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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으면 찍을 수록 줜나게 어렵다 눈만 높아짐
요즘 매너리즘 빠지고 벽 느껴지는거 같음사진이 질리는건 아닌데 내가 찍는 것들이 식상하다 해야 되나디붕이들 보면 독특한 구도나 빛, 장면 등을 발견해서 찍곤 하던데만약 같은 일시에 같은 곳에 떨궈진다면 난 그렇게 못 찍을거 같음입문 때부터 늘 큰 거 한 장만 노리려했고그래서 와개쩐다! 싶은 것들만 찍었고그렇지 않은 기대 이하의 사진은 집에 와서 자책하며 싹 다 지우곤 했음카페 사진이나 소품 같은 사진은 남겨본 것도 없음...굳이 스스로에게 엄격할 필요도 없고 별로 좋은 습관은 아니라당분간 무언가를 "발견"하는데만 주력 집중하고 이참에 꾸밈 없이 눈 앞에 있는 것들 1부터 10까지 많이 찍어볼려고아무튼 그럼!주화각도 바꿔볼까?
작성자 : 정배추고정닉
SK하이닉스 '반도체 핵심기술' 몽땅 화웨이에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7565742?sid=102 SK하이닉스 '반도체 핵심기술' 몽땅 화웨이에 빼돌린 중국인 직원SK하이닉스에서 근무하다 화웨이로 이직한 30대 중국인 여성이 반도체 핵심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업무상n.news.naver.com- sk하이닉스 짱깨 여직원 - dc official App- 中 여직원, SK하이닉스 반도체 핵심기술 인쇄 화웨이로 빼돌려반도체 불량률 낮추는 핵심기술 자료 화웨이로 빼돌려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하던 중국 국적 여직원이 반도체 불량률을 낮추는 핵심 기술을 중국 화웨이로 빼돌린 혐의로 구속돼 재판받고 있다.28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 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중국 국적 30대 여성 A씨를 지난달 말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기소된 A씨는 수원지법 여주지원에서 재판받고 있다.2013년 SK하이닉스에 입사한 A씨는 반도체 설계 불량을 분석하는 부서에서 줄곧 일하다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 현지 법인의 기업 간 거래 고객 상담 팀장급 직원으로 근무했다.이어 2022년 6월 국내로 복귀한 A씨는 같은 달 높은 연봉을 받고 화웨이로 이직했다.그런데 A씨는 퇴사 직전 핵심 반도체 공정 문제 해결책과 관련된 A4용지 3000여장 분량의 자료를 출력한 것으로 드러났다.SK하이닉스는 보안상 USB 등 저장매체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출력물의 경우에도 내용과 인쇄자, 사용처 등을 상세히 기록해 관리하고 있다.그러나 A씨의 경우 문서를 출력한 기록은 남아있지만 이를 어디에 사용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경찰은 A씨가 출력한 문서를 나눠 가방 등에 담아 빼돌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A씨는 줄곧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사건 직후 이상을 감지한 SK하이닉스 측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여러 정황 증거 등을 통해 A씨의 구체적 혐의를 조사한 뒤, 지난달 국내에 입국한 A씨를 공항에서 체포했다.화웨이는 2022년 중국 정부로부터 9억4800만 달러(약 1조2300억 원)를 지원받는 등 국가적으로 기술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박양수 기자(yspark@dt.co.kr)- 안싱글벙글 SK하이닉스 중국인 직원이 기술유출https://www.chosun.com/national/regional/2024/05/28/E73MWNT4ZZCJPNBAH43HFJWJMQ/ SK하이닉스 반도체 기술 中화웨이에 빼돌린 중국 직원 구속기소SK하이닉스 반도체 기술 中화웨이에 빼돌린 중국 직원 구속기소 고액 연봉 받고 이직하며 A4 용지 3000장 출력www.chosun.com연예계만이 아니라 제조업에서도 '중뽑뽑요'는 만고의 진리인 건가- sk하이닉스-전직원이 화웨이에 유출한 혐의로 체포됐다한국의 반도체 대기업 SK하이닉스의 전 중국인 직원이 칩 불량률 감소 관련 정보를 포함한 핵심 기술 문서를 #화웨이에 유출한 혐의로 체포됐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습니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소련이 숨겨야 했던 천재 과학자...jpg
소련이 숨겨야 했던 인재 세르게이 코롤료프에 대해 알아보자 세르게이 코롤료프(Сергей Павлович Королёв) 영어론 Sergei Kololev로 쓰이는 이 사람은 러시아의 과학자로 구 소련의 ICBM 및 인공위성 개발에 기여하고 러시아가 현재 알차게 운용 중인 소유즈 로켓을 개발하였으며 러시아의 우주계획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천재과학자이다. 코롤료프는 1906년 12월 30일 제정 러시아, 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러시아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1918 ~ 1920년 사이 러시아는 매우 혼란 스러웠다. 유럽엔 1차세계대전 진행 중이었고 러시아에선 볼셰비키 주도의 10월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한 지라 우크라이나 대부분의 공립학교들은 문을 닫았고 그 기간동안 코롤료프는 집에서 혼자 독학을 해야했다. 또한 이 기간동안 배식공급도 끊기는 일이 허다해 코롤료프와 그의 가족들은 항상 굶주림에 시달렸고 티푸스와 독감 등은 흔히 걸리는 병이었다. 