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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김종오사건 기적 5편(완)

운영자 2017.02.16 12:13:55
조회 231 추천 2 댓글 2
                                                                                                     8

  

                                                                                           어떤 판사의 고백

  

법정을 드나드는 변호사의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날도 서초동의 민사법정에서 재판을 끝낸 후 복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올 때였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오십대의 남자가 말을 걸었다.




“변호사님 저하고 제이유 그룹사건 같이 재판을 했었는데 저 모르시겠어요?”


귀족형으로 얼굴선이 고운 미남이었다. 테 없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제이유그룹 사건이라면 다단계사기로 엄청난 사회적 물의가 있었던 사건이었다. 나는 그 사건의 변호인중의 한사람이었다. 같은 변호인이면 대충 기억이 날 텐데 그의 얼굴은 생소했다.


“기억이 잘 안 나는 데요”


아무래도 그를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 사건에서 제가 주심 판사였잖아요?”


“아 그렇구나 그 사건의 판사님이셨군요.”


검은 법복은 사람의 개성을 지워버린다. 재판장 옆에서 묵묵히 듣기만 하는 배석판사들은 얼굴이 기억에 남아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 사건의 배석으로 주심판사셨어요? 그 사건의 주심인 배석판사가 권력가의 사위라는 얘기를 들었고 강력한 로비가 들어갔다는 얘기를 그때 들은 것 같은데요.”


이렇게 해서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이다. 그 내막이 궁금했다.


“예 바로 제가 그 권력가의 사위고 로비의 표적이었던 주심판사죠. 그 후에 변호사개업을 했습니다.”


“선고결과를 보면 그때 로비가 전혀 통하지 않은 것 같던데요”


“그랬습니다. 제가 엄벌을 주장했습니다. 그 당시 재판을 하면서 보니까 인간자체로는 회장을 봐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판장인 부장님도 좀 봐줄 수 없느냐고 주심인 제게 동정심을 가진 말씀을 하셨구요. 그런데 갑자기 마지막에 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재판을 하다보면 법정에서 전해도 충분한 말을 따로 만나자고 해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럴 때는 화가 납니다.


 의뢰인에게 돌아가서 로비를 했다면서 거액을 받아 챙길 거 아닙니까? 그래서 형량을 정하는 합의때 재판장인 부장님께 봐줘서는 안 된다구 했죠. 판사가 뇌물범으로 오해받기는 싫은 거죠. 재판장인 부장님도 봐주려고 먹었던 마음을 바꾸겠다고 하셔서 중형이 선고된 겁니다. 그게 당시 우리 판사들의 마음의 움직임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비라는 귀신수를 쓴 것이다. 귀신 수는 역효과를 낼 때도 있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판사의 마음이 순수하게 감동되면 논리를 떠나 좋은 결과가 나오는 수도 많았다.

  

  

                                                                                                     9



                                                                                              과일바구니

  

그가 석방이 됐다. 판결문을 받아 판결이유를 살펴보았다. 간단했다. 전과도 있고 죄질도 나쁘지만 봐준다는 것이다. 간단했다. 질이 나쁜데 봐주겠다고 논리가 튀었다. 이런 때 나는 어떤 다른 보이지 않는 힘이 판사의 마음에 들어가 그의 결정을 움직였다는 해석을 한다. 집으로 과일바구니가 왔다. 과일바구니에는 영어로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가족을 위하여’라고 영어로 적혀 있었다. 30년간 변호사로 일해 오면서 작은 기적들을 많이 본다. 법정이라는 연극무대에는 판검사 변호사등 여러 배우들이 있다. 그런데 그 전체의 연출자가 따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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