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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당하는 특권

운영자 2021.04.19 09:59:12
조회 164 추천 3 댓글 0

모욕당하는 특권




나의 블로그에 이런 댓글이 떴다.

‘악랄한 살인범을 변호한 주제에 입만 살았네’

누군지는 몰라도 나를 증오하는 것 같다. 살인범도 변호하는 게 변호사의 일인데 욕을 먹는다. 내가 글이 마음에 들지 않나보다. 욕먹지 않고 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또 다른 어떤 인터넷 신문에는 한 명사가 내 이름만 들어도 역겹다고 글을 올렸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왜 역겨운지 나는 모른다. 그냥 내 이름만 들어도 싫은 모양이다. 인생 나그네 길을 가려면 욕을 먹고 모욕을 당해야 하나보다. 크고 작은 모욕의 파도는 형태를 바꾸어 끊임없이 마음의 기슭으로 다가온다. 이런 일이 있었다. 구청 건축과에서 시정명령 통지서가 날아왔다. 아파트의 일부를 법률사무소로 사용하고 있으니 불법적으로 건축물 용도변경을 했다는 것이다. 얼핏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오 년 전쯤 오랫동안 하던 기존의 법률사무소 사무실을 접었다. 육십대 중반부터는 아파트에서 쉬면서 돈보다는 내가 가진 지식과 법 기술로 틈틈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약간의 일을 하고 싶었다. 법률사무소에서 쓰던 책상들을 아파트의 한 방에 가져다 놓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아파트의 구석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어쩌다 법률상담을 하겠다고 사람이 찾아오면 사무실에서 쓰던 책상이 있는 방에서 얘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가뭄에 콩 나듯 일 년에 한 두 건 사건이 오는 사실상의 휴업인 변호사의 노년이었다. 아파트의 방에서 법률서류를 만들기도 했다. 코로나가 돌면서 많은 사람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는 관악기인 호른을 레슨하는 영감이 있었다. 또 아파트를 아뜰리에로 만들어 그림을 그리는 여자도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여성이 나를 찾아와 법률상담을 했다. 열심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 상담료를 받지 않은 무료봉사였다.

그 여성이 상담을 한 후에 구청에 고발을 한 것이다. 주거인 아파트를 변호사사무실로 용도 변경해서 쓰고 있으니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치 똥물이라도 뒤집어 쓴 듯한 모욕감이 들었다. 법률상담을 왔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았다. 그녀는 아파트의 왕이었다. 아파트 곳곳을 다니면서 집 앞에 큰 물건이 놓여있으면 소방법 위반으로 고발을 했다. 미워하는 주민이 있으면 모욕적인 내용이 담긴 대자보를 벽에 붙였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그 벽보를 떼면 손괴죄로 경찰서에 고소를 했다. 주민을 선동해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주민대표를 쫓아내기도 했다. 나는 아파트의 왕 노릇을 하는 부인의 과녁이 된 것이다.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블로그에서 나의 글을 읽은 뇌성마비 장애자가 나의 아파트를 찾아 와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걸 보고 아파트 값이 떨어 진다고 걱정해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파트 대표 선출 때 그녀가 주민들에게 내세운 공약은 아파트 값의 상승이었다. 세상에는 이런 종류의 인간이 많았다. 자기의 폐쇄회로 속에 틀어박혀서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들었다. 민주화가 지나쳐서 관청도 그런 종류의 목소리가 높은 사람들에게 약했다. 나의 아파트의 내부의 한 방을 사무실의 형태로 만들던 침실로 만들던 서재로 쓰던 그건 시민의 자유이고 사적인 영역이었다. 관청에서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생각을 하다가 성경을 들추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속에 인내와 절제가 들어있었다. 참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당 구청직원에게 아파트 방을 주거용같이 바꾸겠다고 승복했다. 이불을 가져다 놓고 침실로 꾸미거나 서재로 바꾸는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완장부인과 싸우기 보다는 고발의 승리감을 충족시켜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게 성령의 열매인 절제 같았다. 그래도 좁은 마음 탓인지 모욕감이 앙금같이 한 구석에 남아 있다. 선의로 법률상담을 해 준 걸 가지고 그렇게 고발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예수의 사도들은 그런 경우를 ‘모욕을 당하는 특권’을 가졌다고 표현했다. 그런 경지에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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