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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연인 책의 결말(드라마 20회)

ㅇㅇ(114.200) 2021.08.01 21:55:34
조회 533 추천 1 댓글 0

책은 방송 후 나왔지만, 작가가 최초로 구상한 즉, 감독이나 배우에 의해 대본이 수정되기 이전 기준으로 나왔다. 이 부분 감안하고 보시길

다만, 최이사,윤수혁에 의해 한기주가 파리로 쫓기는건 책에도 없고 드라마, 유출되었던 20회 대본 그대로다.

그리고 결말은 책,드라마,20회 대본 모두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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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또 다시 파리에서



GD 자동차 신차 발표회는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딛을 틈도 없었다. 물론 신차 발표가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 발표하는 신차는 그 의미가 각별했다.

기획 단계부터 디자인 그리고 부품의 대부분을 GD 자동차의 힘만으로 해냈다는 건 대단한 성과였다. 남다른 감회에 젖어 들며 덮개로 가린 자동차를 보던 기주는 천천히 단상에 올랐다.

그 순간 기자들의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가슴 뿌듯한 기분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매달린일이 제대로 빛을 본다는 기분에 가슴이 벅찼다.

"오늘 드디어 GD 자동차의 신 모델을 선보입니다. 개발 기획 단계부터 디자인, 성능 실험을 거쳐 출시를 맞은 지금까지 고생해 주신 직원 여러분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자동차는 제게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대표이사로서 첫 출시작이기도 하지만, 자동차가 제작되는 기간 내내 저와 함께 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여러분만 양해를 해주신다면 제 마음속에 있는 그 두 사람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자, 그럼 GD 자동차의 야심작을 소개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전시된 자동차의 덮개가 벗겨지고 신차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박수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이어지는 일정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인터뷰를 모두 끝낸 그는 협력사 사장과 인사를 나누던 중 핸드폰 소리를 들었다. 죄송하단 말과 함께 등을 돌린 그전 전화를 받았다.

"한기줍니다."

"오랜만이야, 삼촌."

잠시간의 머뭇거림 후 들려온 소리에 기주는 절로 탄성을 뱉었다.

"수혁아!"

"한 2년은 됐나 보네, 그동안 잘 지냈어?"

살았는지 죽었는지 지금껏 연락도 없던 녀석이 아니었던가, 태연하게 잘 지냈냐고 묻는 소리에 괜히 울화가 치미는것을 느끼며 기주는 다급하게 물었다.

"네 얘기부터 해, 어디 있니, 지금? 뭐 하고 살아? 아픈 덴 없어?"

"아플 틈이 없어, 순진한 시골 아가씨랑 묵하 열애 중이거든."

웃음기 섞인 수혁의 목소리는 평온하기만 했다. 2년이란 시간을 단번에 뛰어넘는 그 목소리에 안도한 기주도 평소처럼 농담을 받았다.

" 그 아가씨 아버지가 결혼하라 그래서 도망친건 아니고?"

"이젠 안 먹히네, 태영인······ 잘 있어?"

태영이란 이름에 가슴이 아릿한 것을 느끼며 기주는 대답했다.

"그럴 거야."

"그럴 거야라니?"

"파리에 있어. 너 떠나고 태영이도 떠났어. 그래서 만나러 가려고. 나······ 가도 되지?"

"바보. 아직 안 가고 있으면 어떡해. 그 덜렁일 혼자 뒀어? 얼른 가. 가서 태영이 만나면·····, 나 잘 지낸다고 전해줘. 걱정 말라고······. 또 연락할게."

뚝 끊기려는 전화에 급해진 기주는 얼른 수혁을 불렀다. 아직 못한 말이 있었다. 그리고 꼭 해야 하는 말이 있었다.

"수혁아! 나는······, 형은······, 너 많이 보고 싶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러길 한참, 떨리는 목소리를 가누지 못한 수혁이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나도······ 형."

어느새 끊어진 전화를 내려보는 마음이 애잔했다. 그래도 별 탈 없이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던 그는 눈앞에 지는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누이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통화 내용을 들은 모양이다.

"수혁이······ 전화였어. 잘 지낸다고."

누이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그런 누이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기주는 지금껏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떠올렸다.

