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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놀이터에서 웃다

최타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4.24 19:26:48
조회 1767 추천 13 댓글 5

아키하바라.

그래~ 아키하바라.

아키하바라하면 다들 무엇을 떠올릴까. 오타쿠 문화의 최대 스팟? 뭐, 그것도 맞다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이곳은 일하는 회사가 있는 직장가로 보인다.


이곳 경치는 나쁘지 않다. 건물 외관들도 깔끔하고 유리로 멋을 낸 그 모습이란.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의 빛깔도 그 유리벽만큼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탄을 하던 중이었다.


시간은 저녁 6시를 지나 온 도시가 주황색으로 물들어가지만 운치따윈 없었다. 내게는 그저 우울함을 더해줄 뿐이었다. 저녁의 공기는 평화롭긴 하지만, 동시에 우울하다.

퇴근길에 나는 넥타이의 매듭을 짜증스럽게 풀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또다시 혼자서 틀어박히는 그 조그만 원룸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사히 두캔과 적당히 있는 햄조각을 계산하고 나왔다. 이 아키하바라는 마냥 낯선곳은 아니었다. 사실 딸이 태어나고 어느정도 자란 곳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 동네를 어떻게 돌아오던, 이런 형태는 원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지금의 나처럼 머나먼 집을 떠나 발령받아 근무하게 되는 것 말이다. 항상 지나치던 놀이터에 앉았다. 시설들도 녹슬고 보기 싫은 것 답게, 이곳은 아무도 오지 않는다. 나는 맥주를 따서 입에다 털어넣었고 한캔을 비울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목을 긁어대는 쾌감에 목소리를 좀 내본다. 좀 살겠군.


나는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대고 소리쳤다.


"타나카, 이 씨발새끼야!"


나도 어느덧 사회에 뛰어든지도 7년차다. 적은 경력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아니, 사실 애매하게 길어서 문제라고 할 수 있나.

나의 지위는 그야말로 중추 신경이다. 말단들과 조금 익숙해진 부하들을 밑에, 그리고 중요한 윗분들을 위에 두고 조율이 필요한 어찌보면 최대 난관을 갖는 자리다. 덕분에 항상 죽을 맛이다. 오늘도 타나카 부장은 고리타분하고 야비하게 빛나는 눈으로 서류의 트집을 잡았고 결국 온 사무실에 펄럭이며 그걸 던졌다. 영화에서 보곤 하는 것, 직장인들은 실제로 그렇게 괴롭힘 당한다. 알아주길 바란다.


이곳에서의 나의 생활이 그것뿐이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래보여도 홀몸이 아니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딸과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들을 만나려면 수 킬로미터를 운전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지만.


나나 아내나, 보통 남들이 말하는 돈 되고 유능한 일을 하는, 부러운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사실이다. 수입도 나쁘지 않고 전쟁같긴 하지만 일은 보람차다. 다만 나의 일이 지역이동이 심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갑작스레 이곳으로 발령이 난 나는 가족 얼굴도 못보고 이곳에 처박히게 됐다.


"부서에서 방을 제공해준대. 생각해 봐. 아키하바라의 집세가 공짜라고?"


..라고 큰 소리를 치는게 아니었는데. 나는 병신 또 병신이다. 물론 6개월을 이곳에서 근무해야 하고 그 동안의 숙식이 지원된다면 그건 확실히 큰 혜택이지만...가족의 얼굴을 못보는게 이렇게 힘이 들줄은 몰랐던 거다.

저축도 좋지만, 이러다간 내가 죽겠다.


멀리서 빌딩 숲이 보인다. 아련히 저녁 노을에 물들어가는 모습이 다시금 우울하다. 남아있던 두번째 캔을 들어올렸다. 술이 유일한 친구구나. 발령와서 근무한지 이제 겨우 3개월됐다. 가족을 보려면 아직도 반절이나 남아있다. 개떡같은 삶. 즐거움이라곤 찾을 수가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음."


인기척을 느끼고 옆을 돌아봤다. 왠 여자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


나도 따라서 눈을 마주쳤지만 이 녀석...조금도 지지않았다.


결국 내가 졌다.


"아, 안녕?"

"안녕."


아이는 빨빨거리고 다가오더니 입을 열었다. 생긴 것도 그렇고 어린 목소리가 5살 남짓 되어보였다. 내딸과 비슷한 나이일까.


