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문대의 '비인기 학과'들이 고사(枯死) 위기를 맞고 있다. 서울대 인문대는 14일 "2007학년도 전기 학과별 전공진입 지원자를 받은 결과 독문과.언어학과.종교학과 지망생은 한 명도 없었다"고 밝혔다. 불문과에는 1명, 노문과에는 2명이 지원하는 데 그쳤다. 반면 어문계열 지원자 64명 중 40명이 영문과를, 역사.철학 계열 지원자 50명 중 25명이 국사과를 지원해 쏠림현상이 두드러졌다. 인문대 1학년 이모(19.여)씨는 "영문과.중문과를 졸업하면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학생들이 몰린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2002년부터 인문.사회.사범대에 대해 1~2학년 과정을 마친 뒤 원하는 시기에 전공을 선택하는 '모집단위 광역화'를 시행하고 있다. 인문대는 어문계열과 역사.철학계열 둘로 나눠 신입생을 선발한다. 그러나 매 학기 말 전공진입 신청접수 결과를 보면 학과별로 심하게 희비가 엇갈린다. 종교학과와 노문과는 지원자가 3명을 넘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독문과와 불문과에도 매 학기 5명 이내의 학생이 지원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비인기 학과는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실제로 종교학과의 경우 이번 학기 학생 수 미달로 일부 전공과목이 폐강되기도 했다. 그나마 비인기 학과가 명맥을 유지되는 것은 '전공 예약제' 덕분이다. 불문.독문.노문.서문.언어.종교학과 등 6개 과는 수시모집에서 10명 안팎의 전공예약자를 선발한다. 비인기 학과가 최소한의 인원이라도 확보하려는 자구책이다. 이 때문에 교수들 사이에선 "학과 유지를 위해 학생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종교학과 윤원철 교수는 "취업과 직결되지 않는 기초학문이 외면받는 사회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학부 졸업생이 적다 보니 대부분 타과 출신인 대학원생에게 학부 수준 교육부터 해야 하는 등 후학 양성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의 '인문대 엑소더스'현상이다. 2006년 초 서울대 인문대에선 전과 요건을 채운 260명 중 23%(59명)가 다른 단과대로 옮겼다. 대부분 법대.경영대.경제학부 등 소위 인기학과로 옮겼다. 인문대 김창민 교무부학장은 "취업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을 무작정 비인기 학과에 묶어둘 순 없지만, 국립대만큼은 시장원리를 떠나 기초학문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