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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 우소마키, 우소마키 -上-

최타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5.06 0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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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친한 사람, 사무적으로 만나는 사람, 싫은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과 말을 한다. 좋은 말, 나쁜 말. 하지만 이 단순한 구조만으로는 절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만약 당신의 아이가 애완견과 사이가 좋은데 그 애완견이 죽었고 아이는 그걸 받아들이기에 버거운 나이라면, 당신은 적당히 먼 집에 보냈다고 할 것이다. 당신이 상사의 싸이코같은 행태에 일일이 본심을 이야기 한다면, 이 세상에 당신이 책상을 놓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친구가 술에 몸을 맡겨버리고 이내 정신까지 맡겨버려서 당신을 붙들고 인생 한탄을 한다고해서 너무 짜증을 내면 그와의 관계가 끝날 확률이 높아진다.


그 래서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살아간다. 좋은 거짓말, 나쁜 거짓말. 어느 쪽이던 자신의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오히려 거짓말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정말 많으니까. 15살의 나, 니시키노 마키는 긴 세월을 살아오진 않았지만 일찌감치 그 스킬에 관해서는 어른들 부럽지 않은 능숙함이 몸에 스며들어 있다. 악의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나는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모자랄 것 없지만 그만큼 엄격한 지도와 분위기 속에서 커왔다. 소위 말하는 상류층, 내가 그것과 비슷한 과다. 부러워 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쪽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고 알아줬으면 기쁘겠다. 의무의 무게도, 종류도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 예를 들어 잘난 부모님의 잘난 지인들까지 자주 접촉한다면 어떨까. 교양과 능력이 하늘을 찌르는, 대화를 하거나 상대하는데 있어서 난이도가 상당한 사람들 말이다. 코찔찔이라도 어느 정도의 언변이 필요하단 것을 막연하게 깨달았다. 




모 님에게 조금이라도 흠이 가면 안되니까. 망신을 끼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행동해왔다. 이게 전부라면 그나마 좋았다. 이 환경이 나의 학교 생활까지 영향을 끼쳤으니 문제가 더 커졌다. 동급생들은 나에게 허물 없이 손을 대고 만지고 농담을 건네다가도 나의 집안에 대해 알게 되면 스스로 벽을 세워버리고 다가오지 않았다. 내가 가면을 쓰고 말을 선택하는 것은 잘했지만 그 애들에게까지 그럴 생각은 없었건만. 지레 겁을 먹고들 그래버렸다. 그렇게 나오니 나도 조금은 기분이 상했고 마침 그 애들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앞서 표현했던 나보다도 훨씬 유치한 것도 있어서 나 또한 벽을 쌓아버렸다. 그렇게 유치한 애들이라면 애초에 나와 어울릴 일이 없던 팔자라고 생각하며. 

물론 그런 벽이 없는 애들이 간혹 있긴 했지만, 그저 나에게 뭔가 뽑아 먹을 것이 없을까 생각한 약삭빠른 애들뿐.




변명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이 씁쓸한 상황에 빠지니 나는 좀 편한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맞는 표현일 듯 싶다.




그 런 내 마음에 들어온 친구들이 있다. 한명도 아니고 여덟명이나 말이다. 나의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라면 짐작하겠지만 현재 내가 같이 활동중인 스쿨아이돌 그룹 뮤즈의 멤버들이다. 나의 집안에 대해 알게되도 나를 어려워하거나 역으로 나를 별종 취급하지 않고, 그저 어린애들처럼 순수하게 놀라워하고 우스꽝스럽게 말하는 그들. 지금껏 의도적으로 나를 이용하려고 접근한 존재들과도 다르고 알기 쉬울 정도로 숨김 없는 태도였다. 그래서 나는 하도 우습기도 하고 어느샌가 매력에 휩싸여 그들과 뜻을 함께 하게 됐고, 지금은 스스로도 많이 변했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 동안 말을 지어내고 적절히 둘러쳐서 빠져나가거나 주위를 관리하는 능력은 남아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보호본능에서였을까. 너무 버릇이 단단히 들어서일까. 어느 쪽이건 쉬운 문제는 아니라서 곤란해하고 있던 차였다. 거기다 쑥쓰럽지만 좀 인정하자면 나는 잘난척도 좀 있어. 그 점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가, 어느날 일어난 일이, 나의 그러했던 삶에 강력하게 한방 날렸지만 말이다.




이 른 아침, 평소와 같이 일어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똑같은 시간이다. 물론 어려울 건 없지. 나란 사람은 자기 관리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지각이라도 저지르고 히히덕대며 웃음으로 때우려는 아이들이 가끔 있었지만, 나는 몇번을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건 어릴때의 우스꽝스런 추억이나 허세의 문제가 아니다. 벌써부터 그렇게 늦어서 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시간 약속은 곧 자신의 미래의 업무나 큰 전환점을 책임지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 식으로 사회에 대한 준비도 안돼있으면서 어린애 취급 받는 것은 끔찍히도 싫어한다. 도통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는 욕실을 향해 걸어가며 파자마의 앞단추를 차분히 풀었고 옷을 모두 벗어 한쪽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 샤워기를 틀고 손에 물을 적셔가며 적당히 온도를 맞추고는 적당해 졌을때 머리꼭대기부터 물을 맞기 시작했다. 기분 좋다. 아침부터 몸이 퍼질 정도의 온수는 싫어하는 편이다. 적당히 잠을 깨우는 온도의 물을 온몸에 맞으며 나는 하루를 시작했다.



샤 워를 마치고 온몸의 물기를 깔끔하게 말리고 머리카락도 망가지지 않게 확실히 다듬고서 나는 교복을 걸치고 복도를 건너가 모퉁이를 돌았다. 평소와 다른 광경에 나는 잠깐 주춤했다. 늘 조리를 하던 가사 도우미 와키씨가 아니다. 마마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아침을 준비해주고 있었다. 내가 다가왔음을 눈치 챈 마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 딸, 일어났니?"

"병원에 안 나갔어? 와키 씨는?

"와키 씨도 가끔은 휴가란게 있어야지. 마마가 최근에 유럽 놀러갔다 온 것처럼."

"파파가 끊어줬던거?"


하긴 기분이 좋아보이긴 한다. 그나저나 와키 씨가 휴가라니. 그럴 때도 있구나. 그래. 나이도 있으신데 종종 쉬셔야 할 것 같다.


"당분간은 한가하니까 간만에 엄마 노릇 좀 해주려고~ 오늘은 빵인데 입에 맞으려나?"

"상관없어."

"참~ 무뚝뚝하긴. 간만에 마마랑 아침 식사 하는데 좋지 않아? 아마 이걸 맛보면 고마워서 반할껄?"


