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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훈 에세이] 남대문과 남산이 끙끙 앓는 소리

운영자 2005.12.30 22:37:35
조회 2494 추천 0 댓글 3

 2. 서울을 향한 좌절과 희망

  남대문과 남산이 끙끙 앓는 소리  

  미국에서 귀국한 뒤 조경공사 초대 고문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조경에 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이었다. 미국의 ‘Landscape Architecture’로 한국의 조경을 본다면 근본적이고도 새로운 정립이 필요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생긴 한국종합조경공사는 나무를 심는 사람, 즉 원예를 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있었다. 나무를 심는 것은 조경의 일부분인 식재 분야이지 조경이란 개념 전체를 포괄하는 분야라고는 할 수 없다. 조경이란 건축물의 외부 공간을 처리하는 일인 동시에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그리고 공원 조성, 환경 설계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선진국의 사례도 예로 들었지만 한국 고유의 조경의 예를 들면서 우리 조경의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한국종합조경공사 초대 상임 고문으로서 첫 과제는 서울 중구의 응봉 공원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남산의 아름다운 산세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살리기 위해 최소한 70% 이상의 고지대는 다시 자연 상태로 되살려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도시 공원을 꾸미도록 했다.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똑같은 여유를 갖고 쉴 수 있는 ‘도시의 하늘 공원’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한국에 오자마자 어이없는 소식을 들었다. 다목적댐인 안동댐이 건설되는 바람에 도산서원이 수몰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나는 기가 막혔다. 이퇴계 선생의 도산서원이 훼손되다니……. 나는 그 일로 오랜만에 지방 출장에 나섰다. 나중에 서울 시립대학교 교수가 된 이규목 조경공사 과장을 비롯해서 예지(叡智)와 열정을 가진 직원들을 통해 다행히 서원 정비 및 주변 조경의 기본 구상이 세워졌고, 오늘날 도산서원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기여를 했다. 나는 그곳에서 글을 가르치고 읽던 선비들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정성을 다해 조경 설계 기본 구상을 마무리했다.

  비록 수장(水葬)은 아니더라도 또 가슴 아픈 예는 이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 사당이 있는 강릉 오죽헌에서 있었다. 오죽헌 경내에는 청사초롱 같은 옛 모습에다 안온한 빛을 내는 전통적인 모양의 등이 제격일 텐데, 도시 한복판에서나 볼 수 있는 철제 가로등을 경내에 설치하여 빛의 밝기마저 대낮처럼 환하게 해 놓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내에 심은 가이쓰가 향나무는 우리 전통 정원에서는 볼 수 없는 수종(樹種)인데, 그나마 몇 차례나 옮겨 심어서 다 죽어 가고 있었다. 높은 직책의 관리들이 와서 조경을 한다면서 산 나무를 마구 옮겨 심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바닥에도 콘크리트 블록을 깔아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물론 현대적인 요소가 전통적인 요소와 격돌하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나는 도산서원과 오죽헌 작업을 통해 이 같은 전통을 해치는 몰상식과 부조화가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질러지는 것을 보고 아직 갈 길이 멀고도 멀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것은 분명 문화에 대한 모독이자 역사에 대한 범죄였다. 나는 내 힘 닿는 데까지 그런 모독과 범죄를 막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번은 보험 회사에서 사옥 설계를 맡아 달라는 의뢰를 해 왔다. 그런데 그 사옥이 들어설 곳이 남대문 바로 옆이었다.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는 것에 더 기가 막혔다. 남대문은 국보 1호이자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축물인데, 그 코앞에다 수십 층의 현대적인 건물을 세운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지만, 그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비웃으며 이렇게들 말했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이상에만 치우쳐 가지고 …….” “저 사람이 하지 않아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할 텐데 …….”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대문 앞에 큰 건물이 들어서는 게 뭐가 문제냐는 식이었다. 그 사이에 땅을 파고 기둥을 박고 건물을 세우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강행되었고, 우리의 불쌍한 남대문은 잠시도 쉬지 못한 채 밤낮으로 먼지와 소음과 진동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도산서원과 오죽헌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 남대문이 끙끙 앓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나도 덩달아 신음 소리를 내며 끙끙 앓고 있었다. 사대문 안을 ‘21세기 서울의 도심’이라고 생각하며 무턱대고 개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문가 집단의 그릇된 개념 자체가 나를 앓게 만들었다. 어떤 유명한 도시 계획 교수는 심지어 내게 설득조로 이런 말까지 했다.

  “남산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굴을 파도 소용없으니 아예 통째로 없애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서울의 도시 계획이 제대로 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앓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었다. 이 같은 현실을 보며 나는 1979년에 직접 설계 및 조경 전문 회사, ‘사람과 환경’그룹을 설립해서 대표이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환경’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이 잘살 수 있도록 더 좋은 환경을 만드는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회사’라는 의미였다. 모든 삶터 만들기는 결국 사람을 위해서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든 이름이고 회사였다. 아울러 사람을 위한 환경, 아름다운 삶터를 만들기 위한 나의 새로운 꿈의 터전이자 일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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