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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문열과 추미애장관

운영자 2020.10.12 10:23:46
조회 208 추천 7 댓글 0
소설가 이문열과 추미애장관

 

고교 일 년 선배가 내게 전화를 해서 물었다. 

“선배 추석 연휴에 뭐해요?”

후배는 오랫동안 판사 생활을 하고 법대 교수와 학장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방에 틀어박혀 있지 뭐.”

“그러면 여주에 있는 소설가 이문열 선생한테 놀러 갑시다. 내가 전화 걸어봤더니 그 양반도 서재에서 적적하게 지낸다고 언제든지 오라고 합디다.”

지혜가 있는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건 값지고 즐거운 일이다. 나와 후배는 육십대 말이고 이문열 선생은 칠십대 전반이다. 나는 여주를 가는 경강선 지하철을 타고 신둔도예촌마을역에서 내려 후배를 만나 택시를 타고 장암리 마을에 있는 부악 문원을 찾아갔다. 소설가 지망생들이 묵으면서 글을 쓰는 문원이 사람하나 없이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내부는 노 끝에 묶인 책더미들만 산 같이 쌓여 있었다.

“왜 이렇게 쓸쓸해? 이문열 선생 문하생들이 없나?”

내가 후배에게 말했다. 

“정부지원금으로 문원을 유지했는데 좌파정권이 들어서고는 돈을 끊어버렸다고 하더라구. 이문열 선생은 우파의 아이콘으로 되어 있잖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좌파 친구들이 이문열씨 책을 관에 가득 넣고 와서 책장례식을 하고 태워버린 자리예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 장암리 마을을 시위하면서 돌았지.”

사람들은 자신의 척도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면서 그 사람의 처지를 배려하지 않고 괴로움과 슬픔을 안겨준다. 뛰어나고 유명해지면 거센 바람에 더 흔들리게 되어 있는 게 세상인 것 같다. 오래된 소나무와 뽕나무 사이의 약간 높은 곳에 초당 같은 느낌의 오래된 기와지붕의 귀퉁이가 보였다. 이문열 선생의 서재였다. 몇 번 온 적이 있었다. 입구의 나무 바닥이 검게 변해있고 지붕을 받치는 쇠파이프 페인트칠도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약간은 어둠침침한 그 공간의 사방 벽을 누렇게 바랜 책들이 지적 난민같이 쌓여 있는 모습은 항상 똑같았다. 이문열 선생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나이를 먹었어도 소년같이 담백한 얼굴은 진심을 담고 있다. 그가 서재 구석의 가스 테이블 옆에 있는 포트에 물을 끓이고 다기에 차를 우렸다. 그 서재는 여러 사람들이 세상사를 물으려고 찾아오는 공간이기도 했다. 지난해인가 총리를 하고 대통령 직무대행을 한 황교안씨가 그 서재를 찾아간 사실을 신문기사를 통해 봤었다. 우리같이 현역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노인세대는 그런 골치 아픈 화제들은 꺼낼 필요가 없다. 그냥 즐겁고 낄낄거릴 수 있는 얘기들을 하려고 한다. 그런 속에서 보석 같은 지혜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화제는 역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요즈음은 좌파정권의 선봉장을 맡고 있는 추미애 법무 장관과 일간지 조중동을 배경으로 우파세력의 싸움이 치열하다. 개천절에 추미애 장관을 물러가게 해야 한다는 대규모 시위가 예정되어 있었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를 이유로 시위를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우파의 선봉 중에 이문열 선생이 들어 있는 셈이다. 차를 마시면서 사적으로 내뱉는 우리들의 대화는 그 마음 자체다. 인터뷰도 아니고 정제해서 하는 말도 아니다. 그냥 내가 보고 나의 잣대로 느낀 것을 무심히 써내려 가는 것이다. 이문열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이 정권이 삼 년 동안 많이 앞으로 나갔어요. 나는 요즈음 무기력을 느낍니다. 내가 글을 써서 외친다고 해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드는 거죠. 광화문에 가서 일인시위를 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그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의문이예요. 저는 제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쓸 때도 사실은 침묵하는 다수가 제일 미웠어요. 지금의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소설가를 넘어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 있었다. 그가 계속했다.

“예전에 조선일보에 글을 썼었는데 추미애가 ‘이문열같이 가당치 않은 놈이 X 같은 조선일보에 글을 써서’라고 욕한 걸 기사에서 봤어요. 정말 화가 나더라구요. 그 다음엔가 한번 엘리베이터에서 추미애와 단둘이 마주친 일이 있어요. 내가 쳐다 봤더니 눈길을 피하고 가더라구요.”

그의 마음에는 응어리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추미애의 취중진담이 정권의 내면에 흐르는 정서인지도 모른다. 색안경을 끼고 사람들을 적과 동지로만 구별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본때를 한번 보여 너를 바로 잡아보겠다고 정죄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교만이다. 한가한 노년의 하루 나는 이문열 선생 동네의 밥집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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