어 릴 때부터 절제와 함께 살도록 엄격하게 대해 놓고는 이제 와서 한다는 말인가? 나는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서운함이 강하게 남아있다. 비록 사이가 나쁘지는 않지만 딱딱한 태도로 조금이라도 복수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전혀 짐작도 못하는지 마마는 그저 싱글거리며 나에게 다가와 조그맣고 속이 꽉찬 유리병을 내밀어보였다.


"짠!"

"뭐야, 그게."


나는 여전히 시큰둥 하게 미간을 찌푸려보였다.


" 왜 프랑스 어디 조그만 동네를 지나는데 거기서 수제 잼 제조과정을 봤지 뭐야. 어쩜! 과실이 생으로 뚝뚝 떨어지는데 차원이 다르더구나! 한번 찍어먹어봤는데 이젠 보통 잼은 못 먹게될 것 같아! 한번 딸한테 맛보여주려고 하나 구했지!"

"용케 들여왔네. 그래봤자 비행중에 좀 달라진거 아냐? 한번 먹어볼게."


나 는 받아들고 내용물을 나이프로 퍼올려 적당히 적갈빛으로 익은 빵 한쪽에 펴바르고 한 입 물었다. 이건 확실히...처음 느낌은 너무 달아서 될까도 싶었지만 처음 뿐이었다. 서서히 입안에 은은하면서도 확고하게 번지는 향은 엑기스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농후했다. 씹으면 씹을수록 빵조각과 함께 끈덕하게 달라붙었다. 미식은 내 특기가 아니지만, 확실히 시중에 도는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거라면 그 멍청한 여자들도 알 수 있겠는걸. 


지난 주 TV에서 봤던 실험 프로그램이 기억났다. 인간 허영심과 우매한 최면효과가 메인 주제였다. 대표 한명에게 두 종류의 커피를 마시게 했다. 하나는 질 좋은 천연원두를 갈아넣은 최고급 커피, 하나는 상대적으로 쉽게 먹을 수 있는 스타벅스 커피. 시식한 여자는 맛을 보고는 확실히 고급의 맛을 낸다고 말했다. 사실은 실험 상황 자체가 거짓말이었고 둘다 스타벅스 커피였는데 말이지. 아마 그 여자들도 이 잼과 흔한 잼들은 구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니? 맛있지?"


내가 맛에 빠져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마마의 기대에 들뜬 목소리가 제 정신을 차리게 했다. 나는 황급히 입안에 나머지 빵을 털어넣고 씹으며 대답했다.


"뭐, 괜찮네. 그런데 금방 질리겠어."


사실은 좀 더 먹고 싶었지만 더 달라 하기도 어색해서 일어났다. 적당히 물티슈에 손을 닦고 가방을 든 채 현관으로 향했다.


"더 안먹니?"

"됐어. 다녀오겠습니다."

"가는 길 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

"어린 애도 아니고 시끄러."

"훗, 그렇지. 잘 다녀오렴~"




잘 다녀왔으면 나도 좋았겠는데 말이다. 하지만 교문앞에 다다르자 근처 중학교의 어린 친구들이 요란스런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왔다. 피할 수도 없고 매번 난감하다. 특히 아무 말도 없이 끌어안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작은 희망을 묻어버리며 아이들은 나에게 앞뒤로 몸을 밀착했다. 키가 작아 몇센치 아래에서 내 명치에 부비고 있는 얼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예쁘세요! 아아, 너무 좋아!"

"이번 신설 백화점 행사 때 가시죠! 응원할께요!"

"아, 아 그래..고마워."


항 상 느끼는 건데 그녀들은 광기어린 와중에도 대화의 취지는 확실히 하는 것 같다. 이번 행사에 관해서는 또 어떻게 알았을까. 비밀리에 진행된 것도 아니지만 보통 학생들이 알아내기에는 쉽지 않은 정보인 것도 맞다. 이럴 때 보면 어느새 뮤즈도 뮤즈의 팬층도 많이 성장했다고 실감한다. 그 정도가 아니면 이렇게 미리 알고 올 열의도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 점에서는 기쁘다.


"아~ 좀! 적당히 떨어져. 너희는 등교 안하니?!"

"괜찮아요! 지금부터 뛰면 주임 선생님 피해서 들어갈 수 있어요!"


아 그러셔. 그녀들은 자기들이 말해놓고도 우스운지 폼 안나게 깔깔댔다. 그나저나 가만 보자니 한 아이의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흰 것 같았다. 조금 우습지만 그녀의 가슴골로 향하는 부분 어딘가에 선을 두고 피부 빛깔이 달랐다.


"얼굴에 뭐 칠했니?"

"아! 알아봐주셨네요. 맨 얼굴로 보러올 수 없잖아요. 마키님 정도를 만나는데!"

"아...그래. 이뻐."



심 지어 나도 주변 인식과는 매우 다르게도, 메이크업을 하고 다니진 않는다. 대신에 평소 피부를 빈틈 없이 관리하는 편이다. 그쪽이 오히려 피부에 부담이 덜 간다. 게다가 이 아이는 칠한답시고 한 것조차 능숙하지 않았다. 아마도 서툰 자신의 손으로 직접 했겠지. 예쁘게 보이고 싶은 나이인건 맞지만, 비슷한 나이대와 마음으로 알 수 있기에 말하겠다. 그녀의 앳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았고 따로 놀아서 거슬렸다. 독하게 한번 지적해주면 그만두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적당히 인사를 해주고 그녀들을 떨어뜨리는데 성공했다. 교실까지 들어오는데 정말 힘들다. 아니지. 오히려 더 큰 산이 남아있다. 끝나지 않았다.


"마아아키이쨔아앙!"


눈을 질끈 감고 체념하는 동시에 한쪽 손으로는 적당히 허공을 가렸다. 예상대로 물컹한 누군가의 뺨이 닿았다. 웅얼대면서도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카요찡! 마키쨩은 대단해! 보지도 않고 내 공격을 막았다냐!"

"네가 너무 알기 쉬운거야. 멍청아."


피 곤하지만 눈을 떠보니 같은반 친구이자 뮤즈 멤버인 둘이 모습을 보였다. 내손에 막혀 버둥대는 숏컷 헤어가 얼굴을 감싸고 보이쉬한 느낌의 여자아이 호시조라 린. 그리고 우리 둘을 말릴 수 없어 적당히 웃으며 보고 있는 하얗고 선한 얼굴의 코이즈미 하나요.


"맨날 보는데 뭐가 이렇게 난리야? 린은 무슨 내 애완견이야?"


