있었다.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결백하지 않고 그렇게 전 일간지의 지면에 그런 광고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새 내 앞에 수염이 텁수룩한 근육질의 남자가 나와 앉아 있었다. 각진 턱 위에 단추 같이 붙은 작은 눈에서 강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목급의 마약 판매상이었다. 그가 소매안에서 돌돌 말은 공소장을 꺼내 보여주면서 물었다.

“징역 몇 년이나 나올 것 같습니까?”

대부분은 그렇게 점을 치듯 물었다.

“모르겠는데요”

내가 대답했다.

“그래요? 그러면 변호사 계약서에 서명하는 건 보류하겠습니다. 변호사를 사지 않겠습니다.”

“나도 나를 팔겠다고 한 적이 없어요. 아는 분이 사정이 딱한 사람이니 가보라고 해서 왔는데 아닌 것 같군요.”

그가 순간 욱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내뱉었다.

“뭘 생각하시는 지 알 것 같은데 우리 같은 범죄인들은 사는 사회가 하는 생각이 다릅니다. 죄는 죄고 의리는 의리입니다. 의리가 위죠. 의리를 위해서는 강도를 할 수도 있어요. 그게 우리 사회죠. 제가 밑에 동생들을 여러명 거느리고 있습니다. 정말 잘해 줬는데 어떤 아이가 검찰에 저를 밀고 한 것 같아요. 마약수사관이 나한테 그 아이 이름을 슬쩍 흘려주면서 가만히 있을거냐고 충동질 하더라구요. 우리세계의 문제는 우리세계에서 풀어야지 검찰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죠. 나중에 내가 혼을 내더라도 국가 신세는 지지 않습니다. 저도 전과가 여러개다 보니까 이런 경우 형량이 얼마나 나올까 이제는 짐작합니다. 또 소변검사에서 반응이 나왔으니 사실을 부인할 수도 없구요. 특별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면 변호사도 필요 없죠.”

마약 두목은 차라리 딱 부러지는 인간이었다. 다른 세계에 살고 그 쪽의 룰에 따라 사는 사람이었다. 그 얼마 후 나는 우연히 한 여배우를 만났다. 영화계에서 잘 나가던 그녀는 재벌 이세들의 마약 파티에 갔던 게 보도되어 스타의 자리로 가지 못했다. 그녀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 국회의원이 신문에 낸 글을 보니까 기가 막히더라구요. 그 의원이 호텔에서 나 뿐 아니라 몇 사람이 더 있는데서 약을 했어요. 그런데 신문에 그 많은 광고료를 쓰면서 자기는 결백하다고 하는 걸 보니까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아요. 내가 가서 같이 했다고 확 불어버릴까 보다. 차라리 가만히 있지 신문에까지 거짓말을 해?”

그 여배우의 말에 신빙성이 있는 것 같았다. 국회의원이 마약상보다도 도덕이나 윤리의식이 약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표로 대표를 만드는 제도였다. 그런데 돈만 많으면 국회의원 벼슬자리를 사는 사회였다. 돈만 주면 신문은 그 큰 지면을 통째로 내어준다. 진실은 상관이 없다. 돈을 주면 변호사를 샀다. 변호사는 어떤 거짓말도 해 주었다. 그 후 세월이 이십년이 넘게 흘렀다. 사람들은 운전하고 가다가도 불법이 발견되면 스마트 앱을 통해 바로 신고해서 처벌을 받게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는 거짓말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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