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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28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13 21: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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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천막 밖으로 얼굴을 잠시 내밀었다. 주변에 듣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그러는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다시 돌아와 보급 상자 위에 앉았다. 


  “좋아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도 정확히는 아는 게 없어요.”


  “... 뭐?”


  “워, 진정해요! 아직 본론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손짓 발짓을 다 해가며 나를 다시 앉혔다. 어디선가 계속 이상한 쇳소리가 들렸다. 


  “어쨌거나 저도 정확히 아는 건 없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본건 있어요.”


  “그게 어디지?”


  “그전에, 당신이 뭘 하려는지를 들어야겠어요.”


  “...”


  나는 계속해서 일관된 침묵으로 대응했다. 아이는 슬슬 짜증이 나는 듯한 표정이었다. 


  “후, 진짜 궁금하게 하네.”


  “... 미안해. 하지만 그것만은 말할 수가 없어.”


  “언제쯤 말해줄 수 있는 건데요?”


  “... 나도 몰라.”


  “쩝. 이거 강제로라도 알아야 하나, 궁금하네. 어쨌거나, 잡혀간 사람들은…”


  “사람들은?”


  “그런데 진짜 말 못 해줘요?”


  “...”


  “참나, 알았어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안드로이드들은 전부 통제부에서 나와서 통제부로 돌아가요. 보급 안드로이드건, 치안 유지 안드로이드건.”


  “그렇다면…”


  “끌려간 사람들도 통제부로 갔을 거예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저도 알 방법이 없지만요.”


  “... 고마워.”


  “누구 잡혀간 사람이라도 있는 거예요? 대체 이걸 왜…”


  “... 그러면, 황궁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 설마.”


  아이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흔들리는 동공, 바들바들 떠는 손. 아이의 반응은 내게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아이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나를 잠시 째려보다가도 자리에서 일어나 보급 상자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무언가는 알고 있는 듯 싶으면서도 내게 말하기를 꺼려하는 것 같았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구나, 미안해.”


  나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때, 천막을 나가려는 나를 아이가 붙잡았다. 


  “... 저녁에 다시 제 천막으로 와요.”


  “... 알겠어. 고마워.”


  아이는 내게 잠시 자리를 비워 달라고 손짓했다. 나는 아무 소리 없이 나와 다시 내 천막으로 돌아왔다. 털썩, 곧바로 바닥에 눕고는 눈을 감았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통제부, 황궁. 


  이 두 곳에 실마리가 있음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곳에서 정보를 캐 와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당장 통제부는 폐쇄된 상태이고, 황궁은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유일하게 통제부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 진짜로 잡혀가야 하나.

  나는 브루니를 품에 꼭 안았다. 이 방법은 마지막까지 미뤄야만 했다. 브루니의 존재를 들켰다간, 그 사람들이 브루니에게 무슨 짓을 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피곤하다. 


  몸이 무척이나 나른했다. 이대로 있었다간 금세 잠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꿈속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정작 나는 내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눈 앞에 엘사가, 때로는 데이지가 나타나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 안나."


  그들은 누군가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표정으로 멀찌감치 서서 내게 조심스럽게 인사를 걸었다. 


  엘사는 매번 나를 보다가 저 멀리 도망쳤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고, 소리 없이 울부짖으며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평소 지니고 다니던 그 고귀함과 고상함은 내팽개치고, 체통도 던져버리고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다. 


  그에 반해, 데이지는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만 있었다. 엘사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엘사와는 다르게 나를 꿋꿋이 지켜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희미해지고는 결국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둘 다 내게 짧은 인사만을 남기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아가면서 깨닫는다. 엘사, 데이지. 나는 이 두 사람을, 그 두 사람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 그러니까 여기서 멈추면 안 돼. 


