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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플) Sweet Dream 9

oooo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3.24 07: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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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숨을 몰아 쉬며 눈을 뜬 송이는 제 어깨를 붙잡고 있는 휘경을 낯선 사람처럼 쳐다본다.

 

송이야! 어디 아파? 정신 차려!!”

“...........”

 

창백하게 질린 채 식은 땀을 흘리는 송이.

 

괜찮아? 꿈꿨어?” 긴장한 휘경의 음성이 이제야 그녀의 귀에 들리기 시작한다.

 

...

그 무섭고 기이했던 느낌이 꿈이었나?

잠에서 깨어나듯 송이는 서서히 정신이 든다.

 

아무 것도 아냐... 이거 놔....” 휘경을 밀어내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는 송이.

 

송이의 비명에 놀라 웅성거리며 일어섰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 앉기 시작하자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응시하던 민준도 천천히 제 자리에 앉는다.

세미는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던 민준이 기가 막혀 팔짱을 낀 채 그를 째려 보았지만

민준은 그녀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다.

 

땀이 베인 손으로 초조하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민준.

부연 구름에 가려 창밖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여기가 어디쯤인지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아득한 그 옛날,

평화로운 부락과 코스모스처럼 예뻤던 부락 족장의 딸.

무시무시한 칭기즈 칸의 군대에 짓밟힌 마을은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폐허가 된 마을을 돌아다니며 칸의 군사들은 잔인한 약탈을 자행했다.

불타버린 집들을 망연자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 여자,

들꽃처럼 처연한 그 여자의 아름다움에 반한 칭기즈 칸은 그녀를 포로로 삼아 하얀 말에 태웠다.

 

몽고 기마병의 최고 전사로서 칸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장수였던 나는

그 여자를 처음 본 순간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거센 소용돌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들었던 그녀와 나.

포로들을 거느리고 궁으로 돌아가던 긴 여정 속에서 우리는 칸의 눈을 피해 미칠 듯 절절한 사랑을 나누었다.

세상의 모든 여자를 가질 수 있어도 그 여자는 가질 수 없는 여자였는데.

천하를 호령하는 제왕, 칸이 마음에 둔 여자를 감히 나는 사랑했다.

절대 사랑해서는 안되었던 그녀를 나는 목숨을 걸고 사랑했다.

 

모든 걸 알게 된 칸의 불같이 진노했던 표정.

그녀는 칸의 여자였고, 나의 정혼자는 칸의 딸이었다.

가장 아끼던 부하였던 나를 한칼에 베어버리던 칸의 무서운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몽골의 드넓은 초원에서 그 여자를 그리며 죽어가던 내 모습.

가슴을 조일 듯 숨이 차올라 크게 심호흡을 하며 나는 눈을 감는다.

오천년의 세월을 낱낱이 겪어야 했던 이틀 전, 그 밤의 기억이 광풍처럼 몰아치며 나를 괴롭힌다.

 

나는 비극적인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잔인하게 끝나는지 모두 지켜 보았다.

그날 밤 내내....  나는 우리의 수많은 전생을 보면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나같이 처절하고 비극적이었던 사랑들.

 

운명은 잠파노였던 전생의 기억 만을 내게 돌려 주었는데.....

그런데 나는 왜 모든 전생들을 봇물처럼 기억해 버린 걸까.

 

몽골의 초원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나를 찾아온 그 여자.

눈물을 쏟으며 내 시신을 끌어안는 그녀를 보며 나는 넋을 놓았다.

 

이미 목숨이 끊어진 내 육체를 안고 구슬프게 울던 그녀.

내 얼굴을 하염없이 어루만지며 울다가 탈진한 그 여자는 결국 내 품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숨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치던 오만가지 기억들.

어쩌면 그토록 우리의 마지막들은 하나같이 비참 했을까.

121번의 전생들을 내 눈으로 지켜보며 그날 밤 내가 미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순서없이 휘몰아치던 수많은 전생의 장면 중에는 내가 잠파노였던 마지막 전생도 있었다.

그녀의 무덤앞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며 약을 먹고 숨을 거두는 내 모습을 나는 망연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줄 알았는데..... 지칠대로 지친 내 눈앞에 나타난 또 다른 장면.

검고 풍성한 머리를 늘어뜨린 새하얀 얼굴을 얼핏 본 순간 내 심장이 뜨겁게 꿈틀거렸다.

 

예니콜이었다!

내 사랑....

벤의 의자에 깊숙이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 그 여자,

 

나는 순식간에 이성을 잃고 만다.

술에 취한 트럭 운전사가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그녀의 벤을 들이받는 순간 나는 미친놈처럼 오열했다.

트럭과 부딪힌 엄청난 충격으로 그녀의 벤은 순식간에 전복되었다.

