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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낀 비늘

운영자 2024.01.22 10:35:05
조회 82 추천 2 댓글 0

내가 사십대 중반이던 어느 해 겨울 저녁이었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국회의원 변호사가 복도에서 나를 보자 물었다.

“내일 뭐 해?”

“애들하고 스키장으로 갑니다.”

“내 지역구 사건을 맡은 게 있는데 법정에 나가주지 않을래? 가서 서 있기만 하면 돼.”

“사건 내용이 뭔데요?”

“몰라. 법정에 가서 판사한테 알아봐 별거 아닐 거야.”

그의 불성실성에 속으로 화가 났다. 민원을 가지고 국회의원을 찾아오는 사람은 나름대로 절실할 것이다. 표 때문에 겉으로 입발린 말을 하고 뒤로는 무관심 무신경한 그런 이중성이 나는 못마땅했다. 나보고 법정에 가서 막대기가 되어 망신을 당하라는 얘기이기도 했다.

“난 오늘밤 늦게 지역구 장례식장을 돌아다녀야 해.”

그는 애도하는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표 때문이었다.

“가족과 스키장을 그냥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장례식장가는 게 싫으면 안 가면 되고”

그냥 욕심을 놓아버리면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그건 당신이 뭘 모르고 하는 소리고”

그의 눈은 ‘너는 내가 누리는 권력의 쾌감을 전혀 모를거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무리한 부탁을 정중하게 사양했다. 불성실하고 껍데기모습만 꾸미는 그를 돕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었다.

정치인의 무책임한 행동을 본 또다른 경우가 있었다. 고향 사람이 찾아와서 국회의원에게 절실하게 아들의 취직자리를 부탁했다. 국회의원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국회의원인 그는 정확히 일주일 후 다시 만날 때면 아들의 일자리가 마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나는 옆에서 그 아버지의 그렁그렁한 감사의 눈물을 보았다. 다음 주 약속 시간에 그 아버지가 찾아와 초조한 얼굴로 국회의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린다는 보고를 받은 국회의원이 내게 물었다.

“저 사람 왜 왔지?”

그는 진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고향선배인 형님 아들 취직은 제가 꼭 책임지겠습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오세요라고 큰소리 치지 않았나요?”

“아이쿠 그랬구나 나 뒷문으로 도망갈 테니까 답변 좀 해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청탁을 하고 그걸 다 들어줄 수 없는 사정을 안다. 표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다는 아니겠지만 정치에 미친 사람들은 권력을 잡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생의 다른 부분은 거의 무감각상태 같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그의 야망충족에 대한 지지자이거나 아니면 방해꾼이었다. 순수하게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 않았다. 그 위에 돈이나 섹스같은 다른 것에 대한 집착까지 보태어진 걸 보면 정말 불쌍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데 자기만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부정적인 일부의 경우였다. 선량한 사람들이 더 많다.


오랫동안 사람들을 보아왔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외눈박이거나 눈 뜨고도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그 원인은 눈에 낀 비늘 때문인 것 같았다.

내남없이 사람들은 자기가 집착하는 것에만 눈길을 모으고 다른 것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돈도 그렇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재산에 대한 집착이 있으면 인생의 더 깊은 면에 눈을 돌려보지 못하고 평생을 돈 생각만 하다가 마쳐버린다. 욕심 사나운 장사꾼들은 돈 되는 일 아니면 관심도 흥미도 없다.


사상이라는 것도 눈꺼풀에 덮인 비늘이었다. 자기와 이념이 같은 사람들하고만 어울리고 자기 믿음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배척한다. 사람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 보고 싶은 대로 본다. 그런 일그러진 눈들로 바뀌고 움직이는 현실을 본다. 그런 현실은 진정한 현실이 아니라 생각으로 만들어 낸 가짜 현실이었다.

내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진과 선과 미를 알지 못하는 것도 눈에 비늘이 끼어서 그런 건 아닐까. 천정을 보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외면 세계만 보고 내면을 보지 못했다. 그런 인간은 고급 인간이 아니다. 나는 성경 속 맹인에게서 나를 발견했다. 예수는 못 보는 내게 보게 해 주겠다고 했다. 사도 바울처럼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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