실 제로 이렇게 똑같은 사람에게 징그럽게 애정을 표현하는건 이 아이 말고는 개과의 동물밖에는 없을 것이다. 어딘가의 설에 따르면 미천한 존재가 환생을 하면 쌓은 선행에 따라 그보다는 더 나은 존재로 환생한다고 한다. 환생을 거듭하며 그 단계가 계속 올라가는데 최상의 단계는 인간이고 그 바로 전이 개라고 한다. 그렇기에 개가 그리도 감정이 풍부하고 정다우며 인간과 가장 잘 맞는다고 하던가.


"마키쨩! 어제 영화 봤어? 이번 주 OCN 영화특집으로 하루에 한편씩 옛날 명작들을 해준다냐! 어제는 E.T.였다냐!"

"언제적 영화야? 한심해."


이미 본지가 오래다.


"어제 카요찡이랑 같이 봤다냐. 마지막에 E.T.쨩 집에 돌아가 버리는데서 참을 수가 없었어~ 같이 울었다냐!"

"아~ 아직까지도 눈앞에 떠올라. 마키쨩."


옆에서 같이 들떠서 하나요가 말을 이었다. 이 선한 인상의 친구가 감상에 젖으니 제법 귀여운 얼굴이긴 하다.


"완전 어린애들 같네. 그럼 FBI한테 포위됐을 때 자전거를 타고 날아서 도망가는 장면도 봤겠네?"


린과 하나요는 손을 잡고 요란하게 비명을 질러댔다.


"너무 멋있었어!"

"린은 사실 거기서부터 울었지!"

"그때 요원들이 무전기를 들고 있던거 기억해?"


나는 웃음을 띄고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둘은 이내 잠잠해지더니 나를 멀뚱히 쳐다봤다.


"응? 그랬지. 근데 그게 뭐 어쨌길래? 린은 사실 그때 감동받아서 정신이 없었지만 기억나긴 한다냐."

"그 무전기들은 처음엔 총으로 나왔어. 나중에 CG처리해서 무전기로 바꾼거야."

"정말..? 전혀 몰랐어. 그런데 왜?"


사슴같은 눈망울을 빛내며 묻는 하나요의 옆에서 린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E.T 는 영화 전반적으로 순수한 우정이나 동심어린 모습을 보이고 있잖아. 그런데 어른들이 끼어들면서 다 망쳐놓지. 결국은 비무장 애들을 상대로 총까지 동원하는데 스필버그는 다시 보자니 표현에 있어서 자극적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래서 재개봉판에선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배려해서 수정했지."


두 친구는 손을 모으고 조용히 감탄하고 있었다. 하나요도 이럴때 보면 안정적인 학교 성적이 무색하게 린과 같이 바보같다. 친구는 잘 만나야 하는 법인데.


"몰랐던거야? 이건 상식조차 안돼."

"대단하다냐! 역시 마키쨩은 모르는 게 없어!"

"대단하네. 마키쨩은 공부만 아니라 취미분야도 유식하구나. 있지. 우리 E.T.얘기나 할래?"

"내, 내가 왜! 난 한번 봤으니까 됐어. 입 아프게 떠들 이유가 뭐야."


사 실은 몇번이나 돌려봤다. 수록된 감독 코멘터리는 굉장히 흥미로웠지. 어디가서 이 얘기를 해본 건 처음이다. 오히려 즐거웠던 건 내쪽이다. 그렇지만 E.T.를 열정적으로 떠들다니 나 정도의 진중한 분위기가 풍기는 사람이 조금 웃기잖아?




학 교 생활은 여느 때와 같았다. 소란스럽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별 다른 것 없는 평소의 모습 그대로였다. 중간에 잠깐 쉬는 시간에는 곧 있을 쪽지 시험에 대해 아이들이 모여서 예측을 하거나 관련 이야기를 했고 어쩌다보니 나와 하나요가 끼게 되었다. 이야기의 주체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쏠리게 됐다. 학년 1등의 나에게 물어보는게 빠르기도 할테고 주장도 설득력이 있을테니 충분히 가능하다.


"역시 니시키노는 대단하구나. 이 수식 너무 어려워서 혼자서 풀다가 울뻔했다니까~"

"그 자체는 어렵지 않아. 좀만 활용하는 법을 키우면 돼."


내 한마디에 아이들이 굵은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감탄했다. 사람들과 교류가 없던 내가 어떻게 이 틈에 끼어서 이러고 있는게 가능하냐 묻는다면, 사실 나도 이렇게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뮤즈의 멤버들과도 어울리고 하면서 내가 겉보기처럼 매몰찬 것은 아니라는게 알려지기 시작했다나. 사실 매몰차다고 오해한 것부터 실례긴 하다만. 뭐, 그 정도는 눈감아주겠다. 내가 이렇게 주목받는 자리도 생기고말야. 뭣보다도...실은 이 수식 나도 난감해서 몇번이나 다시 접근했던 건데 쉽게 알고 있는 것처럼 살짝 거짓말 했거든. 나 정도 되는 사람이 그런 말을 솔직히 하면 폼 안나잖아.




적 당히 아이들을 상대해주다가 화장실에 갈 생각으로 일어나 복도로 나왔다. 몸을 틀어서 가려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다. 아, 그래도 비교적 친하게 지내는 방송부의 하라다였다. 나는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같이 복도를 걸었다.


"니시키노. 내일 방송부원들이 점심시간에 재즈를 틀어야 하는 날이야."

"아 벌써 그렇게 됐네."


설 명을 하자면, 방송부의 점심시간 활동은 깐깐하기로 알아주는 음악 담당 사카이 선생님이 관리하는데...역시 이 사람 다운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방송부가 점심시간동안 교내에 음악을 재생하는 활동을 허가하는 대신에 한주에 한번은 '학업 증진이나 교양에 도움을 주는 곡 선정'이 이루어져야 했다. 정말 훌륭하리만치 옛날 사고방식의 이 조건은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듣기 싫어하는 고리타분하고 교육용 비디오 같은 음악을 틀라는 것이다. 나같이 클래식이나 재즈파가 있긴 하지만 극소수일테니.


" 이번주 사카이 선생님이 지정해준 아티스트는 이시카와 아키라야. 그런데 좀 마이너한 것 같더라고. 곡은 구했는데 정보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아티스트 정보에 관해서도 해설을 좀 해야 하거든. 우리도 최선은 다했는데 쪽지시험도 준비해야 하고 힘드네."


"사카이 선생님은 뭘 하는건데? 잘 아니까 지정해 준 거 아니었어?"

"그게...잘 알다시피 유별난 분이잖아. 우리가 직접 알아봐야 공부가 된다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이 같이 깔깔거리고 웃었다.


"정말 피곤하게 하네!"

"내 말이! 니시키노는 좋겠네. 공부도 잘해서 태클도 안 당하고, 음악 지식도 많아서. 뮤즈만 아니었다면 방송부로도 뛰어났을거야."


