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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24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09 20:35:54
조회 225 추천 17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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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점차 이 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일어난 다음 잠시 바깥을 둘러보고, 주변 눈치를 보면서 보급 물자를 받아오는 것. 이것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를 어찌나 경계하는지, 먼저 말을 걸어 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딱 한 명, 첫날에 우리에게 인사를 먼저 건네주었던 옆 천막에 사는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었다. 


  그 일주일이란 기간 동안 큰일이 꽤나 많이 있었다. 여러 명이 사라지고, 또 그만큼 여러 명이 들어왔다. 


  그 사람들은 무사할까?


  이상 증세를 보인 사람들 중, 조금이라도 버티거나 저항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머리를 얻어맞고 기절했다. 안드로이드에게 양 팔을 잡히고 땅바닥에 질질 끌려가는 모습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동물을 보는 것만 같았다. 


  혹시 브루니의 정체를 들키게 된다면 나도 저렇게 끌려 가는 게 아닐까? 순간 몰려온 두려움이 나를 옥죄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두려움을 순식간에 털어냈다. 


  엘사를 다시 볼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지금 살아가는 이 삶도 오롯이 엘사가 준 삶이었다. 엘사가 없었더라면 나는 영혼 없이 살아가다 결국 마모되고 교체되어서 버려졌을 테니. 


  그러니까, 엘사. 부디 다치지 마.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브루니도 내 마음을 알아준 걸까, 내 품 안에서 조금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까 브루니가 더 이상 안내를 안 해주네. 


  한동안 우리의 앞길을 안내해 주던 브루니는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마치 여기서부턴 우리가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었다. 


  … 이 아이는 괜찮겠지?


  만약 다른 사람들이 브루니가 불을 쓰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될까? 문득 그런 고민이 들었다. 아무래도 브루니보다는 브루니를 데리고 다니는 내가 잡혀가지 않을까? 


  아니야, 부정적인 생각하지 말자. 


  나는 품 속에서 꿈틀거리는 브루니를 꼭 안아주었다. 엘사가 남기고 간 유일한 흔적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는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빼앗겨서는 안 되었다. 


  “안나, 일찍 일어났네?”


  마침 잠에서 깬 데이지가 일어나서 내게 다가왔다. 


  “아, 일어났구나. 통 잠이 오질 않아서 말이야.”


  “흐응…”


  데이지는 작은 콧소리와 함께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싶었다. 


  “안나.”


  “응?”


  데이지는 짧은 상념을 끝내고 내게 말을 걸었다. 편해 보이던 아까와는 다르게 무언가를 결심한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이제 슬슬 주변 조사를 해 보는 게 어떨까?”


  “... 응, 나도 그 생각하고 있었어.”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주변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이제 얼추 끝난 참이었다. 


  “좋아, 그러면 우리…”


  “같이 다니자.”


  “따로 다니자.”


  데이지와 내 목소리가 동시에 겹쳤다. 그와 동시에 나와 데이지는 눈을 크게 떴다. 데이지는 놀람을, 나는 충격과 경악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왜?


  나는 데이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갑자기 왜 따로 다닌다고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같이 잘 다녔으면서, 같이 가자고 한 것이 바로 데이지 자기 자신이면서. 도대체 왜?


  “왜, 왜…?”


  나는 당황스러움을 애써 뒤로 밀어 두고 재차 물었다. 데이지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응? 그래야 좀 더 많이 알 수 있지 않을까?”


  듣고 보면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은 납득조차 않은 채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


  그러나 뭐라 트집을 잡으려 해도 잡을 부분이 딱히 없어 보였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붙잡으며 재차 물었다. 


  “혼자 괜찮겠어?”


  데이지는 잠시 고민에 빠져들어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다시 말했다. 


  “응, 적어도 여기에 폭력은 없잖아.”


  “있을 수가 없긴 하지. 그렇긴 한데…”


  불과 며칠 전에 있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천막 간에 시비가 붙어서 서로 싸우다가 둘 다 안드로이드에게 잡혀가 버린 일이었다. 