  나는 다시 바닥에서 일어나 벌떡 섰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단순한 아픔을 넘어선 다른 괴기한 통증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걸었다. 내 천막에서 나와 아이의 천막으로 향했다.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괴물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지만, 나는 꿋꿋하게 나아갔다.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눈빛을 맞아가면서도 나는 멈추지 않고 걸었다. 아이의 천막 앞에 도착하고 나서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들어가도 되나?”


  “네, 들어오세요!”


  아이는 저번과 같이 해맑은 목소리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이의 목소리에서 어딘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 돌이킬 수 없는 일이겠지. 


  이대로 이 천막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아마도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랐다. 아이가 날 맞이할 어떤 준비를 해 두고 있을까, 떨리는 마음을 겨우 붙잡아가며 나는 천막을 열었다. 


  “자리에 앉아요. 차라도 타 드릴까요?”


  “...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황궁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


  아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내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고는 내 뒤에 서며 내게 말을 걸었다. 


  “저번에 한 말 기억나요?”


  “... 어떤 말을 말하는 거지?”


  “사육장이요, 사육장.”


  “기억해. 왜 그러지?”


  내 등 뒤에서 쇳덩이가 서로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가축이라고 말했던 거 기억해요?”


  “...”


  “이제는 대답도 안 하네. 뭐, 좋아요. 우리는 그저 가축일 뿐이에요. 저 높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면 그걸 먹고, 일을 하라고 하면 일을 하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아무 탈 없이 지나가요.”


  불안함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슬쩍 일어날 준비를 했다. 


  “가축은 그냥 자기 본문만 잘하면 돼요. 주인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것. 알아서 잘 크는 것.”


  내 등 뒤에서 또 한 번 쇳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뒤돌아보았다. 


  “... 그리고, 괜한 소란 일으키지 말 것. 주인을 귀찮게 하지 말 것.”


  아이는 품에서 작은 날붙이를 꺼내 내게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아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찌나 힘이 세던지, 내 손이 조금씩 밀릴 정도였다. 


  “예전에도 당신이랑 비슷한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아이는 다시 한번 힘을 주어서 손을 빼내려고 했다. 나는 간신히 아이의 손을 붙들을 수 있었다. 


  “당신처럼 누구를 잃어버리고는 우리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그렇게 빌면서 통제부와 황궁에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했었죠.”


  아이는 힘을 더욱 세게 주었다. 손에서 땀이 새어 나와서인지 조금씩 미끄러지고 있었다. 


  “어떻게 된 줄 알아요? 다 죽었어요. 그 사람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 사람 전부.”


  주머니에 있던 브루니가 조금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잠자코 있어요. 고통 없이 끝내줄 테니까. 당신 혼자서 괜히 설치다가는 여기 구역에 있는 사람 전부 죽어요.”


  아이는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 나는 버티지 못하고 아이의 손목을 놓고야 말았다. 나는 다급하게 달려서 천막을 나서려 했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에 부딪히고는 나가지도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게 되었다. 


  “잠자코 있으라니까요. 저항하면 아프기만 할 뿐이에요.”


  뒤에서 아이가, 그리고 앞에서 사람들이 문을 막은 채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어디에도 도망칠 방법은 없어 보였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손과 발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오싹함이 머리를 타고 내 온몸에 퍼졌다. 공포가 나를 순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순간, 


  “꺄아아악!!!”


  허공에 생겨난 불구슬이 아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곧바로 다른 불구슬이, 또 다른 불구슬이 허공에서 생겨나 다른 사람들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내 퇴로를 막고 있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천막에 옮겨 붙은 불길은 크게 일더니 주변 천막을 잡아먹으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는 주머니를 꼭 쥐고 밖으로 나갔다. 온 골목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마치 용암에 잡아먹힌 지옥을 그린 지옥도를 보는듯했다. 그리고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쿵-


  내 뒷목에 큰 충격이 느껴졌다. 조금씩 희미해지는 의식 사이로, 누군가가 내 몸을 질질 끌고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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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수난시대 ㅜㅜ

이틀~삼일동안은 연재 없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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