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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리뷰 : 逆鱗; 거꾸로 솟은 비늘

이응(119.204) 2020.03.08 00:05:03
조회 393 추천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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逆鱗 ; 거꾸로 솟은 비늘




역린(逆鱗) : 용은 성질이 유순하므로 길들이면 탈 수도 있다.
그러나 턱 밑에 길이가 한 자나 되는 ‘거꾸로 솟은 비늘’이 있으니,
용을 길들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만약 이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를 죽인다.


시진은 하룻밤 내내 보이지 않는 모연을 찾아다니다 의료팀 막내 간호사에게 아주 불길한 대답을 들었어.

그녀가 파티마와 함께 현지 경찰서에 갔다는 것.

현지 경찰과 아구스의 커넥션을 알고 있는 시진에게 그 대답은 절대 반가운 말이 아니었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디로 가야 그녀를 찾을 수 있는지,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시진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그렇게 무작정 차를 몰고 중대를 나왔는데 모퉁이를 돌아선 그의 차 앞에 여자아이 한 명이 불쑥 나타났어.

모연과 함께 사라진 파티마였지.


가까스로 아이를 피해 차를 세우곤 뛰어나온 시진이 파티마에게 달려가던 그 순간, 날아든 총알이 아이의 허벅지를 관통했어.

쓰러지는 아이를 감싸안은 그의 앞에 나타난 남자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포박당한 채 서 있는 모연.

그녀의 머리에 총이 겨누어져 있었어.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반사적으로 겨누고 있던 총을 시진은 즉각 내려놓았어.

이들은 파티마를 구하러 갔을 때의 그 어리숙한 소년들이 아니야.

총을 들고 있는 남자들 사이에서 모연과 총 맞은 파티마까지 그가 무사히 데리고 탈출할 수는 없어.

그것도 모연의 머리에 총구가 들이대진 상황에서는 시진은 그 어떤 것도 시도할 수 없지.

바로 다음 순간 모연의 머리에 총알이 관통할지 모르니까.


그가 총을 내려놓길 기다렸다는 듯 달려온 세 대의 차량.

우르르 쏟아져 나와 그에게 총을 겨누는 남자들. 그리고 그 중 한 대에서 그 놈, 아구스가 내려섰어.

그리고 그에게 악몽이 시작됐어.


아구스는 어슬렁거리며 주저앉은 그와 파티마의 옆으로 다가왔어.


“/많이 다쳤네? 어쩌나? 저 의사 선생은 지금 진료 못 하는데./”
“/그 손 치워./”
“/상황 파악을 못하네. 죽고 싶어? 아님 니 여자 죽이고 싶어?/”


시진은 이 모든 상황을 꾸민 아구스를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놈을 자극하지 않는 것뿐이야.


어제부터 아니, 그의 약점이 모연이라는 걸 알고부터 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계획했을 놈을 생각하니 시진은 스스로가 참을 수 없이 끔찍해져.


왜 그토록 안일하게 행동했는지, 저번 날 도깨비마을에서 죽어버리게 둘 것을 결국 그는 또 후회할 짓을 한 거야.


아니, 그 전에 모연과 만나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원하는 게 뭐야./”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일 얘긴 남자들끼리 하는 게 좋겠지?/”


아구스의 수신호에 따라 패거리들에게 떠밀려 모연이 자리를 뜨기 시작하자 시진은 본능적으로 쫓아가려다 멈추었어.

지금 그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놈의 차 안으로 던져지듯 떠밀리는 그녀를 보고 있을 수밖에…….


아구스가 원하는 대로 모든 상황이 흘러가고 있어.


시진을 무력화할 킥으로써 너무도 훌륭한 역할을 해주는 모연 덕에 시진은 아무 저항도 못하고 그저 아구스의 말을 들어야만 해.

아구스는 고분고분해진 빅보스의 태도가 다른 그 무엇보다 만족스러웠어.


“/거래가 끝남과 동시에 내가 이 나라를 뜰 수 있는 방법을 가져와.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내 퇴로 확인. 예전처럼 또 한 번 나를 구해 내란 얘기야, 캡틴./”


아구스는 완벽하게 거래의 우위를 점한 이 상황에 으스대며 명령했어.


