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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26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11 21:24:58
조회 202 추천 18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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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십시오.]


끙…


나는 비몽사몽한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근래에 피로를 너무 쌓아 놨던 탓일까, 몸은 마치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리고 있었다.


천막을 젖히고 나오자 아니나 다를까 그 앞에 보급이 놓여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보급을 받고 있었다. 한 박스, 두 박스, 심지어 어느 곳은 네 박스를 여러 사람이 붙어서 가져가고 있었다.


“맛있게 먹어요!”


옆에서 어제 나를 방해했던 그 아이가 내게 뭐라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관심도 주지 않고 고개를 홱 돌렸다.


천막에 돌아와서 상자를 열었다. 돌덩이 같은 빵 하나와 물 한 캔, 구성품은 언제나 똑같았다. 나는 눈을 꾹 감고 빵을 씹었다.


왜 나를 무시하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항상 나를 무시했다. 내가 앞을 걸어가던, 천막 앞에 가만히 서 있건, 말을 붙여 보건 한결같이 나를 무시했다. 이러다간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할 듯 싶었다.


… 끙. 진짜 잡혀가기라도 해 봐야 하나?


작은 한숨 소리가 내 입에서 나왔다. 확실히 그 방법이 지금보다는 더욱 현실성 있어 보였다.


엘사가 말했던 대로라면 브루니를 알 텐데.


황궁 사람들은 엘사를, 그리고 브루니를 알 것이 분명했다. 브루니를 황궁에 두고 왔었는데도 멀쩡히 돌아온 것을 보면 분명했다.


그런데 잡혀가도 황궁으로 간다는 보장이 없잖아.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나는 머리를 박박 긁었다. 오랫동안 씻지 못한 탓인지 머리 위에서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콜록, 콜록- 내 입에서 잔기침이 잔뜩 나왔다.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든 말을 붙여봐야 했다. 적어도 지금 이 격리 구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새 빵과 물을 다 해치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곡차곡 쌓아둔 빈 보급품 상자는 어느새 천장에 닿을 만큼 쌓여 있었다.


초콜릿이라도 조금 가지고 올걸.


엘사가 내게 선물해주었던 초콜릿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저기…”


홱, 내 말을 들은 사람은 들은 채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죄송한데…”


홱,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았다. 내 말은 그들에게 안중에도 없었다.


결국 오늘도 아무 소득 없이 터덜터덜 돌아왔다. 천막 안에 들어와서 바닥에 털썩 누웠다.


미치겠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없어 보였다. 대체 저렇게 나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친해진단 말인가?


“진짜 이러다 영영 여기서 살겠어.”


말을 붙여볼 만한 사람이 진짜로 없을까? 나는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했다.


“... 잠깐만.”


생각해보니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옆에서 사사건건 내게 말을 붙이는 그런 사람이.


나는 천막에서 나와 그 아이가 지내는 천막으로 넘어갔다. 음, 음… 잠시 목을 고르고, 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저기, 음… 자리에 있어요?”


긴장한 탓인지 말을 조금 더듬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아이는 곧장 천막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게…”


나는 말을 얼마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얼굴이 확 붉어졌다. 먼저 거절해놓고선 이제 와서 친해지려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웠다.


“...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요?”


“으잉?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쩔쩔매고 있어요?”


아이는 나를 추궁하듯이 물었다.


“그게, 음…”


나는 한동안 뜸을 들였다. 아이는 내가 답답한 나머지 성화를 내며 말했다.


“말을 해야 알죠. 아니, 부탁할 게 있으면 말을 해요. 나중에 내 부탁 한번 들어주면 되잖아요!”


나는 머쓱해진 나머지 고개를 잠시 돌렸다.


“여기 사람들이랑 좀 친해지고 싶어서요.”


내 말을 들은 아이는 박장대소했다. 주변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세상에, 진작 말하지. 그거 때문에 이렇게 긴장한 거예요?”


아이가 킬킬거리는 소리가 도로를 가득 채웠다. 나는 당장이라도 어딘가에 숨어버리고 싶었다.


“하여튼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다들 소개해 줄텐데.”


“...”


한바탕 웃음을 끝낸 아이는 먼저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얼굴을 푹 숙이고 그 아이의 뒤를 쫓아갔다. 아이는 곧장 내게 천막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부 나를 경계했다. 그 아이와 나를 번갈아보면서 눈치를 보다가, 그 아이가 말을 꺼내면 그제야 내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짧은 순회를 마치고 나서, 우리는 다시 돌아오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어때요?”


“뭐가?”


“여기요. 이 격리 구역이요.”


“... 글쎄.”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반응을 지켜봤다. 아이는 내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제 할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참… 여기 꼭 그거 같지 않아요?”


“...”


“아, 그래. 그거 있잖아요. 가축 사육장.”


“... 가축 사육장?”


“저거 봐봐요.”


그 아이는 그 말과 함께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은 천막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란을 가리키고 있었다.


“...”


“어차피 결국 부질없는 건데, 왜 먼저 잡혀가겠다고 저렇게 싸우는 건지.”


두 사람이 보급품을 두고 서로 다투고 있었다. 그 하나를 가져가겠다고 서로 고성을 내뱉으며 다투고 있었다. 그러다 한 사람이 먼저 보급품에 손을 댔고, 다른 사람도 그 상자에 손을 올려 서로 가져가려고 악을 쓰고 있었다.


“... 저러면 결국…”


“맞아요.”


곧장 소란을 듣고 찾아온 안드로이드는 그 두 사람을 전부 기절시켰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안드로이드에게 얻어맞은 두 사람은 산 송장처럼 땅바닥에 쓰러졌다. 안드로이드는 그 두 사람의 발목을 잡고 질질 끌어서 어딘가로 데려갔다.


“욕심 조금 부리다가 일찍 잡아먹히네, 어휴.”


“...”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질질 끌려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짧게 고개를 숙여서 저 사람들을 위해 잠시 명복을 빌어주었다. 어쩌면 돌아오지도 못할,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사람을 위해서.


“동정하지 마요. 어차피 자주 보게 될 테니까.”


아이는 내게 따끔하게 쏘아붙였다.


“여긴 가축 사육장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가축이고, 저 높은 사람들은 사육사.”


“... 왜지?”


“공고문 안 봤어요? 저 같은 애도 보면 눈치채겠던데. 누가 봐도 의도가 있어 보이잖아요.”


아이는 성의 없이 말하고 주인이 없어진 천막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참, 어서 여기를 벗어나야 해요.”


“...”


나는 아무 말 없이 아이의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빠져나온 곳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서로 주인 없는 보급품을 가져가려고 싸우고 있었다.


“보급 하나만 던져줬는데도 알아서 잘 크고, 어때요. 사육장 맞죠?”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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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좀 답답해

숨을 쉬고 있는데도 턱 막히는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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