허공으로 날아오르던 그녀의 가느다란 몸과 귀를 찢는 비명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붉은 피. 쏟아지는 그녀의 눈물.

 

운명이 얘기해준 그녀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 참혹한 7초를 나는 꼼짝 못하고 지켜보았다.

 

복희야....

몸 안의 오장육부가 갈갈이 찢기는 것 같은 지독한 고통에 나는 엉엉 목놓아 울면서 그녀를 불렀다.

짐승처럼 통곡하며 그날 밤을 꼬박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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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왜 비명을 질렀을까.

비행기는 마침 그녀와 내가 비참한 최후를 마쳤던 몽고의 초원 지대를 날고 있었다.

 

혹시 그 여자가 뭔가를 기억해 낸 건 아닐까?

 

하지만 운명은 딱 잘라 말하지 않았었나인간은 절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어쩌면 이건 그저 내 가엾은 바램 이고 희망 없는 억지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정말 만약.....  

그 여자가 아주 작은 거라도 기억을 했다면?

그 여자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나처럼 어떤 영상같은 걸 보았다면?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는 순간 민준의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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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 컨디션이 괜찮은 건지 휘경의 신경이 시종일관 곤두서 있다.

꼼짝도 않고 눈을 감고 있던 송이가 일어서는 기척에 얼른 그녀의 손을 잡는 휘경.

 

어디 가? 화장실 가?”

.”

데려다 줄게!”

괜찮아.”

짧게 대답한 송이는 복도로 나와 뒤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기내.

송이는 한걸음을 내딛는 도중 저를 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며 고개를 돌린다.

종알종알대던 세미가 어느새 잠이 들어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던 민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뒷편으로 걸어가는 송이를 저도 모르게 눈으로 쫓는다,

 

아주 잠시 그의 눈을 마주보다가 이내 다시 걷기 시작하는 송이.

비행기 뒷편에 마련된 바에 도착한 그녀는 차가운 얼음물을 들이킨다.

몸이 바짝바짝 타는 듯 지독한 갈증을 참을 수가 없다.

얼음물을 또 한잔 들이키고 돌아서던 송이는 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민준의 모습을 보며 움직임을 멈춘다.

어느새 가까워진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말없이 바라본다.

 

뭐 할 말 있어요?” 송이가 먼저 입을 연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민준.

 

그게 뭐냐는 듯 송이가 눈짓으로 그에게 묻는다.

 

아까.... 왜 갑자기 비명을 질렀는지... 나한테 얘기해줄 수 있어?”

뭐요??”

당신 자고 있었던 거 맞지혹시..  무슨 꿈이라도 꾼거야?”

하아... 내가 자고 있었든 어쨌든.. 그게 도민준씨하고 무슨 상관이죠?”

대답해 줘, 부탁이야... 왜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난 건지.... “

그게 도대체 왜 궁금해요?”

 

송이는 어이없는 얼굴로 그를 응시한다.

 

이 남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질문에 일일이 대꾸하며 이 작자의 말을 들어주는 나는 또 뭘까,

 

그냥 좀 가위에 눌렸어요.”

혹시... 무언가 봤다면...그래서 비명을 지른 거라면... 제발 나한테 얘기해줘.”

보긴 뭘 봐요?”

잠결에... 뭐 이상한 걸 봤다 거나... 아니면 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거나... 뭐든... 뭐든 얘기해 줘...”

 

송이는 점점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당신, 나한테 왜 이래요?”

“............”

 

차가운 그녀의 눈초리에 선뜻 대꾸를 하지 못하는 민준.

 

아무 것도 본 거 없어요. 이상한 기분 같은 거 전혀 못느꼈고!”

톡 쏘듯 내뱉고 쌀쌀맞게 돌아서던 송이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 민준에게 몸을 돌린다.

 

그리고 경고하는데...... 나한테 반말하지마!”

 

순식간에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민준은 주먹을 부서질 듯 움켜쥔다.

그 여자가 혹시 무언가를 기억한 것이 아닐까 했던 기대는 역시 부질없는 바램이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을 얻는다는 건....  말로 설득하거나 완력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저 여자의 심장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내 심장이 온통 너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니 심장도 나를 향해야 하는 것.

마음을 갖는다는 건 그런 거였다.

 

천천히 자리로 돌아가는 민준.

 

어쩌면 이번 생의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붉은 피로 얼룩진 예니콜의 얼굴이 갑자기 가슴을 훅 때리며 들어온다.

울컥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눈시울이 축축해 진다.

애니콜의 마지막 모습을 본 순간부터 시도때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녀의 처참한 마지막.

그때마다 민준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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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베네치아,>

 

베네치아에 도착한 일행들은 내일 모두 다시 뭉치기로 하고 각자의 집과 숙소로 흩어졌다.