“/퇴각 시각은 오늘 새벽 두시. 빨라도 안 되고, 늦어도 안 되겠지? 내가 저 여자를 개인적인 원한을 이자로 얹어 아주 싼 곳으로 팔아넘길지도 모르잖아?/”
“……넌 내 손에 죽는다. 내 모든 명예를 걸고, 반드시 넌 내 손으로 죽인다.”


시진에게도 ‘역린’이라는 게 있어.

누구도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거꾸로 난 비늘이 있다고.

너무 아파서 그 자신도 함부로 만지고 건드릴 수 없고 절대 뽑아낼 수도 없는 그런 비늘 한 조각 말이야.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반드시 그를 죽여야만 끝을 낼 수 있는 끔찍하게 아픈 그 부분을 아구스는 가차 없이 쑤시고 헤집었어.


더는 눈감아줄 수 없었어.

놈을 죽여야 했어.


그의 가장 큰 약점을 쥐고 거들먹거리는 저 쓰레기를 시진은 더 이상 동정할 수도 두고 볼 수도 없어.


모연이 점점 멀어질수록 시진은 지옥불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어.

지옥불에 타고 있는 땅 위를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천천히 걷고 있는 것처럼 몸 전체로 불이 붙어 화형을 당하는 기분이야.


점점 멀어지는 시진의 모습에 모연은 울고 또 울었어.

옆에 앉은 비열한 납치범에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려주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묶인 손으로는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낼 방법이 없었어.


그녀의 관자놀이에 들이대진 총구를 보자마자 연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총을 내려놨어.

열댓 명의 남자들의 총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 것도 아랑곳없이 그는 자신을 지킬 유일한 방어수단을 포기했어.

오로지 그녀를 향한 총구를 거둬놓게 하기 위해서…….


언제라도 총을 쏠 준비가 되어 있는 남자들 사이에서 스스로 무방비해진 그를 보면서도 모연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그녀에게 허락된 건 오직 하나, 고통으로 붉게 충혈된 시진의 눈을 바라보고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는 것, 그것뿐이었어.


지난 밤 ‘라이언 일병’과의 거래 현장으로 향하는 그를 보내며 그녀는 말했었어.


-유대위님도 유대위님 잘 부탁합니다. 제가 진짜 많이 좋아하거든요. 오면 말해주게요.


모연은 그 말을 하며 시진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많이도 불안하고 무서웠어.

하지만 어젯밤 그녀가 바란 것은 시진의 무사귀환이었지 자신의 안전이 아니었어.

그가 없는 사이 그녀의 안전이 위협 당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어.


“/우르크에선 좋은 기억이 많아. 당신은 마지막 밤에 어울리는 여자고./”


모연은 손에 묻은 끈적한 피를 닦으면서도 웃고 있는 아구스의 옆에 앉아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어.

겁먹은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이 다잡아지질 않았어.


모연이 두려움을 거듭 삼키는데, 그 순간 새까맣게 잊고 있던 그녀의 주머니 안 무전기에서 시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어.


+빅보스 송신.+


시진은 너무 멀어져서 그의 무전이 닿지 않게 되기 전에, 그의 연인에게 해줄 말이 있었어.


무전기를 그녀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시진은 그녀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그녀에게 약속하듯,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했어.


+강선생.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요. 내가 반드시 찾고, 내가 반드시 구할 겁니다.+


차창너머로 멀어지던 모연의 눈물, 그 영원 같던 순간.


여전히 울고 있을 사람이라 가슴이 무너지지만, 겁에 질려서 덜덜 떨고 있을 모연에게 시진은 그의 모든 것을 걸고 지킬 약속을 해.


+알죠. 나 일 잘하는 남잔 거. 금방 갈게요.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울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갈게요.+


어떻게든 참아보려던 눈물이 시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모연의 뺨으로 마구 흘러내렸어.


알겠다고, 알았다고, 의연하게 기다리겠노라고 모연은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끄덕였어.


“/나도 널 응원해, 빅보스./”


그녀의 주머니를 뒤져 무전기를 찾아낸 아구스가 깜찍하게도 여태 이런 걸 숨겨두고 있었냐는 듯 그녀를 조롱하고는 무전기를 차창 밖으로 던져버렸어.


수틀리면 언제든 그녀의 머리를 날려버릴 총을 가진 남자의 옆자리에서 모연은 자기자신의 생존을 걱정하는 동시에 자신을 구하러 올 남자가 처할 죽음의 위기를 떠올리며 슬퍼했어.