코롤료프는 그럼에도 학문에 매진하여 1924년 키예프 공대 항공공학과에 입학하고 곧 이어 모스크바 바우만 공과 대학으로 옮겨 항공기 설계공학으로 학부를 졸업한다. 모스크바에 위치한 러시아의 상위권 대학중 하나인 바우만 공대 당시 그의 지도교수는 소련의 유명한 항공기 설계자 투폴레프였는데, 투폴레프는 훗날 소련군의 폭격기와 수송기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러시아의 방위산업체의 설립자가 된다. 졸업 후 항공기 설계국에서 일하면서 그는 취미로 틈틈이 로켓을 독학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그의 재능을 알아본 공산당은 그를 소련의 로켓연구소 제트 추친력 연구 그룹으로 전근시킨다. 이 곳에서 코롤료프는 치올코프스키 로켓방정식을 유도해 낸 러시아의 천재 로켓과학자 치올코프스키를 만난 뒤 그에게 큰 감명을 받고 제트추진 연구그룹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치올코프스키는 분사 가스의 속도와 로켓 엔진 점화/연소/종료 시의 질량비가 큰 만큼, 큰 속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치올코프스키 공식으로 수식화하여 최초의 로켓이론을 완성한다.) 치올코프스키 로켓 방정식 제트 연구소에서 일하던 중 1933년 소련 최초의 액체 연료 로켓엔진 개발에 성공한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곧 제트 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된 코롤료프는 한동안 잘나가는 듯 싶었으나… 그의 승승장구를 시기하던 동료 발렌틴 글루쉬코는 그가 주도한 몇 개의 실험이 실패로 끝나버린 것을 빌미로 1938년 그를 국고낭비 혐의로 고발한다. (그를 국고낭비로 고발한 동료 엔진과학자 글루쉬코 박사) 때마침 운이 지지리 없게도 소련엔 대숙청 광풍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스탈린: "동무,동무는 국가 예산을 부당하게 낭비하고 있소." 체포된 코롤료프는 10년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의 수용소인 굴라그로 끌려간다. 시베리아의 수용소에 감금 되어있는 동안 코롤료프는 치아를 모두 잃고 심장병에 걸리고 와이프가 이혼을 통지하는 등 온갖 고생을 다하게 된다. (굴라그 강제노동수용소의 수감자들. 시베리아의 굴라그로 끌려간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노동만 하다 죽으란 것과 같았다.) 소련 공산당이 자국의 유능한 과학자를 수용소에 처박아두는 동안 나치는 천재과학자 브라운의 주도하에 탄도미사일 V2 로켓을 성공적으로 개발하기에 이른다. (나치의 로켓프로젝트의 책임 연구원이었던 브라운 박사.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미국이 포섭하여 훗날 미국의 아폴로 계획을 이끈다.) 그리고 1945년 히틀러가 자살하고 2차 대전이 드디어 종결된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우주권을 진입했던 나치의 V-2 로켓은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입장에선 너무나도 매력적인 무기임에 분명했다. 코롤료프를 허위 고발한 동료 글루쉬코는 소련군이 노획한 나치의 V2로켓을 뜯어보고 V2로켓복제를 위한 연구를 반복하지만 제대로 된 복제품 하나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이읔고 글루쉬코는 탄도로켓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은 소련에 단 한명 뿐이란 것을 깨닫고 상부에 보고한다. "V-2로켓의 비밀을 완전히 풀 수있는 사람은 코롤료프 뿐이오." 6년 만의 석방, 그리고 로켓과의 재회를 위해 코롤료프는 곧 사면되어 V2로켓을 연구하기 위해 독일로 보내진다 소련의 과학자들 그리고 납치된 나치의 과학자들은 석방된 코룔로프를 중심으로 소련 공산당으로부터 중대한 임무를 하사받는다. "양키들에게 뒤쳐질순 없다. 우수한 소련제 로켓을 만들라." 코롤료프는 철저한 분석끝에 V-2로켓 카피에 성공하고 곧 이어 개량버전인 R-2 발사에까지 성공한다. R-2로켓은 V-2로켓보다 2배의 사정거리를 보일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실험 속에 여러 번의 실패가 있었고 매 실패마다 코롤료프는 소련 공산당의 협박과 압박에 시달린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1953년 코롤료프는 사거리가 1200km에 달하는 R-5 중거리 로켓 개발에까지 이른다. (러시아에서 아직도 우주비행에 알차게 쓰이고 있는 R-7 로켓) 마침내 1957년 여러 개의 엔진을 하나로 묶는 클러스터링 기술을 활용하여 세계 최초의 ICBM인 R-7 개발에 성공한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에서 실험 발사된 R-7은 약 6000여 킬로를 비행하여 캄차카 반도의 표적에 정확히 떨어진다. 이 R-7 로켓은 소유즈 로켓으로 개량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로켓이란 “로켓계의 폭스바겐”이란 칭호도 붙었다. 무려 1500회에 달하는 발사기록을 가지고 있다. 마침 같은 시기 미국도 ICBM 계획인 아틀라스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번번이 실패만 거듭하는 중이었다. 이를 알고있던 흐루쇼프 공산당 제1서기장은 코롤료프에게 한가지 제안을 한다. "지금 미국놈들이 로켓발사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을 때 우리가 재빨리 저 우주공간으로 먼저 인공위성을 날려봅시다." 