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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의 인생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경험이 3가지가 있다.
그 첫번째는 어릴 적 견습생 시절, 얼음 채취하다가 발을 헛디뎌 그대로 바다에 빠져 익사할 뻔했을 때. 아마 랜턴 들고 지나가던 남자(훗날 그의 스승이 된)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죽었겠지.
두번째는 불과 일주일 전, 얼어붙은 아렌델의 바다를 헤매며 심장이 얼어가는 안나를 찾고 있을 때. 자신(과 스벤)이 아닌 타인을 위해 공포를 느꼈을 때는 그 때가 처음이었고, 솔직히 말해 그런 감정, 이젠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몸서리가 처지는 기억이다.
세번째는 바로 지금, 엘사 여왕에 서재 방문 앞에 서있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말해, 심장이 벌렁벌렁하다. 불다가 항상 말했었지, 여자를 사귀게 되면 먼저 부모에게 잘 보이는게 우선이라고. 언니이자 보호자로서, 지금 안나의 부모와 같은 사람은 다름아닌 엘사다. 일국의 여왕이다.
젠장, 망했잖아!
게다가 둘은 일단 1주일 전의 사건으로 인해 면식은 있지만, 그 이후 여왕님이 정무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정식으로 대면하게 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래저래, 큰일났다는 생각이 드는 크리스토프였다.
뭐, 겪어보면 알겠지. 죽거나 살거나, 일단 문은 두드리고 보는 거다. 조심스레, 행여나 부술 세라 문짝을 두드린다.
“크리스토프 씨죠? 들어오세요.”
여기까진 좋고. 그럼 사양 않고 들어가자.
끼익 –
문을 열자마자 크리스토프의 눈에 들어온 건, 책상 앞에 앉아서 독서 중인 엘사 여왕이었다.
안나와는 다른 성숙한 매력이 느껴지는 여인. 하지만 그 겉모습에 속기엔 이미 크리스토프는 엘사라는 사람의 약한 모습을 충분히 보아왔다.
아름다우면서도 위험한 힘, 그 힘을 두려워해 기나긴 세월동안 자신을 죽여온, 두려움과 용기라는 모순된 감정이 사랑이란 이름 안에 꽉꽉 들이찬 인간. 솔직히, 여왕이란 신분이 아니라도 자기 같은 놈이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정식으로 만난 건 처음이군요, 크리스토프 씨. 우선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읽던 책을 옆으로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난 엘사는 – 놀랍게도 크리스토프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당신에겐 동생의 목숨, 나아가 제 목숨과 아렌델의 명운을 빚졌습니다.”
“아니, 그 무슨…… 당치 않습니다, 여왕님,” 당황해서 말이 헛나오는 크리스토프. 당연하다. 일국의 여왕이 평민 이하인 자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다니.
“후훗, 확실히 여왕으로서 보일 태도는 아니군요,” 나지막이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는 엘사. “하지만 당신 앞에선 가식은 필요 없겠죠. 전 나약한 인간입니다. 아렌델의 여왕이기 이전에 안나의 언니이고 싶어요. 당신을 지금 부른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그렇습니까……”
뭐,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13년동안 챙기지 못한 동생에 대해, 여왕은 모르긴 몰라도 꽤나 보호적이겠지. 그 점에서 자신은 관찰 대상인 것이다. “…… 사실, 방금까지 안나 공주를 만나고 온 길입니다.”
“그래요?” 딱히 놀란 것 같진 않지만, 왠지 응답하는 엘사의 목소리엔 약간 날이 서있었다. “…… 그럼 그 애가 왜 그러고 있었는지도 알겠군요.”
“압니다.” 대답하면서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크리스토프. 이번이 고비다……!
“한스 왕자는 안나의 마음을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분노 어린 목소리로 엘사가 나지막이 말한다. “일차적으론 그런 위선자로부터 동생을 지키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전 앞으로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요. 다시는, 그런 남자에게 안나가 상처입는 꼴은 못 봅니다.”
문득, 말을 멈춘 엘사가 책상에 놓여 있던 책을 편 채로 집어든다.
“이 책의 제목은 ‘오딧세이’…… 제가 어릴 때부터 즐겨 읽던 책입니다. 혹시 알고 계시나요?”
“글은 못 읽습니다만, 이야기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대답하는 크리스토프. “옛 영웅 오디세우스가, 전쟁이 끝나고 가족에게 돌아가는 내용을 그린 이야기죠?”
“그렇습니다; 전 안나에게 오디세우스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엘사. “딱히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다만 중간에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어떤 유혹이 닥치더라도, 안나를 위해 이겨내고 안나를 위해 견뎌낼 수 있는, 그 정도로 그녀를 사랑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묻겠습니다, 크리스토프 씨. 당신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크리스토프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엘사가 먼저 물어봐놓고선 갑자기 쑥쓰러운 듯이 웃는다.
“이런, 순서가 뒤바뀌었군요. 당신의 대답을 듣기 전에, 먼저 제 얘기부터 조금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영웅이 되고 싶었던 어떤 소녀의 이야기를…… 말이죠.”