사 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피하는 사카이 선생님이지만 나는 마침 음악 취향도 일치했고 내 특유의 화술로 개인적인 사이가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거의 유일하게 사카이 선생님이 찾는 학생이 나일 정도다. 하지만 여기서는 하라다의 편을 좀 들어주는게 맞겠지.


"뭐.... 간간히 프리랜서로는 못 할 것도 없지. 정보, 내가 모아줄까?"

"정말이야? 이시카와에 대해 아는 것 좀 있어?"

"당연하지. 나 아니면 교내에서 도움 줄 수 있는 사람이나 있을까."


사실은 최근 리뷰에서 살짝 읽어봤을 뿐이다. 하지만 나라면 잠깐의 검색만으로도 조사와 정리를 끝낼 수 있다. 하루 이틀 재즈 관련을 봐온게 아니니까.


"너무 미안한데! 역시 그냥 우리가 할께."

"아니야! 믿어봐. 나도 오랜만에 들어보고 싶어졌어. 간단한 일이야."

"와... 대단해. 고마워. 이 도움은 절대 잊지 않을께."


하라다는 신이 나서 해방감이 느껴지는 탄성을 질렀다.


이 모든 것들이 언덕위부터 굴러내려와 거대해진 눈송이처럼, 예상도 못한 모양으로 나를 덮치게 되지만 나는 알 리가 없었다.





일 본 3대 마츠리 중 하나가 열리는 곳, 칸다묘진. 이곳이 우리 멤버들이 체력 훈련을 하는 곳이다. 이곳 계단에서 달려서 오르내림으로써 폐활량이라던지 하체 근육을 키웠다. 처음엔..물론 지금도 힘들지만 많이 힘들고 괴로웠지만 이제는 어느덧 무대를 능숙하게 끝마칠 정도의 힘을 키우게 됐다. 예전에 비하면 최단기록도 놀라울 정도의 단위다. 마침 오늘도 격하게 한바탕 뛰고 난 다음이니까 새삼 확인하게 된다. 먼저 기록을 끝낸 하나요와 나는 계단의 꼭대기에서 다음 차례인 호노카가 왕복하는 것을 보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마키쨩. 한 모금 마시고 쉬어."


어느새 하나요가 음료수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얼굴에 땀을 흘리면서도 헤실헤실 웃어대는 흰 얼굴을 보자니 편안해져서 웃음을 터뜨렸다.


"고마워. 여기 앉아."


하 나요와 나란히 앉아 호노카가 뛰는 걸 지켜봤다. 날씨 덕분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돌바닥이 기분 좋았다. 그래도 알아주는 관광지이건만 이렇게 애매한 오후 시간에는 사람들이 없는 편이다. 덕분에 우리들은 대부분의 경우 별 마찰 없이 이곳에서 필요한 연습이나 준비 등을 할 수 있다. 더 좋은 곳을 고를 수도 있지 않았나..싶지만 어느샌가 이렇게 하는 걸로 굳어져 버렸다. 정말, 왠지 이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끌려다니는 기분이다. 누구에게 쉽게 지지 않을 내가 말이다.

문득 얼굴을 돌려 옆을 보니 하나요가 마냥 미소짓고 있었다. 그만두겠지 싶어서 가만 있었는데 그치지 않고 계속 그러고 있었다.


"뭐니? 왜 웃어?"

"아니야. 힘들지?"

"뭐가, 트레이닝?"

"아니, 실은.."


하나요는 만지작거리던 음료수 병을 내려놓고 나지막히 말했다.


"오늘 마키쨩에게 다들 쪽지 시험에 관해서 피곤할 정도로 물어봤잖아. "

하나요는 작지만 분명하게 전하고 있었다.

"마키쨩은 역시 상냥해. 사실은 마키쨩이 짚어 줘도 그 문제가 안 나올지도 모르는데도 다들 무차별적으로 물어보는거잖아. 그래도 화도 안내고 말야."

"뭐 그렇지."


대충 둘러댔다. 하지만 하나요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가끔은 마키쨩 힘들어 보이는건 뭘까?"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무슨 뜻이니?"


나는 산만하게 돌리던 시선을 하나요에게 고정했다. 역시 평소 습성대로 주저하는 듯 하는 하나요였지만 이내 눈을 피하면서도 말을 이어갔다.


" 예전부터 알 수 있었어. 마키쨩은 대단한 의사집안 딸이니까. 어깨 위에 지고 있는 것도 많고 주변 눈치도 많이 봐야 하지? 그래서 조심스럽고 어른스워져 진거야. 사실은 마키쨩의 눈에는 다들 바보같아 보이기도 할꺼야. 마키쨩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살아왔으니까. 그런데도 유치한 걸 웃어주고 같이 어울려. 정말 상냥해."


주위에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이 있다면 아마 여러분은 대부분 그를 무시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자격 없으니 착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소리내서 말하는 대신에 하고있는 생각들, 그 많은 시간동안 무엇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가? 바로 이렇게 남들이 놓치곤 하는 쉽게 깨닫지 못하는 점을 발견하고 알고있다. 새삼 하나요에게서 그 무서움을 느꼈다. 이 아이는 항상 표현력이 부족하고 자신감 문제에 시달리지만 정말 예리한 아이다. 지금 내게 하는 말들은 모두 사실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똑부러지고 솔직하면서도 어느 면에서는 전혀 그 반대였다. 




오 랜 세월 가면 쓰는 버릇이 나의 자연스러운 행동들을 막고 있었다. 괜시리 화가 났다. 아마도 이 정도면 내가 사실은 간단히 설명한 척 했던 그 수식에 애먹었다는 것도 눈치 챘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망신 당할까봐 조용히 하고 있는 걸지도.


"웃어주긴! 너희들도 보고있으면 바보같다고 생각할 때 많아. 머리가 다 아프다니까."

"그러게. 마키쨩은 워낙에 대단한 세계에서 사니까."

"네가 뭐 알긴 해? 하나요나 린은 기껏해야 연애 하려는 궁리나 하고 시험걱정을 하잖아. 내가 하는 고민들의 반만큼이라도 해봤으려나 몰라. 내가 

가진 의무나 무게는 하나요가 상상하기도 힘든 거니까 훈계하려고 하지마. 그런 분야라면 이미 내가 더 잘 알아."