"누나. 너무 늦지 않았다면 이 말을 꼭 하고 싶어."

"무슨······ 말?"

"고맙다고."

놀라는 눈으로 자신을 보는 누이의 얼굴을 가슴에 세기며 그는 또박또박 말했다.

"나 낳아줘서. 낳아줘서······, 고마워. 정말이야."

누이의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기주는 웃었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이런 말을 할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꼭 한 번은, 한번은 해야 할말이엇고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

감정에 북받쳐 흐느끼는 누이를 안아 주며 그는 다른 여자를 생각했다. 강태영. 지난 2년동안 파리에서 홀로 지낸 그 여자를. 2년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가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다시 방문한 파리는 이전과는 달랐다. 그가 사는 집도, 일도, 먹는 음식도,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파리에서 그는 더 이상 GD 자동차의 사장이 아니었다.

오직 맨손으로 파리를 방문한 이방인, 사랑하는 여자를 찾으러 온 남자, 그것뿐이었다.

예전에 태영이 세 들어 살던 집 근처에서 하숙을 구한 기주는 일자리도 찾았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생활을 해결했다. 그래서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어 잠들기에 바빴다. 육체적으로 고단한 것, 지금까지 그가 몰랐던 일 중에 하나였다. 그 때문에 정작 태영을 찾으러 다닐 시간이 모자랐다. 때문에 아주 가끔씩은 GD 자동차 사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해 태영을 찾고 싶은 욕구도 느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지금 다시 돌아온 파리에서 한기주는 그저 남자일 뿐이었다. 오직 맨손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 그건 한국을 떠나기 전 그가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었다.

시간은 잘도 흘렀다. 태영이 있을 것만 같은 하숙집도 돌아보고, 또 태영이 다닐 것 같은 외국인 학교에도 가봤다. 그래도 태영을 찾을 수는 없었다. 태영이 좋아하던 영화 잡지와 포스터를 파는

가게는 그가 늘 들르는 단골 코스였다. 물론 그녀가 좋아했던 분수대도 마찬가지였고.

태영을 찾지 못한 채 파리에서 지낸 지 3달이 넘게 흘렀지만 기주는 절망하지 않았다. 태영을 다시 만나는 것,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에서도 아주 가끔씩 그는 태영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으니까. 몇 번의 엇갈림이 반복되면 결론은 하나였다. 결국 그들이 만나게 되는 것.




그리고 그날은 평소와 다름없이 찾아왔다. 점심시간에 일하던 정비소에서 나온 기주는 샌드위치를 사기 위해 공원을 가로 질렀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공원 한가운데 자리 잡은 분수대에 멈춰 섰다.

환한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물줄기를 지켜보던 그는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늘 같은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졌다. 퐁 소리와 함꼐 물속으로 가라앉는 동전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원 빌었어요?"

가까이서 들려온 여자 목소리에 기주의 몸이 굳었다. 꿈에서도 그리워 한 바로 그 목소리였다. 지난 2년, 꿈에서 듣고 또 들었던 목소리였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누르며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생긋 웃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확인했다. 태영은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그리고 머리 모양도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예쁜 건 그대로였다. 그의 가슴을 미친 듯 뛰게 만드는 그 미소도 그대로였다.

"강태영 씨 머리카락이 많이 길었네. 밤마다 야한 생각만 했군?"

"한기주 씨는 머리카락에 힘 좀 뺐고요."

태영이 살짝 웃으며 하는 농담에 기주도 마주보며 웃었다. 파리에 온 뒤로 머리 모양에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제멋대로 방치한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뻗쳐 있었다. 하지만 태영은 그게 더 좋은지 마냥 웃기만

했다. 그 미소에 마음이 젖어드는것을 느끼며 그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태영의 작은 손을 꽉 잡았다.

"이젠 안 놓을 거야."

잡히지 않은 손으로 동전을 꺼낸 태영도 분수대에 동전을 던졌다. 물 속으로 빠져드는 동전을 바라보던 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나도 이젠 안 놓을 거예요."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동시에 피어난 미소가 햇살과 함께 반짝였다.





