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무협의 강호는 성공의 현장이었지만 2세대 무협 작가들의 강호는 생존의 현장. 그래도 2세대 무협 작가들을 보면 소설 속 강호에 대한 낭만을 가지고 있지만 한상운에게는 그런 낭만도 일절 없는 상태. 속고 속이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한발짝 떨어져 보면서 썩은 새끼줄이라도 잡으려고 허둥지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낄낄대며 바라보는 게 한상운의 소설.

낄낄대는 걸 빼면 80년대 홍콩 영화인 성향기병 시리즈와 같은 식 정도.

비정강호는 개그가 없어진 변화가 있어도 소설 속 모습들은 한상운의 이전 소설들과 마찬가지. 그러다 특공무림 무렵부터 변하는 게 보이는데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낄낄대며 보면서도 바라보는 시선에 정이 있다는 점. 나이를 먹으면서 이전에 낄낄대며 바라보던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되어서인지 아니면 독기가 빠져서인지 아니면 세상에 대해 이전보다 애정이 생긴 건지 이유는 모르겠다만, 이전에는 벌레들 잡아놓고 서로 죽어라 싸우는 걸 바라보는 개구쟁이였다면 지금은 싸우는 곤충들을 다 살려서 풀어준다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