미 안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걸까? 이런 말을 하려던게 아닌데. 나는 동요했을 때 내 뜻대로 행동이 적절하게 되지 않는다. 지금도 이런 말들을 하려던게 아닌데 무언가 갑작스럽게 터지곤 한다. 하지만 미안하다고 하기 힘들었다. 치사했지만, 애초에 그런 얘기를 꺼낸 하나요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버텼다. 하나요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편안하게 미소지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 그래. 하나요는 알 수 없지. 엄청 무서운 세계일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왜일까. 분명 어른스럽고 냉정하게 그런 것들을 다룰 수 있는 마키쨩도 왠지 가끔은 무서워 하는 것 같아. 마키쨩은 좀 더 솔직하다면 어떨까? 우릴 못 믿어서 그런걸까 가끔은 속상하기도 해. 가끔은 우리를 믿고 좀 더 속을 털어놔준다면. 우린 언제든지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꺼니까."


착 해빠진 얼굴에 착해빠진 말. 스스로 낮추는 그녀의 말들이 내 미안함을 없애 주진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하지만 나는 결국 미안하단 말은 하지 못하고 언짢은 기색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하나요는 괜시리 크게 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 괜한 소리해서. 항상 해오던 생각이긴 한데 정리가 잘 안되네. 아! 호노카쨩 마지막 턴이야."


마침 시선을 돌리기 좋은 모습이었다. 나는 애꿏은 호노카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어색함을 벗어났다. 저녁노을에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계단에서, 떨어진 기록에 대해 우미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는 호노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속을 털어놓는다고."


연 습은 끝난지 오래다. 하지만 나는 멤버들을 모두 적당히 둘러대서 돌려보내고 혼자서 어두운 칸다묘진에 남아있었다. 원래부터 이런 조용함이 좋다. 나는 가끔은 혼자 있을 때가 필요했다. 취미라던가 그런 리듬 그 이상이다. 뮤즈에 몸 담기 전까지의 나는 대부분 고요한 환경에 살아왔다. 오히려 이쪽이 정상적이란 거다. 갑자기 그 페이스를 버리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떠나서 순수한 의미로, 어두운 신사에서 홀로 터덜터덜 걷는 것도 나쁘진 않다. 마침 오늘은 떨쳐내고 싶은 기분도 있었으니까.


한 참을 그렇게 돌던 나는 신사를 한번 바라봤다. 좀 촌스럽긴 하지만 확실히 매력 있는 모양새다. 노조미가 마음을 주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어딘가 신비롭게 기운을 주는 것도 망상은 아닐지도. 하지만 나는 별로 도움을 받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게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어? 그럼 내 소원이나 들어줘볼래?


"가끔은 가면 좀 그만쓰고 싶어. 피곤하거든."


하 나요가 고맙지만 밉다. 이런 건 사실 내 본심이 아닌데. 나는 하나요와 모두가 싫어서 거짓말을 하고 피하는게 아니다. 그런 짓이라면 오히려 싫어하는 이들에게 한다. 조금도 엮이지 않기 위해. 애초에 내 생각을 모르게 하기 위해. 오늘의 나는 어떻게 됐었나 보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한가로운 감상에 젖은 짓을 한 것이다. 나는 안쪽 건물을 마주보며 그곳에 대고 사람처럼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하는 내 연기를. 내 거짓말을 못하게 할 수 있다면 해줄꺼야? 내가 좀 더 편하게 말할 수 있다면?"


소원?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맞다. 나는 소원을 빌었다. 노조미가 지겹게 말해온 대로, 이곳은 그런 비논리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곳 아닌가.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어딘가에 숨은 귀뚜라미들의 나지막한 울음 소리부터 해서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내몸에 뭔가 뜨거운게 들어온다거나 갑자기 눈부신 빛이 내려온다거나. 아무것도 없었다.


"쳇. 그럼 그렇지. 살기 너무 쉬워지겠지."


나는 비웃음을 날리고는 돌아서 집으로 돌아와 잠에 들었다.






다 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나는 평소와 그 무엇과도 달라진 걸 느끼지 못했다. 항상 느끼던 비몽사몽함 그뿐. 역시 세상 하루하루 돌아가는건 그저 똑같다. 여느때와 같이 몸을 씻고 교복을 입고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도 마마가 있네? 이제서야 어제 기억이 났다. 며칠간은 한가하다더니 정말로 아침 식사를 계속 준비해 줄 모양이다. 나야 뭐 나쁘진 않지만. 마침 와키 씨의 요리도 살짝 질리던 요즘이었다.


"마마가 해주는 밥도 나쁘진 않지. 마마는 요리할 시간이 없는 것 뿐 실력이 나쁜 건 아니니까."


뭐지? 지금 내가 한 말인가.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낯 간지러운데. 나의 존재를 뒤늦게 알아차린 마마는 화들짝 놀라 뒤돌아서는 나를 보며 어리버리한 표정을 해보이더니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 고마워 마키. 왠일이니? 마지막으로 그렇게 살가운 말 했던게 언제더라, 10년 전 크리스마스?"


여기까진 딱히 이상하지 않았다. 그냥 생각보다 말이 앞섰을 뿐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의자에 앉아 빵조각을 들어올렸다.


"어제 그 잼은?"

"아! 줄께. 맛있었나 보네?"

"한 일주일동안은 그것만 먹을래."


내가 하려던 말은 단연코 그런게 아니었다. 적당히 '마음에 들었다'라고 하려했는데, 이상하다. 너무 이상하다. 마마는 다시 한번 어색한 놀라움을 띄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그렇게 맛있진 않다고!


"그 정도니? 어젠 별로인 줄 알았지."

"아니, 사실 더 먹고 싶었는데. 마마가 좋은 물건 가져왔단 사실을 띄워주기 싫어서. 사실은 TV나오는 고로씨가 먹고 감동 받아서 초상집 마냥 눈물까지 흘릴까 걱정이야."


무슨 소리지? 분명히 내 입으로 하고 있는 말이다. 생각과는 반대로 말이 나오는 것 같다.


" 왜 이러니. 마키도 참! 오늘따라 평소답지 않게 귀엽네? 맞다. 마키.. 당분간 한가할 거라고는 했는데. 역시 의사네 집 여사님은 그게 안되더라. 파파가 일이 많아져서 눈치껏 도와주러 가야 할 것 같아. 가장이 쉬란다고 그대로 쉬어버리면 좋은 아내의 모습이 아니겠지?"

"뭐야, 그거! 싫어. 마마랑 좀 더 있을래."


이번엔 마마의 얼굴도 더이상 웃어넘기는 노력이 없고 굳어가고 있었다. 나 또한 어느새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한 움큼씩 잡고 있었다. 안돼. 이러면 기껏 관리한 헤어가 망가진다. 아니, 그보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야한다. 내가 저런말을 할리가 없잖아? 마마가 바쁘면 어쩔수 없다. 적당히 밥 주문해 먹고 집에 혼자 있으면 그만이다.


"혼자 집에 있기 싫어. 파파 일 바쁜거야 항상 그렇잖아? 그냥 나랑 같이 있자. 간만에 같이 있어서 좋았는데 왜 말을 바꾸는거야?"