뒤편으로 날아가 산산조각이 나 부서지는 무전기가 마치 이제 다시는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시진의 목소리처럼 슬프고 아득해.


* * *


모연을 안전하게 구출하기 위해서는 군의 공식적인 명령이 절실히 필요했어.

공식 명령이 있어야 지원도 있을 거고 정예의 구출팀이 꾸려질 수 있을 테니까.


다행히 부대에 인질구출에 누구보다 베테랑들인 알파팀이 파병 와 있었고 공식 명령만 내려진다면 모연에 대한 구출도 성공적이 될 확률이 높았지.


그러나 윗분들의 생각은 달랐어.


“야, 이 미친놈아! 정신 안 차려? 인질 구출? 너 지금 전투복에 부대마크 뭐 붙었어! 니가 지금 알파팀이야? 너 지금 파병 군인이야. 평화재건 하러 온 공병이라고!”
“꼭 가야 합니다. 가겠습니다.”
“가긴 어딜 가! 대기해. 명령이니까 대기하라고!”
“제 앞에서 제 눈앞에서……, 가야합니다. 갔다 오겠습니다.”


바로 눈앞에 모연이 있었는데도 그녀를 구할 어떤 것도 시도하지 못했던 그 순간, 그가 지켜보는 앞에서 끌려가던 그녀의 모습이 시시각각 그를 괴롭혔어.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어.

약속한 시간까지 닿지 못한다면 모연을 구할 길을 영영 요원해지겠지.

시진은 눈앞이 캄캄해지는데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


“이거 보여, 안 보여. 아까부터 깜빡거리는 거 보여, 안 보여! 2번 사령관님 3번 청와대 연결이야. 어떡할 거야!”


박병수는 찍소리라도 냈다간 사생결단을 내버리겠다는 눈초리로 무언의 협박을 하며 수화기를 들었어.

군인이기보다 정치인이고 싶었던 건지 그가 받은 전화는 2번 사령관이 아닌 3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것이었지.


“단결. 태백부대 1대대장 중령 박,”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입니다. 본론부터 얘기하죠. 납치가 맞습니까?”


더 들을 것 없다는 듯 말꼬리를 날카롭게 잘라내고 들어온 외교안보수석 이한수는 거만하게 물었어.

아주 느긋한 말투로.


박병수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글거리는 시진에게 거듭 입 다물라는 사인을 해댔어.


“납치까진 아니고 상황이 좀 비슷하게,”
“납치 맞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시진이 결국 박병수의 보고를 가로챘지만 이한수는 요지부동이었어.


“확실해요? CIA채널로 들리는 얘긴 좀 다르던데?”
“납치 맞습니다. 상대는……, 상대는 십사오 명에 전원 무장했고,”
“상황보고는 미군 쪽 브리핑 들을 거니까 됐고.”


시진은 절로 높아지는 언성을 가다듬고 애써 냉정하게 객관적인 상황보고를 하고자 했지만 이 막사 안 어느 누구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어.

제 나라 군대가 아닌 딴 나라 군대의 보고를 더 중히 듣겠다는 말을 하는 이한수는 참 점잖게 뻔뻔했지.


“앞뒤 상황 확실해질 때까지 1급 기밀 유지하고 다들 대기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대기할 시간 없습니다! 이렇게 낭비할 시간이……!”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어.

국가는 지난번 모연의 의사로서의 인생을 망치려 했던 걸로 모자라 이제 그녀의 목숨까지 거두어갈 참이었어.


“유사시 운용지침에 따라 인질구출 작전 개시하겠습니다.”
“뭘 해요? 입단속하면서 대기하란 내 말이 안 들립니까? 이봐, 유대위. 지난번 아랍 VIP 건도 그렇고 좋게좋게 넘어가 주니까 청와대 수석 말이 우습습니까? 이러라고 조국이 당신 손에 총 들려줬는지 알아!”


이건 절대 국가를 위한 일이 아니야.

결단코, 절대로 이건 애국의 길도, 그 발끝에라도 닿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그러나 넥타이를 맨 정치인의 눈에는 자신의 길이 바로 애국지사의 삶이었어.


“이건 한 개인이 죽고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문제라고!”


진영수같은 개새끼도 구하던 국가가 미국과의 외교가 중간에 끼었다고 해서 나라를 위한다는 위선적인 명분 아래, 한 사람의 무고한 목숨까지도 아무것도 아닌 파리 목숨으로 여기고 있었어.