몇 달 내로 인공위성 발사가 잡혀있던 만큼 많은 과학자들이 불가능 하다고 여겼으나 코롤료프는 그가 일생을 받쳐왔던 연구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코롤료프는 공모양의 인공위성에 “동반자”라는 뜻의 “스푸트니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러시아 로켓과학의 아버지 치올코프스키의 탄생 100주년이었던 19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를 싣은 R-7로켓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당시 미국은 소련이 비록 승전국이긴 했어도 과학기술력은 아직 미국에 한참 딸린 농업국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우주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미국인들의 충격은 대단했다. 한 예로 당시 1957년 워싱턴DC의 소련대사관에서 열렸던 "로켓과 인공위성" 이란 학술세미나에 전세계에 모였었는데 세미나가 끝난후 열린 파티에서 미국의 로켓과학자들이 소련의 과학자들에게 한 질문을 한다. 미국: "소련의 로켓개발은 어느정도 진척이 되고있나?" 그러다 술에 취한 한 소련과학자가 너스레를 떤다 소련: "아주 조만간 우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거다." 미국: "아주 조만간이 대략 얼마인가?" 소련 "일주일? 길어야 한 달안이다." 이 말을 들은 미국의 과학자들은 전부다 코웃음 쳤다. 농업국가수준인 소련이 어떻게 미국을 앞지를수 있겠냐는 생각이었다. (스푸트니크 발사 당시 뉴욕타임스의 기사) 이를 두고 "스푸트니크 쇼크"라부르는데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무시하던 소련이 이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우주에서 핵무기를 떨어뜨릴 수 있게되었다며 큰 충격에 빠졌다. 그 후 거듭된 연구로 많은 데이터를 축적한 코롤료프는 불과 6개월 뒤인 196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을 태워 세계 최초로 인간을 우주로 보낸다. (세계최초로 인류가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아가다. 미국인들은 또 한번의 충격에 빠진다.) 소련에게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타이틀을 뺐긴데다 세계 최초 유인우주비행사 타이틀까지 빼앗긴 미국은 허둥지둥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아폴로 계획을 세운다. (케네디는 부랴부랴 유인 달탐사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그리고 1960년대 끝나기 전에 달에 인류를 보내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케네디: 우리는 달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소련도 대단했지만 미국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기어코 1969년, 모두가 불가능할거란 유인 달탐사에 성공함으로써 소련을 앞지르는 발판을 만든다. (닐 암스트롱의 명언 "개인에겐 작은 한걸음이지만 인류에겐 위대한 도약이다") 그 후 소련은 달 탐사를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소련의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에도 코롤료프는 핵심연구원으로 투입된다. 하지만 소련 공산당의 지나친 재촉과 업무 압박과 과로에 시달리던 코롤료프는 1966년 온 몸에 퍼진 악성 종양을 제거 받기 위해 수술대에 오르나 수술 중 핏줄이 터지면서 큰 출혈이 시작되고 수용소에서 감금 당시 약해진 코롤료프의 심장은 금새 무너졌다. 인공호흡 또한 수용소 시절 부러진 턱뼈로 인해 불가능했다. 결국 1월 4일 소련의 로켓과 우주개발을 이끌었던 천재 과학자는 숨을 거둔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련 공산당은 이러한 천재과학자가 살아있는 동안 외부에 알려져 기술이 새어나가는 것을 극도로 꺼렸고, 소련의 우주개발에 위협을 느낀 CIA가 여러 차례 코롤료프의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기에 소련 공산당 지도부는 이러한 결정을 내린다. "그는 소련의 영웅이다. 누구도 그의 존재를 알아선 안된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그의 존재는 비밀에 붙쳐졌다. 그는 소련의 위대한 과학자이자 우주시대 개막의 아버지였지만 정작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죽어서도 그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고,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종식되서야 그의 업적이 하나 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많은 시간이 흐룬 후 러시아 정부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모스크바 근교의 도시에 그의 이름을 붙혔다. (러시아의 도시 코롤료프) 코롤료프는 미국의 브라운, 중국의 첸쒜선과 함께 소련을 대표하는 로켓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며 존경받고 있다. (각각 러시아, 미국, 중국 우주개발의 핵심이었던 천재 과학자들. 코롤료프, 브라운, 첸쉐썬) 현재 러시아에선 그의 업적을 기려 그의 얼굴을 넣은 다양한 우표를 발행 중이다. 사후 그는 성대한 장례식 후에 소련의 국가영웅들만 뭍히는 크렘린 광장 벽무덤에 "무한한 에너지, 강철과 같은 의지, 끝없는 상상력을 겸비한 로켓공학자"라는 찬사와 함께 안치된다.
작성자 : 설윤아기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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