 

집에 도착한 민준은 트렁크를 거실에 던져놓고 3주 동안 닫혀있던 덧창과 창문을 연다.

차갑게 코끝을 스치는 바닷바람... 오랜만에 돌아온 집이 왠지 남의 집처럼 낯설다.

심호흡을 크게 하며 낮게 내려앉은 하늘을 바라보는 민준.

 

한국에서 보낸 3주의 시간들이 필름이 돌아가듯 꿈결처럼 떠오르다 사라진다.

영혼이 피폐해지도록 찾아 헤매던 그 여자를 결국 찾아냈지만 그는 행복해지지 못했다.

출렁이는 바다로 시선을 옮기는 그의 얼굴은 어둡고 우울하게 가라앉아 있다.

 

무엇이 두려운 걸까.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견딜 수 없는 공포로 다가오는 시간들.

나는 무엇이 두려운 건가.

 

죽음?

그건 정말 두렵지 않았다.

오천년 동안 이어진 수많은 전생과 죽음을 목격하면서 나는 오히려 죽음과 친근해졌다.

 

서늘한 바닷바람이 이마를 차갑게 식히며 불어온다.

 

내가 두려운 건 죽음이 아니다.

나의 두려움은....  죽음이 아니고 이별이었다.

그 여자와 영원히 헤어진다는 것.

영원한 이별.... 그건 정말 아무리 강인한 이성으로도 이겨낼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너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 그것만이 나는 너무 무섭다

영원한 이별.

나는 그것 하나가 정말 두렵다, 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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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알토 다리 근처의 고급 아파트>

 

내일부터 베네치아 공대에서 연수가 시작된다.

송이 일행의 거처는 바다가 바로 아래로 내려가 보이는 로맨틱한 저택이었다.

원래 이렇게까지 좋은 숙소는 예정에 없던 것이었지만 이휘경 전무가 합류하면서 숙소의 레벨도 달라졌다.

천장이 높은 중세 건물을 개조한 아파트에는 여러 개의 방과 거실, 호화로운 욕실과 다이닝룸이 있었다.

아름다운 베네치아와 고색창연한 저택에 일행들은 환호성을 내지른다.

 

휘경과 송이에게 가장 좋은 이층의 방이 하나씩 배정되고, 강대리와 최과장이 좀 작은 방을 하나씩 차지한다.

아래층의 방들은 직위 대로 디자이너와 어시스턴트들이 각각 나눈다.

첫날인데 파티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휘경의 제안에 모두들 산마르코 광장으로 한잔을 하러 나갔지만

송이는 몸이 별로라는 핑계를 대고 집에 남았다.

 

창문을 열고 막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송이.

바다 물 위에 떠있는 듯한 베네치아는 마치 중세에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신비하고 매혹적인 도시였다..

송이의 마음이 유난히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도민준은 아까 필립, 세미 등 다른 학생들처럼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여기 베네치아에 거주하는 사람이니까.

그 남자가 사는 곳은 여기서 서너 블럭이 떨어진 곳.

고개를 조금 빼며 서너 블럭 떨어진 어다쯤을 찾고있던 송이는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제풀에 허둥거리며 창문을 닫는 송이.

 

아까 그 남자와 헤어진 후부터 머릿속이 온통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는 걸 그녀는 불현듯 깨닫는다.

바다 위에 떠있는 기묘하게 아름다운 도시와 2주간의 연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도민준에 대한 잡념때문에 그녀의 마음이 엉망으로 헝클어진다.

 

이번 연수가 끝나면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할 거라던 휘경.

휘경과의 결혼,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는데....

이제 그 모든게 허황된 상상같고. 저 멀리로 환상처럼 떠오르다 사라지는 물거품 같다.

 

낯설고 아름다운 이 도시에서 지내게 될 앞으로의 2주라는 시간에 그 남자 도민준도 함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송이는 저도 모르게 몇번이나 마음속으로 되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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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늘은 연수 첫날 기념으로 맛있는 이탈리아 해물 요리를 기가 막힌 와인과 함께 맛보겠습니다!!”

최과장의 익살과 함께 일행은 시원한 화이트 와인이 찰랑거리는 잔을 부딪힌다.

디자인 경영 팀 멤버들뿐 아니라 서울에서 함께 연수했던 학생들도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전무님, 한 말씀 하셔야죠?” 강대리의 외침에 자리에서 일어서는 휘경.

 

연수 첫날 모두들 잘 보냈죠? 이탈리아의 감성 디자인을 마음껏 느끼고 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모두들 시끌시끌 박수를 치며 애피타이저부터 식사가 서빙 된다.