국가 안보? 중요하지. 국가 간 외교? 중요해.

시진도 그걸 알기 때문에 그 동안 국가의 조금은 비겁한 결정을 눈감아 왔던 거야.


아구스가 이끄는 갱단의 무기밀매를 눈감아주는 우르크 경찰들의 부패함을 국군이 모른척한 것.

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으로는 그 이해관계 복잡한 커넥션을 끊어낼 수 없다는 것을 시진도 알기 때문에 그는 군의 그 결정에 복종했어.


도깨비마을 아이들을 도로 아구스에게 넘긴 것을 비롯해 놈이 저지르는 악행을 저지하지 말라던 명령.

아구스에게 이용가치가 있고, 그 이용가치가 사라지고 나면 그를 축출해 낼 것이라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시진도 결국 그 명령에도 복종했던 거라고.


지금 당장은 못 해내더라도 추후에 이를 해결할 의지가 보였기 때문에 시진도 그때의 명령에 따랐던 거야.


하지만 지금의 인질 구출은 그것과 완전히 다른 상황이야.

주어진 시간 내에 모연을 구하러 가지 못하면 추후의 해결책? 그런 건 없어.

그냥 끝,

그대로 모연의 온전한 삶은 끝이야.

그대로 목숨을 잃거나 매음굴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야 하겠지.


고작 외교적 편리와 개인의 이기심 충족을 위해 희생하기엔 한 사람의 인생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아.


CIA작전은 본래가 이랬어.
‘아망대령과의 무기밀매 거래를 하는 아구스를 모르는 척 하고 있다가 성공적으로 거래를 마친 놈이 그 거래금을 들고 외국으로 도망가기 전에 잡는다.’


아구스가 시진에게 제시한 거래는 이랬지.
‘나는 오늘밤 있을 무기밀매를 마지막으로 이 나라를 뜬다. 미군이 그것을 저지하려 하니 빅보스 네가 날 탈출시킬 방법을 가지고 와라. 방법을 가져온다면 네 연인을 풀어주겠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늦으면 협상은 없다.’


무기밀매를 마친 아구스를 잡는 것이 미군의 목표이고, 밀매를 마친 뒤에 시진과 아구스의 거래가 시작되는 것이니 두 나라가 상호간에 협조만 잘 한다면 인질로 잡힌 모연을 구출하고 놈까지 잡을 수도 있었어.

그런데 이한수는 그저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그걸 하지 않기로 한 거야.


우리 국민의 목숨을 구해야 하니 협조 좀 합시다, 라고 미국에 공문을 보내면 미국 입장에서 우리가 그것에 협조하는 대신 한국에서는 무엇을 우리에게 줄 것이냐를 거래하려 할 수 있으니 그런 외교적인 거래를 하고 싶지 않았던 거지.


그런 거래 없이 여자 하나 죽으면 쉽게 끝날 일인데, 나라 간에 서류 오가며 제가 외교대사 만나가며 머리 쪼개지게 시간 낭비 할 일인가 싶었겠지.

운 좋으면 CIA가 여자를 구출해올 수도 있는 거고. 못 구해와도 어쩔 수 없고.


그땐 그냥 넥타이 거무죽죽한 거 골라 매고 플래시 팡팡 터지는 카메라 앞에서 적당히 우울한 표정에 참담한 마음 금할 수 없다는 멘트 몇 마디 떠들어 주면 기자들이 알아서 잘 써줄 테니까.


그런 간단하고 쉬운 길을 두고 왜 돌아가느냔 말이야.

이한수의 작디작은 그릇에서 나올 수 있는 한 생명에 대한 애도는 그 정도로 충분했어.


그 모든 일들이 국가적 차원의 문제라는 번듯한 명분 아래 이루어질 것이 시진의 눈에 선연히 보여.

잔인한 목소리만 흘러나오는 이 잿빛 전화기 앞에서 아무리 설득하고 애원해도 국가는 절대 그를 돕지 않을 거야.

그것을 뼈저리게 통감한 시진이 나지막이 말했어.


“개인의 죽음에 무감각한 국가라면 문제가 좀 생기면 어때.”


국민을 구하지 않는 국가라면 망해버리라지.

