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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41.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247) 2019.04.18 20:50:00
조회 710 추천 7 댓글 1


41.
모처럼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일어난 월요일. 푹 잔 덕분에 몸도, 마음도 가볍기만 하다.

꿈결같은 주말이었다.
두 사람은 한 시도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꼭 붙어서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그러다 문득 안아주고..  미안했던 마음, 그리웠던 마음을 풀어갔다.
때때로 서진은 하나의 뺨을 만져본다. 혹시 꿈은 아닐까..
이 사람이 여기 내 곁에 있다,
굳이 확인하거나 불안해할 필요없이,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행복해하고 있다.. 처음 느껴보는 안도감이었다.


진주가 걱정할까봐 염려하는 하나를 대신해 서진이 전화를 걸자, 진주는 긴 말을 듣지도 않고 짐은 챙겨서 보내줄테니 하나를 집에 보낼 생각 말라는 얘기만 남기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집에 보내지.. 말라는데?"
약간 머쓱해진 서진이었다.
그러나 끝끝내 하나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진주의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행복했다. 오늘 출근하면 또 하나를 볼 수 있으니까. 만날 핑계를 찾지 않아도 된다.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해도 된다. 하나는 당분간 직원들 앞에서는 행동을 조심하자고 했지만, 서진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하나씨, 일어났어요?"
"네, 잘 잤어요?"
"아니, 마음이 허전해서 제대로 못 잤는데."
"목소리 들어보니까 아주 쌩쌩해요. 아주 잘 잔 것 같은데요?"
"오늘은 언제 얼굴 볼까요?"
"아, 진주 언니 나왔어요. 끊어요, 나중에 전화할게요."
"아니, 잠깐만! 그래서 오늘은 언제 볼 건데? 내가 출근할 때 들러도 되죠?"
"아녜요, 전 언니랑 따로 출근할게요.  대신에 꼭 전화할게요. 끊어요~"
"아니, 하나씨!"

황급히 전화를 끊는 하나. 하긴, 어젯밤에 진주의 집으로 돌아간 뒤에, 어찌나 통화를 길게 했던지 결국 진주가 이럴 거면 뭐하러 들어왔냐며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눈치가 보일 만도 하다.

"에구.. 또 통화냐?  이럴거면 뭐하러 들어왔어? 짐은 내가 보내준다니까..  좁은 우리 집에서 서로 불편하게 지내지말고 상무님네 대궐같은 집으로 들어가."
"언니, 미안해  당분간만 더 신세질게."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둘이 마음도 확인했고 오해도 풀었으니까 주말 내내 함께 지냈던 거 아냐? 근데 또 왜 망설이는건데?"

"언니, 실은  나.. 금요일에 회장님 만났어."
"회장님? 뭐라고 하셔? 구상무한테서 떨어지래?"
"말하자면 그렇지 뭐. 회장님이 날 불러서 말씀하시고, 나도 주제넘는 욕심 부리지 않겠다고 얘기했는데 단 하루 이틀만에 내가 상무닝 집으로 들어간 사실을 알게 되시면, 얼마나 괘씸하겠어."
"그것도 그렇네. 그래도, 회장님 허락만 기다리면서 세월 보낼 순 없잖아. 보통분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조금만 시간을 가져볼래.
그리고.. 상무님  집에 그냥 들어가는 것도 좀 염치없어. 빈 몸으로 들어가서 그 집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도 너무 얌체같고 혹시 상무님이 구설에 휘말리지 않을까 걱정도 돼."
"에휴, 뭐 그리 복잡하니? 마음 확인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나도 생각이 복잡해. 로빈은 혼자 몸이었는데 상무님은 가진 것도, 지킬 것도 너무 많아서 조심스러워."
"그러게.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마음맞는 좋은 사람이면 그만인데.. 그래도 하나야, 이번엔 조금만 욕심을 내 봐."
"응, 언니. 상무님이 날 그렇게 오랜 시간 기다려줬어. 나도 여기서 흔들리면 안 될 것 같아."
"그래. 이 기집애야. 그럼 얼른 아침 대강 먹고 출근하자."

