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왜 화를 내십니까?

운영자 2022.03.21 10:55:34
조회 176 추천 2 댓글 0

왜 화를 내십니까?


한 여교수가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다. 한서린 표정으로 그녀가 찾아온 사연을 얘기했다.

“아버지가 평생을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모은 돈 오백억원과 땅을 기부해서 재단을 만들었어요. 사회원로를 이사장으로 모셨죠. 이 사회에서 정말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돈을 써 달라는 게 아버지의 취지였죠.”

“그런데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이사장이 된 분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무 불쌍했어요. 이사장이라는 분은 최고급 호텔에서 수시로 호화로운 파티를 열더라구요. 아버지는 평생 그런 호텔에는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어요. 좋아하는 소주도 자기 돈으로 사 마시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음식점에 가면 남들이 먹다 남기고 간 소주가 들어있는 병을 슬며시 가져다가 마시는걸 제가 여러 번 봤어요. 그런 궁상을 떨지 마시라고 해도 아버지는 ‘아깝잖아?’라고 했어요. 젊어서부터 철저히 절약하는 습관이라서 어쩔 수 없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모은 돈을 기부했는데 이사장이란 사람이 아버지의 돈을 낭비하는 걸 보고 저는 분노가 치밀어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그 외 재단에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아버지가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돈을 기부했는데 엉뚱하게 돈이 없어졌어요. 이사장은 아버지가 기부한 노른자위 땅을 그냥 방치하고 있어요. 그 땅이 세금폭탄을 맞자 재단의 돈을 쓰는 거예요. 그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사장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직원으로 앉히고 자기들 마음대로 월급을 높게 책정해서 아버지의 돈을 빼먹는 거예요. 화가나서 미치겠습니다. 무슨 소송이라도 걸어서 그 이사장에게 경각심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녀의 말에 공감이 갔다. 동시에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녀의 분노는 시각의 차이일 수도 있었다.그 이사장은 총리 물망에 까지 오른 법조계의 원로였다. 내가 막연히 알기로는 부자집 아들로 태어나 엘리트코스를 밟는 데 실패가 없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법관생활을 오랫동안 했다. 법복을 벗고는 변호사가 되어 대한변협회장을 하고 정치적으로도 거물로 성장한 것 같았다. 그는 이 사회에서 최상류층에 속했다. 그에게 고급호텔에서의 파티는 일상인지도 모른다. 그가 뒷 골목 허름한 식당에서 회의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무렵 또 다른 사회단체의 사람들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았다. 그 단체의 여성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단체는 외환위기 때 국민들의 금모으기 운동에서 남은 돈으로 설립됐습니다. 그런데 이사장이 된 사회원로라는 분이 서너개의 커다란 사회단체 이사장직만 즐기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거예요. 법률적으로 이사장의 불성실에 대한 제재방법은 없을까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이사장 자리를 내놓지도 않아요.”

내게 찾아와 호소하던 여교수가 말하던 이사장과 동일한 인물이었다. 대충 그 이사장을 하는 원로의 일면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감히 그에게 덤벼드는 법조후배들은 없을 것 같았다. 낙인찍히고 소외되기 때문이다. 몇 번 그를 본 자리에서 공손히 인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가 성의없이 인사를 받는 것 같았다. 존경스럽지 않았다. 얼마 후 법정의 판사 앞에서 그와 마주 앉게 되었다. 그가 불쾌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자네 이런 행동을 하면 안돼. 내가 징계위원회에 넘길 수도 있어.”

그 말에 나의 분노가 터졌다.

“자네라니? 어디서 자네라는 말을 함부로 쓰십니까? 지금 재판중 아닙니까? 나는 지금 변호사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반말하지 마세요. 나도 손자를 둔 할아버지나이인데 어디다 대고 함부로 지껄이는 겁니까? 그리고 당신이 뭔데 나를 징계위원회에 넘긴다는 겁니까?”

순간 그가 자라목같이 움츠러들었다. 싸우면 그가 잃을 게 많았다. 보고 있던 재판장이 나를 보고 말했다.

“엄 변호사님 왜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 이건 그냥 우리들의 일상 업무일 뿐 아닙니까?”