확 망해서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된대도 시진은 더 이상 관심 없어.


더 이상 이곳에 그의 조국은 없어.

옳고 바른 것이라면 죽을힘을 다해 지키라고 가르치던 조국은 이제 여기에 없어.

어쩌면 오래 전부터 그랬을지 모르지.

이제야 비로소 그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민낯을 보게 된 건지도…….


무너져 내린 하늘에 저절로 굽어진 허리로, 시진은 고통스럽도록 담담한 목소리로 그의 ‘옛’ 조국에 작별을 고했어.


“당신 조국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난 내 조국을 지키겠습니다.”


미인과 노인과 아이는 보호해야 한다는 믿음.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고딩들을 보면 무섭긴 하지만 한 소리 할 수 있는 용기.

관자놀이에 총구가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닌 상식.

그래서 지켜지는 군인의 명예.


그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지켜낼 의지를 잃지 않으려 시진은 자신을 다듬어왔어.

그가 생각했던 애국심이란 그런 것이었고, 동시에 조국이 지키고자 한 것이 그것이라고 여겨왔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 믿음은 변함이 없었어.


하지만 조국이 그와 같은 것을 지키고 있다는 믿음은 결국 그의 착각이었던 거지.

너무 오래된 착각은 오늘에 와서 그로 하여금 사랑하는 연인을 잃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했어.


이제 그녀를 구하러 가야해.

그 누구도 돕지 않을, 그의 생애 마지막 작전일지도 모를 살아 돌아오지 못할 전장으로…….


시진은 뒤에서 핏대를 세우며 그를 불러 세우는 대대장의 부름도 무시하고 신물 나는 막사를 뛰쳐나왔어.

하얗게 질린 낯빛으로 본진을 나서는 그의 차 앞으로 초소의 입구가 닫히고 위병들이 달려들었어.


“멈추십시오. 대기하시랍니다.”
“저 문 튼튼하냐? 내가 차를 몇 번 해먹어봤는데 저 정도는 부서지더라.”


금방이라도 그들을 밞고 지나갈 듯 부릉대는 차 보닛 앞에서 주춤대는 위병들을 여차하면 치고나갈 생각으로 시진은 기어를 당겼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다치기 싫으면 비켜라. 난 그냥 밀고 나갈 생각이다.”


그가 막 엑셀을 밟으려던 순간 뛰어온 위병 하나가 사령관의 전화라며 전화기를 내밀었어.

잠깐 망설이던 시진은 존경해온 상관에 대한 마지막 예의로 전화를 받았어.


“단결. 대위 유시진.”
“딱 세 시간이다.”
“…….”


앞도 뒤도 없는 말이었지만 시진은 곧바로 상관의 뜻을 알아챘어.


“그 세 시간동안 난 네 행방을 모른다. 그 세 시간동안 넌 알파팀도, 태백부대 모우루 중대 중대장도, 대한민국 육군 대위도 아니다. 이의 있나.”
“없습니다.”
“이상.”
“단결.”


대대장실의 전화기를 울리던 2번 라인은 3번과 같은 뜻이 아니었어.

길준은 시진에게 단독작전을 명령해주기 위해 계속해서 전화벨을 울렸던 거야.


사령관은 세 시간 동안 모든 준비를 마치고 부대를 빠져나가라고 말하고 있었어.

그 시간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것을 모른 척해 주겠다고.


아무도 돕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시진의 짐작은 틀렸어.

이 순간 적어도 한 명은 그를 응원하고 조력하고 있었어.

그가 군인이 된 후, 그의 궁극적 믿음을 언제나 올곧게 지켜주시던 상관은 오늘도 그를 저버리지 않았어.


그것이 유시진을 다시 군인으로 돌이켰어.

국가와 군에 지독한 환멸을 느끼고 군복을 벗으려던 시진을 길준은 한 통의 전화로 다시 군인으로 만든 거야.


내가 지키는 조국과 같은 조국을 지키는 상관이 적어도 이 세상에 한 사람 있구나.

이 분의 명령이라면 나는 앞으로도 군인의 길을 갈 수 있겠다.

시진은 그렇게 생각했어.


시진은 그렇게 한 나라의 군인으로서, 연인을 구하고 싶은 한 남자로서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단독작전을 시작했어.



이어지는 글 : 살아 돌아오지 못할 전장

수정 전 : 가야합니다. 갔다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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