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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장편/모험] 시간을 달리는 안나 2 -16화-

절대온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18 01: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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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다시보기: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rozen&no=3660932


1~14화 링크모음: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rozen&no=4167169


15화: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rozen&no=4219516





성탄절, 1812년


“어서 일어나, 안나!”


이두나가 침대 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안나를 흔들어 깨웠다.


“...졸려요.”


“얘가 뭐라는 거야, 벌써 9시야! 어서 일어나.”


“히익, 9시라고?”


안나는 책상 위에 올려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침대에서 튀어나왔다.


“잘 자고 있는 애 깨우기가 그래서 언제까지 자나 지켜봤는데, 그대로 뒀다간 저녁까지 잘 기세더라. 원래 평소에도 잠이 그렇게 많아?”


“미안, 나 때문에 우리의 계획표가 어긋났어! 원래 7시 반부터 아침 먹고 초콜릿 케이크 만들기로 했는데!”


안나가 울상이 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됐어, 빵이나 빨리 먹어. 얼른 먹고 초콜릿 케이크도 만들고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했나? 암튼 그것도 만들어야지. 성 뒤쪽 산에 가서 커다란 눈사람도 만들기로 했고!”


이두나는 안나의 입에 빵 한 조각을 물리고 분주하게 방 안을 돌아다니며 그릇들을 꺼냈다. 안나는 어머니가 미리 차려놓은 아침 식사를 허겁지겁 해치우며 손목시계를 찼다. 그녀가 돌아가야 할 시간까지 1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수면욕 따위로 어머니와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잠은 언제나 그녀의 인생에서 매일 아침 맞이하는 최악의 적 중 하나였다.


이두나와 안나는 초콜릿 케이크 만들기에 도전했다. 달콤한 갈색 액체가 냄비에서 끓여지는 것을 보고 두 모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건강을 고려한다면 자주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이지만 특별한 날에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이두나의 입가는 초콜릿 시럽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안나는 나무 주걱을 이용해 반죽을 세차게 휘젓고 있었다. 냄새를 빼기 위해 열어놓은 창가 사이로 겨울바람이 살랑살랑 불었고, 아름다운 주황빛 햇살이 안나의 머리 위로 비치고 있었다.


“선샤인!”


“네?”


놀란 안나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얼음처럼 몸이 굳었다.


“진짜 햇살이랑 머리색 똑같아서 한 말이야. 뭘 그렇게 놀래?”


“아니, 아니야.”


어머니는 안나를 항상 그렇게 부르셨다. 엘사는 눈송이, 안나는 선샤인... 당연히 열여덟의 이두나가 그것을 알 리는 없었지만 미래에서 온 자신의 딸을 놀라게 하기엔 충분한 말이었다.


“이제 반죽을 굽고 나서 초콜릿을 뿌리기만 하면 완성이야!”


“수고했어! 다음 일을 하기 전에 커피 한 잔 하자.”


안나는 불을 피우고 물을 담은 주전자를 올려놓았다. 행복해하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안나는 소원대로 과거로 잠깐 돌아가 살아계신 부모님의 젊은 모습을 보았다. 비록 중간에 역사가 조금 꼬이기는 했지만 어찌어찌 잘 해결되고 있었다. 하지만 안나의 마음은 안정되기는커녕 더욱 복잡해졌다.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6년 전의 사고에 대한 그녀의 죄의식과 후회가 되살아나며 미래를 바꾸어놓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느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까? 24년 뒤에 엄마는 아토할란으로 가려다 바다 위에서 돌아가신다고?’


그렇게 되면 과거를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정말 잘 하면 그녀가 돌아간 미래에서 살아계신 부모님의 얼굴을 다시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과거를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일주일 전에 이미 한 사람을 살렸던 것 때문에 일이 매우 복잡하게 꼬였지 않았던가. 만약 그녀의 욕심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한다면 오늘 이후에 안나가 원래 알던 역사대로 흘러갈지는 불확실했다. 나비효과를 결코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두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만약 너가 과거로 간다면 언제 어디서 뭘 가장 하고 싶을 것 같아?”


“오, 그거 엄청 신박한 상상인걸? 그 주제로 동화책을 써보는게 어때?”


이두나는 안나가 타준 커피가 들어있는 잔을 집어 올리며 재미있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토요일 오후 전으로 가고 싶을 것 같은데? 술먹고 길에서 잔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어.”


이두나는 장난스럽게 말하다 안나가 알게 모르게 초조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그녀가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더 과거로 갈 수 있으면, 전쟁 때 돌아가셨던 부모님을 어떻게든 다시 구할 거야.”