17, 그리고 그들은



기주가 센 강 근처에 있는 GD 자동차 전시장에 도착한 것은 예정보다 5분 정도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매장에선 훨씬 전에 준비를 마친 듯 책임자는 당황한 기색 없이 그와 승준을 맞았다. 짧은 인사를 마친 기주는

넓은 매장부터 둘러봤다. 먼지 하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반짝이는 매장 곳곳에선 살아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담당자의 브리핑을 들으며 천천히 걸어가던 기주는 매장 한가운데 전시된 G5에서 멈춰 섰다.

"신차 반응은 어떻습니까?"

"예. 아직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반응이 좋은 편입니다. 이번 달 목표는 무난히 달성할 것 같습니다. 성능도 빠지는 데가 없고 무엇보다 같은 급으로 경쟁이 붙은 도요타 쪽에 비해서 가격이 20% 정도 저렴하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기주는 매장을 둘러보던 중년 부부가 G5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유심히 살폈다. 호감을 감추지 못한 푸른눈 두 쌍이 차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GD 자동차에서 자체 개발한 고급세단 G5. 자체 모델로 유럽 시장을 공략

하려는 시도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고 기주 자신도 어느 정도는 미심쩍어 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반응을 보아하니 그건 노파심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당분간은 G5 쪽에 총력을 기울이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담당자와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승준이 다가왔다.

"방금 AX쪽 담당자와 통화했어요. 사장이 어젯밤 늦게 출장에서 돌아 왔다더라고요. 어쨌든 지금 당장 만나고 싶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오늘 오후 스케줄은 어떻게 돼?"

"뺄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없고······, 3시에 회의가 잡혀 있긴 한데 그건 내일로 미루면 되고요."

"그럼 내가 직접 회사로 간다고 전해. 오후 일정은 다 취소 시키고."

"예. 그렇게 전할게요. 아, 참 이거요."

핸드폰을 꺼내던 승준은 그제야 뭐가 생각났다는 듯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고는 엽서를 내밀었다.

"오늘 아침에 받았어요. 수혁인데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간혹 엽서로 소식을 전해 오곤하는 수혁의 행동에 기주는 씩 웃으며 엽서를 읽었다.

잘지내? 여기 시프엔의 여름은 무척 덥네.

지금은 기타를 끼고 사느라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워. 제대로 발동이 걸린 거지. 이 기타란 놈한테. 그것까진 좋은데 스틱 잡고 휘두르던 손이라 쉽게 적응이 안 돼서 고전 중이야.

처음 스페인에 왔을 땐 그냥 관광이나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이 먼곳에서 기타를 배울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는데, 한달 전쯤 저녁 늦게 거리에 나갔다가 집시들의 공연을 볼 기회가 생겼어. 사실 나도 춤이나 구경할까 하고 멈춰

섰는데······, 결국은 공연이 끝나고도 그 자리를 뜰 수가 없더라. 춤이 아니라 기타 연주 때문에 말이야. 그때 기분이 꼭 망치로 머릴 한대 맞은거 같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뭐 세상일이 다 그렇잖아. 결국엔 지저분하고 술주정뱅이인 노인네가 내 스승이 된 거지. 지금도 그 노인네한테 온갖 욕설을 다 들으면서 기타를 뜯느라 아주 정신이 없다. 그쪽은 별일 없지?


나중에 시간 나고 기분 나면 또 연락할게. 그럼 잘 지내. 챠오!




간결한 내용을 죽 읽던 기주는 피식 웃고 말았다. 하여튼, 이 녀석은 엽서도 제 기분 내키는 대로였다. 기주는 엽서를 승준에게 건네곤 전시장을 빠져나갔다.

"스페인이 그렇게 덥냐?"

"그거야 당연······, 왜요? 스페인에 가보려고요?"

기주의 질문에 승준이 뭔가를 눈치 챈 듯 물었다.

"그래, 저번엔 그리스라고 하더니 이번엔 스페인이란다. 참, 내 휴가가 언제부터지?"

"2주 후로 잡혀 있어요."

"그럼 그때 가보지 뭐. 수혁이 어디 있는지 소재 파악이나 좀 해봐."

그 말에 승준이 투덜대기 시작했다.

"선배는 비서를 가끔 서비스 센터 직원으로 볼 때가······"

"그럼 부탁한다! 지금 AX로 갈 테니까 그리 전달하고."