그 말과 함께, 오페라라도 부를 듯한 웅장한 목소리로, 아렌델의 여왕이 노래하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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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the case, I was for thirteen whole years of hate
(사건 이후, 증오의 13년 동안 저는)
Lost all alone like a harsh god's tomb
(홀로 길을 잃었죠, 가혹한 신의 무덤에서)
But through the years love urged my will to be solid and clear
(하지만 시간은 지나고, 사랑의 제 의지를 명확히 굳혔죠)
And for her life, I risked the loss of my heart
(그 애의 목숨을 위해서 제 마음도 포기했어요)
크리스토프의 귀가 경직된다. 지금의 이야기는, 단순히 엘사 본인의 이야기도, 노래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
For her I will not eat lotus from its twig
(그녀 위해 나 연잎 따먹지 않으리)
For her the sorceress cannot change me into pig
(그녀 위해 마녀도 날 돼지로 바꿀 수 없네)
For her I will blind the Cyclops' single eye
(그녀 위해 나 거인의 외눈을 찌르리)
The cannibals will not make me die, all for her
(식인종도 날 죽일 순 없네, 모두 그녀 위해)
동생을 위해 13년의 지옥을 견뎌온 엘사. 비록 잘못된 방법이었지만, 그 마음만큼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그에게 묻는다: 너도, 이렇게 살 수 있겠냐고.
For her I worked my way
(그녀 위해 나 나아갔네)
For her I moved away
(그녀 위해 나 저버렸네)
From my Destiny shipping across the sea
(바다를 건너간 내 운명조차)
For her I could resist
(그녀 위해 나 참았네)
In my frail heart, the Fortune's twist
(나약한 마음, 운명의 장난을)
And I was the last, true hero from the past
(최후의, 진정한 옛 영웅처럼 나 살았네)
그래, 이것이 그녀가 내린 시험이라면, 당당히 통과해 보여주지……!
마치 스핑크스의 질문처럼, 날아오는 엘사의 노랫소리에 스스로의 목소리로 의지를 내세운다 -
Sailor, come here
(뱃사람아, 이리 오라)
I hear a trace of the ocean noise
(바다의 부름이 들리네)
Fascinated
(흥미로워)
The move of waves is like a voice
(파도가 목소리로 들리네)
Hero come near
(영웅이여, 가까이 오라)
I can hold on with a tight rope
(밧줄을 붙잡고 버티리)
Captivated
(매혹됐어)
I've got a hope
(나 희망이 있네)
어릴 적 트롤들에게 들은, 오디세이의 모든 기억을 쥐어짜, 그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For her I can put up with the nymph for long
(그녀 위해 나 요정의 유혹도 버티리)
For her I can escape from the soft sirens' sing
(그녀 위해 나 세이렌의 노래에서도 탈출하리)
For her I'll gladly face the women delight
(그녀 위해 나 어떤 유혹도 맞서리)
And nobody can defeat me in fight, just for her
(누구도 날 이길 수 없네, 오직 그녀 위해)
엘사의 눈이 커진다. 당연히, 크리스토프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For her I'll work my way
(그녀 위해 나 나아가리)
For her I'll move away
(그녀 위해 나 저버리리)
From my Destiny shipping across the sea
(바다를 건너간 내 운명조차)
For her I can resist
(그녀 위해 나 참으리)
In my frail heart, the Fortune's twist
(나약한 마음, 운명의 장난을)
And I'll be the last, true hero from the past
(최후의, 진정한 옛 영웅처럼 나 살으리)
나아가리, 참으리, 살으리. 나아갔네, 참았네, 살았네가 아니라.
엘사가 과거를 노래했다면, 크리스토프는 미래를 다짐한 것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안나를 위해서 – 라고, 무엇보다 확실히 전한 것이다.
그의 진심을 알아줬는지, 엘사의 눈가가 맑아진다. 그리고 마치 지지 않겠다는 듯이, 바로 그녀 역시 시점을 현재형으로 바꿔서, 다시 한 번 –
For her I'll gladly face the women delight
(그녀 위해 나 어떤 유혹도 맞서리)
And nobody can defeat me in fight, just for her
(누구도 날 이길 수 없네, 단지 그녀를 위해)
그리고는 서로에게 다짐하듯, 여왕과 얼음장수가 함께 노래한다.
For her I'll work my way
(그녀 위해 나 나아가리)
For her I'll move away
(그녀 위해 나 저버리리)
From my Destiny shipping across the sea
(바다를 건너간 내 운명조차)
For her I can resist
(그녀 위해 나 참으리)
In my frail heart, the Fortune's twist
(나약한 마음, 운명의 장난을)
And I'll be the last, true hero from the past
(최후의, 진정한 옛 영웅처럼 나 살으리)
모든 것은, 그들이 사랑하는 한 소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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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이라고 엘린이 안린이가 뜨길 기대한 분들은 조용히 엎드려뻗쳐주세요
간만에 듣는 안나바보듀엣! 엘사와 크리스토프는 성격은 딴판인데 안나만 끼어들면 최고의 조합이 되는게 포인트.
노래는 스페인의 메탈 밴드 Dark Moor의 For Her. 오딧세이를 모티브로 한 노랜데, 스토리에 맞게 살짝 개사했음.
담편도 내일 이 시간에. 스포일러(드래그): 병렬세계 매직의 시간이야! 이번 노래도 메탈이야...... 어둠에 다크한 엘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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