어머니의 얼굴에 슬픈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러자 안나는 괜한 얘기를 꺼냈다는 생각이 들어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녀의 고민 때문에 즐거워야 할 오늘의 시간을 망칠 수는 없었다.


“미안해, 괜히 쓸데없는 얘기를 했네. 그런 일들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이거 마시고 정오에 성탄종 울리는 행사 보러 가자.”


“그래.”


급격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때문에 딱히 답할 말이 없었던 이두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는 맛을 보고 나서 인상을 찡그린 뒤 설탕을 찾으러 부엌으로 향했다. 여러가지 일에 다재다능한 안나였지만 무언가를 조리하고 조제하는 데 있어서는 전혀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맛이 별로야?”


“아니, 그냥 좀 쓰네. 설탕 좀 더 넣게.”


“야 안돼! 단거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단 말이야.”


“흥! 꼭 엄마처럼 잔소리 하지 마. 내가 너의 엄마라면 그런 걸로 뭐라 하지 않겠어.”


안나는 기가 찼다. 미래의 어머니는 그녀가 한 다짐을 전혀 지키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딸은 어머니의 귀에 들리지 않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른이 되면 전혀 달라질걸.”


-----------------------------------------------


두 모녀가 아렌델 성 앞마당에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 있었다. 안나는 폐하께서 성탄종을 치는 모습을 반드시 가까이서 봐야 한다는 이두나에게 손을 잡힌 채로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질질 끌려갔다. 그들이 맨 앞줄에 도달하는 순간 정문이 열리고 환호성 속에서 왕이 등장했다.


“아렌델을 위하여!”


국민들이 일제히 경례했다. 아직은 할아버지 시대의 군국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는 사회였다. 아내와 둘째 딸도 왕을 향해 동시에 경례했다. 안나는 오른손을 들어 올린 채로 힐끗 어머니를 보곤 감탄했다. 그녀의 경례는 마치 군인처럼 날카로웠다.


“아렌델을 위하여, 크리스마스 시즌을 선포하노라!”


소년 왕이 성탄종을 울리며 힘차게 외쳤다. 국민들은 일제히 손을 내리고 환호성과 박수소리를 냈다. 하지만 안나는 성탄종 앞에 홀로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허전함을 느꼈다. 동시에 중년의 어머니와 아버지, 어린 엘사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옛날에는 저 자리에 가족들이 다 함께 있었지.’


“이제 그대들은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도록 하라.”


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국민들이 빠른 속도로 성 앞마당을 빠져나갔다. 아그나르는 멍하니 서서 자신의 국민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그를 지켜보고 있던 두 여인을 발견했다. 그는 이두나를 보고 신뢰와 인간미가 넘치는 환한 미소를 날리다 그의 옆에 있는 또 다른 여자를 발견하곤 당혹감을 느꼈다.


‘대체 저 사람은 누구지? 저렇게나 닮은 사람이 또 있을까?’


아그나르는 그렇게 생각하며 성에 최소한의 인원들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성 안으로 들어갔다. 안나는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이 너무나 쓸쓸하게 느껴지며 가슴이 얼어붙는 듯했다.


“폐하께서 너무 쓸쓸해 보이셔.”


“마음 같아선 폐하와 함께하고 싶지만 우린 저녁에나 그분을 뵐 수 있어.”


이두나가 슬픈 얼굴로 중얼거렸다. 왕은 매년 저녁에 열리는 파티 준비를 감독하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두나와 놀고 싶어도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이두나와 안나 역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두 사람은 아렌델 성 오른편에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커다란 너도밤나무가 하나 있었다. 그 나무는 옛날 동화책을 읽으며 서로의 진심을 나누던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품어주었던 그것이었다. 안나는 손을 들어 반사되는 햇빛을 가리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미 나무에 달기로 했던, 집에서 만들어온 여러 장식들을 꺼내 바닥으로 나열해 놓았다.


두 모녀가 한 시간 동안 열심히 나무를 장식들로 꾸미자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가 만들어졌다.


“정말 예쁘다.”


“와우, 환상적이야! 이제 눈사람 만들래?”


두 사람은 언덕 위에 쌓여있었던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을 모아 눈뭉치를 만들고 굴리기 시작했다. 몇 번 정도 눈뭉치를 굴리고 나자 약 50센티미터 정도 두께의 커다란 눈뭉치 두 개가 만들어졌다. 안나는 작은 눈뭉치 두 개를 더 만들어 발을 만든 뒤 커다란 눈뭉치를 쌓아올려 몸통을 만들었다.


