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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먹는 직업인 대통령

운영자 2022.08.29 10:11:38
조회 157 추천 1 댓글 0

오래전 금강산으로 가서 그 일대를 둘러볼 때였다. 나는 북한의 여성 안내원과 둘이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계곡물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

“선생님 하나 물어 봐도 되요?”​

같이 가던 북한 여성이 말했다. 갑자기 뭔가 궁금한 표정이었다.​

“뭔데요?”​

그녀는 대한민국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았다. ​

“남조선 인민들은 왜 그렇게 대통령을 씹어 돌리듯 함부로 욕을 합니까? 별명을 붙여 말하기도 하고 쌍욕을 하기도 하는 게 일상인 것 같은데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 말을 듣고 보니 사람들의 일상 속 대화 중에 대통령을 존중하는 걸 본지 오래된 것 같았다. 대통령이 이니셜이나 별명으로 불렸고 술자리 안주감인 경우가 많았다. 여당의 국회의원이 여성 대통령을 성비하하는 욕을 했다는 보도도 본 적이 있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다 대통령에게 돌아가기도 했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그런 욕을 먹는 걸 전해 들으면 일할 의욕이 줄어들 것 같기도 했다. 북한 여성이 말을 계속했다.​

“대통령은 집안으로 치면 가장인 아버지격 아닙니까? 그런 아버지를 이놈 저놈 하고 욕을 하는 게 예의에 맞는 일입니까?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나는 갑자기 대답할 말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대통령은 공인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돌을 던지듯 막말을 하는 게 나역시 지나치다는 느낌이었다. 북한 여성의 잣대로 치면 대한민국 국민은 대부분 패륜아가 되는 셈이었다. 북한의 초대소 건물을 보면 여기저기 벽에 위대한 수령을 찬양하는 붉은 플래카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산길에도 수령이 간 자리에는 비석이 서 있고 그 안에 지도자 동지를 찬양하는 글들이 조각이 되어 있었다. 북한 여성은 남과 북의 국민들이 지도자를 대하는 차이를 이해하지 못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옛날부터 임금도 뒤에서는 욕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들은 적 있어요?”​

“그 말은 알아요.”​

“그렇다면 뒤에서 대통령에 대해 욕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봉건사회에서도 그렇게 했는데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죠.”​

“듣고 보니까 그건 그러네요.”​

“여기 보니까 건물마다 거리마다 위대하고 전능한 수령동지에 대해 적혀 있는데 인민들 마음속마다 한점의 회의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네. 깊은 마음속에서는 원망도 있을 수 있지 않나? 그럴 때 툴툴거리며 불평도 하고 욕을 해도 잡아가지 않는 세상이 좋은 거 아닐까요” ​

그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표정과 눈빛은 내 말을 긍정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쌍거풀 진 눈이 커다란 남성이 우리를 보며 혈압이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보였다. 그 정도에서 말을 그쳐야 할 것 같았다. 한쪽은 입을 틀어막는 사회이고 다른 쪽은 언어의 설사증에 걸린 사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서울로 돌아온 이후 나는 세상에 떠도는 말들을 살펴보았다. 어 떤 대통령이던 그를 비난하고 욕하는 글들이 인터넷상에서 바다를 이루고 있다. 택시를 타도 기사들은 대통령욕을 했다. 친구끼리 동창 모임에서도 대통령이 안주감이고 욕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북한의 김여정도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삶은 소대가리라고 욕했다. 북한여성의 말대로 남의 집 가장 어른을 그렇게 욕하는 건 가정교육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내 입에서 대통령에 대한 경솔한 비하나 욕은 한마디도 나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나는 사십년 가까이 변호를 해 왔다. 변호라는 것은 죄나 단점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타인의 장점을 찾아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듯 살인범에게서도 눈물 날 사연을 찾는 게 나의 일이었다. 단점은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장점은 숙련이 되지 않으면 아무나 볼 수 있는게 아니었다. 말도 그렇다. 냉정한 말 보다 인자한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빈정거리기 보다는 남을 칭찬해 주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손자나 손녀를 볼 때마다 기회를 잡아 사랑한다는 말을 놓치지 않는다. 오늘 그런 말들을 하지 않으면 때를 놓칠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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