"뭐해?"

"아저씨? 그냥 있어."


적당히 술을 보이지않게 허벅지 옆으로 숨겼다.


"아저씨 얼굴 빨갛다."

"그러니? 힘들어서 그래."

"왜 힘들어? 회사 힘들어?"

"응."


근데 왜 나는 얘랑 이러고 있는 걸까.


"꼬마야. 집에 안가니?"

"꼬마 아니야!"

"아. 그래. 미안하구나."


솔직히 조금 귀찮았다.


"이름이 뭐니?"

"니코야! 야자와 니코!"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굉장히 자랑스러워 보였다. 무슨 한자였을까.


"히라가나로 니코야!"

"그래? 예쁜 이름이네."


쓰기에는 편하겠군.


"아저씨는 힘들어서 그러고 있구나. 아저씨도 파파야?"

"응? 아, 그래."


아마 가족이 있냐는 뜻이겠지. 


"헤에~ 아저씨도 파파구나!"


녀석은 내가 앉은 벤치에 팔을 얹더니 귀엽게도 낑낑대며 등반을 했다. 아이에게는 오르기 조금 버거웠지만, 내가 도와주려는 찰나 엉덩이를 걸치고 안정적으로 착륙했다. 구슬같고 예쁜 아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양옆으로 빼 붉은 리본으로 묶은 모양이 그렇게 잘 어울렸다. 옷은 흰 티셔츠에 핑크빛 치마를 둘렀는데 그야말로 이 아이의 컬러인 것만 같았다.   


"그럼 빨리 집에 가야지. 다들 기다리잖아."

"아저씨가 오늘은 집에 가기 싫구나."

"왜? 니코의 파파는 니코를 보면 힘든게 사라진다고 그랬어."

"음...그거야 맞는 말이지."


나는 우울하게 껄껄댔다.


"아저씨는 집에 아무도 없어. 아저씨 혼자 있어."

"왜? 아저씨도 파파라며."


그래. 이해하기 조금 힘들 것이다. 이 아이에겐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어야되는 상황이 상식 밖일테니까. 니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저씨 딸이랑 아줌마는 아주 먼~ 곳에 있어. 아저씨는 돈 벌어야 되서 혼자 이 동네에 살고."

"왜? 아저씨는 벌 받는 거야?"


말문이 막혔다. 역시 아이들은 직설적이라 통쾌하다.


벌, 벌이랄까. 내가 멍청한 벌이라면 벌일지도 모르겠다. 일을 잘못 선택해 전국을 떠돌고 가족도 못 보고 마음이 타들어가는 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 가봐."

"왜?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야?"


다시금 생각에 빠진다. 

보고 싶다고 우는 딸에게 곧 있으면 만날 수 있다는 거짓말이나 한지 3달째인 걸로 보면...맞나?


"응. 나쁜 사람이야."

"에에~ 아닌 것 같아."

"무슨 뜻이니?"


너무나도 태연한 얼굴로 어린 친구는 말했다.


"그치만~ 마마가 말했어. 나쁜 사람들은 처음보는데 먹을 것도 주고 웃으면서 자기는 절대 나쁜 사람 아니래. 그러면서 데려가고 어두운 데서 못된 짓을 한대. 아저씨는 스스로 나쁜 사람이라고 하니까 나쁜 사람 아니야."


피식 웃었다.

신은 믿지 않지만, 신에게 용서받으면 이런 편안함이 들까.


"고맙구나."

"아저씨는 나쁜 사람 아니니까 니코가 선물 줄께."


이 대담한 녀석은 내 손을 덥썩 잡고는 초코바를 하나 쥐어줬다.

하나씩 까먹는 미니 사이즈지만, 아이에게는 꽤나 보물이었을 것이다. 그걸 나를 위해 주고 있다.


"맛있겠구나. 니코가 먹지 않아도 돼?"

"응!"


천천히 선물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고마워."


나는 천천히 뜯어 입에다 던져넣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난다. 회사 사람들을 초대해서 집에서 가족까지 앉아 야끼니쿠를 먹을 때였다. 아장아장 고사리같은 손으로 한 조각을 집어 내 입에 넣어주던 딸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옛 상사 후쿠야마는 부러워 했다. 나보다 몇배의 수입을 벌어 돈은 많지만 아들내미가 영 응석받이고 철이 없어서 항상 자기 입만 생각한다고 했다. 내딸처럼 먹여주거나 그런 적이 한번도 없댄다. 그렇게 착하고 예쁜 내 딸을 몇달째 보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보는 빌딩숲은 내 마음을 가로막고 압박했고 아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아저씨 우는 거야?"