“여기 나뭇가지 있어!”


이두나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나뭇가지 몇 개를 주워왔다. 안나는 그것을 받아 몸통 양쪽에 끼운 뒤 미리 챙겨온 당근을 꽂아놓고 단추를 밑에 달았다. 그녀의 오랜 친구와 똑같은 모습의 눈사람이 만들어졌다.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활짝 웃는 모습으로 두 모녀를 바라보았지만 포옹을 하려고 달려들거나 자기소개를 하지는 않았다.


“다 만들었다! 근데 눈사람치곤 좀 괴상하게 생겼는걸.”


새로운 친구를 처음 본 어머니의 솔직한 감상평이었다.


“이 친구가 바로 우리 집안의 전통이야.”


“이 눈사람이? 되게 바보같이 생겼다.”


“음, 생긴 건 볼품없어 보여도 상당히 착하고 귀여운 애야. 우리 언니가 처음으로 만들었어.”


“다시 보니 잘생긴 눈사람이네. 머리통에 달린 나뭇가지 세 개가 언니분의 미적 감각을 제대로 보여주는걸.”


이두나는 눈앞에 있는 눈사람의 창조자가 안나의 언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말을 바꿨다.


“그나저나 얘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올라프!”


안나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영 탐탁치 않아하는 표정이었다.


“올라프? 너무 흔한 이름이잖아. 찰스 같은 건 어때?”


“으, 그게 뭐에요? 제 이름은 올라프라고요! 전 따뜻한 포옹을 좋아하죠! 라고 올라프가 말하네.”


안나가 올라프를 마구 흔들며 그의 목소리를 꽤 비슷하게 흉내냈다.


“그래 알았어. 올라프라고 부를게. 안녕, 올라프? 우리가 널 만들었어!”


이두나가 해맑은 얼굴로 올라프에게 인사를 했다. 물론 올라프는 대답할 수 없었지만 꼭 그가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신나게 뛰어다니고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지껄이며 그녀의 주위를 빙빙 돌 것만 같았다. 이두나는 올라프가 원하는 대로 따뜻한 포옹을 해 주었다.


‘언니가 여기 같이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안나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두 사람은 눈사람과 역할극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안나에게는 이제 과거에 남아있는 1분 1초가 소중했다. 떠날 때가 점점 다가오니 어머니가 어떤 존재였고 그녀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흔적을 오랜만에 깨닫게 되어 안타까웠다. 시간이 흐르자 두 사람은 200년을 산 커다란 나무 밑에 나란히 앉아 아렌델을 내려다보았다. 안나는 그저 어머니와 함께 성탄절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말을 아꼈다. 지금 이 순간 가족과 함께 있다는 사실 외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두나가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직 저녁이 되려면 2시간이나 남았다. 안나는 어머니를 마치 부서지기 쉬운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싶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그녀가 겪게 될 비극적인 결말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과거를 바꾸고 싶은 욕망이 다시금 피어오르며 그녀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전 사실 미래에서 온 당신의 딸이에요! 그러니 잘 들으세요. 엄마는 24년 뒤에 아토할란으로 가려다 검은 바다에서 돌아가시게 돼요! 그래서 언니의 힘이 강해지기 전까지 그곳으로 절대 가시면 안돼요!’


어떻게 어머니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열여덟 살 소녀에게 이런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발설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성격상 그 사실을 믿어줄 수야 있겠지만 앞으로 아버지와 행복한 삶을 꾸려나갈 어머니에게 그런 불길한 말을 던져 괜한 걱정거리를 평생 안고 살아가게 하기는 싫었다. 사실 그녀의 가족에게 닥친 비극을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으면 언니의 마법부터 어떻게 해야 했지만 이건 그녀가 손을 쓸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안나는 작은 희망을 품고 해결책을 찾아내기로 했다. 그녀는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적은 뒤 그것을 접어 작은 상자 속으로 넣고 나무 밑의 땅을 팠다. 그리고 어머니를 깨웠다.


“일어나, 이두나! 이제 슬슬 파티에 참석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으응? 나 자고 있었구나...그래 얼른 가야지.”


“그전에 이것 좀 볼래? 타임캡슐을 만들었어.”


“타임캡슐? 그게 뭔데?”


“오늘날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어느 한 곳에 보관한 뒤 몇십년이 지나면 그것을 다시 보는 거야. 여기에 우리가 만든 장식들과 올라프가 그려진 종이와 20년 뒤의 너에게 내가 쓴 편지를 넣어두려고 해.”