부 끄러워서 아찔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 앞에 있는 마마의 얼굴이 어디까지 더 붉어질지 걱정되서 내 걱정을 하는게 사치다 싶을 정도다. 살짝 와인 레드 빛으로 염색한 그녀의 머리카락 보다도 색이 강해지는 것 같다. 혼란스럽다. 그래도 아직 수습이란 걸 시도할 수 있다. 한마디만 하면 돼. 거짓말이라고! 난 오늘 혼자 자면 된다고.


"오늘 마마 침대에서 같이 자면 안될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가방을 집어들고 현관으로 달렸다. 뒤에선 마마가 통화를 하는 소리가("여보? 마키가 어릴 때로 돌아갔어요. 무슨 소리냐고? 나도 잘 모르겠어요.")들려왔지만 부끄러움에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상황파악이 안된다. 문을 거칠게 열고 뛰어나왔다. 몇발짝을 더 뛰어서 다다른 대문 앞에서 허둥지둥 열려고 시도하다가 잠금장치에 손가락을 부딪혔다. 죽도록 아프네. 살짝 거친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문 단속을 하는둥 마는둥 허우적대며 나왔다.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단 몇분이내에 평생 볼 창피를 다 겪은 것 같다. 머리를 마구 휘저으며 거리를 뛰었다.




어 떻게 학교에 도착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뛰어서 심장이 터질 듯 했기에 멈추고서야 겨우 정문 앞에 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숨이 차서 한발짝도 더 옮길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면 혈관이 터지기라도 할 것 같았다. 한 5분 가량을 몸을 추스리던 나는 간신히 발걸음을 다시, 천천히라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강한 힘에 붙들렸다.


"헤헤! 안녕하세요! 오늘도 왔어요."

"어....그래..."


병든 수탉같은 목소리가 성대에서 기어나왔다. 왜 하필 또 찾아온거야. 어제 메이크업을 진하게 했던 그 아이다.


"왜 이렇게 땀을 흘리세요?"

"여기까지...뛰어 왔으니까..."

"아. 그래요? 아직 시간 한참 남으셨잖아요? 그나저나 저 오늘도 꽃단장 좀 했어요! 오늘 메이크업 어때요?"


순간 숨이 차서 내 상태를 잊었다. 내가 적당히 '예쁘다'고 말하고 돌려보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란걸.


" 파우더는 찍어바르는거지 얼굴에 통째로 쏟는게 아냐! 생각이 있는거니?! 피부건강을 생각하라고! 그러고 보니 화장품에 방부제 성분도 상당 함유되어있는거 알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스쿨아이돌인 나도 무대 올라갈때 말고는 얼굴에 눈썹 하나 그리지 않아! 벌써부터 그렇게 떡칠을 하고 있으면 큰일난다! 그러다 죽고나서 얼굴만 썩지않고 남으면 자연의 섭리에 어긋날꺼야!"


나 는 이 모든 말을 쏜살같이 해냈고 어린 친구의 얼굴은 충격에 휩싸이는게 보였다. 나는 황급히 입을 막았지만 내가 엎지른 말은 이미 주변의 공기마저 얼려버린 것 같았다. 다들 그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란 말이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다시 초인적인 힘이 솟아 나는 학교 건물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분 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운동파가 아니다. 게다가 몸도 풀리기 직전 아침에 이런 미칠듯한 런닝이라니. 아침 런닝은 분명 적당히 기분 좋게 뛰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한 내몸은 책상위에 늘어져 있었다. 만약 지금 린이 나타난다면...


"마키쨔..!"

"시끄러. 오지마. 미안해. 좀 내버려둬."


나 는 쉬고 싶은 마음에 빠르게 말을 끝마쳤다. 린의 눈가가 촉촉해지며 빛나는 것 같지만 항상 내말을 무시하고 달려들던 자업자득이다.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인 개도 지시에 불응할때는 목줄을 수직으로 당겨 목을 압박하며 강하게 가르친다. 하물며 말을 알아듣고 상호간에 의사를 교환하는 사람이라면 제발 말 좀 들어.


"너무 한다냐. 이번주 영화 특집기간..어제밤에는 가위손을 해줬는데 슬퍼서 얘기하고 싶었더니."

얘기하고 싶지 않아.

"하나 알려줄께. 거기 사는 사람들의 집모양이 다 똑같지? 획일화되고 다른 이들의 차이를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풍자하.."


사실은 아는 걸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참자. 멍은 좀 남겠지만 지금처럼 내 허벅지를 꼬집어서 참는거다.


"그런거였어? 그러고보니 마키쨩 E.T.도 잘 알았지. E.T.는 몇번이나 본거냥?"

"스무번도 더 봤어."


역시 한번 밖에 안봤다는 건 너무 쎈 거짓말이었나 보다. 즉답으로 나온다.


"정말?! 역시 그렇게 잘 알만 하다냐! 마키쨩은 안 슬펐어?"


내가 그런 유치한 영화로..


"처음 봤을때 이틀동안 너무 울어서 마마가 달래줬고 그래도 못 그쳐서 수시로 걱정하면서 안아줬꺄아아아아악!"


허벅지가 너무 아프다. 이렇게까지 거세게 꼬집었는데도 제어가 안된다니 어떻게 된 도움 안되는 초능력인가. 나는 책상에 다시 몸을 오징어 말리듯 힘없이 널고 고개를 린과 반대인 창가쪽으로 돌렸다.


"마키쨩도 역시 여자아이다냐~ 영화보고 울다니 마냥 카리스마 있진 않네."

"부탁이야, 린. 나 오늘 몸이 안좋으니까 잠깐 놔둬줄래?"

"아픈거야? 미안하다냐!"

"괜찮아. 네가 2분만 입 닫...잠깐 있으면 나을지도 모르니까."

"알겠다냐."


하지만 휴식은 없었다. 어제 내가 수식을 설명해줬던 이노우에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다가왔다.


"아, 니시키노 오늘 피곤해?"

"이노우에...안녕."

"있잖아. 어제 했던 설명 듣고 감탄했어. 너무 쉽게 잘 이해하고 있던데. 오늘도 물어볼 거 있는데 실례가 안된다면 괜찮을까?"

"누구한테? 나한테? 뭘 대단하다고? 사실 그거 하나 이해하려고 응용문제만 20개는 풀었어. 내 수학인생 처음의 위기였지. 아아아악?!"


나는 마치 전류를 흘려보낸 개구리 시체같이 펄쩍 일어났다.


"하하..농담도 참. 그런데 정말 어려운 것 같긴 해."

"어려운 것 같은게 아니라 어려운게 맞아. 너무 기죽지 마. 나처럼 자존심만 더럽게 높은 것보단 낫거든! 스스로도 꼴사납..우우욱."