  “그러니까 안나, 내 걱정은 안 해줘도 돼.”


  “...”


  나는 알겠다고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녀를 내게서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조금이라도 내 곁에서 떼고 싶지 않았다. 이러다 엘사처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것만 같았다. 


  “... 조심히 다녀와야 해. 어디 다치지 말고, 꼭…”


  그러나 당장이라도 그녀를 붙잡아 세우고 싶어 하는 내 마음과는 반대로, 나는 결국 데이지를 막아 세울 수가 없었다. 이게 맞는 행동인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도 나는 데이지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 고마워, 안나.”


  데이지는 옅은 미소와 함께 내게 말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보니 엘사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나는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려왔다. 


  “다녀올게, 안나.”


  “다녀올게, 안나.”


  데이지는 그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저 멀리 사라지는 데이지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가 남기고 간 말 위로 이상한 목소리가 덮어 씌워지듯이 들려왔다. 


  … 이번에는 꼭 돌아올 거지?


  나 스스로도 내가 무어라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데이지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뒷모습을 끝까지 간직하고 싶었다. 찰나에 불과하겠지만, 이 시간만이라도 그녀를 위해 빌어주고 싶었다. 






  “... 안나에게 정말 미안하게 됐네.”


  데이지의 힘없는 목소리가 허공에서 흩어졌다. 그녀는 소리 없이 걷다가도 어딘가 불안한 듯이 이리저리 휘청였다. 콜록, 콜록- 어딘가 아픈 곳이라도 있는지 잔기침을 잔뜩 했다. 


  그렇게 비틀비틀 걸어가다가 그녀는 어딘가로 후다닥 달렸다. 누군가 들었다면 소름 끼칠 정도로 아무 소리조차 없었다. 잔뜩 야윈 그녀의 몸은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고 할 정도였다. 


  어느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선 그녀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벽에 손을 짚고 기댔다. 한참 동안 연신 기침을 해대고 나서야 겨우 기침 소리가 멎었다. 


  “… 미안해.”


  그녀는 계속해서 낮게 중얼거렸다. 골목 어느 곳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 내색도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바보 같은 나 때문에, 네게 이런 고통을 주는구나.”


  그녀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면서 말했다. 인기척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살았는데도 여전히 생각하는 건 어린애라니, 참… 이놈의 마법이고 정령이고 도움되는 게 하나도 없단 말이야.”


  저벅저벅, 이제는 발자국 소리만으로 몇 명이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십 년 넘게 방에만 갇혀 살았으니까. 나도 내가 이해 안 되는 건 아닌데.”


  데이지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송이가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또 되풀이하면 안 되지.”


  눈송이 한 개가 데이지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그 순간, 그 눈송이에 닿은 그녀의 머리가 살짝 희미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데이지는 고개를 푹 숙이고 가볍게 한번 저었다. 


  “그러니 제발, 네 마음 그대로를 말해 주란 말이야.”






  “...”


  데이지는 내 곁을 떠났다. 잠시 떠난 것인지, 아니면 그 뒷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녀가 떠나간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가 걸어간 곳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해요?”


  내 등 뒤에서 어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등도 돌리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 구경.”


  “뭘 보고 있는 거예요?”


  “내가 그걸 답해줄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


  “허…”


  어린아이는 뒤에서 뭔가를 부스럭거리더니 내 손에 무언가를 얹었다. 내려다보니 내 손에는 보급으로 받은 빵 쪼가리가 있었다. 


  “먹어요. 오늘 보급받으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무슨 의도지?”


  나는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그 아이는 흠칫 놀라며 조금 뒷걸음질했다. 


  “...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보여서요. 그럼 저는 이만…”


  아이는 급하게 자기 천막으로 달려서 돌아갔다. 나는 미동도 않고 데이지가 있던 자리를 멍하니 응시했다. 그리고 눈을 한번 감고, 데이지가 간 곳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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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다. 내색 안 하려고 해도 매일같이 이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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