그날의 재판이 끝나고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곰곰이 반성해 보았다. 성을 내면 안 된다고 배웠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참아야 한다고 했다. 성을 내는 것은 믿음과 수양의 부족이라고 인식해 왔다. 오늘같이 모욕을 당한 느낌이 들 때 나는 분노를 터뜨렸다. 그럴 때 사람들은 나를 비난했지 모욕한 사람을 탓하지 않았다. 내가 더 나쁜 사람이 되곤 했다. 그런데도 나는 수시로 분노했다. 억울함이나 불공정을 보면 화가 났다. 그런 걸 보고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사랑이 얕은 사랑일 것 같았다. 예수님도 화를 내며 성전 장사꾼들의 상을 뒤엎었다.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저주하면서 분노했다. 성경속 수많은 인물들은 성내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성을 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거룩한 분노가 있다고 믿는다. 참사랑과 정의에 따르는 분노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노를 허락하시는 것 같다. 다만 가볍게 성내지 않고 성을 내도 죄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추천 비추천

2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2635 천직 운영자 22.05.16 129 2
2634 이 삶이 전부일까? 운영자 22.05.16 159 1
2633 사상이 뭡네까? [2] 운영자 22.05.09 246 0
2632 바란 것과 얻은 것 운영자 22.05.09 198 1
2631 횡재가 횡액 운영자 22.05.09 198 3
2630 글을 잘 쓰려면? 운영자 22.05.09 116 1
2629 선행의 타이밍 운영자 22.05.09 106 0
2628 2달러와 쵸코파이 운영자 22.05.09 112 1
2627 어느 국회의원의 억울함 운영자 22.05.03 165 2
2626 청지기 정치인 운영자 22.05.03 121 1
2625 큰 정치가 운영자 22.05.03 126 1
2624 좋은 정치의 모델 운영자 22.05.03 125 0
2623 불평의 해독제 운영자 22.05.03 119 1
2622 노력의 천재들 운영자 22.05.03 157 1
2621 노인들의 나라 운영자 22.05.03 149 1
2620 시대의 양심 운영자 22.04.25 132 0
2619 도시의 자연인 운영자 22.04.25 131 1
2618 자기 집에서 출근하는 대통령 운영자 22.04.25 169 1
2617 자기 집에서 출근하는 대통령 운영자 22.04.25 136 2
2616 역사와 싸운 용감한 대법관 운영자 22.04.25 145 0
2615 용감한 판사 운영자 22.04.25 121 0
2614 아버지 아들 모범판사 2대 운영자 22.04.25 130 0
2613 댓글 운영자 22.04.25 105 1
2612 눈이 부리부리한 중위 운영자 22.04.18 142 0
2611 공부의 일등급 운영자 22.04.18 125 1
2610 원룸에 사는 행복 운영자 22.04.18 130 1
2609 젊은부부의 아름다운 인생 운영자 22.04.18 111 0
2608 어떤 희망으로 죽을까 운영자 22.04.18 89 1
2607 연탄의 추억 운영자 22.04.18 98 1
2606 시골의 노인 찻집 운영자 22.04.18 96 1
2605 사표를 내는 심정 [1] 운영자 22.04.11 131 1
2604 묵호의 작은 책방 운영자 22.04.11 103 1
2603 쌀가게 예수영감 운영자 22.04.11 105 1
2600 에이지즘 운영자 22.04.11 100 1
2599 예술의 신 운영자 22.04.11 82 1
2598 영혼 밭에 떨어진 노래 운영자 22.04.11 89 0
2597 밖에서 보는 문학 운영자 22.04.11 80 0
2596 이상한 걸 배웁니다 운영자 22.04.11 100 1
2594 영혼도 진화할까 운영자 22.04.04 102 1
2593 두가지 해석 운영자 22.04.04 100 1
2592 예언자 노인의 정치지혜 운영자 22.04.04 113 0
2591 우주 끝 천국 운영자 22.04.04 89 1
2590 과학자와 종교 운영자 22.04.04 85 1
2589 그분의 자기표현 운영자 22.04.04 106 1
2588 돈 귀신의 노예 운영자 22.03.28 150 2
2587 벌레 먹은 만나 운영자 22.03.28 138 1
2586 술취한 정의 운영자 22.03.28 116 1
2585 실버타운 내부광경 운영자 22.03.28 123 1
2584 안국동 그 가게 [1] 운영자 22.03.28 115 1
2583 모순된 하나님 운영자 22.03.28 107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