"니시키노?! 노트를 찢어서 입에다 넣으면 어떻게 해! 요즘 종이는 화학물질이 많아서 염소도 못 먹는다던데..."


다 시 솟아난 힘의 축복을 나는 유감없이 받아들여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디로 가야 좋을까? 그전에 갈 수 있는 곳은 있을까? 미칠 듯이 달렸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다시금 제일 피하고 싶던 사람을 마주쳤다. 어제 내가 큰소리 쳐놨던 하라다가 해맑게 웃으며 서있었다.


"파, 파흐아!"

"어머, 니시키노. 애들 웃겨주고 있었어? 입에 종이는 뭐야. 이시카와 관련 있잖아. 다 됐어?"


애원하는 내 마음을 묵살하고 입안의 종이가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 그랬지! 맞아. 사실 재즈에는 남부럽지 않을 지식이 있지만 그 아티스트만은 잘 몰랐거든. 그렇다고 나 정도 폼나는 사람이 거기서 모른다고 할 수도 없잖니? 잘난척은 하고 싶고 알지는 못하고 일단 말해놨어. 금방 끝낼 자신은 있었어. 그건 믿어줘. 오늘 아침에 학교 오는 길에 핸드폰으로 5분 대충 찾아보고 정리해서 말해주려 했는데 웬걸, 일이 생겨서 새카맣게 잊었네?"


나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어깨의 들썩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인 기 좋았던 코미디 배우, 짐 캐리는 어린 시절 장난감조차 사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거울을 보면서 여러 멍청한 표정을 짓고 노는 걸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덕분에 그 경험을 살려 그는 신기에 가까운 코믹한 안면 근육 연기를 보여줬고 작품 운과 연기력까지 받쳐주며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나에게 맞는 상황의 영화라면 바로 97년작 'Liar Liar'겠지. 그가 연기한 변호사 플레쳐 리드는 타고난 거짓말로 이득을 취하고 승소하는..유능하지만 얍삽한 변호사이다. 심지어 아들에게도 그 거짓말로 일관하다가 결국 기다리던 아들을 생일날 바람 맞힌다. 아들은 단 하루만이라도 아빠가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고 놀랍게도 소원은 현실이 된다. 


상사와의 잠자리 후 '좋았냐'는 질문에 그는 '시원찮다'고 던졌고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날은 마침 그가 승소해야 하는 재판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이길 수가 없는 재판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여기까지 보면 흥미롭기도 하다.




하 지만, 확실히 말해놓지. 짐은 한물 간지가 오래다. 그의 슬랩스틱도, 그런 영화도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열렬히 찾아보는가? 접히는 고무 핸드폰이 상용화되려는 시대에 말도 안된다고. 그런데 내가 왜 그런 유행 지난 비일상에 빠져야 하는거지? 누구라도 붙들고 묻고 싶다. 아니, 반드시 찾아내서 정강이라도 한번 차주겠어. 비일상이 찾아온다면 기왕이면 엄청난 미남 초능력자와 동행하게 된다거나 이런 건 불가능한거야? 




오늘 아침은 정말 힘들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을까. 비록 얼마 안되는 시간이긴 했지만. 

나 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시체처럼 발을 질질 끌며 교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고민의 범주를 벗어난 것 같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생각은 틀렸다. 이 소란 덕분에 자꾸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잊고 있었는데, 복도 모퉁이를 돌자 그걸 하나 더 들고 저승사자가 찾아온 것이다.


"마키, 여깄었네."

"우왓?! 니..니코쨩?"

"뭘 그렇게 놀라? 바보같긴."

"너한텐 듣고 싶지 않아!"

"뭐가 어쨌다고? 다시 말해보시지?"


바로 앞에는 나보다도 눈높이가 낮은 검은 트윈테일에 작은 몸집을 한 여자아이, 같은 뮤즈의 멤버 니코쨩이 서있었다. 교복 리본의 색이 나와 다른 초록 패턴인 것으로 알 수 있겠지만. 이 아이는...


"선배다. 물론 하는 짓이 선배같아야 말이지. 잠깐, 소리내서 말 할 생각은 없었어."

"오늘은 대놓고 해보자는 거냐? 수업 곧 시작하니까 눈 감아 줄께. 오늘 CHEERFUL EIGHT잊지 않았지?"

"치어...뭐?"

"초심을 잃으셨네! 스케쥴이 얼마나 된다고 그걸 잊어? 아~ 이런 무례한 애를 나랑 같이 섭외해주다니. 나한테 실례라니깐."


그 랬지. 오늘은 저녁 8시에 나와 니코쨩 둘이 라디오에 게스트로 나가기로 되있었다. 이런 중요한 일을 잊고 있었다니. 오늘 아침의 충격은 내 체감 이상인듯 했다. 진행의 쿠로사키씨가 알면 불쾌해 할 것이다. 나름 입지를 굳혀가는 인기 대중음악 방송인데.


"늦지말고 6시 반까지 블루스 크레이프 앞으로 나와. 거기서 출발하면 안 늦어."

"..."

"듣고있어?"

"그게 다지? 더 할말 없지?"

"왜 그래?"

"오늘 조퇴해야겠어."

"무슨 소리야! 어디 아파?"

"걱정하지마! 방송에는 나가! 들를 곳이 생겼어!"

"대체 뭐야?"


오늘은 몸이 삭을 것 같다. 단시간에 뛰고 걷고를 반복하는 건 굉장히 상급 강도의 운동이라고 들었는데 말이다. 나를 부르는 니코쨩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자리를 떴다.






자, 차분히 생각해보자. 나 니시키노 마키가 이런 일로 허둥대다니 말도 안되지. 그래, 사실 적잖이 비일상적인 일이긴 하지만 이따위 일이 나를 흔든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비일상이 공격할거라면 좀 더 그럴듯한 걸로 와보라고! 다시 말하지만 짐은 이미 한물 간지가 오래다. 이런 소재도 말이지. 그렇다면 난 간단히 이길 수 있다. 



일을 정리해보자. 일단 확실치는 않지만 이 증상을 눈치챈건 내가 잠에서 깬 이후다. 아마 빠르면 자고 있는 동안에 시작됐을 수도 있지. 왜? 최근에 저주의 편지같은 장난감이라도 주웠던가? 아니다. 그럼...이런 상상은 정말 내 분야가 아니다. 하지만 힘내보자. 누가 나에게 벌을 내리는 건가? 이상하다. 나는 분명히 절에 가서 부처님 상을 걷어찬 기억이 없는데 내가 지금 겪는 곤란함은 그정도 짓은 했어야 받을 벌이다. 귀찮게 내가 절 같은 곳을 갈리도 없고 말이다. 근처의 칸다묘진이라면 부원들과 연습을 위해 자주 가지만.



