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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 사랑들

운영자 2021.03.08 1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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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 사랑들




어느 날 아침상에 놓인 아내의 밥그릇을 보았다. 내 밥과 뭔가 달랐다. 아내가 가스레인지 앞에서 국을 끓이느라고 등을 돌리고 있을 때 아내의 밥에 살짝 손을 대 보았다. 싸늘했다. 남은 찬밥을 없애기 위해 그런 것 같았다. 식은 그 밥을 살짝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밥이 남아도 부부가 함께 없애야지 아내 혼자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잠시 후 수저를 들었던 아내가 “어, 내 밥이 어디 갔지?”하면서 내쪽을 바라보았다. 아내는 다시 내 앞에 놓인 찬밥을 빼앗아갔다. 어느새 우리 부부 앞에 놓였던 찬밥이 두 사람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것 같았다. 삶이란 그런 작은 정들이 오가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삼십대 초였을 때였다. 정년퇴직을 한 아버지는 그래도 뭔가를 하고 싶어했다. 나는 자그마한 담배 가게를 내게 해 드렸다. 이따금씩 퇴근할 무렵이면 차를 가지고 가서 담배를 받았다. 담배를 받을 때면 잘 팔리는 담배에 항상 잘 팔리지 않는 담배도 끼워서 받아야 했다. 안 팔리는 담배는 점점 재고가 쌓여갔다. 그때는 내가 담배를 필 때였다. 아버지를 보고 돌아올 무렵이면 차 안에 좋은 담배 한 보루가 뒷좌석에 놓여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이 피우라고 슬며시 가져다 놓은 것이다. 나는 그걸 도로 가져다 놓고 구석에 쌓였던 안 팔리는 재고품을 가져다 차에 놓았다. 잠시 후 차에 가면 내가 안 보는 사이에 아버지는 다시 잘 팔리는 좋은 담배를 몰래 가져다 놓았다. 아버지의 은은한 사랑이 향기처럼 내게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사랑의 향기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삼십년이 넘는데도 지금까지 나의 영혼에 배어있다.

예수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다. 칠십 고개를 앞에 보면서 내가 이웃을 얼마나 사랑했나? 하고 돌이켜 생각해 본다.

평생을 나만을 위해 살아오고 남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철저한 이기주의자였다. 어쩌다 좋은 일을 한 것 같이 보여도 곰곰이 반성해 보면 그 안에는 위선이 묻어있는 게 틀림없다. 얼마 전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장애가 있는 대학 동기와 일주일을 함께 지낸 적이 있다. 그 친구가 이런말을 했다.

“내 고교동창 중에 김 박사가 있는데 사업을 하면서 수지침을 놓는데 정말 능력이 탁월해. 내가 늙어서 성한 한 쪽 다리마저 힘이 빠졌었는데 그 친구 침을 맞으니까 힘이 나는 거야. 그 친구 능력이 대단해. 병원에서 고치지 못하는 걸 많이 고쳤어. 돈도 받지 않고 오는 사람마다 오히려 선물을 주고 있어. 그렇게 사랑을 베푸는 거야. 동창이라도 난 정말 그 친구를 존경해.”

그는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표현을 했다. 허리가 아파서 대학 동기의 소개로 그의 고교동창이라는 김 박사를 찾아갔다. 일주일에 세 번씩 그의 수지침을 맞으면서 두 달간 그 사무실로 다녔다. 이미 사업에 성공하고 부유한 사람이었다. 아들도 잘 키워 대기업과 은행에 다니고 있었다. 국제학교에서 일등 한다는 손녀 자랑이 대단했다. 성격이 활달하고 적극적이었다. 주변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의 민원이 들어오면 참지를 못하는 성격 같았다. 열심히 남의 일을 봐주는 것 같았다. 타고 나기를 대대로 내려오는 부잣집에서 그렇게 여유 있게 태어난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서원을 만들었고 아버지가 군수를 했던 경상도의 양반집 아들이었다. 지금도 할아버지 아버지가 살던 지방의 고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했다. 주변에 자연스럽게 사랑을 베푸는 그의 행동은 뿌리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베풀면서 그 자체를 즐거워 했다. 그 성격탓에 남은 많이 도와주면서 정작 자신은 사기를 많이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즐겁게 사는 것 같았다.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는 자신에게서 금과 흰옷과 안약을 사라고 했다. 흰옷은 예수의 말씀으로 표현되는 ‘의’일 것 같다. 안약은 눈에 낀 비늘을 없애는 데 필요할 것 같다. 금은 하늘에 있는 금이였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그 금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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