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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가족찾기(1)

운영자 2020.11.23 10: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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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가족찾기(1)



이천팔년 오월 십팔일 아침 일곱시였다. 나는 북경 리앙마거리 캠핀스키 호텔의 창문 커튼 사이로 봄의 햇살이 화사하게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 보았다. 잔잔한 물이 흐르는 개천이 보이고 그 양쪽에 산책로가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심은 가로수들이 녹색의 물 위에 은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개천가에 낚시를 드리우고 앉아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난 저녁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한을 풀기 위해 북경으로 날아왔다. 함경북도의 회령이 고향인 어머니는 스무살 때 결혼을 하고 서울로 온 후 가족과 단절이 됐다. 여든 살이 넘도록 부모와 형제를 보고 싶은 한이 가슴에 쐐기가 되어 박혀 있는 분이었다. 남북이산가족 찾기를 하는 기관에 북한가족의 인적사항을 등록했지만 수십년 동안 놀림만 당한 것 같았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만 만날 수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로서 마지막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변호사로 있다가 몇 년간 정보기관인 안전기획부 법률담당특보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 기관에서는 평양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어머니는 목숨 걸고 평양에 가는 건 반대했다. 다시 아들을 잃을지도 모르는 절박함이었다. 나는 정보기관의 대북공작국장에게 북에 있는 가족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이산가족의 만남은 정치쇼가 아니라 뜨거운 피의 흐름이었다. 정보기관의 국장은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하나는 현대그룹같이 북이 신세를 진 존재를 통해 북의 가족을 수소문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현대그룹의 북한 사업을 총괄하는 전무를 만나 부탁을 했었다. 그는 자기가 나를 평양의 과학기술대학에 가서 강의를 할 수 있도록 천거해 주겠다고 했다. 평양에 가는 일은 어머니가 사생결단하고 반대할 게 틀림없었다. 정보기관의 북한 국장이 두 번째로 가르쳐 준 길은 대북공작의 임무가 종료된 공작원을 활용해 보라는 것이다. 대북공작원 출신들은 북의 고위층에 인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길을 가기로 했다. 북한을 드나들면서 공작임무를 수행하던 공작원 출신을 만나 사정을 얘기했다. 필요한 경비는 충분히 지불하겠다고 했다. 어느 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북의 고위층인물이 북경으로 오는 기회가 있느니 만나서 부탁하면 어렵지 않게 북의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북경으로 날아온 것이다. 통일부의 북한주민접촉허가를 받았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상 잘못하면 회합통신죄로 걸릴 수가 있는 것이다. 지난밤 호텔의 바에서 공작원을 만났다. 앞이마가 툭 튀어나온 강인한 인상이었다. 정보장교출신이라고 자신을 간단히 소개했다. 그가 먼저 내가 만날 인물의 배경을 이렇게 알려주었다.

“만나실 북의 고위층은 김정일과 함께 북한을 움직이는 백명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마음대로 북경을 오가는 실력자이기 때문에 그의 움직임을 보고 김정일위원장의 중국방문을 눈치채기도 했습니다. 그는 북의 혁명 이세대로 경제분야에서 최상위의 지위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북회담 때면 회담장의 뒤에서 모든 진행을 컨트롤 하는 위치였습니다.”

그 정도의 위치면 북에 있는 가족을 찾을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정보기관이 관여된 일이었다. 사기당할 우려는 없어 보였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어떻습니까?”

내가 공작원에게 물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남북관계가 경색됐습니다. 북은 미국과는 대화를 하려고 하면서 남쪽에 대해서는 일체 입을 열지 않아요. 북쪽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는 남한의 정치권이나 정부는 무시합니다. 제국주의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생각하는 거죠. 남북회담의 진행 하나하나를 미국에 보고 하고 승인을 얻으려고 하는 남한 정부를 경멸하고 있어요. 자신들은 주체성을 지킨다는 자존심이 대단하죠. 저 친구들은 정부와는 대화 챈널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식량문제가 다급한데도 북한 특유의 똥고집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제가 북한 고위 당 간부 한 사람한테 들었는데 뭔가 아주 조금 줘 놓고는 남조선 신문과 방송에서 거지에게 적선한 듯 떠들어 대는 걸 보면 속이 뒤틀려 남쪽을 상대하기 싫다는 거죠. 차라리 위장회사를 통해 동남아에서 식량을 구하는 게 속이 편하다는 거예요.”

북의 시선으로 우리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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