"오늘 일정은 바쁜가?"
"아닙니다. 오전에 회의 한 건 있고요, 오후에 외부 미팅 있습니다."
"좋아, 나 잠깐 한바퀴 돌고 와서 회의 준비 좀 할테니 다들 볼 일 보세요."
영찬이 따라나선다.
"상무님, 어디가시는데요?"
서진이 멈칫한다.
"서커스단."
"네? 서커스단이요? 아하.. 장단장  보러 가시는 거에요? 참, 금요일엔 잘 만나셨어요? 그 밤에 전화걸어서 회식 어디서 하는지 알아보라고 저를 귀찮게 하시더니.."
"응, 덕분에."
웃음이 새어나온다.  늘 무겁던 마음이 모처럼 가볍다.
"하하, 축하드려요. 두 분 이제 다시 만나시는거에요?"
"응, 그러려고."
"정말 잘 됐어요.. 이번엔 정말 놓치시면 안 되죠. 그런데 상무님도 참 대단하시네요, 다른 사람 같으면 좋아서 엄청 들뜰텐데 겉으로 티가 하나도 안 나세요."
"그래? 나, 상당히 들떠있는데. 기분도 최고고."
그랬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 들뜨지 말자, 마음을 다져보지만 쉽지 않다.

"어?"
서커스단 창문으로 슬쩍 들여다보니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아직.. 출근을 안 했나?"
그때, 서진의 등에 기대는 가냘픈 인기척!
"?"
"나 보러 왔어요?"
하나다.
서진은 몸을 돌려 하나를  내려다본다.
"바쁘지 않아요?"
"바쁘지. 그래도.. 받을 건 받아야되서."
"받을거라뇨?"
몸을 살짝 굽혀 하나 코 앞에 뺨을 갖다대는 서진. 하나의 웃음이 터진다.
"상무님, 이런 분이셨어요? 너무 뻔뻔한데.."
"밖에서는 티 내지 말자면서요? 안 해 주면 다른 사람 지나갈 때까지 이러고 있을 거에요."
하나의 얼굴이 붉어진다. 허둥지둥 뺨에 입술을 대었다 떼더니 황급히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하나씨!!"
불러도 대답도 없이 쑥쓰러워 도망가 버리는 하나. 아쉽긴 하지만, 그 모습도 마냥 귀여워 서진은 웃고 만다.


"오늘 회의 준비합시다."
한껏 상기된 표정의 서진.
자료를 들고 들어온 영찬의 표정이 어딘지 편치않다.
"형, 무슨 일 있어?"
"저기.. 상무님, 좀 전에 회장실 김비서한테 전해들었는데요.."
지난 금요일에 하나가 회장실에 불려갔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하나씨가 부탁해서 그간 말씀 안 드렸는데요.."
하나가 떠나기 전 구회장과 만난 사실도 알게 되었다. 금요일. 유난히 어두웠던 하나의 얼굴이..
서진은 담담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래, 알았어.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그날의 일정이 끝나고, 서진은 회장실로 향했다.
"요즘 바쁠텐데 네가 왠일이냐?"
"하나씨 만나셨다 들었습니다."
"아니, 그걸 너한테 다 전했단 말이냐? 하긴 밀어내지 않겠다 운운할 때 이미  알아보고 조치를 취했어야하는데.."
"하나씨는 아무말 하지 않았습니다. 말했다면 제가 오늘까지 기다려서 아버지를 뵙지 않았겠죠. 회사에 보는 눈이 많아 저한테까지 얘기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발끈해서 아비를 찾아온 거냐?"
"아닙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목숨보다 돈이 더 소중하신 분이니, 저의 행복보다 체면이 더 중요하신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씨 불러들여 맘 아프게 하는 건 그만해주세요. 하나씨가 아니고 제가 그 사람이 필요해서  못 놓는 건데 하나씨가 떠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번에도 그녀를 잃게 되면 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생각입니다."
"내려놓다니, 뭘?"
"전에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 것이 아닌 것은 다 내려놓겠다고.  
그리고, 하나씨만 허락한다면 바로 혼인신고 하려고 합니다."
"이 녀석이, 여자 하나에 빠져가지고!"

"여자 하나라구요?  처음으로 누군가와 다정하게 웃으며 햇빛속을 걸어 봤습니다. 처음으로 두려움없이 악몽 없이, 잠에 들었어요. 나의 밤과 낮, 온전한 하루를 찾아 준 여자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창고에 납치된 저를 구하러 온 여자입니다. 지금까지는 부모님의 자식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그 사람을 위해 살아보려고 합니다. 부모님의 허락없이 결정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도저히 용서가 안 되신다면 원더랜드 리오프닝 행사까지만 마무리하고 사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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