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크리스챤 선비

운영자 2020.10.12 10:22:11
조회 115 추천 1 댓글 0
크리스챤 선비 

 

정치학을 전공했던 김상협 교수의 일생을 살펴본 적이 있다. 그는 조선말부터 그 富가 백 년을 내려오는 갑부집 아들이었다. 머리도 뛰어났다. 치열한 입시경쟁이 있던 시대 일본인들도 들어가지 못한 명문고와 동경대학교를 나왔다. 일본의 재벌이 그를 사위로 삼으려고도 했었다. 이 세상에서의 행복한 조건을 그렇게 갖춘 사람을 보지 못했다. 동경제국대학 졸업 후 그의 행적은 특이하다. 다른 조선인 유학생들은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고 조선으로 돌아가 군수나 총독부의 고위공무원을 희망할 때였다. 그는 일본의 눈 덮인 산속의 방직공장에 들어가 노동자가 됐다. 그리고 만주로 가서 ‘남만 방적’이라는 공장의 회계를 담당하는 계장 노릇을 했다. 해방 무렵 그는 거지 같은 초라한 모습의 중공군에게서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행색은 초라해도 어떤 약탈도 겁탈도 하지 않았다. 조선으로 돌아오는 그의 일행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는 모습에 감동을 했던 것이다. 해방 후 그는 정치학 교수가 되었다. 강단에서 모택동 사상을 가르쳤다. 재벌의 아들인 그를 속칭 빨갱이로 모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벼슬을 싫어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를 문교부 장관으로 쓰려고 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그를 국무총리로 임명했다. 장관이나 총리나 그는 마지못해 끌려가면서 처음부터 사직할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좀 더 하려고 애쓰는 세상에서 그는 진심으로 빨리 그곳에서 풀려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개결한 선비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런 분들이 이 사회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믿음이 깊었던 백년전 일본의 한 노인은 내게 ‘복음적 유자’가 되라고 책의 페이지 속에서 넌지시 권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동양에 유자(儒者)라는 인사들이 있었소. 도(道)를 생활신조로 삼았던 선비들이요. 그들에겐 서재 이외엔 그가 신봉하는 것을 안치할 장소라고는 없었소. 그들은 유교로써 입신했소. 그들의 경전은 사서오경이었지. 그들은 그것으로 수신하고 치국하려고 했소. 그리고 그들은 또한 책의 사람이었소. 사원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고 제단을 장식하려고 하지 않았소. 다만 경서에만 의지하고 그것으로 백성을 구하고자 했을 뿐이오. 그리고 그들은 나름대로 사업에 성공을 거둔 것이오. 그런 유자(儒者)들은 동양인의 스승이오. 예수를 믿는 당신도 한번 그런 복음적 유자가 되어보지 않겠소?’

그의 독특한 제의였다. 그가 책 속에서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해서 서양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전도자가 되었다고 해서 굳이 서양의 선교사를 흉내 낼 필요도 없고 말이요. 우리는 유학을 하는 선비들이 경서에 의지한 것처럼 성경에 의지해야 하오. 선비들이 사원에 의지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굳이 교회에 의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선비들은 그들의 서재에 파묻혀 천하를 교도하였소.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라고 어째서 성스러운 밀실에 들어앉아 성경과 기도로써 국민들을 인도할 수 없겠느냐는 말이오. 우리도 성령을 받은 선비로서 궁핍을 참고 견디면서도 부자집에 드나들지 않고 권력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선비로서의 품성을 유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할 게 아니겠소?’

