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고 아이돌 콘서트를 가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릴 때는 락만이 절대유일의 음악이라고 생각했고, 아이돌 듣는 친구들의 취향을 이해하지 못했다. 소싯적에는 메탈리카, 드림씨어터,마릴린맨슨 같은 소위 빡쎈 음악을 주로 들었고 메탈에 질린 후에는 콜드플레이, 라디오헤드, 트레비스 등의 브릿팝 밴드를 좋아했다. 한국가수 중에는 이적이나 김동률 같이 고뇌하는(?) 뮤지션을 동경했고...음악 프로그램을 온통 아이돌이 지배하게 되면서 아예 음악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과거에 익숙했던 곡에만 손이 가고 신곡은 잘 듣지 않게 되었다.

우연히 가요 프로그램에서 '안녕'을 듣게 되었다. 일렉트로닉 기반의 비트가 강한 댄스 음악에 염증을 느꼈던 터라 유려한 멜로디에 소녀소녀한 노래가 신선하게 느껴졌고, 그때부터 방송 출연분, 러블리즈 다이어리를 섭렵하게 되면서 나도 모르는 새 입덕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공방은 부끄러워서 못 가지만, 한 번은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고 이번 팬미팅이 그나마 근거리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몇일을 잠복해서 지정석을 구할 수 있었다. 락 콘서트는 자주 다녀봤지만 이제는 힘들기도 하고 압사당할 뻔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었가.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좌석을 구했다. 비교적 가운데고 앞쪽이라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결론적으로는 지정석 선택한 걸 굉장히 후회했다. 비교적 앞자리라고는 하지만 거리가 생각보다 상당해서 럽순이들 얼굴이 콩알만하게 보였고(결국 화면에 의존) 스탠딩에 비해 뭔가 유리된 느낌을 받았다. 콘서트라는게 가수와 호흡하며 노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2층에 있으니 왠지 팔장끼고 관조하는 느낌이 들었다. 안방에서 tv보는 느낌이었다. 뒷자리라도 스탠딩을 선택할 껄 하는 후회가 공연 내내 들더라. 갤러들도 다음 콘서트 때는 꼭 스탠딩을 가길 바란다.

콘서트는 2시간 40분에 달하는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구성했고, 데뷔한지 1년 된 가수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셋리스트가 다채로웠다. 신인가수가 이 정도 레파토리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앞으로 1년 정도만 활동하면 단콘 개최할 수 있을 정도의 곡을 모을 수 있을 듯 하다. 중간에 민경씨도 재치있게 진행 잘 했고 돌림판 이벤트도 나름 재미있었다. (지애가 하드캐리 한 듯. 레몬 눈하나 깜짝 안하고 먹는 게 충격) 무엇보다 중간중간에 틀어준 영상이 꿀잼이었다. (다음 럽다를 기대하게 하는 대목?)

굳이 아쉬운 점을 찾자면 밴드라이브가 아닌 MR반주에 노래를 했다는 점? 작은 공연장임에도 무대 장치없이 led화면에 효과를 의존했다는 점. 이건 오늘 공연이라기 보다는 팬미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표값이 3만원미만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바람이고.... 앞으로 단콘하고 제 값 받으면 해결될 문제인 것 같다.
(악스홀 음향은 좀 불만이었다. 늘 가봐도 전용공연장으로 지은 것 치고는 음향이 엉망이다.)
럽순이들에게 호감이 가는 건 윤상 같은 훌륭한 뮤지션과 작업하며 시류를 타지 않는 좋은 음악을 계속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으로 귀를 즐겁게 하고 수준 높은 콘서트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 아이돌로 성장하길 바라며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