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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훈 에세이] 고르바초프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

운영자 2006.01.24 20:43:17
조회 2551 추천 0 댓글 5

  3. 평화, 멀고도 험한 길

  
고르바초프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

  서울 올림픽의 성공 여부는 동서를 막론하고 전세계 모든 국가를 서울에 모이도록 하는 일에 달려 있었다. 이를 위해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바로 소련의 당서기장 고르바초프였다. 만약 그를 만나 서울 올림픽 참가 약속을 받는다면, 사실상 소련이 주도하고 있는 공산권의 모든 국가의 참가를 보증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일단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전달할 영문 편지를 썼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당신은 현재 소련의 개방(glasnost)과 개혁(perestroika) 정책을 주도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결코 서울 올림픽을 보이콧하지 않을 것을 믿으며, 또 그렇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한국은 소련과 미국의 동서 이념의 벽 때문에 남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부디 소련이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여 그 냉전의 벽을 허무는 데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고나자 그 편지를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문제였다. 반드시 그가 직접 읽도록 해야 할 텐데, 그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나는 그 쪽과 줄이 닿아 있는 한 외국인 친구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나라와 한국의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나도 한번 마음먹은 일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가 거듭거듭 부탁을 하자 그는 “우선 나부터 설득을 해보라.”고 했다.

  “나는 1972년 뮌헨에서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열릴 올림픽을 꿈꾸어 왔다. 사실 그 동안 올림픽은 많은 시련과 파행을 겪어 왔다. 1972년에는 회교도의 검은 9월단(Black September)이 이스라엘 선수촌을 총격한 테러 사건이, 1976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어나고 있던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Apartheid) 문제가, 1980년과 1984년에는 동서 이념 문제가 ‘올림픽이 평화의 제전’이라는 취지를 흐리게 했다. 그런데 이제 서울 올림픽도 소련과 동구권이 보이콧할 가능성이 큰데, 그렇게 되면 올림픽 자체의 의미가 뿌리째 흔들리고 또 남북 분단의 현실도 더욱 고착될 것이 뻔하지 않느냐. 지금 부탁을 하는 것이 누구를 해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민족의 염원에서 나온 것임을 알지 않느냐?” 내 설명을 들은 그는 마침내 허락을 했다. 그는 자기 오른손을 들면서 나에게도 오른손을 들고 맹세를 따라하도록 했다.

  “오늘 말한 것을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발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이런 선서를 한 다음, 나는 편지를 건네 주었다. 편지를 받아서 그는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책상 서랍에 넣은 뒤 다시 두 가지 조건을 달았다.

  “이 편지를 전달할 테니 어떤 경위로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전달했는지 의문을 갖거나 질문하지 말 것, 그리고 오늘 당신은 여기 오지 않았고, 나를 만나지도 않은 것으로 할 것.”

  그의 집을 나오자 구름 위에라도 올라 탄 듯 몸이 가벼웠다. 서울 공기가 갑자기 신선하게 느껴졌다.

  편지를 전달한 후 곧바로 남산 기슭에 사 놓은 170여 평의 땅에다 집 한 채를 짓기 시작했다. 수중에 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저렴하게 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정성스럽게 집을 설계했다. 집을 지으면서 또다시 고르바초프에게 편지를 썼다.

  “지난번 편지를 잘 받으셨는지요? 저는 정부 조직 속에서 일한 적도 없고 정치에 관여한 적도 없는 대학 교수 출신의 도시 건축가입니다. 오직 올림픽의 성공과 평화를 염원하는 이외에 다른 어떤 정치적인 의도도 없으니 저를 믿어 주십시오. 저는 그 동안 제 능력과 정성을 다해 서울의 아름다운 산기슭에 집을 한 채 지었습니다. 올림픽 개최 기간 중 IOC 본부인 신라 호텔이 가까운 곳에다, 당신이 올림픽 때 서울을 방문하게 되면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은 집입니다. 서울시장과 의논해서 안전상의 문제도 다 보장해 두었습니다. 부디 당신의 나라 선수단과 함께 한국에 오셔서 올림픽의 21세기적 의미를 더하도록 해주십시오.”

  보안 관계에 대해서는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염보현 선배와 이야기를 나눴다. 만약에 고르바초프가 온다고 확정되면 그 집에 별도의 길을 건설하는 것도 협의했다. 지형과 거리를 보아 예산은 극히 조금만 들이면 됐다. 나는 역시 지난번과 같은 방법으로 편지를 전했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그 친구는 내가 편지의 내용을 설명하자 말없이 편지를 받아 들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1988년을 기다렸다. 그 꿈과 평화의 제전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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