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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속에서

운영자 2022.03.07 10:51:40
조회 172 추천 1 댓글 1

산불 속에서




내가 있는 실버타운의 옆산 능선에서 누런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연기는 화산재가 피어오르듯 점점 더 굵어지면서 하늘로 퍼져나간다. 연기가 하늘을 덮으면서 바다 쪽을 향해 서서히 덩어리져 내려가고 있다. 방송에서 내가 있는 동해시가 ‘아비규환’이라고 보도하는 아나운서의 흥분한 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내가 사는 곳의 이웃마을인 옥계에서 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번지면서 동해시를 태우고 있다. 고속도로도 통제가 되고 기차운행도 중단됐다. 산불을 피해 동해시를 빠져나가려는 차들의 경적소리와 소방차의 싸이렌 소리가 전쟁터를 방불하게 한다고 했다. 도심 곳곳이 검은 연기에 휩싸이고 불길이 아파트와 주택으로 번진다고 했다. 나는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이 꼼짝없이 갇혀 버렸다. 겁이 나서 실버타운의 앞마당으로 나와봤다. 밥을 해주는 중년의 여인이 나와 허공에 가득 찬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소방헬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다급하게 날아가고 있었다.

“여기 괜찮겠어요?”

내가 그 여인에게 물었다.

“바람이 연기를 바다 쪽으로 몰고 가네요. 다행이네요. 이 골짜기로 저 연기들이 밀려오면 노인들이 견뎌내기 힘드시죠.”

그녀는 위험을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조금도 흥분하는 어조가 아니었다.

“재작년에 난 산불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예요. 이 계곡에 수백년된 소나무들이 울창했었는데 그 때 다 타버렸어요. 그때는 정말 대단했어요. 밤의 공중에서 불붙은 솔방울들이 불꽃놀이를 하듯 밤하늘에 날아다니며 불이 옮겨붙었으니까요. 지금 이 실버타운 건물에도 한밤중에 불이 옮겨붙었어요. 제가 묵는 노인들을 깜깜한 밤중에 해변으로 피신시켰어요. 그때 울창하던 나무들이 불붙는 사이길을 걸어갔었죠. 이번에는 불이 건물에 옮겨붙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이미 주변의 나무들이 그때 다 타버렸으니까요. 연기가 걱정이죠. 바람이 다행히 이쪽으로 오지 않네요.”

불을 경험한 그녀는 눈앞의 검은 천사같은 연기를 보면서 강심장인 것 같았다. 담담한 그녀의 말에 나도 안정감을 찾았다. 잠시 후 나는 아랫마을 쪽을 내려다 보았다. 개울을 가운데 두고 마치 거대한 유리벽이라도 친 듯 연기가 한쪽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후 산자락을 흐르는 연기와 옆에서 동행하며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마치 홍해의 갈라진 물 사이를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바람이 거대한 연기의 방향을 조금만 비틀면 내가 걷는 곳이 덮여 버리게 되어 있다. 나는 그걸 피해서 뛸 능력도 없다. 그런데도 걷고 있었다. 두려움을 억누르기 위해서 찬송가를 부르기로 했다. 어떤 걸 부를까 하다가 영화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배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승객 대부분은 구조선에 옮겨탔다. 몇 명의 악사들만 남았다. 더 이상 그들의 음악을 들을 사람이 없어진 텅 빈 적막한 배 안이었다.

“이제는 뭘 하지?”

악사 한 사람이 허탈한 듯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악사가 대답했다.

“그냥 하던 걸 해야지”

그들이 들고 있던 바이얼린을 다시 목에 댔다. 그들의 마지막 연주가 흘러나왔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찬송가의 멜로디였다. 그 찬송가를 들으면서 나는 울었었다. 옆에서 내려가는 연기를 보면서 나는 찬송가를 불렀다.

강풍이 불고 추웠다. 동해고속도로와 철도 아래의 굴을 통해 바닷가까지 걸어갔다가 실버타운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는 실버타운의 식당에는 노인들이 몇 명 보이지 않았다. 재빠른 노인들은 이미 차를 타고 지옥같은 동해시를 빠져 나갔는 지도 모른다. 몇 명의 노인들만 남아 식판의 밥을 묵묵히 입속으로 떠넣고 있었다. 재난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침착하고 담담한 표정이다. 헬기조종사도 하고 삼십년 여객기 기장을 했다는 칠십대 중반의 노인이 한마디 내뱉었다.

“소방헬기가 떠다닌다고 하지만 병아리 오줌만한 물로 어떻게 불을 끈다는 거야? 하나님이 비라도 내려주면 몰라도”

그는 부부가 같이 실버타운에 함께 왔다가 아내가 먼저 죽었다고 했다. 떠드는 그의 얼굴에서는 외로움과 슬픔의 그림자가 느껴지곤 했다. 식당 구석에서 늘 혼자 떨어져 밥을 먹는 머리에 하얗게 눈이 내린 할머니가 보였다. 걷지를 못해 작은 유모차 같은 보조기구를 의지해 다녔다. 며칠 전 벽 아래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남몰래 조용히 마른 울음을 우는 걸 봤었다. 짙은 외로움의 고통이 전해져 왔다. 모르는 척 지나쳤지만 가슴이 찡해왔다. 남은 노인들은 삶보다 어쩌면 죽음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캄캄한 밤이 왔다. 옆의 가까운 산등성이에서 시뻘건 불길들이 타올랐다. 무정형의 불길은 화가 난 것처럼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실버타운 뒤의 파도처럼 출렁이는 산줄기의 나무들에도 온통 불이 붙어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문득 내가 본 것들과 느낌을 기록해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락하는 여객기 안에 탄 어떤 일본인 승객이 마지막 순간까지 수첩에 상황을 기록해 두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때 사람들 중에는 죽기 직전 문자로 ‘사랑해’라는 말을 보냈던 것도 생각난다. 스마트 폰의 화면에 내블로그의 댓글이 하나 떴다.

‘변호사님이 계시는 실버타운건물에 불이 붙었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괜찮으신지요?’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감사했다. 나는 그 댓글을 보고 확인하기 위해 실버타운 밖으로 나갔다. 소방차들이 출동해경광등을 번쩍이고 있었다. 둘러보니 아직 건물에 불이 붙지는 않았다. 나는 불길을 바라보면서 긴장하고 있는 출동한 소방관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금 상황이 어때요?”

“여기하고 어달마을이 불이 가장 심합니다. 어달항은 주택들이 많아 불이 붙은 집들도 많습니다. 저희는 인명피해 방지가 첫째 목적입니다. 그래서 저 산에 타고 있는 불길이 실버타운에 옮겨붙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나는 한밤중 불의 중심에 아직 존재하고 있었다. 밤의 어둠 속에 떠있는 실버타운건물은 거대한 여객선 같았다. 잠을 못 이루는지 몇 몇의 창에 불이 켜져 있다. 그 속의 노인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잠이들고 내일 아침에는 깨면 천국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나의 스마트 폰이 수시로 다급한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나의 안부를 묻는 전화들이었다. 감사했다. 나는 내 방이 있는 사층 복도에서 창문을 통해 불붙은 뒷산 능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케이크에 작은 촛불이 수없이 꽂혀있는 것 같았다. 위험 속에서 이런 상상을 해도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그 분이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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