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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서 초등학교에 보내요

운영자 2020.11.16 09: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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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서 초등학교에 보내요



며칠째 그분이 남긴 글 한 줄이 마음속에 남아있다. 매년 자기가 졸업한 돈암초등학교에 백만원 가량의 책을 사서 보낸다는 것이다. 그 행위가 나의 영혼에 잔잔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 며칠 전 내가 나온 대학의 총장님 아들을 만났다. 삼성그룹이 재계 일위를 차지하기 전 그 총장님은 대한민국 최고 재벌인 아버지의 후계자였다. 그러나 부자가 되는 길을 사양하고 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부잣집 아들이 평생 서슬이 시퍼런 반공주의 국가에서 ‘모택동 사상’을 가르쳤다. 같이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총장의 아들에게 물어 보았다.

“아버지가 남이 모르게 뒤에서 선행을 하신 일은 뭐야?”

“아버지는 한동안 사람들을 시켜서 여러 책방을 하셨어. 사기를 당하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렇게 조용히 기여 하는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조선말 프랑스 배를 타고 조선에 왔다가 죽은 한 외국인 선교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성경을 백 권 가량을 트렁크에 넣어 프랑스 배를 타고 대동강까지 왔다. 외국인에 대해 조선은 나라의 문을 굳게 닫고 저항할 때였다. 조선의 관헌은 프랑스 배의 상륙을 거부하고 그 배를 불태워버렸다. 배가 불타는 순간 그 선교사는 가지고 온 성경들을 강가 쪽으로 던지고 있었다. 지나가던 나무꾼이 그 성경을 들고 갔다. 그리고 서북지방 쪽부터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조선에 영혼의 떡을 선사한 것이다. 미국의 흑선이 일본에 들어 왔다. 힘이 약했던 막부는 미국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미국은 문을 연 일본에 문명사회의 책들을 선물했다. 기차와 전신에 관한 책과 의술과 과학에 관한 책이었던 것 같다. 그 후 일본 전국에 철도망이 깔리고 전신시설이 정비됐다. 그리고 의학과 과학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백년전 일본의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는 그 선물 속에 성경이 있는데 그걸 거부했던 일본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영혼의 혁명을 일으킬 성경이었다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뭘까 생각해 본다. 내가 이따끔씩 들리는 노숙자시설이 있다. 그곳에 가면 나는 배불리 먹고 선물까지 받아 나온다. 몇 달 전이었다.

그 시설의 계단에는 여러 곳에서 보내온 쌀과 라면이 쌓여있었다. 나를 맞이하는 그곳 시설의 관리자는 빵이 가득 담긴 접시를 내 앞에 내놓았다. 서울 시내의 제과점에서 저녁에 남은 빵을 보내준다는 것이다. 그 관리자가 내가 떠날 무렵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님 누룽지를 좀 가져가지 않으실래요?”

“누룽지라뇨?”

내가 되물었다.

“쌀도 많이 들어오고 밥을 하면 남을 때가 많아요. 밥을 버릴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누룽지를 만드는 기계를 사서 남은 밥을 다 마른 누룽지로 만들었어요. 그걸 비닐 봉투에 포장해서 보관하는데 그거 가져다 끓여 잡수세요.”

내가 노숙자시설에서 오히려 먹을 걸 푸짐하게 얻었다.

“차도 많은데 가져가실래요?”

“차라뇨?”

“차도 많이 기부를 받았는데 노숙자분들이 전부 커피만 먹는 거예요. 쌍화차나 홍차같은 다른 건 먹지들을 않아요. 그래서 남는 거예요. 좀 가져가세요.”

나는 차도 여러 병을 선물 받았다. 나는 노숙자들의 하룻밤 잠자리를 둘러보았다. 핸드폰이 있는 사람들은 그걸로 게임을 하거나 바둑을 두고 있었다. 원인은 갖가지이지만 그들은 절망과 체념으로 몸은 살아 있지만 영혼이 죽어있는 존재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인간은 빵 만으로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절실한 것은 영혼이 다시사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영혼이 살아야 자신의 힘으로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영혼이 살려면 정신적 빵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지하도 계단 모퉁이에서 성경을 펴놓고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책 위에 줄을 그으면서

읽는 모습의 노숙자를 좋아한다. 비 오는 날 저녁 요코하마의 한 건물 지하에서 신문지를 깐 위에 몸을 눕히고 조용히 책을 읽는 노숙자를 보기도 했다. 책을 보는 노숙자는 무소유의 성자였다. 이제는 그들의 영혼을 먹일 정신적 빵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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