"아니야."


거짓말했다. 몇살을 먹건 인간은 인간이다. 힘든 일을 마냥 견딜 순 없다. 이 세상의 아버지들은 정말 마음놓고 울 수 있는 곳이 없다. 더럽다. 나는 영웅도 아니고 그냥 먹고 살기 위해 넥타이로 스스로의 목을 조이고 정장이란 군복을 입고 전쟁터로 뛰어드는 개미 한마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꽃 하나를 본 것 같다. 꼬마 니코는 벤치에 발을 올리고 서서 내 눈가를 닦아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앉아야 될 벤치에 발을 올리면 혼이 난다고 배웠을텐데. 그런 건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아저씨 울면 안돼!"

"그래."

"아저씨. 니코의 이름이 왜 니코인지 알아? 항상 싱글벙글 웃으라고 파파가 지어줬어!"


대단하구나. 

웃으며 살자. 모두가 그런 식상한 말을 하지만, 지키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 니코란 친구는 이미 이름에서 가장 힘든 싸움을 암시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강한 아이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니코.


"아저씨도 이렇게 해봐!"

"응? 어떻게."


아이는 손을 펴 스파이더맨마냥 중지와 약지를 접더니 머리에 갖다붙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손을 번갈아 휘둘러가며 애교를 떨어댔다.


"니코니코니~! 에헤헤."


천천히 주위를 살펴봤다. 누구라도 보다간 오해받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워낙에 험악한지라 내가 이 쪼그만 친구의 환심을 사서 데려가려는 걸로 밖에 안보일게다. 아니, 그 이상으로 설명하기 복잡해질 듯 한데.

다시 눈을 마주친 니코는 재촉하고 있었다.


"빨리!"

"니, 니코니코니..."

"니코니코니~!"

"니코니코니."


나중에 듣자니 아이의 아버지가 좋아한다고 했다.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한참이나 꼬마 친구와 놀며 세상을 잊었다.








날이 저물어 더이상 니코를 이곳에 두기에 위험해졌다. 칠흑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심지어 이 낡아빠진 놀이터는 가로등조차 생명이 들어오지 않았다. 


"잘 들어갈 수 있니?"

"걱정하지 마!"


먹으려던 맥주캔이 바지 주머니에서 다리를 차갑게 문질렀지만 상관 없었다. 일단은 세이브다. 오늘은 더 마실 필요가 없었다.


"니코네 집 저기야!"

"가까웠구나."


걱정한 내쪽이 우스워지는 꼴이다. 꼬맹이가 가리킨 손가락은 바로 옆하고 또 옆의 주택건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조그만 발로 뛰어도 2분이면 다다를 것이다. 


"바이바이~"

"그래. 잘가렴."


니코는 빨빨대며 귀엽게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돌아 멈췄다.


"아저씨!"

"왜?"

"울면 안돼!"

"알았어. 잘가."


우리는 웃음을 나누고 헤어졌다.

홀로 남겨진 나는 여전히 어둠속에서 벤치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하지만 어두운 곳에서도 지금 내 두눈은 기분좋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거참. 별일이 다 있구나.

식상한 영화같다고 해도 좋다. 나는 뜻하지 않은 만남에 큰 힘을 얻은 것 같았다.


맥주를 넣은 쪽의 반대편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고 사이에 끼워놓은 가족 사진을 들여다봤다. 딸에게 소리내어 전한다.


"조금만 기다리렴. 노조미. 아빠도 힘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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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공원에 혼자 앉아있는데 떠오르더라.



긴 글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


그냥 소설 쓰기 좋아하는 팬픽충입니다.


이전에 쓴 것들은 링크↓로 정리하고 있으니 소설이 땡기는 날은 언제든지 최타드를 검색해주세요.


링크 최종 수정 5/10 완료




-령탐정 01 02 03


-용서해줘요


-놀이터에서 웃다


-한 모금 너머, 작사


-어둠속에서 하라쇼하고 스피리츄얼


-우소마키, 우소마키 下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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