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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132 - 金東仁의 ‘속 亡國人記’

운영자 2019.11.18 16:22:49
조회 76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132


金東仁의 ‘속 亡國人記’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까지의 우리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을까. 작가 김동인(金東仁)은 그 무렵 돌아온 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와 숙식을 같이하면서 노(老) 독립투사를 세세히 관찰했던 적이 있다. 김동인이 쓴 실명소설 ‘속 망국인기(亡國人記)’라는 글 속에 당시의 또 다른 모습과 상황이 독백체로 이렇게 적혀 있다. 



◆◇◆



일제 40년과 오늘의 해방된 한국의 현실을 글로 써 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소. 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 씨를 생각했소. 김 주석의 70년 생애는 조선독립의 역사였소. 사심(私心)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오직 조선 독립의 순일한 마음으로 ‘임시정부’라는 보따리를 등에 지고 상해로 한구로 중경으로 유랑한 40년의 떠돌이 생활 거기는 혹은 실수도 있었겠고 착오도 있었겠으며 그 실수가 혹은 민족이나 독립운동에 해로운 것도 있었는지 모르나 곁눈질하지 않고 오직 신념대로 행해 나와서 오늘 일본에서의 해방까지 본 것이오. 

김 주석의 일생은 파란만장하여 그 자체가 ‘조선독립사’가 될 것이오. 김 주석과 그 뜻이 통했소. 글의 필요상 김구 주석과 누차 만나 상의했고 공주며 마곡사 등지를 함께 여행도 했소. 글 쓰는 이들이 많지만 이런 글은 꼭 내가 써야 한다고 생각했소.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이래 36년 전(全) 기간을 몸소 보고 경험한 사람은 몇이 못 되오. 지금으로서는 오래된 일이 아니니 남에게 물어서라도 알아볼 수는 있지만 몸소 본 것과 귀로 들은 것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것이오. 그것도 그렇지만 이 大 파노라마를 적절하고 정확하게 붓으로 재현시킬 만한 사람이 또한 언뜻 생각 안 나오. 

얼마나 인재가 나지 않는 땅인지 문학의 씨가 뿌려진 지 30년 그새 배출한 문사(文士)가 무려 수백 명이 되나 아직 나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는 자부심이 있소. 김구 주석의 전기를 쓰라면 쓸 사람은 있을 것이오. 또 독립 운동사를 쓰라면 그걸 쓸 사람은 있을 것이오. 일제시대 40년간 조선사회의 변천을 그리라면 그릴 사람도 있을 것이오. 그러나 김구라는 한 노인의 일대기에 일제 40년 조선의 상황과 그 이면에 있는 민족운동사를 함께 엮어 넣으라고 하면 언뜻 나설 사람이 없을 것이오. 나인들 그런 걸 쓸 자신까지 있으리오마는 그래도 이렁저렁 흉내쯤은 낼 것 같다는 생각이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大作)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50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항상 몸이 약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도 있소.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겨야 할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사실을 몸소 겪은 작가로서 그 사실을 쓰지 못한다면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오. 봄에 들어서면서 불길한 소식이 들리기 시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었소. 군정청에서 일단 명령이 내리기만 하면 틈새는 절대로 없소.

“군에서 한다는데 무슨 잔말이냐.”

“조선 해방을 위해서 많은 피를 흘린 은인이로다.”

그들은 오로지 조선해방을 위해 전쟁을 한 것처럼 행동했소. 경찰에 억류된 사람도 있었소. 내 민족을 보호해 줄 정부를 가지지 못한 가련한 망국인. 이 넓은 우주에서 유대민족과 함께 정부 없는 인생이 된 우리는 다만 실력자가 하라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소. 간신히 일본의 적산(敵産)가옥을 불하받아 글 쓸 방을 마련했소. 안심하고 있었소. 아메리카 문화에 희망을 두었기 때문이오. 지난 30년 글을 써 문화를 발전시킨 공을 인정받아 얻은 집이니 문화를 아는 미국 민족으로서는 그 작은 집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 주리라는 그런 희망이었소. 

그러다가도 미군 지프차가 내 집 근처에 매일 수십 번 정거할 때면 깜짝깜짝 놀라곤 했소. 그러던 어느 날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우리집 대문간에도 커다란 나무간판이 걸렸소. 참으로 기분 나쁜 나무쪽이오. 현재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집에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이런 나무쪽을 갖다 걸고 너희 집을 내놓으라고는 통고를 대신 하는 것이니 말이오. 

집을 알선해 준 공직자 오 씨를 찾아갔소. 나의 이야기와 자정(姿情)과 호소를 다 들은 오 씨는 천장을 보면서 긴 한숨을 지으며 말했소.

“일껏 김 선생의 편의를 보아드렸지만 군에서 쓴다면 할 수 없지요.”

그는 저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리지 말고 어서 이사갈 집이나 물색하라는 것이었소.

1945년 8월15일에 느꼈던 감격과 감사는 모두 헛것이었소. 다만 나라를 잃은 사람이라는 커다란 그림자가 우리를 지배할 뿐이오. 민중의 하소연은 위에까지 가 보지도 못하는 형편이오. 일제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언어가 통해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었으나 지금은 다만 저들의 눈에는 우리는 미개인일 따름이고, 우리의 눈에 저들은 다만 군인일 따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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