푸념을 가볍게 잘라버린 기주는 승준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차에 올랐다. 프랑스 굴지의 광고 회사로 이름을 떨치는 AX. 머릿속으로 위치를 가늠한 그는 잠시 후 차를 출발시켰다.




도로는 한산했다. 하지만 막힘 없이 도로를 달리던 기주의 차는 중심지로 들어서면서부터 점점 느려졌다. 행사 문제로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움직이는 앞차를 노려보던 그는 결국 마음을 정했다. 이런 상태라면

지름길로 들어가는 게 빠를 것 같았다. 몇 미터를 더 나간 후, 기주는 우회전 깜빡이와 함께 좁은 골목길로 향했다. 좁은 길이긴 하지만 아는 사람이 몇 없는 곳이라 막히지는 않을 것이다. 큰 원을 그린 기주의 차는 좁은 골목으로 빨려들 듯

들어갔다. 하지만 차가 제 자리를 잡기도 전 그의 차는 덜커덩거리는 소음과 함께 제자리에 멈췄다.

실습의 막마지 촬영을 앞둔 태영의 가슴은 두 근 반 세 근 반이었다. 이른 아침 학교를 나선 태영 일행은 전날 봐둔 장소로 향했다. 1시간 가량 위치를 선정하고 조명을 설치한 뒤 카메라 위치도 의논했다. 촬영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한

태영은 일행을 모았다. 마이크를 설치한 니키를 끝으로 열 명의 실습 팀원이 모두 모였다. 흥분으로 상기된 그들의 표정은 똑같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잠시 후 연기를 맡은 폴이 대본을 꺼내들고 주변의 의견을 구하려는 찰나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놀란 그들의 시선이 소리가 난 곳으로 모였다.

10명의 입에서 동시에 각국의 언어로 비명이 터졌다. '맙소사'라고. 우지끈 하며 난 소음은 다름 아니라 그들의 마이크가 박살이 나는 소리였다. 그것도 막 골목으로 들어선 차바퀴에 깔려서 말이다. 경악을 금치 못한 채 그 처참한 광경을

보던 태영은 저도 모르게 차를 향해 달려갔다. 아직 촬여은 시작도 하지 못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거기다 촬영 도구는 모두 학교에서 사정사정하며 빌린 것들인데······. 눈앞이 노랗게 변했다가 다시 시뻘겋게 변했다. 분노로 가슴이

쿵쿵거렸다. 시커면 괴물처럼 커다란 차 앞에 멈춰 선 태영은 앞뒤 가리지 않고 차 문을 마구 두들기며 외쳤다.

"헤, 헤이! 오브레 라 프네트르!(이, 이봐요! 차 문 열어요!)"

차 유리창이 내려가며 말끔하게 차려입은 동영 남자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는 상황을 살폈다.

"무슨 일이야?"

태영이 갑작스런 한국말에 놀란 듯 머뭇거리다가 이내 정신을 수습하고 따져 물었다.

"아니, 이렇게 좁은 골목에 들어오면서 무슨 배짱이에요? 앞도 제대로 안 보고 다녀요?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보여요?"

남자는 태영을 빤히 쳐다보다가 자신의 차 바퀴 아래 처절하게 뭉개진 마이크를 확인하고는 태연스럽게 되물었다.

"보이지."

뭐라고? '보여' 라고? 촬영을 이렇게 망쳐놓고 저렇게 뻔뻔한 반응이라니! 남자의 태도에 화가 난 듯 태영이 팔을 걷어 붙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아니. 보이다뇨. 보이는 게 전부예요? 보이는 거 말고 다른 건 없어요? 나원 참."

"나 시간 없거든. 얼마를 주면 되겠어?"

태영은 갈수록 태산이라는 표정으로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허, 이 사람이 보자보자 하니까 사람을 아주 보자기로 보네. 이봐요, 얼마나 잘먹고 잘살기에 그런 말이 쉽게 나와요? 그렇게 돈이 많아요? 그럼 변상해 봐요. 한 1억 정도 받고 싶은데요?"

태영의 말에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1억? 지금 장난해?"