그 노인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일아침 일어나 성경을 읽는다. 나의 작은 머리 용량으로는 평생을 읽어도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내 마음에 스며들어온 부분들 만을 원고지에 베껴 써서 공책을 만들었다. 그것을 ‘내가 복음’이라고 마음속으로 명칭을 부여했다. 그 공책을 들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읽고 또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두뇌와 마음과 영혼이 그것들로 꽉 차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공짜로 계시를 주는 것 같지는 않다. 기억 속에 많은 말들을 저장해 두어야 하나님이 계시를 할 때 제비뽑기 같이 그 말 중의 하나를 뽑으실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뽑힌 말씀의 제비가 화두가 되면 다음은 기억의 서랍 속에서 내가 체험했던 나의 고통과 나의 죄를 찾는다. ‘마음의 참모습 그대로’를 전하려고 애쓴다. 부끄러운 나의 체험담이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소개하는데 기여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나는 단순히 겪은 걸 알려주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건 분수에 맞는 착실한 일을 찾는다는 건 귀하다는 생각이다.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연인과 헤어지고 뒤끝 작렬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2 - -
3130 내가 있을 자리 운영자 23.10.09 83 1
3129 영원한 가치를 가진 화폐 [50] 운영자 23.10.04 6552 19
3128 지구별 나그네 운영자 23.10.04 115 3
3127 벗들과의 정담(情談) 운영자 23.10.04 105 2
3126 누워서 빈둥거리기 [1] 운영자 23.10.04 127 1
3125 그래 그럴 수 있어 운영자 23.10.04 80 1
3124 하나님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죠 운영자 23.10.04 108 1
3123 대통령들의 좋은 꿈 [1] 운영자 23.10.04 140 2
3122 노동은 행복인가? 운영자 23.10.04 106 1
3121 억울함에 대하여 [17] 운영자 23.09.25 3914 25
3120 한 끗 차이 운영자 23.09.25 141 4
3119 혼자 노는 능력 [1] 운영자 23.09.25 148 4
3118 청춘은 인생소설의 후반부를 모른다 운영자 23.09.25 148 3
3117 가난의 옹졸함 운영자 23.09.25 126 2
3116 노인들의 세 가지 공통된 후회 운영자 23.09.25 231 3
3115 그의 할아버지는 노비였다. 운영자 23.09.25 111 2
3114 천사를 만났다 운영자 23.09.19 105 3
3113 백합조개를 줏는 노인 운영자 23.09.19 81 2
3112 돈 잘 쓰는 법 운영자 23.09.19 111 2
3111 논다는 걸 잊어버린 사람들 운영자 23.09.19 87 2
3110 긴급할 때 내 전화를 받아줄 사람은? 운영자 23.09.19 128 4
3109 사백년전 선비가 보내온 메시지 운영자 23.09.19 84 2
3108 인생은 즐거워야 운영자 23.09.19 103 2
3107 삶을 사랑하는 노인들 운영자 23.09.19 108 2
3106 중간 정도의 삶 운영자 23.09.11 122 2
3105 어리석은 판사 고마운 판사 운영자 23.09.11 109 1
3104 인생무대의 배역 [1] 운영자 23.09.11 111 2
3103 6급 공무원의 댓글 운영자 23.09.11 125 5
3102 맑은 사람, 흐린 사람 운영자 23.09.11 97 2
3101 함경도 보따리 장사꾼 운영자 23.09.11 75 2
3100 노년의 수행처 운영자 23.09.11 69 1
3099 명작 노년 만들기 운영자 23.09.04 80 2
3098 죽음 대합실의 속살 이야기 운영자 23.09.04 96 2
3097 어른들의 병정놀이 운영자 23.09.04 88 3
3096 나는 위선자다 운영자 23.09.04 80 2
3095 아름다운 인생 운영자 23.09.04 82 3
3094 노년의 마음 리모델링 운영자 23.09.04 72 2
3093 걷는 행복 운영자 23.08.28 99 2
3092 행복한 청소부 운영자 23.08.28 78 2
3091 진국 운영자 23.08.28 90 3
3090 안개와 함께 춤을 운영자 23.08.28 61 2
3089 한 승려의 떠나간 자리 운영자 23.08.28 89 2
3088 ‘이게 나다’ 운영자 23.08.28 75 2
3087 아내가 미래의 신문기사를 봤다 운영자 23.08.22 125 2
3086 젊은 시절의 군사법정 운영자 23.08.22 107 2
3085 나는 항상 잘 삐진다 운영자 23.08.22 94 1
3084 잡담 운영자 23.08.22 101 1
3083 부자 팔자는 따로 있다 운영자 23.08.22 133 3
3082 재벌 회장은 행복할까 운영자 23.08.22 129 3
3081 우리는 모두 인생 감옥에 있다. 운영자 23.08.22 135 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