 

민준이 신경쓰여 송이는 계속 그를 훔쳐보았지만 그는 오늘 송이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

그 남자의 옆 자리는 언제나처럼 유세미가 앉아있었고

그는 앞자리의 필립, 옆의 세미와 함께 한창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오늘 아침 베네치아 공대 건물에서 만났을 때 도민준은 송이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건네는 그의 톤은 송이에게나 휘경에게나 강대리에게나 모두 한결같이 똑같았다.

반말하지 말라고 발끈했던 건 분명 제 자신인데 막상 예의를 차린 그의 존대는 또 마음에 안 들었다.

 

미치겠네.....도대체 왜 이러는지...

갈팡질팡 하는 제 자신이 너무 낯설고 이상해서 송이의 마음이 금세 심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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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데시아티 교수의 지휘 아래 연수는 즐겁고 흥미롭게 진행되었다.

한국에서의 바쁜 일정을 미루어 놓고 참가한 휘경은 시시때때로 도착하는 보고서와 컨퍼런스 콜 때문에

실제 작업은 참가하지 않았다.

그는 물론 일정이 끝나는 저녁 시간은 온전히 송이와 보내고 싶어했다.

베네치아 최고의 보석상이 어디인지 알아낸 휘경은 영롱한 빛을 발하는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문했다.

이번 연수가 끝나는 마지막 날, 그는 드디어 송이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할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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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고, 연수 첫 주는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는 여전히 사무적으로 송이를 대했다.

 

팀장님, 이번 작업 스케치입니다.” “여기가 대강당입니다.”

이 부분이 팀장님께 말씀드렸던 신소재입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지극히 예의 바르고 사무적인 그의 언어들.

때때로 그 남자가 저를 주시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도민준은 그 이상의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분명 제가 원하던 대로 되었는데....무심해진 그에게 왜 이렇게 조바심이 나는 걸까?

덤덤하게 서로를 대하면서도 왠지 하루하루가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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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베네치아는 현실로 느껴지지 않을만큼 아름다웠다.

뿌연 안개가 낀 리알토 다리와 바닷가의 저택들.

골목과 골목 사이를 미로처럼 흐르는 수로들.

하루 종일 관광객으로 바글거리던 거리가 거짓말처럼 텅 비어 있는 새벽.

그야말로 중세의 어느 시대로 뚝 떨어진 것처럼 기분이 이상했지만 송이는 그 새벽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천천히 걸어 리알토 다리 위에 서는 그녀.

푸른 바닷물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며 제 마음을 이토록 답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그녀는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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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은 내내 잠을 설쳤다.

베네치아로 돌아온 이후 하루도 편하게 잠을 자본 적이 없다.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던 민준은 자켓을 걸치며 집을 나선다.

 

저도 모르게 그 여자가 지내고 있는 집앞에까지 걸어온 민준.

뿌연 안개에 싸인 집을 한참 올려다 보던 그는 미로처럼 얽혀있는 수로를 따라 정처없이 걸음을 옮긴다.

크고 작은 골목을 거쳐 리알토 다리 쪽을 지나치던 민준의 시선이 문득 어느 한 방향에 멈춘다.

 

새벽 안개 속에 보이는 익숙한 뒷모습.

민준의 굵은 눈썹이 꿈틀 위로 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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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얌전히 묶여 있는 머리카락이 차가운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며 송이의 뺨을 간지럽힌다.

매일 아침 송이와 아침을 먹는 휘경이 이젠 일어났을 시간이다.

무심코 몸을 돌리려던 그녀는 뒤에서 느껴지는 어떤 인기척에 순간 호흡을 멈춘다.

 

이 기묘한 느낌...

누군가 그녀를 향해 걸어온다. 보이진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무서울 만큼 뚜렷하게 느껴졌다.

 

대리석 난간을 붙잡으며 팔에 잔뜩 힘을 주는 송이.

어깨에 닿아오는 손길에 잠시 흠칫했지만 그대로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민준은 가느다란 어깨로 천천히 손을 뻗는다.

그의 강인한 팔이 꼼짝 못하게 송이를 죄어들며 그녀의 등을 끌어안는다.

부드럽고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는 민준.

 

송이의 몸이 얼음처럼 순식간에 굳어진다.

꿈인가....

아득해지는 정신을 수습하려 애쓰는 송이.

 

지난 일주일간 사무적인 대화만을 주고 받으며 건조하게 지냈던 그가 지금 저를 끌어안고 있다.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미친듯이 두근거리는 가슴.

 

귓전에서 느껴지는 그의 뜨거운 숨결에 송이의 호흡도 덩달아 거칠어진다.

저를 안고 있는 넓다란 가슴 안으로 온 몸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거칠게 뛰는 그 남자의 심장 소리가 그녀의 등에 생생하게 전해진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모호한 느낌.

 

사랑해....”

 

베네치아의 겨울 하늘처럼 낮게 가라앉은 그의 음성이 송이의 귓전을 울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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