"하, 이 사람이 강릉 여자 성격 나오게 하시네. 아까우면 사고를 치지 말던가. 도덕 시간에 뭘 배웠어요? 이럴 땐 돈이 아니라 미안하단 사과가 순서 아니에요? 얼마면 돼? 난 그 말투가 기분 나빠요."

"그쪽 말투도 썩 좋은 말투는 아니야. 1억은 못 주겠고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지갑을 꺼냈다. 하지만 지갑을 열어 보기도 전에 남자는 생각이 난 듯 다른 제의를 했다.

"지금 현금이 없는데, 나랑 같이 가지. 내가 사무실에 가서 줄 테니까."

"하, 이 사람이 그런다고 못 따라갈 줄 아나? 어디 보시라고. 내가 끝까지 쫓아가서 변상받을 테니까!"

태영은 팀원들에게 오늘 촬영 일정이 힘들게 됐다며 장비를 챙겨서 돌아가라고 일러줬다.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일에 대한 변상을 받겠다는 말을 하고는 조수석에 앉았다.

"어서 출발해요. 어딜 가는지 몰라도 난 끝까지 따라가서 변상을 받고 말 테니까!"

아예 작정했다는 듯 의자에 등을 바짝 붙이고 있는 태영의 모습에 남자는 피식 웃어버렸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온 차는 넓은 도로를 질주했다. 앞만 보고 있던 여자는 촬영 장소에서 멀어지자 남자의 옆얼굴을 힐끔거렸다. 남자는 운전석 창문을 열고 센 강을 따라 에펠탑이 훤히 내다보이는 도로를 달렸다. 시원한 바람이

여자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렸다. 기주가 돌아보지 않은 채 말을 꺼냈다.

"아까 그 변상 말인데."

"왜요? 웃돈이라도 얹어 주시려고요? 아 그야 좋죠. 아님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하려고요?"

웃돈이라는 소리에 남자는 넉살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아니. 제안할 게 있어서 말이야. 우리 집에 강태영이라고 지금 일을 봐주는 가정부가 영 형편이 없어서 말이야. 음식은 맵고 달기만 한 떡볶이만 해대고, 와이셔츠 색깔은 잘 구분도 못해. 게다가 사사건건 아내처럼 얼마나

깐깐하게 구는지 내가 미칠 지경이야. 그러니까 아가씨가 새로 나랑 고용 계약서를 쓸 의향 없어? 급료는 서운치 않게 줄 수 있어."

남자의 말에 태영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어재끼며 말했다.

"하하, 싫어요, 나도. 매운 거 단 거 싫어하는 남자에게 음식을 해주는게 보통일인 줄 아시네. 거기다 옷장 정리는 또 얼마나 까다롭게 간섭하는지 원. 와이셔츠 색깔은 또 구분해서 정리해 줘야 해요. 그거 정말 스트레스 잔뜩 받아요.

그러니까 고용 계약서를 새로 쓸 의향이 없네요, 한기주씨."

씩 웃는 태영을 보며 기주도 유쾌하게 웃었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달려 나가더니, 촬영한다는 데가 하필 거기였어?"

"예전에 기주 씨가 가르쳐준 길이잖아요. 차들도 별로 들어오지 않고, 인적도 드물어서 촬영에 적격이다 싶었죠. 반나절을 촬영 준비하느라 고생했는데, 뭐예요 정말? 팀원들이 얼마나 고생했는데. 돌아가서 뭐라고 둘러대요? 아, 진짜.

변상이 형편없으면 나 정말 화낼 거예요."

태영의 말에 기주의 볼에 깊은 보조개가 파였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반짝거리는 그 보조개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태영은 얼른 표정을 수습했다.

"난 오늘 한 사장한테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철저하게 변상 받을 거니까, 웃지 말아요!"

"어디 평생 받아보라고. 확실히 변상해 줄 테니까!"

기주는 다시 유쾌하게 웃으며 가속기 페달을 밟았다. 오늘은 조금 새로운 이벤트가 필요할 듯 싶었다. 태영을 위한 새로운 이벤트 말이다.

웃음을 터뜨리는 기주, 그리고 조수석에 앉아 툴툴거리는 태영. 두 사람을 태운 차가 한낮의 파리 시내를 질주했다.



그들에겐 아름다운 파리의 오후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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