칸다묘진?



설마, 난 일찌감치 잊은 일이었는데. 어떻게 거기서 이렇게 전개되는건가. 나도 정말 왜 그런 거지. 평정심을 잃어도 갑자기 너무 터졌다. 거기서 그런 소원을 빌다니. 그나저나 그 소원이 진짜로 이루어지는 것도 웃기고. 아니다. 더이상 이런 생각은 말자. 이미 내 주위가 납득 가능한 것이 아니야. 지금 당장 간다. 칸다묘진으로 가는거야. 조퇴? 그래. 지금 그런게 중요한건 아니지만 표면적으로 공식 절차는 밟자. 나는 담임 선생님께 열이 있는 것 같다며 대충 둘러대고 학교를 이른 시간에 나왔다. 다행히 오전 내내 뛰어다녀서인지 몸에 열이 있다는 말은 진실로 할 수 있었다. 아주 편리하군.




하 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이 계단을 이렇게 빨리 오른 적이 있었던가. 트레이닝 계획대로 오르내렸던 그 수많은 횟수 중 최단기록이다. 누군가 시간을 재고 있던게 아니라서 아쉽군. 아무래도 좋다. 일단은 내 소원을 철회하는 게 우선이다. 나는 당장에 간밤에 소리쳤던 자리에 정확히 그대로 섰다. 그리고 가슴을 문지르며 잠시 숨을 고른 다음에 외쳤다.


"듣고있어?"


코웃음이 나왔다. 누구에게 말하는거지?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 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바랐던 건 이런게 아니거든. 사람을 꽤나 괴롭혀줬어. 알아챈지 3시간도 안됐는데 내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아. 내 소원 취소해줘!"


주위는 조용했다. 어제와 다를 바 없었다.


"그만하라고! 얼마나 피곤했는지 알아?! 당장 취소해! 취소하라고!"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몸이 뜨거워진다거나 차가워진다거나.

"...아, 알았어. 취소해주세요, 제발. 솔직히 살도록 노력할께요. 그래도 이건 심했잖아요. 융통성이라는 게 있어야지 참..신이라는 분이."


내가 이렇게 저자세라니 인생 최대의 굴욕이다. 내 기억 속 궁전에 이 기억이 방 한칸을 차지하겠다면 깡패를 고용해서라도 방을 뺄거다. 절대 꿈도 꾸지마.

그 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돌연 강풍이 내몸을 덮쳤다. 나는 황급히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치마를 손으로 단단히 눌러잡았다. 뭐지? 지금은 이런 바람이 일어날 환경이 절대 아니었다. 사방의 낙엽이며 먼지들까지 잡아 올릴 정도로 이렇게 확연하다니, 게다가 나에게만 향해 있었다. 혼란스런 와중에 주위의 나무들은 잠잠하고 미동도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부자연스럽게 길게 지속되는 것도 이 바람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말해줬다. 분명하다! 다행이구나. 신이라는 존재도 대화가 그리 어렵진 않았다. 여기쯤 생각할때 드디어 바람이 잦아들었다. 나는 잠시 헐떡이다가 부스스해진 머리를 가지런히 하고 입을 열었다. 말을 하려니 잔먼지가 느껴져 몇번 침을 뱉어냈다. 치마자락이 뒤집히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하핫!"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몸의 기운, 무언가가 확실히 바뀌었다. 속이 다 후련하다. 긴 말 필요없이 한번 시험해보는게 낫겠지.


"나는!"


23세다!


"이시....시...시이이..!"


그럴리가 없다. 몇번이나 시도했지만 여전했다. 몸이 서서히 굳어가는 것만 같았다. 몸이 뭔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 아무 변화도 없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 거였나? 정말 그저 그런 거였어?


"이..못 된..! 야!"


주 위에 있던 돌멩이를 주워 냅다 본당쪽에 던졌다. 너무 창피하다. 눈물이 눈가에 비집고 나올 정도로. 나는 분이 가시지 않아서 씩씩 대면서 신사에 대고 오만가지 소리를 퍼부었다. 절대 이렇게 끝날 순 없지. 내가 이렇게 질 것 같아? 비일상 정도가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이말이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뒤져서 거칠게 필통을 열었다. 나의 승리를 증명 해줄 붉은 펜이 있기에 빼어들고 위로 치켜올렸다. 나라면 할 수 있다. 이따위 일에 이길 수 있어! 짐은 하지 못했지만 나는 할 수 있어! 비교하지도 말아줬으면 좋겠다.


"이 펜은!"


블랙이다!


"부웨에에에응에?!"


불 과 몇십초전, 내 인생 최대의 굴욕이라고 했던가. 취소해야겠다. 이 기억이야말로 영영 지워버리고 싶다.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 꼴사나운 소리 내기 부문 기네스북을 점령할 것도 같지만, 하고 싶지 않아. 절대로. 만약에 내가 유명해져서, 물론 그렇게 되겠지만. 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나왔는데 그 배우가 연기력이 시원찮다면 바로 이런 소리를 낼 것이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저 성공이고 뭐고 쓸데없는 초능력에 걸린 불쌍한 여고생 한명에 불과하다. 나는 천천히 펜을 떨어뜨렸다. 나의 두 무릎도. 그렇게 바닥에 주저앉은 나는 짧은 인생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오, 짐...나는. 뭘 어떻게 해야할까요. Dear 짐."


스스로 듣기에도 처량한 나의 목소리가 힘없이 흘러나왔다. 괜찮아. 더 이상...지킬 자존심이 남아있을까.













"CHEERFUL EIGHT의 쿠로사키 켄지입니다! 오늘은 제가 이곳에 앉아있는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세 그 자체인 분들이 나와주셨거든요. 그냥 오늘은 마지막 방송 특집으로 하는 건 어떨까요? DJ인생에 오늘보다 남성 청취자들을 끌어모을 자신이 없거든요. 소개 한번씩 해주세요!"


결국 몇시간 뒤 나는 어쩔 수 없이 스튜디오에 앉아있었다. 그 어떤 과장도 보태지 않고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건데, 나의 첫 라디오 방송 때도 이렇게 떨리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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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짤려서 지난 글을 수정해서 다시 올렸다



긴 글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


그냥 소설 쓰기 좋아하는 팬픽충입니다.


이전에 쓴 것들은 링크↓로 정리하고 있으니 소설이 땡기는 날은 언제든지 최타드를 검색해주세요.


링크 최종 수정 5/10 완료




-령탐정 01 02 03


-용서해줘요


-놀이터에서 웃다


-한 모금 너머, 작사


-어둠속에서 하라쇼하고 스피리츄얼


-우소마키, 우소마키 下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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