“오, 굉장한 아이디어인걸! 나도 내 것을 넣어도 될까?”


“물론이지!”


이두나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겼던 브로치와 머리핀을 그 속에 넣었다. 그리고 파낸 땅을 다시 흙과 눈으로 메웠다.


“이제 이걸 20년 뒤에 열어보면 되는 거야?”


“그런 셈이지. 정확히 20년 뒤 성탄절에는 나도 너의 곁으로 올 테니까 약속을 꼭 지켜줘. 반드시 이곳으로 다시 오겠다고.”


“그래, 약속할게!”


안나가 오른손 약지를 내밀자 이두나는 왼손을 내밀어 서로의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무도회장에는 이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회장에 마련된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풍족한 저녁식사를 즐길 준비를 했다. 크리스마스 당번에 걸린 운 나쁜 시종들과 시녀들은 분주하게 무도회장을 돌아다니며 허드렛일을 계속했다. 아그나르는 파티장을 쭉 둘러본 뒤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그의 고질적인 두려움이 차오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는데...’


아그나르 특유의 소심함과 대인기피증이 다시금 도지려 했다. 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왕은 성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비병을 찾아갔다.


“아렌델을 위하여!”


“아렌델을 위하여. 자네가 오늘 저녁 근무자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전역을 불과 이틀 앞둔 비요그르먼 병장이 힘차게 대답했다.


“8시쯤에 이두나라는 이름의 여인이 무도회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성문 앞에 도착하면 짧게 성의 종을 두 번 울려라. 나는 그것을 신호로 알아듣고 지금부터 중대 발표가 있다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다. 나의 짤막한 연설이 끝나면 문을 열고 그녀를 들여보내라. 자네는 병장이니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믿네.”


“영광입니다, 폐하!”


그리스토프는 겉으로 당연히 그렇게 대답했으나 운 나쁘게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에 근무가 걸린 것에 불만이 가득 쌓여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왕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벤트까지 도와줘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있는 대로 났지만 그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했다.


“오, 닌센 공작! 당신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헌데 생각보다 좀 늦으셨군요?”


소년 왕이 빠른 걸음으로 오는 섭정을 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폐하. 소신이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겨서 좀 늦었습니다.”


“오셨으니 됐습니다. 자, 이제 들어가시죠.”


아그나르는 웃으며 말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늙은 대신에게서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 같은 눈빛을 읽어냈다. 왠지 모를 꺼림칙한 기분이 느껴졌다.


--------------------------------------------


“이거 입어볼래?”


안나는 전날 어머니를 위해 미리 사온 드레스를 번쩍 들어올려 이두나의 앞에 보여주었다. 화려한 무늬가 들어간 연보라색 이브닝드레스였다.


“어머, 너무 예쁘다!”


“얼른 입어봐. 입고 나면 내가 화장하는 것도 도와줄게. 온 국민이 다 모이는 자리에 가는 만큼 최상의 미모를 유지한 상태로 가야지.”


안나는 싱글벙글하며 어머니가 옷을 입는 것을 도와준 뒤 그녀를 자리에 앉히고 화장 단계에 들어갔다. 새햐얀 피부와 진한 갈색의 머리카락, 검정색 눈... 아버지가 왜 그녀를 평생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갔다. 안나는 항상 그 눈동자를 그리워했다. 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부드러운 어머니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었다.


“안나, 저기...”


“아...! 나도 모르게 그만...”


안나는 사과를 하려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왜 이러시지? 곧 깨달았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왜 그래? 너무 긴장하지 마. 무도회장까지 내가 같이 가줄게.”


“그게 아니라...저 뒤에서 누가 우릴 지켜보고 있었어!”


이두나의 말에 놀란 안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 건너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몇 분 동안 발걸음 소리도, 사람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짜로 사람이 있었어? 잘못 본 거 아냐?”


그 순간 안나의 뒤에서 창문이 부서지며 등으로 유리 파편이 쏟아졌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방을 가득 메웠다.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가 안나의 귀청을 찢어놓았고 곧바로 강력한 충격이 목덜미로 전해졌다. 안나는 저항을 하려고 주먹을 들어 올렸지만 복부에 전해지는 또 다른 충격 때문에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쓰러진 채로 수많은 검은 손아귀들이 이두나를 덮치는 광경을 목도했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 검은 물결이 집을 휩쓸고 지나갔고, 그 자리에는 쓰러진 안나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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